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123화 (121/250)

백야흔 (5)

“자, 그럼 빠르게 전술부터 새겨놓읍시다.”

서문경은 손뼉을 짝 치며 주의를 집중시켰다.

그 모습을 본 주백경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전술이라는 걸 어찌 일다경도 채 안 되는 시간 안에 집어넣는다고…… 헛수고 아닌가?’

전술(戰術)이란 전략과 병술을 아우르는 것.

제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문사여도 단시간에 각기 다른 상황에 일일이 대처할 수준이 될 때까지 병사를 가르칠 순 없었다.

심지어 이들은 머리가 굵을 대로 굵어진 무림인들이 아닌가?

대사부로서 숱한 경험을 쌓아 본 주백경이기에 더더욱 의아했지만, 서문경은 달랐다.

“전술이 그리 어려운 게 아닙니다. 자, 일단은 천원(天元)에 마인이 있다고 가정하고…… 그놈이 가진 힘과 재주가 어떻냐면은…….”

화산에서 날뛰고 있는 마인에 대한 정보와 상세한 도식(圖式).

그걸 간략하게 빠르게 쏟아 내고는 무림인들의 근육과 병장기를 얼핏 살펴서 구성을 살펴, 각자의 장기를 아낌없이 펼칠 수 있는 역할을 부여한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그래서 거기 있는 외눈 아저씨와 강씨라고 했나? 서로 합격을 해서……”

“초면인데 어찌 합격을 한단 말이요?”

“거 대충 저만 믿어 보시고 펼치십시오. 상생하는 검형을 지녔으니까.”

“……?”

그 말에 두 무인이 허공을 향해 검법을 펼치는데, 놀랍게도 쌍을 만난 원앙처럼 매끄럽게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서문경은 거 보라는 듯 짓궂게 웃고 하려던 말을 이었다.

“바쁘니까 토 달지 말고 들읍시다. 그다음은…….”

전생에 쌓은 경험과 무공사전으로 얻은 오성.

두 가지가 절묘하게 무림인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전생에선 무공에 대한 깨달음이 부족하여 통솔력이 부족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개화하여 남을 따르게 하는 힘을 지니게 된 것이다.

세간에선 이를 보고 장군감이라고 하니.

“허어…….”

“처음 본 사람이 오히려 사문의 어르신보다 낫구나.”

어렵게 여겼던 전술이 그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왔다.

자길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의 조언이라면 가슴 깊이 다가오는 법이니까.

서문경은 순식간에 다섯 가지의 전술을 쏟아 내고는 손뼉을 쳤다.

처음과 끝 모두 손뼉으로 시작하고 끝났으니.

일다경은커녕 일다경의 절반이 지나기도 전에 끝났다.

말을 끊임없이 쏟아 내면서 발음 한 번 꼬이지 않은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공자님한테 저런 재주가 있었나?’

서문세가에 있을 때만 해도 매일 수련만 했지, 병법서에는 눈길 하나 주지 않아서 관심이 아예 없는 줄 알았다.

한데 지금 보니 깊이가 다를 뿐이지 넓기가 서문패는 물론이고 가주인 서문이현과 비할 지경이다.

주백경이 속으로 감탄하는 사이에 서문경의 입술이 다물어졌다.

“여기까지.”

“……으음.”

“외우기는 했지만, 이런 건 처음이라…….”

과거였다면 이런 전술보다는 검에 모든 걸 걸겠다고 허세를 부릴 무림인도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설득력을 지니긴 했지만, 너무 간단하고 간략하여 제대로 통할지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서문경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갑시다. 칠로두를 사냥하러.”

“……칠로두?”

“마교의 거두라니! 그런 말은 없었잖나!”

무림인들이 대경실색하여 눈을 부릅떠도 서문경은 부드럽게 웃을 뿐이었다.

“여기서 물러나면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알겠네.”

“쯔읍.”

마교의 간자를 간파하는 판단력과 과감함.

하물며 그 무위까지 보았으니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지만, 여전히 불안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꾸콰콰쾅!

싸움이 절정에 다다랐는지 저 위에서 봉우리 하나가 무너지고 있었다.

* * *

“후우, 훅.”

이렇게 숨을 가다듬지 못하고 헉헉대던 게 대체 얼마만이던가?

진무신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폐부가 쪼그라지다 못해 턱 아래까지 차오른 느낌이었다.

태극혜검의 절초 유유무극.

모든 힘을 태극의 관조 아래로 두어 흘리고 되받아치는 심상절기가 수십, 수백 번을 넘어섰다.

