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파 (10)
삼십 년 전이던가?
현백이 일대제자 중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을 때, 청자 배분의 장로께서 자신을 불러서 말했다.
“너는 사람이 따를 인망과 교활함이 부족한 놈이다.”
“…….”
“인정하기 싫어도 어른이 말하는데 제대로 들어라.”
“예. 맞습니다. 저는 무식한 놈입니다.”
“쯧…… 말본새가 그러니까 이대제자한테 뒷담이나 듣는 거야.”
“놀리려고 부르셨습니까?”
“네 재주가 장문인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으니, 친히 무공을 가르쳐 주려고 부른 것이다.”
대주천복마검.
장로가 공동파의 상승 무학을 입에 담으며 웃었다.
“공동파가 공동파로서 자답(自答)하는 강함이 이 무공에 있다. 잊지 말거라, 네 검에 대주천하는 복마검이 있다는 것을.”
그로부터 삼십 년.
현백은 사문을 증명하기 위해 검을 들었다.
* * *
숨을 가다듬은 현백이 어깨를 강하게 휘둘렀다.
“대천행(大天行).”
콰아아!
장강에 이는 파도처럼, 현백의 내공이 허공에서 출렁였다.
삼절검, 소양검, 개천검에 이르기까지.
그 파도에 공동파의 고절한 무공과 초식이 잠들어 있었다.
그것이 바로 대주천복마검의 대천행.
공동파의 고수 중 선택받은 자만이 펼칠 수 있는 절기일지니.
대천행 앞에서 서문경의 기세가 단숨에 짜부라지는 듯했다.
“……허.”
서문경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감탄이 터져 나왔다.
구파일방의 고수가 펼치는 진수(眞髓)와 마주했다.
밤새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무를 논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바둑의 수를 연구하듯, 신비한 무공사전으로 얻은 무학을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현백의 일 초식에서 얻은 바가 많았다.
“좋군.”
서문경의 입술이 비틀리는 것과 동시에 발검했다.
까강!
칼날에 수십 갈래로 이루어진 검기가 부딪쳤다.
어느 하나 가볍거나 단순하지 않았다.
복마검의 여러 형태가 복잡하게 얽히며 파도를 일으켰다.
지저분한 쇳소리가 두 무인 사이에서 일어났다.
시뻘건 불티가 허공을 날며 휘어졌다.
화공이 허상의 그림을 그리듯, 불티로 이루어진 나비가 허공을 날았다.
‘이상하다.’
서문경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눈앞의 도사는 아직 검기를 이루었을 뿐이고, 자신은 검강을 휘둘렀다.
범인이 보기엔 같은 고수일지언정 수많은 벽으로 갈라져 있었다.
하지만 현백의 검기는 자신에게 밀리지 않았다.
호기심이 일어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현백의 대천행이 물러난 자신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먼 곳에서 봐야 보이는 것이 있다고 했던가?
이제야 대천행의 흐름이 보였다.
“몰아치는 게 느리시군.”
“……!”
현백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건 서문경이 생각보다 강해서도, 대천행의 흐름이 무너져서도 아니었다.
아니 저건. 현백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건…….’
호흡.
주변의 대기가 빨려드는 듯한 위화감이 서문경에게서 느껴졌다.
그다음 순간, 서문경의 검이 허공을 찢어발겼다.
꽈과과과!
검강으로 이루어진 일검이 뇌성벽력을 일으켰다.
현백의 고막이 찢어질 듯이 아리고, 눈앞이 번뜩였다.
그것은 생존 본능이었다.
자신의 경지로는 막지 못하며, 오로지 피해야만 하는 일격.
현백은 그 일검에서 불가사의한 감각에 휩싸였다.
‘서문세가의 무공이 이렇던가?’
서문검법은 화려하지 않은 담백함을 지녔다.
오랫동안 교류를 이어 왔기에 어떤 기풍이 담겨 있는지 알았다.
하지만 서문경의 검과 마주하고 나니, 지금까지 알고 있던 상식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검을 쥔 현백의 오른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저 정직하기만 하던 검이…… 달라졌다!’
정직하고 담백한 검에 무림의 무학이 얹어져, 서문경이 일 초식을 펼칠 때마다 다른 구파일방의 무공과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화산파의 화려함, 남궁세가의 광대함, 그리고 곤륜파의 자유로움이라…….
