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파 (11)
수많은 선의 난립.
직선과 곡선, 구불구불한 선에 이르기까지 수십,//에서 수백.
눈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검기가 파형을 이뤘다.
제각기 다른 검식(劍式)과 검력(劍力)이 담겨, 얼핏 보면 무한량의 검처럼 보였다.
대도무량.
공동파는 도가의 가르침을 검에 녹인 것인가?
서문경은 그것을 뚫어지게 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렇군, 천주심경과 극단에 있는 검법이야.’
상단전 의념으로 강철의 기둥을 세워 하늘에 도달하겠다는 심공과 무한량의 검기를 휘둘러 하늘과 대등해지려는 검법.
방식은 다르지만, 목표하는 바는 같았다.
무인이 그러하듯 하나의 몸뚱이, 즉 소우주로 대우주에 도전하는 오만과 집념이 담겨 있었다.
천주심경과 대주천복마검 중 어느 쪽이 정답에 더 가까운가?
서문경은 그 답을 알기 위해 천주심경의 기둥을 검에 담았다.
“…….”
“……!”
이윽고 두 검객의 눈이 마주쳤다.
서문경은 신비한 무공사전 덕분에 대주천하는 복마검을 보고도 침착했지만, 현백은 그러지 못했다.
도달하는 끝이 같은 무공.
어쩌면 같은 무맥(武脈)을 이었을지도 모를 상단전 심상을 보고 한순간 머뭇거렸다.
그 차이가 승부를 갈랐다.
스르릉…… 까강!
서문경의 일검이 대주천복마검을 향해 휘둘러졌다.
검견불퇴로 쳐 내고 비검절우로 가르기까지 이합(二合)의 일수.
두 번의 부딪침을 한 호흡에 해냈다.
검치에게서 배운 번천광검결의 가르침을 일검에 담았다.
‘보인다.’
파천행의 중앙을 가르니 은하수를 이루던 수많은 검형이 보였다.
현백이 수십 년 동안 배우고 익힌 검법과 깨달음.
그 모든 것이 녹아있는 무학의 대주천, 그 중심에 있는 복마검.
그것을 대주천복마검이라고 한다면…… 서문경이라고 못할 것이 무어 있겠는가?
꽈악.
서문경은 신비한 무공사전을 쥐었다.
호흡을 다잡고서 지금까지 익힌 무학을 머릿속 심상에 불러들였다.
‘내가 배운 가전무공과 강호에서 배운 검법들, 무연창과 잡기술까지도…….’
본래 범상치 않던 오성(悟性)이 신비한 무공사전의 인도에 따라 움직였다.
일 초, 일 합을 휘두를 때마다 신묘한 발상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사라지길 반복했다.
“……크으!”
머지않은 곳에서 현백이 신음을 흘렸다.
오십 합을 넘어 어느덧 칠십 합.
공력을 아끼지 않고 파천행과 대천행으로 흐름을 바꿔 가며 백 합까지 맞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콧대를 꺾어 주십시오!”
“사백조님!”
서문경에게 된통 깨진 일대제자와 이대제자가 고함을 치기도 했다.
그러나 서문경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천주심공과 분심조화결이 내 무학을 한데 묶을 끈이 되어 줄 거야. 비록 대주천복마검이 어떤 요결로 펼쳐지는지 몰라도, 이거라면.’
대맥으로부터 전신을 아우르는 일천세맥.
장강의 물줄기를 방불케 하는 흐름을 상단전 심상에 가져왔다.
어떻게 해야 대주천복마검을 가져올 수 있는가?
가져오는 것뿐만 아니라, 서문경만이 고쳐쓸 방법은 무엇인가?
여러 가능성을 강철의 기둥에 새겼다가 손바닥으로 밀어서 지웠다.
일평생 중 단 한 번 찾아오는 깨달음의 순간이 머릿속을 별똥별 무리가 스치는 것 같았다.
주르륵.
코피가 인중을 적시고 무공사전 위로 떨어졌다.
현백과의 싸움, 상단전 속에서 이루어지는 신공의 구상.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분심, 조화하는 것이 한계에 가까워졌다.
칠십 합은 어느새 구십 합으로.
내기가 끝나가니 대주천복마검과 마주할 시간이 그만큼 줄어들었다.
‘조금만 더.’
서문경은 자신의 직관으로 예측한 대주천복마검과 신비한 무공사전에 하나둘씩 적혀가는 검로를 비교했다.
오래 전, 홍화연과 맞다투었을 때와 같았다.
