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105화 (103/250)

공동파 (5)

그로부터 사흘 뒤.

뒤늦게 도착한 서문경은 서문패에게 사건의 경과를 들었다.

“지부대인이 둘이나 엮였다고요?”

“그래. 홍가에서 그들을 문초하는데 이 사실이 새지 않게끔 조심하고 있으니까, 하민 아가씨한테 말하지 말고 다물고 있어.”

“저야 늘 입이 무거웠죠.”

“자식, 말 한 번 안 지기는.”

서문패는 피식 웃으며 서문경의 전신을 살폈다.

워낙 천방지축인 조카가 곤륜파에서 가만히 있진 않았을 것 같아서였는데, 과연.

“곤륜파랑 싸웠냐? 몸이 왜 그래?”

“그게……”

서문경은 어색하게 웃으며 곤륜산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곳의 상승 무학을 익혀서 생긴 일과 휴식, 고진성과의 대화.

마지막에는 서문패에게 고진성을 고자질하는 수준의 대화로 이어졌다.

“괜히 저한테 편승하려는 것 같아서 쳐냈습니다.”

“잘했다. 그 정도 심계는 알아서 피했구나.”

“제가 그래도 삼촌과는 다르게 소가주로서 교육을 받았다 이겁니다.”

“새끼, 이제 머리 좀 굵었다는 거냐?”

“예전부터 굵었고 똑똑했죠.”

“이 얄미운 놈 봐라?”

서문패는 서문경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려다가 순간 멈칫했다.

극히 찰나에 펼쳐진 보신경.

서문경이 발끝으로 모래알을 밀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거리가 벌어진 것이다.

“허세가 섞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구만.”

곤륜파의 보신경이 어떤 것이던가?

북적과 싸우면서 가끔 곤륜파의 도사와 함께 싸울 때가 있었다.

그들은 강하고 용맹했으며 괴팍했다. 보신경을 조금 배우고 싶어도 역정을 내는 것이 대다수였다.

한데 조카가 그들의 보신경을 배웠을 줄이야.

왜 고진성이 서문경한테 심통을 부렸는지 알 것 같았다.

“곤륜파는 자기 보신경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서 쉽게 놔주려고 하지 않았을 텐데.”

“아까 제가 한 말 하나도 안 들으셨어요?”

“믿겨야 듣지. 그냥 한 귀로 흘렸었어.”

“삼촌도 진짜 나이값을……”

“뭐 인마?”

서문패가 그렇게 한참 서문경과 투닥거리다가 목소리를 낮췄다.

“네 얼굴도 봤고, 이제 가야겠다.”

“홍가죠?”

“뭐야, 어디서 들었어?”

“대충 눈치 보면 알죠. 제가 곧 온다니까 며칠 기다린 거 아녜요?”

“옛날엔 귀여운 맛이 있었는데 말이야. 언제 이렇게 요망하게 컸지.”

“흐흐.”

서문경은 클클거리며 웃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원래 있어야 할 사람이 없었다.

“주 무사는 어디 갔어요?”

“어제 공동파로 출발했다.”

“……예?”

이게 무슨 소린가?

주인을 기다리지 않고 출발하는 호위무사라니, 주백경이 그런 사람이었나?

서문경은 눈을 동그랗게 뜨곤 서문패를 쳐다보았다.

“농담이죠?”

“내가 뭐 하러 농담하겠냐. 주백경이도 대사부 쯤 되는 놈인데.”

“아니, 그럼 왜 주 무사가 먼저 가요?”

“사실은 말이야.”

서문패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 * *

북적의 유명한 부족장 시르바이를 죽였다고 모든 것이 끝난 건 아니었다.

서문패는 주백경을 주변의 의원에게 던져주고서 부정의 증거를 찾는데 몰두했다.

이 과정에서 홍가와 서문세가의 후발대가 합류했다.

“후딱 끝냅시다.”

홍가에서 온 장군, 홍준광은 예전부터 이런 일이 잦았다는 듯 퉁명스러운 어조로 현령이 살던 관택(官宅)에 성큼성큼 들어갔다.

얼굴이 워낙 험상궂어서 죄다 부수고 다니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의 일처리는 신속하고 세세했다.

