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파 (6)
공동파의 새벽은 부산스럽고 시끄럽다.
그 시작점은 나이 어린 삼대제자가 묵는 숙소, 소거관(小居館)이었다.
“뭣들 하냐! 빨리 일어나라!”
“이게 다 몸이 퍼져서 그래, 보나 마나 늦게까지 요설이나 떠들었겠지!”
도사보다는 인왕상(仁王相).
툭 튀어나온 턱과 광대에서 도사다운 인덕은 찾아보기 어렵다.
얼마나 험상궂게 생겼으면 첫날에 이들을 보고 푸줏간 아저씨냐고 묻는 아이가 있었다.
우습게도, 그들은 공동파의 이대제자였다.
그것도 삼대제자를 가르치도록 임명된 정예.
“당장 뛰어!”
“뒤처지는 놈은 내가 책임지고 곡기를 끊어 버리겠다!”
삼대제자는 등 뒤에서 보릿대를 부리나케 휘둘러 대는 이대제자를 피해 공동산과 드넓은 평야를 달렸다.
시원한 풍광을 눈에 담을 시간은 없다.
침을 질질 흘리거나 헛구역질하고, 이대제자의 흉을 보는 것이 전부.
“콱!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져라, 헉헉…….”
“헛심 쓸 시간에 달리기나 해라!”
가뜩이나 더러운 인상을 어떻게 더 위압적으로 만들지 강물을 보며 연습하는 이대제자들이다.
이들의 면상을 보고 대들어 볼 각오가 들 만큼 삼대제자는 나이 들지 못했다.
“켁, 무서워.”
“이제 슬슬 적응이 될 때가 됐는데.”
“고향에서도 저렇게 생겨 먹은 사람은 없었잖아, 그치?”
삼대제자는 지치는 와중에도 이대제자의 흉을 보면서 킥킥 웃었다.
힘들다는 걸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보다 허세와 장난기로 넘기고 싶을 어린 나이였다.
‘……귀엽구만.’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도명이 아니라 이름으로 불리던 나이.’
이대제자도 한때 저런 시기를 넘겼기에.
속으로 킥킥 웃으며 삼대제자를 어여삐 여겼다.
물론 겉으로는 여전히 무뚝뚝하고 험상궂은, 절대 친해질 수 없어 보이는 무사부를 연기했다.
“여기서 잠깐 휴식!”
“모두가 마시는 강물이다! 토는 강물 말고 나무 쪽에 해라!”
“감사합…… 우욱!”
“야, 묻잖아! 씨바……!”
“어떤 놈이 욕을 입에 담았느냐?!”
“죄송합니다!”
한참을 달려도 어린아이다운 떠들썩함은 지워지지 않는다.
삼대제자는 각자 강물을 마시거나 숨을 헐떡거리고, 또 이대제자의 흉을 봤다.
“진짜 인상 더러워.”
“냄새날 것 같지 않아?”
“큭큭.”
‘아까부터 나한테만 그러네?’
‘네가 참아. 애잖냐.’
이대제자도 무사부로서 여러 날을 거치며 경험을 쌓았지만, 어린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한다.
얌전하던 아이가 갑자기 부모가 보고 싶다며 울거나, 강물에서 첨벙거리다 보신경을 깨우치기도 한다.
그때마다 그들은 재치를 발휘해 달래거나 보신경의 일면을 다르게 보니.
남을 가르치며 얻는 사색(思索)의 경험이었다.
“자, 충분히 쉬었으니 이제 일어나라! 소거관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에…… 일다경만 더 쉬면 안 돼요?”
“어허!”
“칠두가 못 일어나겠대요.”
“내가 너희를 하루이틀 보느냐? 괜히 꾀부리지 말고 일어나든가 여기 혼자 있든가 정하라고 해라!”
아이의 영악함이라고 해 봐야 부모가 알고도 속아 주는 수준에 불과하다.
아무리 어여삐 보고 있다고 한들, 이대제자의 신분은 무사부.
사부는 제자의 얕은 꾀를 한눈에 알아보고도 남는다.
“……쳇.”
아프다는 핑계를 대던 칠두가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이대제자가 호령했다.
“대열을 따라 모여라! 앞으로 너희가 배울 검진에 도움이 될 방위이니, 자기 것만 홀라당 외우지 말고…….”
“진 사부님! 화등이가 안 보여요!”
진 사부라고 불린 이대제자, 청진(淸眞)이 인상을 찌푸렸다.
“풀숲은 둘러보았느냐? 또 벌레를 좇다가 그랬을지 모르잖느냐.”
“저번에 그렇게 혼난 이후로 멀리 가진 않는데, 이상하게 안 보여요.”
“……으음.”
청진의 인상이 재차 구겨졌다.
삼대제자를 가르치고 훈련하는 동안 주변을 경계하는 조(組)가 따로 있었다.
