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151화 (149/250)

용서 (3)

눅눅한 송향(松香:소나무 향기).

소림사에서는 고인(古人)을 기리는 장례가 한창이었다.

서문경은 비 젖은 생쥐 꼴을 하고서 일행과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본당에 오르기까지 삼십 걸음.

그동안 의심 어린 눈초리가 검치에게 모아졌다.

대놓고 살기를 흘리는 자 또한 적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둘씩 돌멩이를 쥐었다가 금세 내려놓았다.

“……제길.”

“쯧. 뭔 어린놈을 업고 있어서는.”

검치가 들쳐 업은 병자, 양명성이 있어서였다.

아무리 미워도 아픈 사람까지 휘말리게 해선 안 된다는 자긍심이 돌을 버리게 했다.

신승은 그 광경을 보고는 부드럽게 웃었다.

“소림이 손님을 잘못 들이진 않은 모양이오.”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천하의 무인들이 저러진 않겠지요.”

어쩌면 마교와의 전쟁이 끝나고도 평생.

검치는 적의와 의심 가득한 시선 안에서 살아야 할지 모른다.

신승이 귀의를 권유한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길 파계승이라 했지만, 자애심은 어느 고승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어때, 귀의를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겠나?”

“너무 채근하는 거 아니요?”

“이보시게. 소림사가 어디 흔한 사찰인가? 자네 말고도 귀의하고 싶어서 냅다 무릎부터 꿇는 사람이 적지 않다네.”

“……나중에, 나중에 이야기하지요.”

검치가 슬쩍 양명성을 곁눈질했다.

지금이야 기력이 부족해서 축 늘어져 있지만, 귀는 열어 놓고 다닐 수준은 됐다.

괜히 자기 때문에 사부 머리가 빡빡 밀리게 생겼다고 지랄하는 일이 생기면…… 벌써 머리가 아팠다.

이를 알아차린 신승이 껄껄 웃었다.

“내 비록 육신통이 열려 있지 않지만은, 한 가지는 확실하구만.”

“뭐요?”

“자네가 언젠가 귀의할 것 같으니 말임세!”

“허, 아까 선문답을 할 땐 고승처럼 보이더니, 이젠 시장바닥 점술가 같소.”

검치가 피식 웃고는 신승과 가깝게 걸어갔다.

언제는 서로 죽일 듯 이야기하다가, 친우처럼 대하는 꼴을 보니 운명이 참으로 우스웠다.

서문경은 둘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도 안도의 한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완전히 조지는 거 아닌가 했는데, 다행이네.’

자칫 잘못하면 검치를 두둔하다가 소림과 척지고, 정의맹에 분란까지 초래할 뻔하지 않았나.

그 위기를 한두 마디 거든 것으로 막은 것이 바로 옆에 있는 낭왕이었다.

서문경의 입술이 짧게 달싹거렸다.

-선배, 딱 좋은 때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로서는 화산과 가깝고 가장 잃어선 안 될 문파로 온 것뿐일세.

-그걸 자의로 판단하신 게 정말 대단합니다.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닐세.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낭왕이 한쪽 뺨을 씰룩이는 게 보였다.

그러면서도 공치사까지 적절하게 붙여 넣었다.

-이게 다 현 무림맹주인 남 후배가 제대로 일을 해 주기 때문일세. 만일 내가 무림맹주였다면 몸이 무거워서 이렇게 나서지 못했을 것이고, 정의맹의 발족이 늦어졌겠지.

-예. 물론 알고 있습니다.

-남 후배가 요즘 서운해하는 건 아나? 자기 볼 일 끝났다고 연락이 뜸해졌다고 하던데.

‘나이도 적지 않은 양반이 무슨…….’

좀팽이처럼 그러고 있나.

서문경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차차 찾아가야지요. 제 동기들도 이제 슬슬 만날 때가 됐고.

-자네 동기들? 천무학관 말인가?

-예. 한 번쯤 뭉칠 때가 됐죠.

청겸을 비롯해서 여섯 명.

직접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자신과 성하민까지 더하여 여덟 명이 천하의 최고 기재라고 불렸다.

삼 년이 지난 지금이라면 더더욱 성장하여 빛을 발하고 있으리라 기대했다.

특히 연준호는 새로운 매화검법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으니까.

다른 놈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문파 안에서 둥개둥개 감싸 안기만 할 때도 아니니까요.

-……음. 아직 약관도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무거운 짐을 주기는 싫네만.