[중천(中天)]
[화경추(化境墜)]
[백전(白顚)]
어느 무공에서 비롯된 초식인지도 모를 것들이 계속해서 신비한 무공사전에 적히고 지워지길 반복했다.
서문경은 그걸 모두 읽고 직관에 따라 쳐 내며 반격했다.
그 결과를 상단전 심상에 가져가서 강철의 기둥, 천주심경에 새기며 곰곰이 궁리했다.
‘중천이란 하늘의 중심, 중공(中空)과 같은 뜻이니 검기의 방향을 심상으로 지정하는 것이요, 화경추는 복마검의 초식이라고 얼추 들었다. 백전은 아마 형태겠지.’
안법으로 본 검로와 직관, 신비한 무공사전으로 관찰한 무학.
그 세 가지를 한데 엮어서 다시 궁리했다.
제아무리 신공절학에 위치한 분심조화결일지라도 무리에 가까운 운용이었다.
세상에 구파의 장로와 싸우면서 그의 무학을 읽어내겠다니?
머리가 터질 듯 지끈거렸다.
요령 좋게 쳐 내고 있다 해도 대해처럼 출렁이던 공력도 점차 가라앉고 있었다.
‘영약을 부지런히 처먹어도 구파의 장로만은 못하단 건가.’
서문경은 쓰게 웃으며 한계를 가늠했다.
쩌엉!
방금 일 합으로 인해, 남은 것은 구십삼.
일곱 초식 후 내기가 끝나면 서문경은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반나절을 쉬어야 할 판이었다.
‘좋아, 어차피…… 죽진 않을 테니까.’
휴식이 예정되어 있다면 그 직전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다.
서문경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이제부터 내가 구상한 검법을 시험할 차례야.’
상단전 심상 속, 서문경이 손바닥으로 강철의 기둥을 쓸어 냈다.
그 안에 대주천복마검과 마주치면서 얻은 발상이 새겨져 있었다.
* * *
앞으로 일곱 초식.
현견은 밀리는 듯했던 현백이 서문경을 몰아붙이는 걸 보고 입술을 비틀었다.
‘경험 부족인가//역시 서문 공자의 경험이 부족하군.’
서문경의 경지는 세간에서 말하는 대로 십대고수에 도전할 만했지만, 상승 무학에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해 보였다.
하기야 대주천복마검이 무슨 무공이던가?
일평생에 걸쳐 체득한 검법을 상단전 심상에 따라 펼치는 의념절기가 아니던가?
하나의 손으로 수십의 검형을 쳐 낼 순 없는 법이다.
서문경이 코피를 흘리는 모습까지도 보였으니, 백 합이 끝나기도 전에 승부가 날 터.
주변의 도사들도 그 기색을 알아차리고 몇 마디를 중얼거렸다.
“역시, 복마관주님인가…….”
“그래도 저 경지에 오른 서문 공자가 참으로 대단하고 부럽구만.”
‘곤륜파 장문인이 문하로 들이고 싶어서 떼를 썼다는데 이해가 되는군.’
며칠 전이었던가?
현견은 곤륜파 장문인 고진성에게서 온 전서구를 떠올렸다.
거기엔 서문경을 향한 극찬과 여러 덧붙임이 있었지만, 서문세가에게 무슨 지원을 받았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직접 마주하고 나니 고성진의 표현은 인색했다는 걸 깨달았다.
‘군사적 지식이나 무공의 경지가 천하에서 유일할 정도다.’
어찌 약관도 되지 않은 청년이 현백의 대주천복마검을 상대로 굳건할 수 있겠나.
현견의 놀람은 구십 합을 지났을 때 경악으로 바뀌었다.
“저게 무슨……!”
서문경의 칼끝에 일렁이는 흐름.
얼핏 보면 검기 이전에 도달하는 무형의 기운처럼 보이지만, 저 안에 대주천복마검을 방불케 하는 형상이 있었다.
자연히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공동의 무학을…… 어찌……!”
심지어 서문경이 칼에 두른 심상은 공동파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처음에 왜 복마관주가 멈칫거렸나 했더니 저거였나!’
현견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안법에 공력을 집중하니, 서문경의 검기에 조금씩 형상이 고정되는 것이 보였다.
‘……공동파의 대주천복마검이 아니라, 서문세가의 대주천복마검처럼 보이는군.’
현백의 검기는 검형이 상대와 부딪치는 순간에 힘을 발휘하지만, 서문경이 빚어낸 검기는 처음부터 고정된 채였다.
안법이 부족하지 않다면 어느 형상인지 보일 정도.
