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년 (6)
“천무학관 때처럼 비무로 승부하자. 가전무공으로 상대해주마.”
“……천무학관 때라.”
성하민은 과거를 곱씹었다.
사천성에서 호북성까지, 수많은 위협과 마주했다.
그 과정에서 호신술(護身術)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창안한 것이 성락구검이었다.
정말 가볍게 생각해서 만든 검법이 ‘이질적’이라는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지만.
“나랑 비무했던 사람들은 조금씩 피하더라고. 그런데 경이 너만은 그러지 않았어. 평범하게 대해 줬었지.”
어느 무사부가 말하기를.
-네 검법은 무림의 것과는 다르구나. 애초에 검법이긴 한 것이냐?
그렇게 묻는 목소리에 두려워하거나 거리껴 하는 감정이 실려 있었다.
그때 성하민은 깨달았다.
무림에 와서도 친하게 지낼 사람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노라고, 위협이 계속해서 찾아오겠노라고.
서문경.
그 외에는 이해해 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억지를 부려서라도 사천성까지 따라왔다.
“……미안해. 정말로, 네 가전무공을 헐뜯으려고 한 건 아니었어.”
성하민은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남들처럼 그럴 듯하게 두 손을 모아 올리거나 하는 행동은 몰랐다.
용서를 받아 주지 않는다면 무릎이라도 꿇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서문경의 반응은 달랐다.
“사과는 됐어.”
“뭐?”
“가전무공의 시연이 코앞인데, 가전무공을 눈으로 보고 외웠다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비무로 증명해야지. 안 그래?”
비꼬거나 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저 순수하게 궁금하다는 듯, 호기심을 풀고자 하는 소년이 눈앞에 있었다.
남들처럼 성하민이 이질적이라고, 무공을 훔칠지도 모른다는 거리낌이 없었다.
그것이 기꺼워서 울상이던 표정을 지웠다.
때마침, 휴식을 취하고 있던 주백경이 진검을 건네주었다.
“여기 있습니다.”
“……감사해요, 정말로.”
성하민은 눈가를 소매로 슥 닦고는 검을 쥐었다.
그걸 본 서문경이 뒤늦게 울릴 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화나 짜증이 난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고.”
“아냐. 그냥, 날 멀리할까봐 무서웠던 거야.”
사천성까지 따라온 건 오로지 서문경 때문이었으니까.
그와 거리가 멀어진다면 여기까지 온 이유가 무너지니까.
정말로 다행이다.
성하민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검을 쥐었다.
손잡이를 굳세게 쥔 손으로부터 공력의 실이 실타래처럼 뻗어 나와 칼날을 감쌌다.
성락구검.
천하의 기재가 모인다는 천무학관에서조차 ‘이질적’이란 평가밖에 하지 못한 검법.
서문경은 그녀와 여러 번 비무했다.
성락구검이 어떤 초식으로 이루어진 검인지야 알았다.
‘……문제는 아직도 실체를 모르겠단 말이지.’
서문검법은 직관적이고 패도적이며 매화검법은 변화와 눈을 희롱시키는 환검에 능한 것처럼.
검법은 흔히 창안자가 원하는 바에 따라서 짜인다.
그것이 강호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성락구검은 어떠한가?
저번에는 연검처럼 움직였던 초식이 강고한 검력(劍力)을 떨치거나 제비를 닮은 비검(飛劍)으로 변화하기도 했다.
가장 신묘한 점은 따로 있었다.
‘공력이나 힘에 낭비가 없어.’
똑같은 초식을 변용하는 건 서문경도 가능한 기예였지만, 그때마다 공력을 낭비하지 않고 완벽하게 펼치는 건 다른 문제였다.
그런데 성하민은 아무렇지 않게 해냈다.
비무할 때마다 각기 다른 구파일파의 검법들과 수십 번 비무하는 기분이었다.
과거, 그녀와 비무 중에 대화하길.
-시끄러운 소리가 나든 허공이 갈라지든…… 결국 미숙한 거 아니야?
-무슨 실수?
-힘이 낭비되고 있다는 뜻이잖아. 온전히 검에 담았다면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거나 새지 말아야 해.
듣도 보도 못한 소리였다.
성하민의 주장에 따르자면 진각으로 발을 구르는 것조차 진흙 밟듯 고요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었으니까.
검이 휘둘러졌을 때 나오는 파공성조차 미숙하다고 평하는 그녀의 모습은 참으로 오만하다 여겼었다.
실제로 성락구검과 마주하기 전까지는.
‘오늘은 서문의 검으로 성락구검을 뛰어넘어서.’
