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년 (3)
성하민을 데려온 게 이렇게 놀림거리가 될 줄이야.
서문이현에 이어서 동생인 서문휘한테 저런 말을 들으니 헛기침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직접 들은 성하민의 기분은 어떻겠는가?
“하, 아, 아니…… 으…….”
성하민의 얼굴이 새빨갛게 익었다.
서문경이야 항상 군문의 자제로서 빨리 혼약하여 자식을 낳으라고 닦달 받아 왔지만, 그녀는 아니었으니까.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가질 않을 터였다.
“날 데려온 게 그런 의미였던 거야?”
“당연히 농담이지! 그것보다……”
서문경이 다급히 화제를 돌리려는 와중.
중년의 여자가 세 사람 사이로 끼어들었다.
“어머, 경이가 여기까지 온 건 오랜만이네. 인연인데 집안에서 이야기나 하고 가지 않겠니?”
“…….”
서문경은 반사적으로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은조영(檭祚榮).
자신의 의붓어머니이자 서문휘의 어머니.
마주 웃을 수 있을 만큼 편하지 않지만, 나쁘지도 않은 관계였다.
하지만 그녀에게 서문휘 못지않은 후회를 품은 것도 사실이었다.
죽기 전까지 서문휘와 거리를 좁히지 못했듯, 은조영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내가 먼저 다가갔다면 달랐을까?’
어려진 지금이라면 관계를 다르게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몰라.
언젠가 서문세가로 돌아가면 제대로 얼굴을 맞대고서 대화할 자리를 마련하자고, 그렇게 정리했을 터였다.
‘……단번에 말이 안 나오네.’
은조영이 먼저 다가왔음에도 오랫동안 거리를 두었던 마음을 여는 게 쉽지 않았으니.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성하민이 손목을 잡았다.
“가자!”
“어, 응.”
서문경의 몸이 앞으로 이끌렸다.
누군가에게 손목을 잡힌 채 끌어당겨지는 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결단이 안 서서 망설이는 동안 성하민의 도움을 받은 셈이었다.
‘이런 식으로 도울 줄이야.’
성하민이 없었다면 우물쭈물하다가 또다시 거리감을 두게 될 게 뻔하지 않았나.
싸우는 거라면 능히 해낼 수 있었지만, 이런 건 여전히 불편하고 어색했다.
가족과 대화한 시간보다 마인과 싸운 세월이 길었으니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첫 대화나 단어를 숙고하는 와중에 바깥채의 검푸른 색이 시야에 들어왔다.
은조영이 저 색감을 좋아하여 바깥채를 세울 때 한눈에 들어오도록 지었다고 들었다.
성년이 된 서문휘의 복식 또한 검거나 푸르뎅뎅했다.
그 탓에 무감정한 눈동자나 무심한 표정이 더더욱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이번 기회에 풀 수 있을까?’
죽을 때까지 좁히지 못했던 거리감.
그 거리가 오늘따라 무척이나 가까웠다.
서문경은 성하민의 뒤를 따라 바깥채로 걸어갔다.
* * *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색함을 지울 수 없었다.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거나 은조영과 서문휘의 안색을 살폈다.
너무 긴 시간 동안 쌓인 거리였다.
‘어머니나 동생에겐 겨우 몇 년이겠지만, 나한텐 몇 십 년이라.’
저 둘과 웃으면서 나눈 대화가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두 번째 삶을 살면서 처음으로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인지라 당황스러웠다.
서문경이 그렇게 한참을 헤매고 있을 때였다.
“성 소저, 휘아랑 놀아 주시겠어요?”
차향을 즐기던 은조영이 낮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성하민에게 부탁했다.
완곡하지만 자리를 잠시 비켜 달라는 뜻이었다.
“아, 네. 아직 집안 내부를 소개 받던 도중이었거든요.”
성하민이 서문휘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륵, 탁.
문이 닫히고 걸음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은조영과 서문경은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입술을 떼기까지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기에.
