정의맹으로 (5)
“제발……”
“한 번만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
팔다리의 힘줄을 자르고 관아 앞에 거꾸로 매달고 나니 진실이 드러났다.
연준호로선 착잡했다.
무인의 자존심을 깎아 내리며, 핍박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화산파에서 재회했던 서문경에게 들은 말이 있었다.
‘천하가 혼란할수록 선의가 가라앉고 병폐가 드러날 것이라더니…… 친구 말에 틀림이 없었구나.’
일이 잘 풀려도 우울했다.
연준호의 시선이 핏물을 뚝뚝 떨어트리는 무인들에게 향했다.
“이름과 소속을 말해라.”
“…….”
“그 꼴이 돼서 부끄러운 게 아니라, 자기가 행한 일에 부끄러웠어야지. 더 혼쭐이 나야 말문이 트이겠나?”
그 말에 느낀 바가 있었을까?
잠시 머뭇거리던 무인 중 하나가 입술을 달싹였다.
“우린…… 남궁세가의 칠검단(七劍團)에 속한 무인이요.”
“이봐!”
“조용히 하게! 저 말이 틀리진 않았어! 이게 우리가 원하던 명가의 검행인가?”
“…….”
절규에 가까운 일갈이 다른 무인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들도 원치 않았다고 주장하는 듯하지만, 연준호에겐 의아할 뿐이었다.
‘어째서 스스로 그만두지 못하고, 더 강한 힘 앞에서 굽힌 다음에야 자조하고 절규하는 것일까?’
수많은 협객이 고뇌한 담론에 연준호가 발을 들였다.
마교가 외세를 끌어들여 혼란한 시기가 영글지 못한 후기지수를 고수로 만들고 있었다.
연준호는 착 가라앉은 눈으로 무인들을 꾸짖었다.
“그대들이 벌인 악행은 다른 이가 벌할 것이니 나한테 변명하지 않아도 되네.”
“누구……?”
“지엄한 대명률이 있는데, 어찌 사사로이 벌하겠나?”
“대명률?”
칠검단의 무인들이 끌끌 웃었다.
저 웃음에서 음험함이 배어 나왔다.
연준호의 얼굴이 굳어졌다.
“대명률이 우스운가?”
“하하…… 기껏해야 안휘성 내에서 처분이 끝날 텐데, 아. 아직 어려서 그런가? 천하가 돌아가는 꼴을 모르는군.”
“……?”
“평시에도 드넓은 천하에 대명의 정무(政務)가 두루 미치지 못하는데 지금이라고 가능하겠나? 자연히 지부대인에게 맡겨지지.”
그 말에 연준호가 뒤늦게 이해했다.
안휘성은 남궁세가의 권세가 두루 미치는 곳이며, 그들과 관련이 없는 관인이라고 할지언정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외세가 각지에서 판치는 작금에서야 더더욱.
칠검단의 무인들이 얼굴에서 웃음을 지웠다.
“피가 무서운가?”
“……그렇지 않아.”
“팔다리를 자르는 게 아니라 힘줄만 잘랐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소협은 너무 어리군. 칼을 뽑고도 어중간하게 움직였어.”
그렇게 말한 무인 하나가 짤막한 한시를 중얼거렸다.
연준호가 어린 시절에 공부한 시 중 하나였다.
“손이 부족하여 어린아이마저 밭일하는데, 그 모습이 애처롭고도 의연하더라.”
“날 놀리는 거요?”
“그럴 리가. 안타까울 뿐이지.”
칠검단의 무인이 바라보는 시선이 연준호 뒤로 향했다.
“고수가 나설 자리에 의협심 있는 후기지수가 왔으니 말이야.”
“……!”
연준호가 앞으로 몸을 굴렀다.
뒤통수에 칼바람이 스쳤지만, 뒤를 돌아볼 틈도 없었다.
칼을 비스듬하게 위로 휘두르니 손목에 천근의 돌이 부딪친 것 같은 무게가 짓눌렸다.
가히 바위산처럼 느껴지는 중검(重劍).
