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 (7)
악몽.
매일 아침마다 베갯잇이 축축하고 더러운 감정으로 하루를 시작해서, 저녁에는 잠자리에 드는 게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성하민에겐 떼어 낼 수 없는 불행이었지만, 누구에게나 흔히 찾아오는 불행이기에 깊이 공감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서문경마저도 많이 힘들구나, 하고 넘길 뿐이었다.
그 와중에 노승이 먼저 알아채고서 물어 와 주니 기뻤다.
“예, 그걸 어떻게 아셨나요?!”
“생기가 쇠해서 눈 밑이 검고…… 눈이 탁하여 상단전의 창구가 되기가 어려울 정도구만.”
쯧쯧.
성하민이 가엽다는 듯, 혀를 찬 노승이 손목을 잡았다.
맥을 잡기보다 틀어쥐는 것에 가까운 행동.
하지만 노승의 손바닥은 무척이나 따스하고 안온했다.
신승과는 다른, 특이한 기공을 연마한 듯했다.
“고민이 있니?”
“아뇨, 고민은…… 악몽을 꾸는 게 고민이죠. 오래됐거든요.”
“얼마나?”
“모르겠어요, 세 보질 않아서. 그래도 대충 오 년은 된 것 같아요.”
“대충 오 년.”
노승은 시간을 곱씹고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지병이나 오랜 질환에 걸린 사람을 볼 때마다 공통점이 있었다.
며칠 아프면 모를까, 오랫동안 고통에 시달리다 보면 언제부터 아팠는지 곱씹기 마련이라는 것.
하지만 성하민은 그러지 않았다.
언제부터 아팠는지 희미해서, 연 단위로 짐작하고 있었다.
‘기이하군.’
악몽의 주체가 평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
평범한 약재로는 다스릴 수 없는 것이리란 경험 섞인 확신.
노승은 성하민을 가볍게 잡아끌었다.
“잠깐 따라오지 않으련?”
“……앗.”
“아, 놀랐구나. 미안하다. 나이가 들면 내 생각만 중요해져서.”
“아, 아니에요.”
성하민은 고개를 숙이고는 노승을 따라 소림사를 거닐었다.
한데 기이할 정도로 노승을 알아보는 승려가 많았다.
“큰어르신!”
“오냐.”
“방장께서 부르시지 않았습니까?”
“이제 그런 자리에 나가지 않을 때가 되었지.”
“게을러지신 겁니까?”
“허, 내가 게을렀으면 네 기저귀를 갈아 주진 않았을 거다!”
노승은 말을 걸어오는 승려에게 일일이 대답하거나 핀잔을 던졌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사뭇 즐거워 보여서, 성하민의 이목을 잡아끌었다.
‘재밌어 보이네.’
과거의 기억을 잃고서 항상 거리를 떠돌다가, 천무학관과 서문세가를 전전해도 사라진 본질은 돌아오지 않는다.
평소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성하민에게 노승은 즐거운 일상을 보내는 것처럼 보였다.
“부럽네요.”
무심코 그 말을 꺼내자, 노승이 한쪽 입술을 씰룩였다.
가뜩이나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이라 늙은 거북이 같았다.
“그럼. 내 유일한 낙인데.”
“할아버지께선 높으신 분인가 봐요?”
“켁, 높긴. 무림에선 대접도 못 받는 모자란 놈인데. 오히려 처자가 대단하지. 어린 나이에 높은 성취를 이뤘지 않나.”
“그걸 어찌 아세요?”
“나이가 들면 느는 게 눈치야. 밥을 잘 먹어야 하거든.”
노승은 능글맞게 웃고는 앞서 걸어갔다.
길의 끝에 소담하게 지어진 암자.
그곳에 도착하니 좁은 단칸방에 가구조차 없었다.
방 한 구석에 가사(袈裟)와 장삼을 곱게 개어 둔 걸 빼면 텅 비었다.
그걸 본 성하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개방도세요……?”
“뭐? 으하하!”
호탕하게 웃은 노승이 눈가에 고인 눈물을 훔쳤다.
성하민에게는 뒤로 쓰러질까 걱정될 광경이었다.
“침이나 약재도 없어서요. 제가 뭐라도 도와드려야 하나 했어요.”