“이건 뿔피리 조각이고…… 마유(馬乳:말의 젖)가 있는 걸 봐선 적어도 스무 일은 체류했을 거요.”

“마유와 스무 일에 무슨 연관이 있소?”

“있지. 그놈들끼리 풍습이 있거든. 초월야(初月夜)엔 자기들끼리 초원에 제를 지내니까. 아마 거기서 가져온 마유일 테요.”

북적에게 있어 마유란 생명수.

풍요와 안녕, 행운을 기하기 위한 품목이기도 하다.

홍준광은 이런 설명을 덧붙이며 관택을 여기저기 뒤졌다.

북적과 수십 차례 싸운 서문패마저도 모르는 정보를 머릿속에 쌓은 남자였다.

자연히 신뢰할 수밖에 없다.

“우리끼리 술이나 마실까?”

“아니, 대장군님!”

“뭐 어때. 저기 홍 장군님께서 나보다 훨씬 뛰어나 보이는데.”

서문패는 히죽 웃으며 술병을 흔들었다.

자신의 목줄을 잡아당길 서문이현도 없고 간만에 피도 봤으니 술로 혈기(血氣)를 씻어내자는 의미였다.

그걸 모르는 부관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엔 경우가 아니지 않나!

“북적과 결탁한 관리가 현령 말고도 더 있을지도 모른다고 주 사부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공력으로 술기운을 몰아낼 수 있는 건 알지만, 자중하시지요.”

“끄응…… 니들이 내 형 해라.”

“아이고, 삐지진 마십시오.”

그렇게 서문패가 부관들과 티격태격하는 사이였다.

홍준광이 겉면이 검게 칠해진 편지를 가져왔다.

“여기 밀서가 있는데 대장군이 먼저 읽으시겠습니까?”

“밀서? 그거 좋지. 가장 재밌는 게 연애편지랑 밀담이거든.”

서문패는 히죽 웃으며 홍준광이 건넨 편지를 폈다.

허나 그 내용을 보고선 얼굴에서 웃음을 지웠다.

-그곳에 당도하는 서문세가에게 죽어라. 시르바이가 올 것이다.

죽어도 원망하지 마라. 네가 원하는 바, 이루어졌으니.

시르바이가 죽길 바라거라. 그가 죽으면 내가 움직일 것이다.

“뭐야?”

애초에 현령이 죽는 걸 방치했다는 뜻인가?

서문패의 미간이 좁혀졌다.

최대한 정보를 적게 담아서 누가 봐도 뜻을 가늠할 수 없게끔 만드는 짓거리였다.

“홍 장군,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잠시 읽겠습니다.”

홍준광이 서문패에게 편지를 조심히 받아들고는 눈가를 좁혔다.

그가 보는 것은 글씨뿐만이 아니었다.

편지의 외곽, 햇볕에 비쳐지는 질감과 색.

그 모든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편지를 내려놓았다.

“이 지역을 관리하는 서경부 지부대인부터 먼저 붙잡아야겠습니다.”

“이유는 묻지 않지.”

서문패는 자신이 본능에 의지하는 만큼, 남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는 남자였다.

홍준광의 말에 따라 지부대인을 붙잡아서 호되게 응징하고 내막을 들었다.

바로 옆에 위치한 청강부의 지부대인까지 협력하여, 청해성 구획의 왕으로 임명 받겠다는 역심(逆心).

자연히 치를 떨 수밖에 없었다.

“북적에게 왕으로 임명 받아서야 무슨 의미인가? 한족 전체를 배신하는 행위임을 모르는가?”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부디 가족만은……!”

“이미 늦었다.”

민족을 반역하는 죄를 지으면 본인으로 끝나지 않는다.

서문패는 홍준광에게 처분을 일임하고는 주백경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는 이미 병상(病床)에서 일어난 상태였다.

“몸이 아직 다 낫지 않았을 텐데?”

“공자님한테 무슨 일이 생겼을지 모르잖습니까.”

주백경은 무덤덤한 목소리로 고통을 씹어삼키며 대답했다.

아직 상처가 낫지 않아 격하게 움직이면 딱지가 터질 것 같았지만, 곤륜산에서 생각보다 오래 머무르고 있는 서문경이 걱정되던 참이었다.

