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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무공사전-121화 (119/250)

백야흔 (3)

대체 언제 주먹을 휘두른 걸까?

꽈꽈꽝!

성벽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화산 중턱을 강타했다.

나무 뿌리가 땅 위로 드러나고 토사가 파도처럼 쏟아져 내렸다.

분분히 흩날리는 먼지구름.

좁아지는 시야에도 백야흔과 두 절대고수는 서로를 놓치지 않고 직시했다.

그러나 진무신검의 노쇠한 육신은 계속해서 비명을 질러 댔다.

“……으음.”

태극혜검이란, 강대한 힘마저 태극 안에 가두어 마음대로 되돌리는 궁리이자 절대 패배해선 안 되는 무적의 검.

단신으로 산을 뭉개고도 남을 백야흔일지라도 태극혜검의 유유무극검을 파훼할 순 없었다.

하지만 진무신검의 관절과 근육은 자그마한 반동조차 받아 내기 어려웠다.

백야흔이 휘두르는 힘의 백분지일마저도 전각의 기둥을 뽑아 버리고도 남으니.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백야흔은 히죽 웃으며 오른주먹을 앞으로 내질렀다.

콰앙!

풍압만으로 그의 널찍한 옷자락이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마구잡이로 휘날렸다.

어디 그뿐이랴?

“늙은이, 바람에 얻어맞지 마.”

“그게 쉬운 일인가?”

어린 친우, 무영신투의 타박에 진무신검은 가볍게 툴툴거렸다.

백야흔이 내뿜는 풍압. 아니, 가히 풍탄(風彈)에 가까운 장력이 귓가와 눈 주위를 스치면 짧은 시간 동안 감각이 마비되는 것이다.

그러나 틈이 아예 생기지 않는 것도 아니었으니.

쩌억!

무영신투가 백야흔의 관자놀이를 후려쳤지만, 생채기 하나가 전부였다.

“예나 지금이나 왜 이렇게 단단한 거야?”

“귀찮게 굴기는.”

백야흔이 벌레라도 쫓듯이 손바닥을 휘둘렀다.

겨우 그만한 몸짓에도 무영신투는 보신경을 펼쳐야만 했다.

무인이 나날이 발전하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백야흔은 처음으로 완성되어 있는 자.

나무를 뽑아서 휘둘러도 고수가 휘두르는 편곤(鞭棍)마저 지푸라기처럼 만들어 버릴 금강의 육신이었다.

그러나 무영신투가 지금까지 놀고 먹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영감, 얼마나 버틸 수 있겠어?

-나야 천명(天命)이 다하기 전까지…….

-개소리 말고 정확하게.

-저자가 이상한 수를 쓰지 않는다면 백삼십 초. 그 이상은 버겁네.

-좋아.

무영신투가 이를 악 물고서 정면을 노려보았다.

육신 그 자체로 천재지변이라고 할 수 있는 백야흔.

팔뚝 하나 휘두른다고 풍압이 무슨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것이, 참으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확 도망쳐?’

어차피 도둑놈에게 명예가 무슨 소용인가?

오걸이라는 위치에서 영락한다고 한들, 처음부터 없던 것으로 치부하면 되는데.

잠시 딴 생각에 빠졌던 무영신투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래서야 과거의 후회를 반복하게 될 뿐이었다.

‘여기서 죽여 버려야 해.’

무영신투의 심상은 극변(劇變).

수천, 수만의 군병조차도 자신을 붙잡을 수 없다.

한없이 자유롭다는 점에서는 운룡대팔식도 무영보보다 뒤떨어졌다.

그것을 무공으로 승화한다면 서문경과 다른 의미로 십팔반(十八班)을 부리게 되니.

투둑, 툭.

옷깃을 강하게 쥐어뜯자 상의가 반으로 찢어지며 수많은 도구가 드러났다.

아주 작은 침부터 단검과 갈고리, 천잠사까지.

무영신투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천잠사를 꺼내 여러 무기와 엮었다.

타인이 보면 저게 뭐 하는 짓인가 싶겠지만, 백야흔의 반응은 달랐다.

“네놈이 제일 성가셨다!”