“마음씨가 착하구만. 고생 깨나 했을 팔자인데 고운 심성을 잃지 않았어.”
“그건 또 어떻게…….”
“말했지 않나. 느는 게 눈치라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노승의 시선이 잠시 성하민의 손금으로 향했다.
성하민은 순간 헛웃음을 머금었다.
‘윤회와 제행무상을 논하는 불가에 웬 점술을…….’
심지어 손금점이라는 것이 승려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운명을 엿보고 점치는 술수가 아니라 잡학에 가까웠으니까.
그러나 노승은 진지했다.
“믿지 못하는감? 허허, 뭐, 법복을 입은 승려가 본다는 게 점술이니 땡중처럼 보이겠구만!”
“아, 아니에요. 땡중이라뇨.”
“시선이 땡땡이중 보는 눈이었어. 말했지. 눈치가 좋다고.”
노승은 토라진 척 입술을 삐쭉거렸다가 히죽 웃었다.
여기까지가 성하민을 안심시키기 위한 농담과 거짓말.
이제는 매일 악몽을 꾸는 근원을 엿보고 퇴치할 때였다.
“자, 편하게 눕고 눈을 감아 보게.”
“그거면 단가요?”
“오면서 봤지 않나. 그 머리 민 것들이 다 나한테 인사하는 거. 내가 아주 신통방통한 노괴거든.”
“……풋.”
“웃으니 좋구만. 예감도, 인상도.”
성하민이 방 한가운데에 눕고 눈을 감자, 노승은 천장에 애지중지 숨겨 놓은 향초를 꺼냈다.
숭산의 백년삼 잎과 약재를 잘게 개어서 만든 기물.
일자직전(一者直傳)으로만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있기에 귀한 것으로 따지자면 소환단에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깝지 않았다.
‘처자가 다 말라 죽어 가는데 귀한 것이 무슨 소용이랴!’
노승은 손가락을 튕겨 불씨를 틔웠다.
성문선공(聲聞善功)의 공력.
신승이 익힌 반야공과 동급의 기운이 향초를 데웠다.
“으음.”
방 안의 열기가 천천히 올라갔다.
가뜩이나 더워서 그런지 성하민이 몸을 뒤척이고 불쾌하다는 소릴 냈다.
이를 본 노승이 입술을 달싹였다.
“참아 봐. 좋은 거니까.”
“……예.”
“눈은 계속 감고 있고.”
다시 한 번 주의를 준 노승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향초로 좁은 방 안을 정화하고, 성문선공의 기운으로 가득 채웠다.
공기의 밀도가 달라졌다.
악한 기운은 몸을 뒤틀다가 참지 못하고 튀어나올 정도였다.
이를 테면 영산(靈山)의 중심.
신령한 기운이 가득한 곳에는 악한 것이 존재할 수 없었다.
‘나와라, 나와……!’
어린 나이에 고수가 된 처자의 심령(心靈)을 제압하고 매일 악몽을 꾸게 하는 마기 혹은 탁기.
노승은 그것을 끌어내기 위해 심상을 끌어 올렸다.
공력이 한순간 부처의 상을 띄는 듯했다.
그 순간.
촤아아…….
어디에서부턴가?
애초에 보질 못했다.
눈을 감았다 뜬 순간에 방 안을 밝게 물들이던 햇볕과 따스한 온기가 사라졌다.
“……허어.”
노승의 입가에 하얀 입김이 나왔다.
한 겨울에 맨몸으로 내던져진 듯한 추위.
혹한의 고통에도 노승은 눈 돌리지 않고 앞을 바라보았다.
“맙소사.”
희끄무레한 형상.
노승은 거기까지 보는 것이 한계였다.
눈이 온전히 받아들이질 못했다.
향초와 성문선공의 공력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으리란 본능이 뇌리를 스쳤다.
“여기서 이놈을 억누르고, 바깥에 알려야…….”
노승이 힘겹게 자기 뜻을 입 밖으로 내놓자, 형상이 대답했다.
……쉿.
머릿속이 웅웅 울렸다.
눈에서 뜨겁고 끈적끈적한 것이 울컥거렸다.
피인가? 눈물인가? 차마 아래를 바라볼 수 없었다.