무공사전에 수집하고 마리라.
서문경은 땅바닥에서 돌멩이를 주워, 가볍게 위로 던졌다.
“저게 떨어지면 비무 시작이야.”
성하민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서 정면을 주시했다.
돌멩이가 아래로 추락하는 것과 더불어, 서문경의 눈동자가 깊고 어둡게, 그리고 고요하고 차갑게 가라앉아가는 것을.
그와 마주한 자신만이 눈치채고 있었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을 여유는 지금뿐.
그나마도 일순(一瞬).
돌멩이가 지면에 떨어지는 소리가 귓등을 스치고, 순풍이 정면에서 불어왔다.
후웅……!
여름의 더운 바람이 뺨을 간질인다.
그 바람을 타고 온 남자가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고서 눈썹을 깜빡이는 사이에 찾아왔다.
“…….”
서문경이 입술을 달싹였다.
서문검법의 초식명을 말하는 듯했지만, 성하민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칼날에서 휘도는 검기와 예기가 목소리를 잘라 내어 그녀의 귓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믿을 수 있는 건 눈과 감각.
천무학관에서 함께 지내며 겨루었던 기억뿐이라.
……그것만으로 서문경이 펼치는 초식을 유추했다.
‘비검절우구나.’
내리던 비마저 자르는 쾌검.
북적이 타고 다니는 말의 목을 베고, 밀림에 숨죽인 채 기다리고 있던 남만을 베었다는 초식.
빠르기만 따지자면 공동파의 복마검에 뒤지지 않는다.
‘선수를 치고 나가서 힘을 죽여야 해.’
성하민은 가다듬은 호흡을 전신으로 순환했다.
어느 문파의 무공이나 심법을 배우지 않은 그녀였지만, 본능이 그것을 깨닫게 했다.
정기신.
삼단전의 균형은 처음부터 이루어져있었다.
성하민은 그저 손아귀에 있는 것을 다루면 되는 위치였다.
‘화무도간(花武跳澗).’
거리를 순식간에 좁히고서 검을 마주했다.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
“……!”
두 쇳덩이가 부딪쳐 두 검사의 몸뚱이를 찌르르 울렸다.
소리는 몹시 고요했고 불똥마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성하민의 표정에 놀라움이 떠올라 있었다.
“이건, 내가 알던…….”
“알아.”
서문경은 악동처럼 짓궂게 웃었으나, 눈동자의 색은 변함없이 고요한 칠흑이었다.
스그극……!
철검이 다른 검을 비스듬하게 핥듯이 움직였다.
시뻘건 불똥 안에서 묵직한 공력이 움텄다.
‘……이번에는, 이건. 검견불퇴잖아.’
성하민의 어깨가 순간 한쪽으로 기울었다.
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변모한 비검절우와 검견불퇴.
그 안에 그녀가 모르는 미증유의 무학이 녹아 있었다.
“검치라는 사람한테 어쩌다 보니 배웠지.”
서문경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중단전을 쥐어짜듯이 운용하여, 두 호흡을 단번에 가져가는 무학을 가미하였다고.
그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성하민에게 경고했다.
“이제부턴 진심을 다하는 게 좋을 거야.”
“……!”
성하민은 보았다.
서문경의 입가에서 새하얀 입김이 부옇게 올라오는 것을.
자기 혼자 한겨울에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 피부가 서서히 맥동했다.
정확하게는 핏줄과 힘줄.
공력이 파문의 형태로 삼단전과 대맥, 세맥을 힘 있게 두드리는 광경이었다.
“나도 봐주지 않을 테니까.”
서문세가 동공의 비전, 공명결.
서문경은 금강심으로 들뜨려는 흥분을 조절하고 부동경으로 공력의 파문을 버텨 냈다.
주백경처럼 힘에 취해서 스스로 무너지지 않도록.
자신만의 부동한 의지로 하늘에 맞닿으라는 천주심경의 가르침에 따라서.
“……후우.”
가벼운 호흡조차 거인의 숨소리처럼 주변을 울리니.
성하민은 본능적으로 눈을 크게 떴다.
안법으로 기의 흐름을 읽고서 상단전의 심상 세계를 개진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서문경의 일초반식조차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앞으로 무예십팔반, 서문세가에 존재하는 모든 무공…… 모두 어울려 줘야겠어.”
서문경은 클클 웃었다.
“오늘은 똑바로 걸어 나갈 수 없을 거야.”
* * *
소년과 소녀가 검을 부딪친 횟수가 어언 수백 번.
체격이 건장한 어른도 떨어져 나갈 싸움이었건만, 저 둘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고요하게 싸웠다.