그사이에 이십 초를 교환했지만, 도무지 서문경을 밀어붙일 실마리가 보이질 않았다.
현백은 어금니를 꽉 앙다물었다.
“흐읍!”
대주천복마검의 대천행이 와류(渦流)를 그렸다.
카가강!
서문검법과 와류가 부딪치며 풍파가 일었다.
두 칼에서 튕긴 불똥이 어두웠던 밤을 한순간이나마 밝혔다.
번뜩이는 순간마다 서문경은 자신만만한 모습이었으며, 현백의 얼굴에는 패색이 짙어졌다.
대천행의 흐름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현백은 물러서지 않았다.
축으로 삼은 왼발이 한여름의 진흙에 파묻힐지언정, 칼이 잘릴 위기에 이르게 될지라도.
‘회천행(回天行).’
오히려 조금씩 앞으로…….
보무도 당당하게, 현백의 검이 서문검법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검이 반쯤 깨어질 듯 위태했지만, 복마검의 대주천은 무한히 흐르는 법이었다.
하늘에 도도히 흐르는 기류처럼.
공동파의 무학이 녹아든 총결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대천행, 회천행, 유천행.
중간중간 펼쳐지는 와류와 변초는 서문경의 호흡을 끊었다.
그때마다 서문경이 눈웃음 지었다.
흥미와 탄복이 넘치다 못해 흐를 듯한 눈빛.
‘과연.’
한계가 가까워진 현백은 서문경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곤륜파의 무학을 이런 식으로 배웠구나. 승룡관주 놈, 이렇게 가르칠 맛이 나는 놈이 자기 제자가 아닌 게 후회스러웠겠지.’
서문경이 외인인 것은 알았다.
왼손에 이상한 고서를 꽉 쥐고 다니는 괴벽이 있는 것조차도 예전부터 풍문을 듣고 알았지만, 그딴 건 흠도 아니었다.
원래 천재는 범인의 시각으로 이해가 불가하다고 하니까.
현백이 한쪽 눈가를 찡그렸다.
얕은꾀로 사문의 무학을 익히려는 청년이 눈앞에 있었다.
“가만 보자니 백 합의 내기가 자네한테 이득이었군.”
“이제 아셨습니까?
서문경의 천연덕스러운 반응에 현백은 피식 웃었다.
오른손이 저렸다.
서문검법에 화려함을 뒤섞었으면서 패도적인 기세는 여전하여, 늙은 몸으로 계속해서 받아 내기엔 무리였다.
‘여기서 흐름을 바꾸는 수밖에.’
휘르르…….
대주천복마검이 또 다른 흐름을 그리기 시작하니.
현백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그 검로를 따라 현천신공의 내공이 도도히 흘렀다.
“……!”
서문경의 미간이 좁아졌다.
언뜻 보면 평범한 검무와 같았지만, 보이지 않는 실체가 중심에 있었다.
“검을 들게, 서문 공자…….”
검무를 일순 멈춘 현백이 단숨에 서문경을 향해 맹진했다.
보법은 경쾌하나 사나웠고, 숨은 깊으나 정심하진 않았다.
고등한 무공의 절초치고는 성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서문경은 선택해야 했다.
그대로 받아 낼 것인지 아니면 흘려내어 빈틈을 노리던지.
서문경의 칼끝에 망설임이 일자, 현백은 한쪽 입술을 비틀었다.
이것이 대주천복마검의 마지막 절초.
‘파천행(破天行).’
손목이 부러지는 것과 동시에 현백의 신형이 크게 휘돌았다.
그 순간, 서문경은 보았다.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수많은 검기를…….
* * *
총 백 합의 내기로부터 십 초식.
열 번의 부딪침 동안 서문경은 신비한 무공사전을 통해 대주천복마검에 담긴 것을 보았다.
실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천주심경. 천주심경과 비슷해.’
부동한 의지로 심상에 강철의 기둥을 키워 나가는 천주심경과 자신이 체득한 무공을 검에 담아서 펼치는 대주천복마검.
심공과 검법.
결은 다르나 방식은 같았다.
현백과 두 초식을 겨루었을 땐 의심에 불과했지만, 삼십 초식을 넘어가니 확신에 가까워졌다.
‘어쩌면 천주심경의 창안자가 공동파의 도사였을지도 모르겠어.’
오십 초식째.
서문경은 대주천복마검에 대항하기 위해 신비한 무공사전을 왼손으로 팔락거렸다.