-예. 열일곱이죠. 그래도 뭐 어쩌겠습니까, 마교가 나이 봐줘 가면서 죽이진 않을 텐데.

그 말에 낭왕은 잠시 턱수염을 매만졌다.

왠지 모르게 슬펐다.

한창 철없는 짓이나 하면서 술을 토하고, 여자를 만나고 다닐 나이에 마교와 싸울 생각을 하루 종일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심지어 저 생각을 친구들에게 강요할 생각까지 한다.

꼰대도 보통 꼰대가 아니었다.

-자네, 평소에 괴팍하다거나 자기 멋대로 산다는 소리 많지 듣지 않나?

-하고 싶은 대로 살긴 하지요.

-이런.

낭왕은 참으로 애석했다.

정의맹의 선봉에 서서 싸우겠다는 놈이 저런 성정이어서야.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기 어렵다지만, 저래서야 물고기는커녕 미물도 도망쳐 버리고 말 것이다.

‘그 중심을 잡을 사람이…… 오호라.’

그제야 낭왕의 시선에 주백경이 들어왔다.

언제나 서문경 옆에 척 붙어서는 필요한 외에는 잘 안 해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필요할 때마다 정론을 딱딱 내놓거나 서문경을 말리고는 했다.

당장 지금만 해도 그렇다.

“검치는 그렇다 쳐도 왜 우리한테 시선이 저럴까?”

“공자님, 또 망나니란 소리나 듣고 싶으십니까? 꾸며 낸 소문이 아니라 진짜로…….”

“강호의 소문이 뭐.”

“서문세가에 직접 소식을 전해야겠지요.”

“쯧, 쓰읍.”

서문경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척 봐도 서문세가에 악소문이 들어가면 잔소리할 사람이 많아 보였다.

하기야, 자신이 서문세가의 어른이었어도 서문경의 행동거지가 마뜩찮았겠지.

낭왕은 허허 웃었다.

“나도 소싯적엔 먹물 좀 만진 놈과 함께 다녔는데, 서문 공자가 그땔 떠오르게 하는군.”

“저도 학식깨나 쌓았습니다.”

“행동거지가 그렇지가 않아서 문젤세. 정의맹의 기틀을 잡고 얼굴이 될 사람이 그리 폭급하고 행동이 가벼워서야 되겠나? 전 무림맹주로서 조언하는 걸세.”

서문경에게 잔소리를 쏟아 냈다.

어조 하나하나. 후일의 무림을 위해서 진심으로 조언했지만, 어째 서문경의 얼굴이 뚱하기만 했다.

설마 서문세가에서 이런 잔소리 하나 안 듣고 자라진 않았을 테고.

의구심을 품은 낭왕이 입술을 달싹였다.

“듣기 싫나?”

“아니요. 금과옥조와 같은 조언이십니다.”

말은 저래도 더는 듣기 싫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해는 됐다. 서문경의 나이가 듣기로 열일곱.

한창 어른의 말이 고까울 나이였다.

하지만 서문경이 워낙 위중한 위치였다.

행동거지를 지켜보는 눈이 수만 쌍은 되었다.

낭왕은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면…….”

“전대 신승께 향이나 올리겠습니다.”

두 손을 모아 올린 서문경은 본당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인산인해였다.

일제히 절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빈객, 질서를 정리하는 사미승, 끊임없이 불경을 외는 방장 공심이 뒤섞여 있었다.

그 사이에 뒤섞이니 다소 난처했다.

‘잔소리가 싫어서 뛰쳐나온 건 좋지만…… 이것 참, 곤란하네.’

대명은 불법을 멀리하고 도경(道經)을 가까이 했다.

황실의 법과 나라의 평안을 이끄는 관인은 나라가 멀리하는 것에 무릎을 꿇을 순 없었다.

하물며 전대 신승의 장례다. 상징하는 바가 컸다.

무릎을 꿇는다면 서문경에게 구설수가 추가될 것이다.

서문의 망나니가 대명이 가려는 길에서 벗어나려고 한다고, 눈치와 상식이 부족하다고.

크게 벌할 사안은 아니나 황실의 눈 밖에 날 행동이었다.

“공자님.”

그 사실을 아는 주백경이 조심스럽게 서문경을 불렀다.

멈추셔야 한다.

군관으로서 황실이 가고자 하는 길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짧은 한 마디에 여러 뜻이 있었다.

서문경은 충분히 이해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서문경의 길은 달랐다.

저벅, 저벅.

주백경의 뜻대로 물러나지 않았다.