어느덧 들리지 않을 정도가 되자, 은조영이 먼저 입술을 달싹였다.
“경아, 사과를 받아 줄 수 있겠니?”
그녀가 찻잔을 내려놓고서 서문경의 용서를 구했다.
목소리가 떨린다거나 눈빛이 흔들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서문경은 그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다가 물었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확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건.”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왼쪽 천장을 바라보던 은조영이 입술을 우물거렸다.
떠오른 말을 주무르는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라, 서문경은 잠자코 기다렸다.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나는 말이지. 너와 네 어머니가 부러웠단다.”
은조영의 이야기가 긴 시간 동안 이어졌다.
서문경은 그 사이에 짧게 대답하거나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에 누군가에게 듣기로, 행복한 집안은 대부분 비슷하고 불행한 이유는 제각기 다르다고 하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휘가 걱정되셨군요. 제가 소가주가 되고, 가주가 되면 벌어질지도 모를 일들 때문에.”
“미안하다, 미안해.”
“…….”
서문경은 은조영의 이야기를 곱씹었다.
어릴 적부터 느꼈던 거리감과 의붓어머니를 어머니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감정.
그 이유가 모성(母性)에 있었다.
서문휘가 줄곧 자신을 싫어했던 이유 또한 모성에서 멀지 않았다.
‘……전생의 휘는 내가 어머니를 멀리 두면서 차별했다고 여겼겠지. 아마.’
모성애가 끔찍한 오해를 낳은 셈이니.
서문경은 은조영을 복잡한 눈으로 보았다.
의붓어머니로서 자신에게 정을 주지 않았다.
직접 낳아 기른 서문휘가 자리를 잡길 바라서 줄곧 멀리했단 소리였다.
이번 생에도 마찬가지였다.
서문의 망나니란 소문이 가문 내에서 왜 파다했나 했더니, 은조영의 행동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검은 실타래가 머릿속에 엉켜 있는 것 같았다.
전생에서부터 쌓였던 악연이나 운명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지만, 쉽지 않았다.
용서하란 뜻이었으니까.
어린 나이였던 자신을 멀리하고 서문휘만을 아꼈던 걸, 소가주 자리에서 내려가고 강호와 깊게 얽힌 시점에서 밝힌 은조영을.
“……왜 지금입니까?”
서문경이 낮은 목소리로 물으니, 은조영이 시선을 피했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저한테 이해를 바라시는군요.”
“하지만, 네 동생을 위해서였단다. 네가 그리 생각하지 않아도…… 가문 내에서 홀대할지도 몰라서, 무서웠어.”
은조영의 결의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껍데기를 벗은 본심이 목소리에서 흘러나왔다.
두려움과 미안함, 슬픔 같은 것이 드러났다.
여태껏 보지 못한 은조영의 진심을 대면한 서문경은 아무런 말도 잇지 못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저런 일이 벌어졌었을까?’
전생에선 서문휘와 친하지 않아서, 은조영이 품은 걱정이 미래에 벌어졌을지 몰랐다.
그러나 은조영의 말이 달갑게 느껴지진 않았다.
‘내가 정말로 열네 살 아이였다면 화를 내거나 이 자리에서 박차고 나갔겠지. 하지만…….’
서문경은 이미 일생을 살았다.
여기서 불평을 늘어놓고 화를 낸다면 당장의 기분은 풀릴지도 모른다.
답답함이 가실 터였다.
하지만 그건 전생의 반복일 뿐이었다.
과거의 후회를 계속해서 이어 나가기는 싫었다.
누군가는 이 반복을 끊어야 했다.
그래서.
“앞으론 저도 아껴 주세요. 물론 오늘 함께 온 하민이도, 적응하기 어려워 할 테니까요.”
서문경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완전히 엉킨 검은색 실타래를 푸는 손짓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언제부터 꼬였을지도 모르는 과거라서, 이게 잘하는 방법인지 몰랐다.
그래도 이게 더 나은 방향이라는 건 알았다.
