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132화 (130/250)

신승 (1)

* * *

남궁서겸이 오랜 지병으로 타계했다는 소식.

그를 삼 년 동안 대리하던 남궁명이 가주에 올라선다는 소문.

두 가지 정보가 서문경의 귓가에 속삭여졌다.

섬서를 떠나고 하남성에 도착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놈, 출세했네.”

천무학관을 함께 다녔던 동기가 가주에 올랐다니 괜히 마음이 들떴다.

오대세가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는 남궁세가.

그곳의 가주직을 남궁명이 올라선다면 얼마나 편해지겠는가?

‘게다가 남궁서겸은 전생에서 정말로 귀찮은 남자였으니까.’

남궁세가의 무인이 다치지 않도록 작전을 고치려는 월권을 저지르려고 하거나 보급로를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는 짓까지 벌였다.

그러고도 내치지 못한 것은 능력의 출중함.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루면 싸움에서는 최선을 다했다.

어쩔 때는 놀라올 정도의 용병술로 불리해지던 전황을 바꾸기도 했다.

그 남자가 일찍이 죽었다니 무언가 기분이 찝찝하고 고까웠다.

‘적어도 이번에는 그 사람이 툴툴대는 소린 안 듣겠네.’

서문경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걸이나 척안룡 같은 고수와 연을 맺고 과거의 혈사를 막아 놓아도,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갑자기 귀천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일에 하나하나 일희일비해서야 안 될 일이다.

대국을 보고서 천천히 갈음하고 나아가야 한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전생과 달라지는 것을 내심 두려워하는 마음이 존재하는가 하면, 전생의 일을 고치고자 하는 용기가 있었다.

남궁명이 가주에 오른다는 소문이 바로 그 사이에 있었다.

‘과연 명이가 남궁서겸처럼 얄미워도, 자기 능력을 드러낼 수 있을까?’

사람에게 제멋대로 기대를 품어 봐야 본전도 찾지 못하기 마련인데.

서문경은 피식 웃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주백경이 은근슬쩍 말을 붙여 왔다.

“무슨 재밌는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내 친우가 가주에 오른다는 소문이잖냐. 웃음이 나오지.”

“허허, 그러게 말입니다. 남궁세가에 갑자기 우환이 찾아온 것이 참으로 안타깝군요.”

“표정은 어째 기뻐 보이는데?”

“그렇습니까?”

주백경이 예전 같지 않은 능청을 부리며 넘어갔다.

보나마나 자신이 남궁명을 장기짝처럼 부리며 남궁세가의 주도권을 서문세가로 가져오리라 내심 생각하는 듯했다.

‘내가 뭐 걔 친구지 주인인 줄 아나.’

하기야 지금까지 곤륜파나 공동파에서 상승무학을 배운 짓거릴 생각하면, 남궁세가의 내부 싸움에 개입하는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게 보이겠지.

서문경은 속으로 혀를 가볍게 찼다.

객관적으로 보면 분탕을 치고 다닌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성하민이 먼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것 봐!”

“……오.”

서문경은 가벼운 탄성을 흘렸다.

저 멀리.

드넓은 보리밭이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흩날리고, 서로 스쳐서 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초록색 바다였다.

아직 여물지 않아 파릇한 냄새가 콧등을 스쳤다.

벌레가 앵앵 우는 소리가 제법 귀찮았지만, 여름의 활기를 북돋는 듯했다.

그 뒤로 구름이 자욱한 산이 하나 있었다.

워낙 구름이 짙어 어디까지 솟았는지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나, 언뜻 보이는 각진 절벽에서 수없이 깎이고 부서진 흔적이 보였다.

“……천년소림이라.”

주백경이 몇 마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은 대명이 무당을 아끼고 있지만, 과거에는 소림사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고 배웠다.

따라서 대명의 하늘에게 충성하는 주백경은 그들에게 감탄성 하나 내지 않고 꾹 내리눌렀다.

그마저도 충정인 것이 참으로 어리석고 우스웠지만, 그만의 법식이었다.

서문경은 그의 옆구리를 툭 찔렀다.

“뭐 어때, 나라님이 바로 옆에 있는 것도 아닌데.”

“가게 주인이 없더라도 훔치지 않는 것이 바로 인의인데, 어찌…….”

“그래. 네 맘대로 해라.”

사람마다 귀찮고 어리석은 부분은 하나씩 있기 마련인가.

저 부분만은 도저히 고칠 생각이 없어서, 서문경도 할 말을 잃었다.

그 대신에 한마디는 덧붙여야 했다.

“그래도 저기 가서 무당파랑 은근히 비교하거나 대명에게 충성을 다하라는 뭐, 그런 헛소리는 하지 마.”

“제가 아무리 그래도 그러진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 예전에 척안룡이나 검치 앞에서…….”

“그 얘기는 그만하지요.”

주백경이 슬쩍 성하민을 곁눈질했다.

단 둘이면 몰라도 과거사를 모르는 사람 앞에서까지 부끄럽고 싶지 않다는 눈치가 보였다.

‘원랜 여기서 한 일다경은 놀렸을 텐데.’

부하의 간청에 한 번쯤 져 주는 것도 덕목 아니겠나.

서문경은 아쉬운 표정을 짓고는 소림사로 향하는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저곳에 가서 만날 사람이 있었다.

‘전생에선 끝까지 폐관을 유지하다가 죽은 오걸.’

이른 바 신승.

세상사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그의 고집을 꺾어 버릴 작정이었다.

* * *

“서문 공자님께서 방문하셨습니다.”

“귀한 손님이니 극진히 모셔라.”

“사조님을 만나러 왔다고 합니다.”