한계를 계속해서 넘다 보니 지독한 통증이 몰아쳤다.

-조금만 버텨.

무영신투의 전음이 귓전을 스쳤다.

그의 얼굴에도 짙은 피로감이 내리깔려 있었으나, 눈동자에는 총기가 가득했다.

손가락 하나를 까딱일 때마다 일어나는 수백의 조화와 변화.

무영신투의 심상절기 극변(劇變)이 백야흔의 움직임을 봉하고 눈과 귀, 오금을 절묘하게 노려서 베어 내고 있었다.

‘살점을 베어 내고 있긴 하지만, 힘줄을 끊질 못하다니.’

수십 년을 수련해도 닿을 수 없는 장벽이 있단 말인가?

두 절대고수마저 백야흔을 무릎 꿇리지 못한다면, 그 누가 마교에게 대항하겠는가?

‘여기서 물러나면 어느 누가 나서겠나!’

진무신검은 정신력으로 버텼다.

진기가 소진되어 눈앞의 시야가 이따금씩 새하얗게 백열되기도 했지만, 몸을 휘청거리는 일 없이 꼿꼿이 섰다.

-영감, 우릴 부른 놈 말이야. 언제쯤 올 것 같나?

-…….

무영신투의 전음에 진무신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는 말이 어울리리라.

쿠쿵, 꽈앙!

벽력을 머금은 듯 백야흔의 강맹한 일격이 진무신검을 후려칠 때마다 전신이 세차게 흔들리고 발아래가 쩌적 갈라졌으니까.

유유무극으로 제아무리 흘리고 되받아쳐도 신체는 무한하지 않다.

아주 조금이라도 피로가 쌓여, 근육이 늘어나거나 찢어진다.

그걸 오롯이 버티고 있는 것은 진무신검이 수십 년 동안 쌓은 수양.

식물에 가까운 정신력으로 고통을 흩어내고서 백야흔의 공격에 집중하고 있었다.

‘모든 건 태극의 흐름으로, 양의로 나누어…….’

삼봉진인(三峯眞人)의 가르침을 따라 이어진 무맥.

무당의 무공이 진무신검의 머리에 있었다.

백야흔에게 몸뚱이가 무너지고 갈라질지언정 정신이 남아있는 한, 무한히 막아 낼 수 있었다.

‘패하지 않는다. 세상을 어지럽히려는 무뢰배에게, 굴할 성 싶으냐!’

과거에 청마가 어린아이를 인질로 앞세울 때도 물러서지 않았다.

독에 당해도, 팔이 잘려도, 한때 눈이 보이지 않았어도 당당히 맞섰다.

그것이 진무신검의 정신을 지지하는 기둥이자 자긍심이었다.

“……기다리지 않아.”

“뭣?”

“누가 오지 않더라도, 여기서 너를 패퇴시키고 땅에 묻는 것이 나의 천명(天命). 그리 정했다. 내가 죽더라도 상관하지 않아.”

진무신검은 입가에서 핏덩이를 퉤 뱉어 냈다.

몇 번이고 턱 끝까지 올라왔던 울혈이 선홍색으로 빛났다. 내상이 극심하여 오랫동안 정양해야 할 상처였다.

어쩌면 이곳에서 죽게 될지도 모르지.

하지만 스스로 무릎을 꿇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진무신검은 그 정신력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도둑놈아, 이제 그럴 필요 없다.”

“무슨 소리야.”

“저놈의 움직임을 봉하는 게 아니라, 죽일 생각으로 하란 말이다.”

“…….”

무영신투가 한순간 인상을 찡그렸다.

그 말인즉, 이제 백야흔의 오금을 노리지 말고 사혈을 집중적으로 노리라는 뜻.

진무신검의 목숨을 도외시하고 살초만 펼치라는 소리였으니 쉬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진무신검은 강건했다.

“내가 죽을 곳은 이곳으로 정했다. 무당산이 아닌 것은 아쉬우나, 하늘의 뜻이란 본래 무정한 법이지.”

“허, 웃긴 놈일세.”

백야흔이 크게 웃어젖혔다.

뭐 그런 소리를 하고 자빠졌냐는 듯, 조롱이 한껏 담긴 비웃음이 화산의 봉우리를 뒤덮었다.

“저승사자가 눈앞에 있는데 어디서 죽는 것을 논하느냐? 어차피 무덤도 남기지 못할 거다. 뭐, 작은 비석이라도 만들어서 함께 삼켜 주랴?”

“…….”

모욕적인 언사에도 진무신검은 말없이 검을 들었다.

그걸 본 백야흔의 입술이 한쪽으로 비틀렸다.

