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131화 (129/250)

변화 (3)

어두운 밤.

창가에서 들어오는 달빛만이 방 안을 비추었다.

천장에 금과 보석으로 치장한 칠성(七星)이 달빛을 받아 은은히 반짝였다.

그 아래에 붉은 색으로 칠해진 태사의가 있어,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서겸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섬서성에서 마인이 홀로 나타나 종남산을 불태우고, 화산에서 격퇴당했다고.”

목소리에 짙은 피로가 내리깔려 있었다.

지난 삼 년 동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피로를 해소하지 못했다.

그동안 가주의 직무를 수행한 건 가문에 축적한 영약과 식객으로 남아 있는 의원 덕택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태사의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버겁다.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공식적인 자리를 만드는 걸 끊었다. 중앙으로 끌어모은 직계의 권위, 가주의 힘을 분산시킬 수 없었다.

바로 눈앞에 있는 아들, 남궁명을 위해서.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잘 된 일이지요. 섬서의 사람이 다치지 않고 일이 마무리되었으니, 화산파의 속가에 속한 상인이 곡식을 사들일 것이니…… 절반의 값으로 팔면 화산파에 빚을 지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으음.”

남궁서겸이 침음을 흘렸다.

좋은 판단이지만, 쓸데없는 온정이 담긴 의견이다.

가주로서 단어를 신중하게 고른 뒤, 남궁명에게 조언했다.

“종남산 주위는 평야가 있어, 곡식이 화마에 휘말렸을 것이다. 상인에게 곡식을 팔되 다른 자들과 비해서 조금만 깎아서 팔거라. 그거로 충분하다.”

“예. 그리 전달하겠습니다.”

남궁명이 두 손을 모아 올렸다.

피로에 절어 버린 남궁서겸에 비해 얼굴빛이 말갛고 기름기가 번들거렸다.

저게 젊음인가 싶어서, 남궁서겸은 평소답지 않게 피식 웃었다.

“피곤하지 않느냐?”

“……?”

“가주를 대리하는 와중에 소가주로서 공부와 무예를 쌓으려면 잠을 깎아야 했을 텐데 말이다.”

“괜찮습니다.”

남궁명은 환하게 웃었다.

“제가 아버지의 일을 대신하게 되어 배우는 것이 하루가 다릅니다. 몸이 피곤하여도 가문에 이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쁠 따름입니다.”

“……그러하더냐?”

“예.”

“네 뜻이 그렇다면, 아비로서 기쁘고 가주로서 고마운 일이구나.”

“믿고 맡겨 주십시오.”

“서문경에 대해서는 알아보았느냐?”

“…….”

그 말에 남궁명이 잠시 눈을 가늘게 떴다.

남궁서겸은 아들의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아직도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느냐.’

지난 삼 년.

자신의 건강이 갑자기 나빠져서 가주를 대리하는 위치에 있음에도 서문세가를 대하는 태도가 영 좋지 않았다.

여러 중진이 보기에는 열등감에 사로잡힌 것 같다고 진언했다.

남궁명에게 직접 말한 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 열흘인가?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했지.’

우연일지도 모른다.

자신과 남궁명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한 방계의 술수일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눈앞에서 저런 반응을 보여서야 모르는 척하기도 버겁다.

남궁서겸은 입술을 달싹였다.

“이번에 마도 고수를 격퇴하여 천무검왕이라는 별호를 받고, 무림인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지.”

“……예.”

“줄곧 서문세가의 약점이었던 ‘군문’의 위치가 정의맹으로 옮겨 붙고 있다. 강호의 정세가 바뀌고 있는 셈이지. 그 변화에서 살아남으려면 내 조언 없이도 훌륭하게 줄을 타야하는 법이다.”

“아버지께서는 남궁세가가 정의맹에 충성하길 바라십니까?”

“충성이라니.”

남궁서겸의 눈가가 좁혀졌다.

충성이라는 단어에서 강한 반감이 느껴졌다.