돌풍을 휘감은 주먹질이 허공을 때려 무영신투의 가슴팍까지 휘몰아친다.

침투경의 묘리가 담겼지만, 무학이라곤 조금도 들어 있지 않다.

고민이나 궁리 따위도 없었다.

‘저따위 주먹질이 낭왕의 천관(天貫)에 맞먹는다니.’

무영신투의 얼굴이 불쾌함으로 젖었다.

하지만 손을 멈추지는 않았다.

막거나 피하지도 않고 나직한 목소리로 늙은 친우를 불렀다.

“선배!”

“……이럴 때만 선배더냐!”

급하게 보신경을 펼친 탓에 상반신의 균형이 무너졌지만, 진무신검의 태극혜검은 견고했다.

쩌정!

백야흔의 힘이 역으로 되돌아가 거궐혈과 목젖을 후려갈겼다.

“참으로 요술 같은 검이로다!”

어차피 너희가 먼저 지친다는 듯.

백야흔은 한손으로 얻어맞은 곳을 쓱 매만지고 히죽 웃었다.

“자, 언제까지 버틸 수 있나 볼…….”

스슷!

무영신투의 천잠사가 한순간 백야흔에게 날아갔다.

극에 다다른 기예.

미세한 바늘로 귀를 노리고, 갈고리로 눈을 할퀴려는 형세였다.

“……쯧!”

불쾌하다는 표정을 한 백야흔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러나 무영신투는 이를 예상했다는 듯 천잠사를 사선으로 휘두르고는 뒤로 당겼다.

촤악!

겨우 두 동작만으로 매듭이 만들어진 천잠사가 백야흔의 두 발을 붙잡고 오금에 단검을 찔러 넣는다.

“이까짓 것으로…….”

“안 되지.”

수백, 수천 번.

은둔하며 살아온 무영신투가 상단전에서 칠로두를 불러와 어떻게 하면 이길지 궁리했다.

그 답은 어리숙하지도 오만하지도 않았다.

저따위 천잠사쯤, 백야흔이 용력을 발휘하면 곧바로 찢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벗어나기 전에 치명상이 될 만한 걸 때려박으면 그만이다.

“널 위해 사천당가에서 훔친 극독이다.”

딸깍, 주르륵…….

작은 호리병에서 쏟아져 나온 백면독이 백야흔을 적셨다.

“……허?”

피부가 독으로 물든다거나 칠공에서 피를 쏟지 않았다.

그저 살갗 속으로 스며들었을 뿐이었다.

“뭐야, 이딴 건. 독을 잘못 가져온 것이 아니냐?”

백야흔이 무영신투를 비웃던 그때, 살갗에서 천천히 핏물이 올라왔다.

백면독(白面毒).

당가가 마인을 죽이기 위해 만든 신경독이자 혈독.

그제야 백야흔은 독으로 물든 곳의 감각이 굳었음을 느꼈다.

“네이놈……!”

“어떠냐?”

무영신투는 경계심을 놓지 않고 백야흔의 용태를 지켜보았다.

천천히 솟아오르던 핏물은 이윽고 칼이라도 맞은 것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미 즉사했을 출혈량이지만, 백야흔이니까 다르리라고 생각했다.

주르륵, 촤르르륵……!

한데 이상하게도, 백야흔은 출혈을 막거나 무영신투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흐르는 피를 바라보았다.

피가 웅덩이지고 땅으로 스며들 때까지도.

“……뭐야?”

“사람조차 아니었던 건가?”

강렬한 위화감.

사람과 다른 무언가를 마주하고 있다는 깨달음이 무영신투와 진무신검의 머릿속을 스쳤다.

“……흐, 하하!”

독이 완전히 말라붙어서 딱지처럼 가라앉을 쯤에야 백야흔이 크게 웃었다.

분노나 짜증이 아니라, 궁금했던 점을 해결했다는 듯.

왠지 모르게 후련한 미소를 지은 그가 무영신투를 향해 입술을 달싹였다.

“오랜 고민을 해결해 줬구만.”

“뭔 미친 소리야?”

“설마 피가 없어도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거든.”

“…….”