“여전히 재미없는 말코야. 어이, 도둑놈. 지금이라도 도망가면 한 번은 살려 주마.”

“뭐라는 거냐?”

“이미 끝난 걸 알고서 왜 능청을 부리느냐? 내가 아량을 베풀 때 멀찍이 도망가서 살 길을 도모하는 게 나을 텐데.”

“……흥.”

그 말에 무영신투는 턱을 들어 먼 하늘을 보았다.

아주 잠깐, 옛날 일을 떠올렸다.

다시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렸을 때 눈가에 작은 눈물이 맺혀 있었다.

“죽을 건 네놈이지.”

“하, 제법 영특한 놈인 줄 알았거늘.”

죽고 사는 것에 배신과 수모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 미덕이라면 잠깐의 인연쯤이야 잘라야 현명한 것을.

백야흔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두 절대고수를 바라보았다.

“너희가 준비했던 독도 통하지 않고…… 무공도 그 모양이라면.”

스르륵!

백야흔이 말을 이어 가던 도중에 무영신투가 천잠사를 잡아당겼다.

이에 백야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안 통한다니까…….”

철컹!

전과는 다른 소음이 봉우리 전역에 울렸다.

그 직후에 세 사내 사이에서 매캐한 냄새가 풍겼다.

“……!”

“이건!”

화약(火藥).

관가에서 엄중히 봉하고 관리하는 무기가 어째서 무영신투의 손아귀에 있단 말인가?

하물며 천잠사에 매달린 화약주머니가 숫자가 수십에 달했다.

그야말로 사술 같은 일이었지만, 백야흔의 얼굴엔 두려움 한 점 없었다.

“내가…… 무서워할 것 같으냐!”

백야흔이 몸을 뒤틀며 천잠사를 잡아당겼다.

산마저도 잡아 뽑을 용력에 무영신투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도저히 견디기 어려울 힘이었으나, 정작 끌려가는 무영신투는 짙게 웃고 있었다.

“몸이 튼튼하니 대가리가 텅 비었군.”

“……?”

“순순히 끌려가서 같이 당해 줄 것 같아?”

무영신투는 두 손으로 천잠사에 달린 화약을 점화하고는 아예 놓아 버렸다.

자연스레 화약이 매달린 천잠사가 백야흔을 향했다.

-영감, 피해!

-……!

진무신검이 나려타곤하듯 보신경을 펼쳤다.

그다음 순간.

쿠궁, 꽈과과광!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굉음이 화산을 휩쓸었다.

한 줌의 화약으로 성문을 부순다고 하니, 그것이 수십이라면 얼마나 큰 파괴력을 가지고 있겠는가?

무영신투는 완전히 바스러진 백야흔을 상상하고는 씩 웃었다.

“피가 없어도 살아 있는 건 참으로 기괴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뭐?”

화약이 터져 검은색 연기가 휘날리는 분진 저편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열기에 목이 긁혀서 상태는 좋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살아 있다.

백야흔은 피가 뽑히고 화약을 터트려도 살아남았다.

그 사실이 무영신투의 등허리를 식은땀으로 적셨다.

“이딴 짓까지 할 줄은 몰랐군…… 역시 잔재주가 많은 놈이야. 무공에 집착하지도 않고.”

“미친놈.”

“푸핫, 약자가 다 되었군. 이해를 포기한 상태가 딱 겁쟁이 같단 말이야.”

그 직후에 웃음소리가 뚝 끊겼다.

진무신검과 무영신투는 곧바로 기수식을 펼치고서 검과 천잠사를 쥐었다.

저 연기 안쪽에서 절초가 날아올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예상은 현저히 넘어서서, 재앙에 가까웠다.

“이건.”

“무식한 놈!”

화약으로 인해 검게 물들어버린 지반.

한 치에서 두 치 두께의 땅덩어리가 두 절대고수를 향해 날아왔다.

그 탓에 태양이 그림자에 덮였다.

어둠이 밝음을 가려, 백야흔을 상대하는 두 절대고수는 지금이 새까만 밤처럼 느껴졌다.

“이걸로도 무리라면 대체…….”

당장은 저 지반을 막아 낼 수 있겠지만, 다음의 수는 존재치 않는다.

그 절망감이 어깨를 좁히려는 그때였다.

“아주 화려하게 싸우고 있었구만, 스승님.”

스각!

어둠이 양단되어 밝음을 불러왔다.

지반을 가른 검사, 서문경은 두 절대고수를 향해 예의를 표했다.

백야흔을 없는 사람 취급하면서 말이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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