“모두가 정의맹에 모이는 와중에 남궁세가만 빠져서야 주변의 눈이 좋지가 않다. 지금은 겉으로라도 돕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법이지.”

“……하지만.”

“아들아. 네가 서문경에게 무슨 마음을 품고 있는지는 몰라도, 무시할 수 없는 청년인 건 사실이다. 적어도 마교와 싸우기 위해서는 친해져야 하겠지.”

“…….”

“진주언가처럼 본래 사특한 가문이야 마교에게 옮겨 붙었지만, 그 결과가 어떤지는 수천 년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느냐? 한때의 향락에 취해 가문이 몰락할 수가 있으니.”

“아버지.”

남궁명이 슬며시 고개를 떨쳤다.

그런데 그의 얼굴이 보이질 않았다.

아까 전부터 창가에서 비춰지던 달빛이 갑자기 사라진 것 같았다.

천장의 칠성 또한 묵빛에 먹혔다.

남궁서겸은 눈을 비볐다.

그사이에 남궁명이 입술을 달싹이는 형체가 보였다.

“아버지가 보기에 저와 서문경, 둘 중에 누가 뛰어납니까?”

“……아들아.”

“말씀해주십시오.”

“지난 삼 년 동안 나를 대신하여 남궁세가를 이끈 네가 뛰어나지 않으면 누가 뛰어나겠느냐? 너와 함께 천무학관에 투신했던 동기 중 어느 누가 네 위치에 있느냔 말이다.”

“그렇지요.”

남궁명의 입술이 둥글게 휘었다.

아직도 호북성에 있다는 청겸이나 두문불출하는 유화에 비하면, 남궁명은 가문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남궁서겸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서문경은 칼이다.”

“……?”

“스스로 소가주의 자리에서 내려가, 무림에 변화를 일으키고 마교를 대적으로 삼아 무사들을 끌어모으고 있지. 마교와의 전쟁이 끝나면 죽거나, 영웅이 되거나. 둘 중 하나일 게다.”

“……영웅.”

남궁명은 한 단어를 곱씹었다.

머릿속에 있던 천칭이 왠지 모르게 한쪽으로 기우는 기분.

그 기색을 알아차린 남궁서겸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이름을 남기는 것은 칼이 아니라 붓이다. 지금 당장은 서문세가의 무력이 강해도 남궁세가가 명가로서 살아남는다면…….”

“아버지.”

“음?”

“칼은 붓을 벨 수도 있지 않습니까? 평가를 먼 미래로 던지면 지금 당장은 굽히라는 겁니까?”

“그래.”

남궁서겸은 평소처럼 차가운 눈으로 남궁명을 직시했다.

이제야 중진들이 조심스럽게 떠들던 열등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어도 타인과 비교하면 모난 점이 하나라도 있기 마련이거늘, 서문경에게 너무 많이 집착하고 있구나.’

당장은 경지가 뒤떨어져도 서문경과 남궁명 둘 다 약관이 되지 않은 나이지 않나?

남궁서겸은 밤이 새벽녘으로 기울어질 때까지, 차분하고 조리 있게 남궁명에게 여러 고사를 예를 들며 타일렀다.

“…….”

그동안 남궁명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짧게 대답하며 속에 있는 생각과 감정을 떠올리고 합치는 것을 반복했다.

여러 답이 수많은 가지처럼 뻗어 나왔다.

남궁서겸의 지혜는 참으로 깊었다.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여러 고민이 풀리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남궁명은 그런 걸 원하지 않았다.

“사실, 아버지 말고 다른 조언자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누구냐?”

“듣고 화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청마라는 마인입니다.”

남궁명은 마교에 속한 ‘칠로두’의 이름을 꺼내면서도 태연자약했다.

그 모습을 본 남궁서겸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미 사특한 것을 멀리하고 의심하는 단계는 지나갔구나.’

자신이 남궁명에게 여러 조언을 하고도 바뀌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청마였나.

남궁서겸은 아들의 주위를 살피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천무학관 이후로 다 컸다고 생각한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그 혼란은 속으로 갈무리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무뚝뚝하고 차가웠다.

