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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무공사전-149화 (147/250)

용서 (1)

짜악!

눈물을 쏟아 내던 검치가 다짜고짜 양명성의 뺨을 후려쳤다.

“어윽.”

양명성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창백한 얼굴에 새빨간 손자국이 올라왔다.

“……어?”

사제의 훈훈한 재회를 기대하고 있었거늘.

난데없이 일어난 일에 아무도 반응하지 못했다.

웬만한 일에 놀라지도 않는 서문경조차도 헛웃음을 터트렸다.

“저게 뭔 미친 짓이야?”

뒤늦게라도 말려야겠다 싶어서 검치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낭왕이 서문경의 어깨를 잡아챘다.

“저들끼리 방식이 있는 걸세.”

“아니, 아픈 사람의 뺨이나 후려치는 게 무슨…….”

괜한 소리로 막지 말라고 어깨를 털어 내려고 했는데 양명성이 눈을 힘겹게 떴다.

자기 사부와 시선을 마주치고서 피식 웃었다.

창백한 낯빛에 손자국이 난 놈치고는 여유로운 미소였다.

“잘 자고 있는데 뺨을 갈기면서 깨우니까 존경을 받지 못하는 거요.”

“염병할 새끼…….”

“호기롭게 나서서 이리 된 건 미안하게 됐습니다, 사부.”

협의를 지키겠다고 화산으로 가 놓고는 청마에게 잡혀서 몹쓸 꼴을 당하지 않았나.

양명성은 떨리는 손으로 뒷머리를 긁었다.

괜한 짓을 저질러서 민폐가 되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항변하고 싶어서 입술을 달싹였다.

“근데, 내가 잡혀 있어도 그렇지 왜 쓰레기가 되셨습니까?”

“뭐 인마?”

“아니…… 청마가 그냥 놔줄 사람도 아니고…… 애꿎은 사람이나 죽이는 게 사부 방식입니까?”

“하, 하하.”

검치가 실소를 터트렸다.

다 죽어 가는 제자가 허세를 부리는 것도 웃긴데 대놓고 쓰레기란 소릴 들을 줄이야.

고맙단 소리도. 고생했다는 소리도 없었다.

이놈은 협의 때문에 죽을 뻔했으면서 또 협의를 나불거리고 있었다.

“거 참 뚝심 있는 새낄세.”

“친한 사람이 한 길만 우직하게 파라고 가르쳐서.”

“내가?”

“사부가 친굽니까? 내가 아무리 싸가지가 없어도 그리 말하지는 않습니다.”

양명성은 신창양가에서 잠시 동안 대화했던 아이를 떠올렸다.

나이는 자신보다 어렸지만, 야망이 있는 친구였다.

갇혀 지내도 어떻게든 창법을 익혀서 다 때려잡겠다는 소신이 뚜렷했다.

‘나도 걔처럼 멋있게 살려고 한 건데.’

첫 단추를 끼우는 게 이리도 어렵다.

양명성은 실소를 토하다가 피를 웩 뱉었다.

“야!”

“사부, 큰 소리는 지르지 맙시다. 머리가 땡기니까.”

“……썩을 놈.”

검치가 양명성의 맥을 짚었다.

내상이 심할뿐 목숨이 위험하지는 않았다.

자길 마교에 붙잡아둘 약점으로서 나름대로 관리를 한 듯했다.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만 아예 마음을 놓을 상태는 아니었다.

검치의 시선이 숭산의 정상으로 향했다.

장마가 그치고 찾아온 광명이 너무 환했다.

“소림에 신세를 져야겠군.”

“감싸 줄 수는 없소.”

낭왕은 완곡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아무리 약점을 잡혔다고 한들 소림사를 공격한 죄과에서 벗어날 수 없노라고.

그 사실은 검치가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한때 검마로서 칠로두와 동렬에 있었던 죄인이었으니까.

“항상 도망쳤던 사람이었소. 이제는 붙잡힐 시간이 온 거지.”

마교가 무서워서 피하고, 무림에게 단죄당할 것이 두려워서 은둔했다.

신창양가를 비밀리에 방문했다가 우연히 한 소년을 제자로 들였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충동에 이끌렸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기는 싫어서 싹수 노란 놈을 거뒀다.

재능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번천광검결의 심득을 가르치니 제법 모양새가 나왔다.

검치는 양명성을 보았다.

“못난 놈.”

“그만 갈구십시오.”