그 말에 무영신투는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다.

피란 곧 생명.

숨을 쉬는 것조차도 피가 있어야 원활히 돌아간다.

피가 부족하면 시야가 극도로 좁아지고 숨조차 버거워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백야흔은 피를 모두 쏟아 냈음에도 멀쩡히 말하고 숨쉬었다.

심지어 지쳐 보이는 기색도 아니지 않나.

“……넌 뭐야?”

“뭐긴 뭐야.”

무영신투와 진무신검이 고민에 빠졌다면 백야흔은 머릿속에 아무런 고민도 없었다.

오히려 오랫동안 가지고 의문에 확신을 품었다.

“네놈들이 범접할 수조차 없는 지존이다.”

* * *

쿠꽈꽝!

화산 주위에 수많은 무인이 모였다.

모두가 화산파의 요청에 모인 명숙(名宿)이자 고수였다.

섬서성에 있는 인재를 모았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등정로에 올라설 생각조차 못했다.

“거인 반고가 날뛰는 모습이지 않나?”

“도저히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안 드는군.”

산이 봉우리가 되어 가는 광경이란 인간의 상식을 파격하고 투쟁심마저 꺾기에 충분했다.

특히 저 위에는 오걸에 속한 절대고수가 둘이나 있다고 하지 않았나?

두 절대고수의 합공에도 굴하지 않는 마인이 있다면 목숨이 아까워서라도 올라가지 않는 것이 상식이었다.

‘하물며 화산의 본래 주인이었던 도사들마저 겁을 저리 집어먹었으니…….’

‘마교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는 게 아니라 관통하겠구나. 어쩌면 대명의 천하가 질지도 모르겠어.’

공포는 머지않아 인정으로, 인정은 변심하여 변절의 기회로.

빗줄기가 쏟아졌던 며칠 전처럼 천하도 먹구름으로 뒤덮이던 그때였다.

“여기서 뭘 얼쩡대고 있어? 안 올라갈 거면 비켜.”

말을 타고 온 공자 하나가 명숙의 등을 발로 찼다.

“이게 무슨 짓이오!”

“길 비키라는 게 뭐?”

“……나이도 어리면서 건방지게!”

“겁쟁이보단 건방진 게 낫지. 긴 말하지 말고 비켜, 바빠!”

공자의 뒤에는 비슷한 나이의 소녀와 건장한 무사가 있었다.

게다가 그들이 타고 있는 말 세 필까지.

무림에서는 보기 어려운 광경이었기에 개방의 거지가 눈을 부릅떴다.

“서, 서문경! 서문경이다!”

“뒤에 공자님은 어디로 갔어?”

서문경은 거지의 무례함에 혀를 차며 명숙을 다시 툭툭 찼다.

“언제까지 안 비킬 건가?”

“아, 아무리 서문세가의 공자래도…….”

“두 시진도 넘게 여기서 죽 치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는 사람들을 내가 어찌 우대해 줄까? 응?”

짜증이 한가득 담긴 말에 명숙도 한순간 욱하는 마음을 품었다.

하지만 서문경의 기세는 이미 칠로두를 코앞에 두고서 충천해 있었다.

“뭐?”

단 한 음절.

은연중에 공력을 실어서 말하니, 명숙의 숨통이 턱 막혔다.

그걸 본 사람들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더니 서문경을 중심으로 길을 텄다.

“지, 지나가시지요.”

“저는 섬서의 명문에서 온……!”

굴욕을 품고서 길을 비키는 자가 있는가 하면, 짧은 시간이라도 자기 이름을 밝혀서 공명심을 채우는 야심가가 있다.

서문경은 그들 모두를 무시했다.

“나한테 주절거릴 시간에 다른 마인이 들어오지 못하고 진이라도 쳤어야지…… 아니면 호북성에 도움을 구하든가……?”

“이보시오!”

“뭐?”

어차피 망나니로 한 번 소문났던 몸.

서문경은 이참에 막 나가기로 했다.

“날 따라오지 않으면 가문의 힘을 발휘해서 강호 전역에 방을 붙일 생각인데, 어쩔 생각이신가들?”

“…….”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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