연준호의 입이 꽉 다물렸다. 등허리에 식은땀이 흘렀다.
‘흘려 내야……!’
“연준호라 했나, 천무학관의 졸업생이라지. 좋은 검객의 상(狀)을 타고 났어.”
고저가 없는 목소리였다.
무인이 흔히 기세를 싣기 위해 내공을 담는 것조차 없었다.
그래서 무서웠다.
사람을 죽이는데 너무 익숙해서, 망설임이 없다는 뜻이니까.
‘연약하게 굴면 안 된다. 강인해져라.’
서문경에게 들은 조언이었다.
화산에서 짧게 검을 나눴던 기억 또한 떠올렸다.
손목으로 행하는 기교(技巧).
연준호는 그에게 들었던 초식명을 중얼거렸다.
“검견불퇴.”
스르르릉……!
중천에 달한 여름의 햇볕 아래, 두 칼날이 미친 듯이 스쳤다.
무수한 불똥이 한 쌍의 선을 그렸다.
한쪽은 아래로 짓눌렀고, 다른 쪽은 빗겨 내고 흘리기 위해 이리저리 뒤틀었다.
이는 접무(蝶舞)의 기교였으나 지금 당장은 알지 못했다.
연준호는 등 뒤에서 나타난 고수에게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칠 뿐이었다.
“조심하십시오, 단장! 어린 것에 비해 실력이 뛰어난 화산파 도사입니다!”
“화산파? 자기 본산이나 신경 쓸 것이지, 여기까지 기어와서는.”
거꾸로 매달았던 무인과 고수가 짤막하게 대화를 나눴다.
그제야 머릿속이 명쾌해졌다.
‘칠검단의 단장이로구나.’
연준호는 힘겹게 칠검단장의 검을 받아치며 외쳤다.
“본산이 비록 위험에 처했으나, 안휘성의 어려움을 배격해서야 어찌…….”
“그게 문제란 거다. 오지랖 넓은 놈 같으니.”
칠검단장은 오불관언(吾不關焉)을 논했다.
‘나는 그 일에 상관하지 아니한다’라고, 위험에 처한 연준호를 비웃었다.
“화산에만 있었다면 더욱 재능을 갈고 닦았을 것이고, 여기서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잘 봐라.”
칠검단장의 칼끝이 관아 구석을 향했다.
안간힘을 쓰는 연준호에 비해 여유가 차고 넘쳤다.
“저기에 너처럼 말하던 관인이 몇 묻혀 있다. 같이 묻었다가, 언제 때를 봐서 태우면 남긴 말조차 재가 되어 흩어지겠지.”
“……놈!”
“목소리에 두려움이 있구나.”
“…….”
연준호는 저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두려웠다. 무서워서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절초를 취한다면 손가락 한 개쯤 놔두고 도망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리 되면 마을 사람은 더욱 위험해진다.
어쩌면 입막음을 위해 모두 죽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였다.
“후우…….”
“저겁니다! 저놈이 흘리는 검기를 조심하십시오!”
무인들의 경고에 칠검단장이 허공을 보았다.
무형과 유형 사이에 걸쳐진 검기.
수많은 점들이 점차 퍼져서 매화의 형상을 그리고 향을 남겼다.
불현듯 매화검법에서 가장 유명한 초식인 매화점개와 매화점점이 떠올랐다.
섬서에서 화산파가 간혹 검무를 출 때에 보여 주곤 했으니까.
칠검단장도 행인 속에 섞여서 보기도 했다. 그러기에 촉각이 곤두섰다.
“……여기서 반드시 목을 쳐야 할 놈이구나.”
“내가 할 소리요.”
연준호가 기합을 내지르며 칠검단장의 검을 비스듬하게 쳐 냈다.
스르릉…… 카가강!
서로 숨을 내뱉지 않았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채 열 합, 스무 합을 부딪쳤다.
연준호의 검기는 점차 번지고 흐드러져 매화잎이 이리저리 흩어지는 숲을 연상케 했다.
검기 하나하나가 날카롭고 화려하여 요체를 알 수 없었다.