청해성에서 벌어진 부정을 해결할 사람이 생겼으니 호위무사로 돌아가야한다.

그 말을 들은 서문패가 입술을 씰룩였다.

“홍준광 그 사람이 와서 참 다행이야. 자네가 이렇게 억지를 부려가며 움직일 이유도 생겼고.”

“마뜩찮게 생각하시는 건 알지만, 그래도 가야겠습니다.”

“자네도 서문세가의 미래야. 어쩌면 몇 년 지나지 않아서 나랑 비슷해질지도 모르는.”

“칭찬 감사합니다.”

주백경은 서문패에게 예를 표하고는 봇짐을 챙겼다.

그렇게 곤륜산으로 떠나려고 할 때였다.

“대, 대장군님! 청마라는 자가 이걸 남기고 갔습니다!”

병사가 아래가 피로 젖은 상자를 든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서문패의 눈가가 자연스럽게 찌푸려졌다.

불과 삼 년 전.

적마의 머리를 담은 상자가 저렇게 피 범벅이지 않았던가?

참으로 악취미였다. 사람의 기분을 잡치게 만드는데 전력을 다하는 놈 같았다.

“열어보아라.”

“예!”

병사가 상자를 여니, 눈을 부릅 뜬 채 죽은 남자의 머리와 피에 젖은 편지가 놓여있었다.

애석하게도 남자는 주백경과 서문패가 아는 사람이었다.

“……홍준광인가. 아까운 사람이 죽었군.”

서문패는 감정을 최대한 꾹 눌러담고서 덤덤하게 말했다.

하지만 주백경의 경험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설마 시르바이가 죽으면 움직인다는 놈이 청마였던 겁니까?”

“조용해라. 병사끼리 소문이 퍼진다.”

“이걸 보고 어찌 참겠습니까? 자기 계획에 방해가 되면 다짜고짜 죽이고 보는 놈들인데!”

치를 떨며 분노한 주백경이 상자 안의 편지를 꺼냈다.

내용은 간략했다.

-공동파에 빨리 도착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 거야.

주백경, 당신이 마음에 들었으니까 혼자 출발해.

주인공이 되게 해주지.

이 무슨 뻔뻔하고 괴상한 편지인가?

대놓고 함정을 파놨다는 소리를 적어놓고서 혼자 출발하라니.

서문패는 고개를 작게 내저었다.

“거기 적힌 대로 움직이면 네가 죽는다. 공동파에 먼저 알리고, 서문경을 기다렸다가 출발해.”

“공동파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어떡합니까?”

“그렇다고 자네를 잃을 순 없어. 우리 가문의 대사부이지 않나.”

서문패의 말은 시르바이와 마주했을 때처럼 냉정했다.

공동파는 어디까지나 우방일 뿐, 목숨을 걸어가며 지킬 필요는 없다고.

주백경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일공자님께선 무림을 두고 마교와 함께 싸울 동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라니요. 마교의 총력이 얼마나 될지 모르는데 공동파가 온전해야 합니다.”

“주의하라는 말만 전해도 그곳에서 알아서하겠지. 몸도 낫지 않은 자네가 가서 무얼 할 수 있겠나?”

“…….”

주백경은 가만히 서서 고민했다.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저는 가겠습니다.”

“주백경!”

“여기 일공자님이 계셨다면 저처럼 했을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주백경은 등을 돌린 채 떠났다.

* * *

“잘했네요.”

“제정신이냐?”

서문패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뻔히 함정일지도 모를 길을 주백경이 갔는데, 그걸 잘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니.

그것도 자기 조카가 그랬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경아, 네가 잘 모르는 모양인데…… 길목에 북적이 기다리고 있으면 벌집이 되는 건 순식간이야. 편지를 보낸 청마 장본인이 있을지도 모르고.”

“압니다.”

서문경은 서문패의 깊은 우려를 이해했다.

당연히 주백경이 어리석게 보일 터였다. 병신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청마의 성격이 어떤지 알았다.

‘주백경이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다면 이미 공동파에 피바람이 불었을 거야.’

주백경의 억지가 오히려 공동파를 살린 셈이다.

서문경은 이 사실을 말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입술을 달싹였다.

“삼촌. 저도 공동파로 출발하겠습니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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