[대주천복마검(大週天伏魔劍)]
[대천행, 회천행, 유천행, 파천행의 네 초식으로 이루어진 상승 검보(劍寶). 공동파가 공동파로서 자답하기 위한 검.]
‘도가의 무공 아니랄까봐 설명 한 번 제대로 꼬아 놨구만.’
서문경은 무공사전을 흘낏거리곤 피식 웃었다.
지금까지 여러 무공을 수집해 본 결과, 저만큼 대주천복마검을 명쾌히 설명할 글줄이 없다는 뜻이다.
고민할 것은 단 한 가지.
공동파가 공동파로서 자답하기 위한 검이라는 건 무엇이겠는가?
‘일단은 보는 수밖에 없어.’
서문경의 눈동자에 시퍼런 기운이 일렁였다.
안법을 운용하며 무공사전을 꽉 쥐었다.
그 사이에 현백의 대주천복마검이 물밀듯이 쏟아졌다.
무공사전에 적힌 네 초식뿐만 아니라, 변초에 가까운 와류까지도 서문경의 칼을 연신 두드렸다.
“어찌 복마관주의 검을…….”
“허어, 저렇게 밀어붙이다니!”
내기의 경과를 지켜보는 도사들은 제각기 놀라거나 두려워했다.
이 모두가 서문경의 경지 때문이었다.
아직 약관을 넘지 못한 나이에 현백의 대주천복마검을 밀어붙이는 모습은 열등감을 가지기는커녕 위업에 가까웠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겉모습일 뿐.
서문경은 이기는 것보다 대주천복마검의 내밀한 부분까지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조금 더, 조금만 더…….’
현백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조금씩 밀어붙인다.
백 합을 휘두르는 동안에 서문경과 현백은 서로의 무공을 탐색하며 기회를 엿보았다.
누가 우위에 있는지는 주변에 있는 도사조차도 알았다.
“이러다가는 현 사백님께서…….”
“쉿!”
도사들이 울타리를 만드는 걸 멈추고 내기를 지켜보았다.
거대한 흐름을 휘두르는 현백과 일일이 받아치며 가까이 다가가는 서문경.
두 무인의 비무는 수려하고 아름다운 것에 가까웠다.
그걸 가만히 지켜보던 장문인 현견이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복마관주가 이길 것이다.”
확신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대주천복마검의 진수, 파천행이라면 저 흐름에 익숙해진 서문경의 허를 찌를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렇군. 공동파로서 자답하기 위한 검이란…….”
서문경이 문득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뒷말은 들리지 않았지만, 현견의 귀를 의심케 했다.
설마 그 짧은 순간에 대주천복마검을 창안한 뜻을 알아차렸단 말인가?
현견은 당장 비무를 중단하고 싶었다.
저 뜻을 알고서 파천행을 대한다면 서문경 스스로 대주천복마검의 순행과 역행을 깨달을 것 같았다.
바로 그때, 서문경이 입술을 달싹였다.
“실로 훌륭한 검이야.”
어느새 서문경이 왼손의 고서를 펼친 채 자길 향해 떨어지는 검기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대주천복마검의 파천행.
노고수인 현백이 지금까지 익히고 체득한 공동파의 검법이 한가득 담긴 절초.
언제 마교가 급습할지 모르기에 내공을 아꼈지만, 절초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 검을 상대로 서문경은 한 손으로 고서를 탁 덮고서 검을 쥐었다.
검견불퇴.
말없이 가문의 초식명을 입에 담고서 감각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여태껏 대주천복마검의 흐름을 훔쳐보느라 눈이 시큰거렸다.
하지만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서 궁구히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저 검기의 바다를 쳐 낼 수 있을까?
또, 저것을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까?
서문경은 분심조화결로 두 가지 궁리를 동시에 떠올리며 전신의 근육을 쥐어짰다.
“……후우.”
융통무애.
거침없이 통하여 막히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으니.
서문경은 오른발로 지면에 원을 그렸다.
단순하지만 확실한 도발이었다.
“설마, 저 원 안에서 막겠다는 건가?”
“너무 어려서 그런지 오만하군.”
도사가 수군거리는 소리와 함께 현백의 기세가 다소 날카로워졌다.
그러나 서문경은 씩 웃었다.
“오십시오, 노선배.”
현백이 권했던 대로 검을 들었다.
신비한 무공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