은조영과 서문휘.
전생에선 죽기 전까지도 화해하지도 이해할 노력조차 하지 않았던 둘과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거면 된 거죠?”
“……경아.”
은조영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두려워하던 눈빛이 안도감으로 바뀌고, 배 다른 아이에게 이해받고 용서받았다는 것이 부끄럽고 고마워서 울음을 참지 못했다.
바깥채와 안채가 멀어서 다행이었다.
이 울음소리가 바깥에 흐르진 않을 테니까.
* * *
언제부터 꼬였을지도 모를 악연의 실타래를 풀고서 보름.
서문경은 이제 편하게 서문휘와 은조영을 대했다.
낮이고 밤이고 간식거리나 과육을 내오는 통에 귀찮게 느껴질 정도.
그 와중에 은조영이 농담을 던지곤 했다.
“하민이를 많이 챙기던데…… 혹시?”
“어머니도 그만하세요. 많이 들었습니다.”
“……으응.”
서문경은 시무룩해하는 은조영을 뒤로 하고 병영으로 향했다.
그곳에 서문세가 내에서 가장 괴팍한 남자가 있었다.
“어, 조카! 여긴 무슨 일이야?”
타칭 한족의 무신, 서문패.
그가 해맑은 웃음을 드러낸 채 한 팔을 휘둘렀다.
그 모습을 보면 마인과 관련된 무인을 고문하던 게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라.
서문경은 왠지 껄끄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삼촌은 여기서 뭐 하십니까?”
“얼씨구, 찾아온 놈이 용무를 말해야지. 이게 무슨 예의야?”
“가전무공을 시연하려고 합니다.”
“……시연?”
서문패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가전무공의 시연.
그것은 즉 서문세가의 무공에서 더하거나 뺄 발전 가능성을 모두에게 보이겠다는 뜻이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네가 그러니까 나도 궁금한데?”
서문패는 이미 강호에서 서문경의 무공을 보았다.
어린 나이에서 오는 허세나 오만이 아니라, 서문경의 경지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으니까.
검법이나 창법을 개량했을지도 모른다.
서문패는 기대감을 안고서 말을 덧붙였다.
“시연하기 전에 나한테 먼저 보여 주는 건 안 되냐?”
“그러면 가문의 율법에 어긋나지 않습니까?”
“뭐 어때. 가족인데.”
“……어차피 며칠 동안 주 무사와 비무하면서 다듬어야 합니다. 삼촌에게 보여 주긴 일러요.”
서문경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전생의 경지, 경험과 무공사전에 수집한 무공.
그 모든 것으로 가전무공을 바꿀 작정이었다.
보름의 준비는 그저 고민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결정을 내리고서 서문패를 찾아왔으니.
“이제 사흘이면 됩니다.”
“사흘 뒤에 하겠다?”
“예.”
“검법부터 창법? 아니면 다른 무공까지?”
“일단은 검법과 창법.”
여기까지는 예상한 바라는 듯, 서문패가 빙긋 웃었다.
하지만 뒤이어진 말에 정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동공. 이건 앞으로 서문세가 전체가 새로이 배워야 할 수준일 겁니다.”
“……뭐?”
동공을 바꾼다는 건 기둥뿌리를 고치겠다는 뜻.
서문패는 농담하지 말라고 외치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하지만 서문경의 말은 전과 같았다.
“가전무공 전체를 거의 뜯어고칠 겁니다. 삼촌도 참석해주십시오. 제가 시연한 뒤에 도와주셔야 할 테니까요.”
시연을 보고 어떤 놈이 딴죽을 걸지 모르기에.
서문세가의 최고 고수가 나서서 도와줘야 할 상황이 올지 모른다.
그 자신감을 본 서문패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 허허, 허허……!”
강호에서 벌인 일보다 수십 배는 큰 충격이 서문세가를 덮칠지도 모르겠다.
서문패는 한참이나 크게 웃어젖혔다.
신비한 무공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