마치 서문세가의 가전무공과 비슷할 정도로 단순하지만, 처음 펼친 것이라고 생각하면 무시무시한 상상이 떠오르고 만다.
‘운룡대팔식에 이어서 공동의 대주천복마검마저 가져갈 생각인가, 저 청년은.’
아직 처음 펼쳐서 미숙할 뿐.
혼자서 우두커니 앉아 궁리를 계속하면 언젠가 원본에 도달하고 마리라는 두려움.
현견의 심중에 사특한 생각이 움트는 순간이었다.
-괘념치 마시오.
-복마관주……!
현백의 전음이 귓가를 스침에, 현견이 사특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나는 저 청년이 무섭소. 곤륜에 이어 공동파의 무학까지 가져가는 꼴을 어찌 인정할 수 있겠소?
-복마검이 오로지 공동의 것이오?
-그게 무슨…….
-처음부터 복마검이나 개천검이나 공동파의 것이 아니었소. 공동산에 위치한 도맥(道脈)이 공유하던 것이지.
서문경과 백 합을 겨루고 있음에도 현백의 전음은 흔들림 없이 또렷했다.
마음속에 항상 지니고 있는 신념을 말하는 듯했다.//신념을 고해서였다.
-서문 공자가 그것을 읽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소. 영특함이 지나쳐서 언젠가 화를 당할 수야 있겠지만, 우리 같은 도문이 그럴 순 없는 법이지.
-…….
-앞으로 두 합이 남았으니, 지켜보시오.
대주천복마검과,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려는 발칙한 검법.
어느 쪽이 더 우월한가.
백 합의 내기가 검법의 우위를 판가름하는 싸움으로 변질되는 것을 느꼈다.
현백의 시선이 서문경을 좇았다.
“파천행.”
“……무명식(無名式).”
두 검객이 휘두른 수십의 검기가 서로를 겨냥했다.
그와 동시에 땅을 박찼다.
지근거리에서 검과 권, 각법 따위로 요혈을 노리며 부딪쳤다.
이미 백 합은 넘어섰다는 말을, 모두가 잊었다.
그저 멍하니 서문경과 현백의 다툼을 지켜보고 머릿속에 담았다.
그렇게 또 다시 삼십 초를 교환했을 무렵.
승부가 끝난 것을 깨달은 현백이 제자리에서 멈춰 섰다.
“승룡관주가 이런 기분이었을지도 모르겠군. 왠지 모르게 후련해.”
쩌적!
현백의 검이 부러졌다.
현백이 언제나 구기고 있던 표정을 풀고서 환히 웃는 반면, 서문경은 온 세상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분심조화결에 쏟은 심력이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한마디는 내뱉어야 했다.
“내가 졌습니다.”
“왜인가?”
“힘으론 반 초식 이겼지만, 무학으로는 반 초식 졌으니…… 검법의 우위로 따지자면 힘자랑한 내가 진 것이지요.”
“그렇군.”
현백은 서문경에게 천천히 다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이만 쉬게.”
“대주천복마검, 잘 견식했습니다//보았습니다.”
그 말을 마친 서문경이 한차례 비틀거리다가, 어느새 다가온 성하민의 어깨에 기댔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모든 도사는 알았다.
“대주천복마검이 이런 식으로 외인에게 유출될 줄이야…….”
형태는 다르나 검법을 이루는 요결은 서문경이 깨달았노라고.
현견은 쓰게 웃었다.
현백을 제외한 다른 도사들이 현견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공동파의 장문인으로서 어찌 처분하겠냐는 시선이었다.
이에 장내의 분위기를 살핀 성하민이 입술을 달싹였다.
“……정당한 싸움이었어요.”
“나도 알고 있네.”
말은 이렇게 했지만, 현백의 전음을 듣지 않았으면 어찌 말했을까?
한순간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청마가 주변에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이용한다면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악의를.
현견은 자신의 본심을 마주하기가 두려웠다.
마교와 다름없는 짓을 사문의 무학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처리할 뻔했다.
그 마음을 부정하기 위해 목소리를 돋웠다.
“공동의 제자는 들으라! 서문 공자가 무엇을 배웠든 불만을 가지는 자 있다면 직접 복마관주에게 배워라!”
“…….”
“애초에 약관도 되지 못한 외인이 복마검도 모르면서 상승 무학을 익힌 것이다! 분하지 않느냐?”
현견은 공동파의 정신을 논했다.
“배움이 느리면 몸을 더 움직여라! 너희가 삼대제자 시절에 새벽마다 달렸듯이!”
“……예!”
그 말에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낸 제자들이 힘차게 외쳤다.//추가
신비한 무공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