“나는 세속과 인연을 끊은 몸이다. 진무신검처럼 나서지 않을 것이야.”

신승은 과거 친분을 다졌던 오걸의 이름을 거론하면서까지 거절했다.

서문경의 복장이 터질 정도로, 신승이 폐관을 유지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천수(天壽)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음이라.

하늘이 내려준 수명이 다가오는데 억지로 연명하여 마교와 싸우는 짓을 했다가는 뜻에 반하는 일이었다.

“알았으면 물러나거라.”

“예, 그리 전하겠습니다.”

그 뜻을 이해하고 있는 소림사의 방장, 공심(空心)은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 세상과 연을 완전히 끊을 정도로 늙지 않았다.

과거에는 도적을 물리치고 다닐 정도로 뜨거운 열기를 지녔던 장년인이었다.

“허나, 이대로 삿된 가르침이 천하를 혼란케 하면…… 소림의 가르침은 쇠락하지 않겠습니까?”

“대나무 밑동이 잘린다고 자라지 않더냐?”

“…….”

공심은 잠시 침묵했다.

아무래도 사조는 현 마교를 과거처럼 금세 물리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듯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나타났던 사교 모두 잠깐 득세하였을 뿐이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라 여겨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이번의 마교는 다르지 않나.

공심의 입술이 달싹이기 직전에 동굴 안쪽에서 느리지만 진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납득하지 못하느냐.”

“사조님.”

“물러나라. 잠이라도 이루어야겠구나.”

신승의 목소리에 담긴 막강한 내공.

공심은 그 기세를 이겨 내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허어…… 참으로 어렵구나.”

사찰로 돌아가면 신승 못지않게 귀찮은 청년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중간에 낀 공심으로선 참으로 복잡할 뿐이었다.

* * *

서문경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천수가 다가오고 있으니 더욱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불가의 가르침이라는 게…….”

“남들이 죽어 가고 시름하는데 도외시하는 게 무슨 소용입니까?”

“수명이 조금이라도 남았다면 사조님도 나섰을 걸세. 하지만…….”

“뭐 얼마나 남은 겁니까?”

“그건 장본인이 아니니 직접 말하기가 어렵네.”

“아이고 맙소사.”

공심의 단호한 대답에 서문경은 자기 가슴을 치고 싶었다.

뭐가 천수고 뭐가 불도란 말인가?

천하가 마교에게 한바탕 불태워지고 무도한 자들이 가득해지면 불가고 도가고 가르침이 적힌 서적 모두 유실될 텐데.

서문경의 인상이 한가득 찌푸려졌다.

‘방장이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신승의 수명이 정말로 얼마 안 남은 것 같긴 한데.’

길어 봐야 일주일, 짧으면 사나흘.

소림사에서 하산하여 마교와 싸울 시간조차 없다는 걸 들어 보면 대강 그 정도인 것 같았다.

서문경은 차마 공심 앞에서 한숨을 내쉬지 못하고 한 가지를 물었다.

“신승께선 지금 어디 계십니까?”

“그걸 소승이 어찌 말하겠나. 사조님이 쉬시는 자리인데.”

“아니…….”

“소승이 어찌 말하겠냐는 말이야.”

“……?”

갑자기 왜 말을 반복한단 말인가?

서문경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공심이 눈을 은근슬쩍 한쪽 방향으로 굴렸다.

“크흠, 흠. 소림의 방장으로서 최고수인 사조님의 위치를 발설할 수 없음을 이해해 주게.”

그렇게 말하고서 다시 한번.

이번에는 눈을 두 번 깜빡였다.

숭산에 봉우리가 워낙 많으니, 두 봉우리를 넘으라는 뜻 같았다.

서문경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올라왔다.

“아…… 제가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네. 천하가 어지러운 와중에 많은 일이 있었다고 들었네. 그러고도 뜻을 꺾지 않고 숭산까지 찾아온 것이 참으로 고맙네.”

“하하.”

“으하하.”

서문경과 공심은 잠시 멋쩍다는 듯 웃었다.

곧 서로 떠날 사람처럼 말이다.

공심은 소림의 방장으로서 할 일이 바빴고, 서문경에게는 신승을 직접 찾아갈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언 받고 싶었다.

“하면 정의맹에는 참여하시는 겁니까?”

“예로부터 소림은 천하가 어지러울 때마다 의용하여 몸을 일으켰네. 이번 일이라고 뭐 다르겠는가?”

“……한데 신승께서는 왜.”

“워낙 불도에 엄격하신 분이라 그럴 걸세. 마교와 싸우고 싶은 마음이 크시겠지. 본래 항마승이셨으니 말일세.”

“흐음.”

항마승이라면 마공과 직접 맞서 싸울 방도까지 공부하는 직책이 아닌가.

그러한 실력을 가졌으면서 끝까지 천수를 지키다가 죽었다는 것이 참으로 어리석게만 느껴졌다.

‘역시 어떻게든 폐관에서 끌어내야겠어.’

과거였다면 오걸과 싸울 생각조차 하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전생의 경지와 비등하거나 그 이상.

신승이 얼마나 강했는지는 몰라도 불가능하지 않을 터였다.

서문경은 공심에게 두 손을 모아 올렸다.

“귀한 손님으로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약관 이전의 나이에 검왕으로 불리는 청년 아닌가. 마교와 싸워 의를 고취시키는 사내에겐 그만한 대우가 필요한 법이지.”

공심은 부드럽게 웃고는 속으로 서문경을 응원했다.

외골수에 가까운 사조를 밖으로 끌어내기를.

앞으로 다가올 여러 혼란에 함께 맞서 싸워, 물리칠 수 있기를.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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