노승은 아랫입술에 피가 나도록 씹었다.
“너는 뭐냐, 무엇이기에 어린 처자의 몸에서 이리도 사특한 기운을 숨기고 있는 것이냐……!”
형상은 하하, 웃었다.
숨긴 적은 없어.
이 아이가 죽었으면 좋겠거든.
“그게 무슨……!”
노승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처음에는 마공에 당한 줄 알았다.
사악한 기운이 세맥에 남아서, 악몽을 꾸게 하는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지금 보고 있는 형체는 분명히 자기 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마공이 아니라, 인간에 가까운 무언가.
노승의 눈가가 좁혀졌다.
“공생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냐?”
내가 왜 그럴까?
하하하.
형상은 웃으며 대답했다.
가진 능력에 비해 운이 없어.
날 밖으로 끌어낸 거 말이야.
희끄무레한 형상이 점차 구체적으로 변했다.
한데 그 과정이 몇 번이고 변화하여 주체가 보이질 않았다.
어쩔 때는 장발의 여자였다가, 건장한 남자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노승의 목숨을 노린다는 것.
성하민의 몸에서 벗어나 어딘가로 날아가려는 악의까지도.
‘……여기서 막아야 한다.’
지나가다 만난 인연으로 치유해 주겠다는 것이 이렇게 이어질 줄은 몰랐다.
노승은 쓰게 웃었다.
평생 쌓은 공력을 소진하는 자리가 이리도 쓸쓸하다니.
“정화해 주마.”
노승이 앉은 자리에서 따스한 온기가 흘러넘쳤다.
* * *
다음 날 아침.
성하민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에 신승은 오래된 암자를 찾아갔다.
“외인을 함부로 데려가시는 버릇은 여전하시다니까.”
툴툴거리는 목소리에 묘한 반가움이 있었다.
암자의 주인이 바로 전대 신승.
워낙 자리를 피하기에 마주치기가 어려운데 오늘에야 얼굴을 보게 된 것이다.
“계십니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상했다. 무공 수련을 그만 두었어도 사소한 기척에 벌떡 일어나는 노괴인데.
신승은 암자를 유심히 쳐다보다가 성큼성큼 걸어갔다.
“암자 안에 있는 것이 누구기에 대답이 없는 것이냐!”
암자에서 느껴지는 호흡은 하나.
노인처럼 위태하지 않고 차분한 것이 제법 어린놈인데, 전대 신승의 암자에서 참으로 대범했다.
잘되었다. 천둥벌거숭이를 꾸짖을 기회였으니.
끼익, 탁.
그렇게 신승이 암자의 문을 벌컥 열자.
“……허어!”
가만히 정좌한 채 눈을 감고 있는 노승과 잠에 든 채 눈물을 흘리는 성하민이 보였다.
신승은 다급히 노승의 맥을 짚었다.
“스승님!”
심박이 극히 희미하여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위태하다.
신승은 곧바로 노승의 등에 심후한 공력을 불어넣었다.
그사이에 성하민의 안색을 살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평소 창백하게 질려 있던 성하민의 양 뺨이 복숭아빛을 띤 채 안정되어 있었다.
다만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너무나도 불길하여, 신승은 노승에게 고개를 돌렸다.
“제발, 힘을 내십시오.”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소망이 담겼다.
늘 천수를 다했다고, 갈 때가 되었다고 하는 스승이었지만 유언 없이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이것이 아직 끊지 못한 정인 걸까?
신승은 노승을 치유하면서 숭산 아래서 고통 받고 있을 사람들을 떠올렸다.
여러 가지 불행과 사연이 메아리치고 있을 천하.
‘지금까지 내가 천수를 핑계로 시선을 피한 것이 아닌가!’
신승은 깊이 한탄했다.
공덕을 쌓은 승려마저 사제의 연을 끊질 못하는데, 마교가 쳐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절망에 빠질 사람들을 떠올렸다.
무림이나 관과 연이 없음에도 말이다.
“으음.”
그때 성하민이 제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노승을 보고 깜짝 놀라서 중얼거렸다.
“……꿈인 줄 알았는데.”
“그게 무슨 말인가?”
“죄송해요, 정말로. 죄송해요.”
성하민의 눈물 자국 위로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신비한 무공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