“그에게 무엇을 조언 받았느냐?”

“이대로 있다가는 제가 서문경 아래에서 활약한 사람 중 하나로 기록될 거라고 하더군요.”

“어리석은 조언이구나. 마교를 아직 이긴 것도 아니지 않느냐?”

“이번에는 이겼지요.”

“삿된 감정에 휩싸여있는 것이 아니냐?”

“그럴지도 모릅니다. 천무학관에서도 서문의 공적을 듣고 부러워했으니까요.”

적마를 격퇴하고 두 오걸과 친분을 쌓는 둥.

자기 세대에서 절대 이룰 수 없는 과업을 무림에 드러냈다.

남궁세가의 소가주라는 위치가 초라해질 정도로, 서문경은 너무나도 잘 나갔다.

심지어 무공마저도 뛰어나지 않았나.

그 뒷모습을 짧은 시간 올려다보았다.

남궁명은 그 그림자에 뒤덮여서, 천무학관에서 어떠한 의욕도 느끼지 못했다.

“그래도 소가주의 자리에서 아버지를 대신하여 가문을 가꾸는 일은 참으로 기뻤습니다. 오로지 저를 봐주는 사람이 많았으니까요.”

“그게 가주인 것이다. 한 가문의 주인을 위해 따를 사람이 수백이지 않느냐!”

“……한데 이제는 다시 서문경에게 시선이 쏠리겠지요.”

남궁명은 쓴웃음을 흘렸다.

참으로 천한 열등감이었다.

타인의 관심과 칭송이 한때 친우였던 사람에게 갔다는 걸 인정하거나 뿌듯해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속에서 곯는다는 것이.

서문경이 들었다면 그냥 네가 했다고 하라고 그랬을 것이다. 그러고도 남을 친우였다.

‘그게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어.’

대체 서문경이 뭐기에 그 나이에 십대고수에 비견된단 말인가?

무슨 힘을 가지고 있기에 종남산을 홀로 불태운 마도 고수와 싸워서 이겼단 것인지.

남궁명은 쓰게 웃었다.

차마 아버지 앞에서 크게 웃을 수 없음이 아쉬웠다.

“사실은 아버지, 청마가 해 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제가 실의한 것을 보고 의욕을 주겠다더니…… 그 이후부터 아버지가 편찮아지셨습니다.”

“…….”

남궁서겸은 잠시 침묵했다.

청마가 해 준 것이 무엇인가, 그걸 모를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걸 알고도 침묵한 남궁명의 진의였다.

“의욕은 생겼느냐?”

“예.”

“내가 없어도 가문을 올바르게 이끌 자신은?”

“그런 식으로 떠보셔도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왜 아버지를 해하겠습니까?”

남궁명은 부스스하게 웃었다.

찔리는 기색이라곤 하나도 없다는 듯, 순수한 웃음이었다.

“아프신지 삼 년, 공적인 자리에 나오지 못하신 지 일 년. 그 시간이면 다른 직계도 아버지가 거동조차 못하신다고 알더군요. 사실 저도 청마가 어떤 식으로 편찮게 만드신 건지 모릅니다.”

“……유폐시킨다는 것이냐?”

“아니요.”

남궁명은 조용히 두 손을 모아 올렸다.

“이제 제가 가주가 되어야겠습니다.”

“……가문을 올바르게 이끌겠다는 대답은 하지 않는구나.”

“아버지처럼 잘할 자신이 없거든요.”

“허, 허허.”

남궁서겸이 허탈한 웃음을 머금고는 천장의 칠성을 올려다보았다.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남궁세가의 칠성.

항상 밤하늘에서 빛나는 저 별무리처럼 가문이 빛나길 바랐건만, 이제는 어둠에 탁하게 물들지 않았나.

“그것 참, 아쉽구나.”

남궁서겸이 고개를 푹 숙였다.

숨이 어느새 멈춰 있었다.

병증이 갑자기 악화된 것이 참으로 기이할 정도였다.

남궁명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등을 돌렸다.

“이제 내가…… 가주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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