앞으로 걸어가서 일제히 절하는 빈객들 사이로 몸을 비집었다.

“공자님……!”

다급히 뒤따라온 주백경의 한 마디에 서문경이 끅끅 웃었다.

“주 무사.”

“예!”

“우릴 위해 계율을 어기려고 하잖냐.”

“…….”

그 말에 주백경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질서를 정리하는 사미승도, 불경을 외는 공심도 결연한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자기가 숭산에서 싸우는 동안, 그들 또한 번민하고 있었음을.

“……아.”

주백경이 저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이제야 신승이 했던 말이 이해가 됐다.

자길 성질 급한 파계승이라 칭한 이유가 있었다.

앞으로 숭산 아래로 하산하게 되면 반드시 불살생의 계율을 어기게 될 테니까.

평생 쌓은 업을 부정할 고민을 사흘도 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죽어 가는 사람이 더 늘어날 뿐이라서, 그래서 신승이 파계승을 자처하기로 결정했음을.

주백경의 침묵에 서문경은 방석 위로 걸어갔다.

“소림이 흙탕물에 발을 담구겠다고 하는데, 경의를 보여야지.”

“……예.”

주백경이 얼굴이 붉어졌다. 부끄러웠다.

서문경에게 따지려고 했던 황실의 법도.

그 실상이 지금 어떠한지 알기 때문이었다.

‘가주님에게 듣기로, 마교에게 조금씩 황도가 번잡해지고 있다고 했지.’

어리석었다.

황실이 지금 반듯하지 않은데, 대명의 자긍심을 지키기 위해 소림사를 무시할 뻔했다.

주백경은 말없이 서문경의 옆 방석으로 향했다.

똑바로 서서 수많은 향초와 불상을 보았다.

그 중심에 불경을 외우는 공심이 목탁을 두들기고 있었다.

딱딱, 딱딱딱…….

목탁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리다가 불현듯 멈췄다.

“……인세(人世)가 곤경하여.”

불경을 멈추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공심의 목소리가 쩍쩍 갈라졌다.

아무리 좋게 말해도 물을 반나절 동안 못 마신 사람.

오랜 설법(說法)을 치렀을 공심답지 않았다.

번민이 가슴께까지 차오른 듯했다.

하지만 말을 중간에 멈추지는 않았다.

“곤경하여, 산 아래서 많은 일이 벌어짐을 압니다. 소림은 그것을 앎에도 침묵하였습니다. 부처의 가르침은 죽여서 살리는 것이 아니기에, 주변을 보듬는 것에 그쳤습니다.”

“…….”

“죄를 짓는 것이 생경하여 두려움이 컸던 게지요. 이 나이가 되어서 고민하는 바가 컸습니다. 소림의 방장임에도 말입니다.”

공심은 손에서 목탁을 놓았다.

자유로워진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잠시 멈췄던 게 무색하게도 계속해서 빗줄기를 뿌려 대는 장마와 검은 뭉게구름.

천하를 어둡게 하는 것들을 향해서 말했다.

“장마가 며칠, 열흘을 넘기더라도 언젠가 햇빛이 옴을 압니다. 죄를 지어도 언젠가 보살에게 용서 받을 수 있음을, 고대하며 불경을 읽고 불법을 닦을 겁니다. 그때가 되면 기어서라도 설법을 다녀야겠지요.”

용서.

공심은 용서를 입에 담았다.

천인공노할 마교와 싸워서 벌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스스로 계율을 어긴 것을 언젠가 불법으로 용서받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다 고개를 돌렸다.

전대 신승, 법광의 넋이 본당 안에 있길 바라면서.

“오늘 소림은 정체 모를 악한에게 큰 어르신을 잃었습니다. 피안으로 향하셨는지는 모르나,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화를 내셨어도 용서에 궁색하지 않으셨음을 말입니다.”

그 말에 멀리 서 있던 신승이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

공심은 그것을 보고도 모른 체했다.

신승의 유약함을 보기엔 때가 좋지 않았다.

모든 일이 끝나고.

마교가 인세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오늘날의 눈물을 똑바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은 이 말로 족했다.

“무명승을 자처했던 법광을 기립니다.”

공심의 말이 끝나고 법당 안에 있던 사람들이 두 무릎을 꿇었다.

이 순간에는 서문경과 주백경도 법광의 죽음을 기리는 사람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았다.

두 무릎을 꿇은 서문경은 극진한 예를 취했다.

쏴아아…….

장마도 승천한 명승(名僧)을 추모하는 행렬을 멈추지 못했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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