“그동안 초야에 갇혀 지내고, 협의가 있어도 펼치지 못한 것이 그리 아쉬웠냐?”

“……아, 해 봤다가 이렇게 됐잖습니까. 이제 사부랑 얌전히 구석탱이에 지낼 테니까. 그만하십쇼.”

“아니. 그게 아니야.”

검치는 고개를 저었다.

신창양가에서 싹수 노란 놈을 거뒀을 때처럼, 그 당시에는 알지 못해도 나중에 알게 되는 것이 인생에 한두 개쯤 있기 마련이다.

이번이 두 번째였다.

화산으로 가겠다는 놈을 억지로 막지 않은 이유를.

청마한테 붙잡힌 한심한 놈을 지키겠다고 숭산까지 온 이유 역시.

검치의 눈이 광명을 담았다.

서문경과 싸울 때는 너무 밝아서, 눈부셔서, 눈을 돌렸지만 이제는 괜찮았다.

“이놈, 양명성은 내 제자요.”

검치는 서문경을 비롯해서 낭왕, 주백경, 성하민과 철반검에게 시선을 맞췄다.

조금 전까지 쓰고 있던 검은 갓을 벗어던진 것처럼 후련했다. 천하의 어둠에서 숨어 지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

그 걸음의 시작이었다.

검치의 목소리에 힘이 더해졌다.

“나는…… 알 사람은 알겠지만, 한때 마교에 속했던 검마라는 놈이요. 진무신검, 무영신투와 함께 싸우기도 했지만 죽인 숫자만큼 살리지는 못했소. 오늘도 똑같은 짓을 할 뻔했지.”

“…….”

철반검이 입술을 삐쭉거렸다.

검치가 아무리 고수여도 자길 죽일 뻔했던 사람이니 시선이 고울 수가 없었다.

이에 검치가 두 손을 모아 올렸다.

“용서해 주게. 다음에 도움을 청하면 반드시 도울 테니.”

“……!”

그 말에 철반검의 얼굴에 미소가 짙어졌다.

과거사가 어둡긴 하나, 강호의 오걸과 동렬에 있거나 그 이상의 절대고수.

검치의 약조라면 천금보다 귀했다.

어쩌면 자기 목숨보다도 귀할지도 모르니.

“그 말, 꼭 지키십시오.”

“그리하겠네.”

검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몇 마디 말로 넘기는 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두가 증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윽고 하려던 말을 이었다.

“비록 이번에는 부끄러운 짓을 했지만, 다시 힘을 내어 마교와 싸우고자 하오. 내 제자인 양명성 또한 힘을 더할 것이고. 목숨을 걸 것이오.”

검치의 시선이 서문경에게 향했다.

낭왕이 전대 무림맹주로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다지만, 서문경이 더 중요했다.

“내 과오를 벗기 위해 도와주지 않겠나?”

“……소림사에서 끊어질 근맥을 지켜달라는 소리군.”

서문경이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삼 년에 걸쳐 커진 정의맹의 영향력과 신승에게 준 도움.

그 힘을 쓴다면 검치의 처분을 뒤로 미룰 수 있었지만, 글쎄.

서문경의 침묵에 검치가 입술을 달싹였다.

“싸우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지.”

어두운 하늘, 미친 듯이 퍼붓는 장마.

온갖 소음이 가득한 싸움에서 서문경의 외침은 또렷하게 들렸다.

갑갑한 사람을 꾸짖듯. 철저하게 군관의 입장이었다.

아예 마인과 싸우다가 뒈지라고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그게 검치의 귓가에 와닿았다.

선한 말로 계도하는 것보다 오히려 서문경의 화법이 나았다.

따라서 검치도 단도직입으로 말했다.

“목숨을 빚진 만큼, 과거에 구하지 못한 숫자만큼…… 내 목에 줄을 묶어도 좋으니 마교와 싸울 수 있게 해줘.”

“죽어라고 칼을 휘두를 땐 언제고 이젠 명령조라.”

“자주 듣는 소리야.”

“제자나 스승이나 똑같이 제멋대로에 외골수고 말이야.”

“……어찌 알았지?”

“대충 맥락만 들어도 감이 와.”

양명성이 협의 때문에 화산으로 향했다가 붙잡히고, 어쩔 수없이 검치가 마교의 주구로 일했다는 이야기.

청마가 환장할 만하다.

그 미친 새끼라면 양명성을 붙잡아다가 자기 입맛대로 휘두르다가, 제자 칼에 맞아 죽도록 했을 것이다.