그들 덕분에 벌레를 좇다 멀리까지 가 버린 아이를 찾기도 했다.
혹시나 이번에도 그랬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옆에 있던 이대제자에게 전음했다.
-아호조(兒護組)에선 뭐래?
-조용합니다. 정기적으로 오는 신호도 없어졌습니다.
-언제부터 그랬는데?
-공동산에서 벗어났을 때부터…….
-그걸 왜 지금 말하는 거야?
청진의 시선이 확 돌아갔다.
본래 삼대제자와 동행하는 이대제자의 숫자가 네 명.
한데 지금은 자신을 포함해서 둘뿐이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다고, 그리 생각하던 차였다.
“저, 저도 이제야 알았습니다.”
이대제자 청우.
평소 유약한 성정 때문에 자주 지적받는다지만, 어찌 됐든 공동파의 도사인 그가 잔뜩 겁에 질려 낯빛이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청진은 그의 두려움을 가라앉히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진정해. 아이들이 있잖냐.”
“저, 저길 보십시오.”
“……?”
청진은 칼을 붙잡은 채 청우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아하하, 받아라!”
“물 좀 그만 끼얹어! 으악! 죽는다!”
장난기 많은 삼대제자가 물놀이하는 강물.
그곳에 지극히 평범한 남자가 아이들과 놀아 주고 있었다.
“에잇, 받아라!”
“끼악!!”
“차가워!”
이르게 찾아온 여름, 가파르게 달려서 끓어오른 체온.
삼대제자에게 있어 차가운 강물은 한빙장에 가까운 차가움을 머금고 있었다.
그렇게 놀다가 도복이 흠뻑 젖고 말았다.
청진에게 혼나리란 걸 알곤 눈치를 흘낏 보지만, 이내 남자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아저씨.”
“응?”
“아저씨는 왜 안 젖어요? 귀신이에요?”
“귀신?”
“……귀신은 사람 말을 할 줄 몰라서 사람을 따라 한다던데.”
“따라 해?”
남자는 히죽 웃었다.
그의 옷은 삼대제자와 물놀이하면서도 아예 젖질 않았다.
아니, 물에 닿자마자 증발되었다는 말이 옳겠지.
한껏 찌푸리고 있던 청진의 인상이 풀렸다.
부드러웠다.
청진은 여느 도사처럼 평온한 미소를 지을 줄 알았다.
“청우야.”
“예, 사형.”
“애들 있는 데선 편하게 말하라고 했잖냐. 그러면 네가 아랫것인 줄 알고 아이들이 함부로 대한다니까.”
“하지만……!”
“네가 책임지고 아이들을 데려가라. 사문의 미래가 달려 있어.”
청진이 보인 결의에 청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청우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근육이 경직된다….
그 과정을 남자는 잘 짜여진 연극을 보듯 감상했다.
작게 눈웃음 지으니 왼쪽 눈 아래의 점이 살결에 접혔다.
“내가 누군지 알겠는가?”
“모른다. 허나 굴하지 않겠다.”
청진의 대답은 막힘이 없어, 파고들 틈새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청우는 달랐다. 마치 자기가 삼대제자로 돌아간 것처럼 손톱을 물어뜯는 것이다.
남자가 청우를 향해 말했다.
“사형을 베면 너와 이 아이들을…… 절반은 살려 주마.”
남자의 살기가 주변 열 장을 내리누르고 새싹 다섯 순을 말려 죽였다.
기세만으로 사람의 정신을 꺾거나 죽일 줄 아는 고수.
청진과 청우는 그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남자 앞에서는 그들도 삼대제자만도 못한 하수였다.
그러다 삼대제자, 칠두가 끝내 살기의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흐윽, 흑.”
그 울음소리가 시작이었다.
물놀이하거나 주변에서 쉬고 있던 삼대제자도 따라 울거나 몸을 웅크렸다.
청진은 무사부로서 되돌아가, 크게 심호흡했다.
“다물어라! 뚝 그쳐!”
“……킁.”
“칠두, 너는 아프다고 꾀를 부리더니 이제는 무섭다고 우느냐? 나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크흥, 킁.”
청진의 기백이 가까스로 삼대제자의 공황을 내리눌렀다.
남자보다 강해서가 아니라, 긴 시간 동안 삼대제자와 교감한 결과.
남자가 감탄성을 흘렸다.
“좋군. 아주 좋아. 극의 시작점으로 삼기에 정말로 훌륭한 사내야.”
“닥쳐라!”
“하지만 금기(金氣)가 강해서 말이 안 통하는군. 그래, 내 제의는 어떻게 받아들였나? ……청우라고 했었나?”
청우가 한순간 어깨를 움츠렸다.
그의 모습은 참으로 우스웠다.