그그극…….
두 쇳덩어리가 긁히는 잡음.
발끝으로 모래알을 스치는 찰음.
황소를 닮은 공력과 실타래처럼 짜인 공력이 부딪치며 생기는 기파.
그 외에는 어떠한 소음도 나지 않았다.
주백경은 그것을 가만히 앉아서 바라보았다.
동경과 질투, 놀라움이나 존경 같은 걸 품진 않았다.
그저 시야에 담았다.
언젠가 올라갈 수 있는 정취임을 알기에, 저 둘의 투로와 검로를 눈에 새겼다.
그러다가 가끔씩.
“주 무사!”
서문경이 부르는 소리에 주백경은 수련장 구석에 놓여 있는 십팔반 병기 중 하나를 던졌다.
이번에는 봉(棒).
통짜 쇠로 만들어져, 마음대로 휘두르기 어려울 정도의 무게였다.
하지만 서문경은 아무렇지 않게 휘둘렀다.
오히려 이 정도의 무게가 손아귀에 착 감긴다는 듯 능숙하게 휘둘렀다.
“창, 아니, 광대함인가?”
주백경은 무심코 떠오른 것을 중얼거리며 서문경이 펼치는 봉법을 지켜보았다.
그가 자평하기를, 창궁무애검법과 무연창의 장점을 떼어다가 가전무공에 덧붙였다나?
그 무게가 불어오는 바람에서 느껴졌다.
후우웅……!
여름의 순풍이 한겨울처럼 느껴질 정도로 묵직하고 차갑다.
저 봉과 마주하면 고수마저도 아찔해할 정도였지만, 성하민은 여전히 침착했다.
외려 즐겁다는 듯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일소낙생.”
성락구검의 상승 초식.
기검과 철검이 동시에 봉의 몸통과 서문경의 손목을 점하니, 상성이 좋지 않았다.
주백경은 그걸 보고서 오른손을 뻗었다.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서문경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것 같았다.
“공자님!”
편곤(鞭棍).
자편(子鞭)과 모편(母鞭)으로 나뉜 두 쇠도리깨와 그 사이를 잇는 쇠줄.
서문경은 씩 웃고서 반보 물러서고서 오른발을 크게 휘돌렸다.
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편곤의 쇠줄이 장딴지에 휘감겼다.
그 와중에 묵직한 쇠도리깨가 흙바닥을 후려치니.
순식간에 흙먼지가 부옇게 올라왔다.
“……윽.”
안법에 집중하던 성하민은 인상을 찌푸렸다.
갑자기 이게 무슨 시정잡배 짓인가?
짜증이 불쑥 올라왔지만, 이게 서문경의 방식이었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사내이니 마도 고수와의 싸움도 이런 방식으로 생존했을 터였다.
그렇다면 자신도 배워야 한다고.
그리 생각했지만 입술이 제멋대로 열렸다.
“……어디야?”
“말하면 바보지.”
“거기구나!”
성하민은 곧바로 검을 크게 휘둘렀다.
후웅!
그녀답지 않게 기파를 한가득 실은 일초였다.
거대한 파공성이 담긴 검기가 흙먼지를 가르고 옆으로 퍼졌다.
……하나 그뿐이었다.
서문경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그 대신에, 쇠줄이 끊어진 편곤이 날아오고 있을 뿐이다.
“……큿!”
목소리를 내는 것과 동시에 편곤을 내던진 걸까?
검기가 중간의 쇠줄을 자르는 것까지 계산해서?
성하민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너무 서문경을 쉽게 생각해서, 목소리를 내고 약점을 드러냈다.
‘내가, 졌구나.’
스걱!
검을 휘둘러 자편과 모편을 동시에 잘라 냈지만, 등 뒤에 익숙한 기척이 자리하고 있었다.
“후우, 역시 십팔반무예를 모두 쓴다는 건 쉽지 않단 말이지.”
천무신동 서문경.
아니, 성하민이 생각하기에는 천무신동이라는 별호로 담을 수 없었다.
‘나도 이상하지만, 경이는 더 이상해. 저렇게 많은 무기를 모두 다룰 순 없어…….’
흙먼지가 완전히 가라앉은 수련장.
그곳에는 온갖 무기들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그 모두가 서문경이 가전무공을 새롭게 덧붙이거나 고쳤다는 증거이며.
처음으로 성락구검이 완벽하게 패배했다는 실감을 주었다.
[성락검법, 수집 완료]
서문경이 쥔 무공사전에 글자 한 줄이 새겨졌다.
신비한 무공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