악인이 된 사부를 죽인 협객 제자.

척 들어도 진부하다. 최신보다는 옛 이야기에 가깝다.

‘내가 어쩌다 그런 새끼의 속내를 꿰게 된 건지.’

서문경은 청마의 면상을 떠올리곤 진저리쳤다.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검치가 무림인을 죽였다면 돌이킬 수 없었을 테니까.

“하아. 나도 모르게 도울 생각이나 하고.”

“역시!”

검치의 얼굴에 화색이 올라왔다.

“그리 보지 마십시오. 좋아하진 않으니까. 여전히 자기 제자 때문에 여럿 죽일 뻔한 쓰레기 아닙니까?”

“고맙네.”

“됐습니다.”

손사래를 친 서문경은 시선을 성하민에게 향했다.

아까부터 쭉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그나저나 하민아, 어떻게 발견하고 데려온 거야?”

“응?”

“둘이서 이야기하는 사이에 주 무사한테 전음으로 들었어. 중간에 이탈했다며. 그 뒤에 청마가 도망쳤고. 위험할 만한 상황이었잖아.”

“……그게.”

성하민은 대답을 주저했다.

전대 신승에게 치료를 받은 뒤로 기감이 더 예민해졌다는 것.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감’이 각자 익힌 공력의 성질까지 속삭인다는 것 역시.

갑작스레 생긴 변화 덕분에 청마와 마주치지 않고도 양명성을 구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았다.

‘언제까지고 경이가 날 감싸 줄 수 있을까.’

서문세가에서도 많은 오해를 일으켰다.

때때로 상처입기도 했다.

과년한 여자가 군문에서 오랫동안 얹혀산다는 구설수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더 큰 세상이 눈앞에 있었다.

천하.

마교와 패권을 두고 다투는 싸움에 놓여 있었다.

그 안에서 성하민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에 마교가 연루되어 있는 여자.

천하는 서문세가보다 수천, 수만 배는 컸다.

약관도 되지 못한 나이에 듣고 견디기엔 입이 너무도 많았다. 서문경의 배려와 따스함을 알지만, 아예 의지할 수는 없었다.

‘나 말고도 경이는 너무 많은 사람을 책임지고…… 결정해야 해.’

당장 검치와 양명성의 처분을 두고 소림사의 체면을 걱정해야 하지 않나.

그에 비해 성하민은 소사(小事)였다.

자기가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모를 사람을 일일이 챙겨 주기엔 너무나도 바빠 보였다.

그래서.

“운이 좋았지 뭐.”

성하민은 배시시 웃었다.

가슴속의 미안함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너무 솔직하게 도움을 청했다가 사람이 죽고 말았으니까.

소림사의 전대 신승처럼 서문경에게 나쁜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랐다.

청마가 다시 찾아오더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고 싶었다.

“위험할 상황처럼 생각되지 않게, 열심히 수련할게.”

“그런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닌데…….”

서문경은 말끝을 흐렸다.

뭔가 다른 뜻이 있는 것 같았지만, 더 캐물어 봐야 이상해지는 건 자신이었다.

게다가 검치의 처분이 더더욱 중요한 상황.

서문경의 입가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고민이 있으면 꼭 말하고. 눈치 보지 말고.”

“알았어.”

“알았다니까 됐는데, 쩝.”

서문경은 성하민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한창 전대 신승의 장례를 치르고 있던 소림사.

저곳으로 올라가서 검치를 용서해 달라고 말할 생각을 하니 가슴 한 구석이 막막해졌다.

빈객들을 습격한 죄도 있지만, 저들이라면 전대 신승의 죽음에 마교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씁.’

서문경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갑시다. 후회할 것 같으니까.”

“……고맙네.”

검치가 한사코 두 손을 모아 올렸다.

그의 눈동자에는 정광이 가득했다.

옛날에 이루지 못한 회한을 풀겠다는 의지가 한곳에 모여 있는 듯했다.

‘검치가 변심한 게 양명성을 살아 있는 채로 구해서겠지?’

참으로 나쁜 버릇이다.

전생과 현생이 다른 이유를 자기도 모르게 찾게 되니까.

서문경은 고개를 가볍게 털었다.

복잡한 생각을 지우고 새로운 무장을 갖췄다.

상대는 소림사의 신승.

천수가 어쩌고저쩌고하면서 마교와의 싸움을 주저했던 머리 굳은 말썽꾸러기였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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