삼대제자가 울음을 그치고 두려움을 꾹 참는 와중에, 혼자서 손톱을 깨물거나 팔뚝을 긁었다.
그러나 청진은 청우의 외면을 보지 않았다.
“사제야.”
“……예.”
울음 섞인 대답.
평소라면 꾸짖었을 것이다. 공동파의 도사가 유약하게 굴면 안 된다며 다그치거나 볼을 잡아당겼을 터였다.
하나 청진은 낮은 목소리로 진언(眞言)을 외웠다.
“대도무량(大道無量)이라고 하였다.”
“네?”
“큰 도를 이루는데 무한량의 길이 있다는 것이다.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청진은 씨익 웃었지만, 남자의 살기를 정면에서 받아 내지 못해 낯빛이 점차 창백하게 변하고 있었다.
허나 공동파라.
질리지도 않고 허세를 부릴 줄 알았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란 말이 있다. 내가 드디어 도를 알았는데 말로 풀어낼 재주가 없어, 검으로 흔쾌히 풀어내련다.”
“……사형!”
“저런 사특한 말에 귀 기울이지 마라. 내가 버틸 걸 믿고 떠나서, 장로님과 장문인께 전해.”
“알겠습니다.”
두 도사가 도를 논하며 필사의 의지를 다지는 과정.
감정의 교류, 사형제의 오랜 우애.
남자는 그것을 한 삼대제자의 머리를 매만지며 지켜보았다.
“멋지군.”
“감히 공동파의 제자를 구경거리로 삼았으니, 대가를 치르거라!”
“미안하지만…… 청우, 자네는 제의를 받아들여야 했어.”
남자의 왼눈 아래, 자그마한 점이 반달을 그리는 듯했다.
옷이 젖지도 않으면서 태어날 때 생기는 점의 형태마저 변화하는 자.
태생부터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결의를 다진 청진조차 팔뚝에 소름이 돋을 지경.
그러나 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남자가 입술을 달싹였다.
“나는 청마(靑魔)다.”
“……!!”
단 일수.
청마가 가볍게 휘두른 옷자락에서 반월의 마기가 쇄도했다.
카앙!
청진의 칼이 부서지고 상반신이 잘리려는 순간.
“아, 안 돼!”
두려움을 이겨 낸 청우가 마기를 향해 몸을 내던졌다.
* * *
“저는 공자님처럼 천재가 아닙니다.”
언젠가 주백경은 서문경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서문경이나 성하민처럼 무공을 한눈에 보고 진수를 파악하고, 자기식으로 변화시켜서 익히는 재주는 자신에게 없었다.
그것을 제법 일찍 깨달았다.
‘공자님이 아무리 번천광검결로 변화한 초식을 가르쳐 줘도 내가 이해한 건 절반도 되지 않아.’
절반도 높게 쳐준 셈이다.
상단전의 의념으로 검을 휘두르거나 하단전을 쥐어짜듯 펼치는 연환 속검이라니, 주백경에겐 사술처럼 느껴질 뿐이다.
그래서 우직하게 우물을 팠다.
남들은 우물 밖에 세상이 있다고 믿었으며, 우물 밖으로 벗어나려고 할 때… 주백경은 천주심경과 가전무공을 부지런히 익혔다.
‘나한테 분심조화결처럼 마음을 분리하는 재주는 사치야.’
양손으로 두 가지 무공을 펼치는 것도 타고난 재주가 있어야 했다.
그저 노력하는 힘, 근기(根氣)만으로 이룰 수 없는 경치.
주백경은 그걸 포기하는 대신에 고개를 돌렸다.
근기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서문경일지라도 질렸다는 듯 쳐다보는 곳으로.
‘오행 이상은 버린다. 동서남북, 사상(四象)과 사방(四方)으로도 이룰 수 있는 무학의 끝이 있을 거다.’
대도무량.
주백경은 도문의 가르침을 배우진 못했지만, 천무학관에 있을 시절에 어렴풋이 배웠다.
“무영신투만 하더라도 남들이 손가락질하는 암행술과 잡기로 극변(劇變)에 도달하였으니…… 저만의 길이 있겠지요.”
허나 옹고집을 부리진 않았다.
무영신투에게 배운 무학과 서문세가의 무학을 독파하고 기틀로 삼았다.
그렇게 자신만의 길을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예 근육이 움직이질 않았지만, 삼 년의 시간은 제법 길었다.
따라서.
“무인고천(武刃刳天).”
북적의 단시에 맞아 다친 몸으로도 자신의 무를 능히 펼칠 거리까지 도달하였으니.
반월의 마기를 가른 주백경은 청마와 마주했다.
“네 편지, 잘 받았다.”
“……그 몸으로 벌써?”
청마가 히죽 웃었다.
예상보다 이르게 도착한 선물을 보고 기뻐하듯이.
신비한 무공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