칠검단장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젊은 도사가 휘두르는 검에는 사문의 무공을 향한 애정이 있었다.
감명이 깊었다.
칠검단에 속한 후배나 다른 남궁세가의 무인이 저것을 본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적이 아니었다면 한 밤을 지새우며 술을 진탕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문의 일을 처리하러 왔다.
사사로운 감정을 섞을 순 없었다.
꽈아앙!
“……?!”
산사태를 방불케 하는 폭음이 울렸다.
한순간, 연준호는 칠검단장의 움직임을 놓쳤다.
‘어찌 된 일이지?’
시야가 어두워지고 땅울림이 울렸다. 그 외엔 없었다.
……겨우 그뿐인데, 망치 같은 것에 검이 쪼개졌다.
손아귀는 완전히 찢어져서 핏물을 뚝뚝 흘렸다.
상황을 겨우 이해한 그때, 칠검단장이 애석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천무학관에 우리 가주님과 함께 수학했다지.”
“……그렇소.”
“거기서 본 창궁무애검법은 남에게 보여도 되는 기초에 불과해. 상대를 죽이기 위한 검은 남겨서, 지금처럼 펼치는 것이다.”
칠검단장은 검을 작게 휘둘렀다.
한 치에서 두 치.
칼끝을 허공에서 조금 움직이는 정도인데, 멀리 있는 거목 하나가 쪼개졌다.
연준호의 눈동자가 커졌다.
“힘을 정제하지 않고 휘두른 검기가 저 정도라면…… 칼날에 한데 모으면.”
“네가 경험한 것이다.”
“아.”
연준호는 짧은 탄성을 흘렸다.
참으로 무공의 갈래는 너무나도 크고 다양하여, 경외감이 들었다.
“검으로 칠성을 따라간다더니, 중검(重劍)이 아니라 광검(廣劍)이 요체일 줄이야.”
“……이해가 빠르군.”
칠검단장이 잠시 망설였다.
이렇게 뛰어난 재능을 함부로 죽여도 되는 걸까?
정말로, 가주의 명을 따라서 악독한 짓을 벌여도 괜찮을까?
고민은 짧았다.
칠검단을 비롯해 여덟 검단은 오로지 남궁세가의 광명을 위해서 일했다.
그 과정에서 다른 문파의 후기지수쯤이야 걸리적거리는 경쟁자에 불과하지 않나.
그럼에도 칠검단장은 마지막 한 마디를 남겼다.
“미안하다.”
“…….”
연준호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생의 마지막을 직감하고 있음에도 머릿속에 담은 정경을 떠올렸다.
촤르르르…….
수백, 수천의 매화.
과거의 자신처럼 가냘프지만, 한데 모여서 점점이 커지고 흐드러지는 경치.
동문이 더 화려하고 강력한 검을 상단전에 꿈꾸고 있을 때, 연준호는 늘 다른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무극(無極)의…… 매화.’
그것을 이루지 못해서 애석하지만, 안휘성까지 온 협행에 후회는 없다.
연준호가 의연한 자세로 칠검단장의 검을 기다리고 있던 그때.
“뭣들 하는 거야?”
“……!”
멀리서 말을 타고 달려온 검객이 칠검단장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연준호처럼 망설이거나 하는 기색은 없었다.
첫수에 반드시 죽이겠다는 살기가 번들거렸다.
까앙!
검을 힘겹게 받아 낸 칠검단장이 물었다.
“네놈은 누구냐?”
“나?”
검객의 시선이 연준호에게 향했다.
그는 씨익 웃으며 가볍게 왼손을 흔들었다.
“어디서 뭐 하고 있나 했더니, 여기서 만나네?”
“……경아!”
연준호가 환히 웃으며 검객, 서문경을 반겼다.
서문경은 말에서 내리곤 얼굴에서 웃음을 지웠다.
“일단은 단전부터 폐하고 이야기하지.”
“…….”
칠검단장이 말없이 검을 꽉 쥐었다.
어린놈답지 않은 살기에 손바닥이 축축 젖었다.
신비한 무공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