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맹 (7)
“예? 무림맹이요?”
주백경은 깜짝 놀라서 반문했다.
천무학관과 동정호 부두로도 모자라 무림의 중추까지 뒤집어엎을 생각인가?
‘관과 군부의 힘을 이용해서 무림을 뜯어고칠 생각이라면, 따라야겠지.’
잠시 고민하는 사이에 서문경이 왜 망설이냐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망상을 하는 거야?”
“그야. 공자님께서 가는 곳마다 난리가 나니까, 이번에도 똑같은 건 줄 알았습니다.”
뜬금없이 옥화산에 오르면 보물이 있고.
중경에서는 절대 만나선 안 될 고수, 척안룡과 마주쳤다.
보통 사고뭉치가 아니다.
서문경을 따라다니면 목숨이 두세 개여도 모자라다.
어린 주군을 묵묵히 따르는 주백경이지만, 사소한 불만이나 억하심정은 토로할 수 있지 않나.
“……그렇긴 하네.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어.”
서문경은 그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다.
하기야, 평생에 마주칠 일 없는 절대고수를 무려 셋이나 마주쳤다.
검치와 척안룡, 무영신투까지.
두 번째 삶을 살고 있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시작했다지만 우연이 제법 겹쳤다.
이에 대해 주백경은 할 말이 많았다.
“설마 공자님께선 무영신이 무영신투인 걸 알았습니까?”
“몰랐지!”
“제가 도둑한테 암행술을 배웠다니……. 군부의 무사로서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무영신투가 들었다면 곧장 매를 들었을 텐데.
서문경은 그가 이곳에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으……래도 무공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그건 맞습니다.”
벽호공곽 변용술, 무영보 모두 무공에 접목할 가능성이 있었다.
배우면서 늘어난 손재주나 기교까지도 검을 정교하게 다루는 요소가 되었다.
하지만 무영신투 덕분이라고 하니, 그를 의적(義賊)으로 떠받드는 양민과 비슷한 꼴이 된 것 같아서.
주백경은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맞지만, 어찌 됐건 도둑 아닙니까? 다음에 만나면 밧줄이라도 챙겨 가서 추포할 겁니다.”
“잡혀 준대? 지금도 당당하게 천무학관의 무사부로 있을걸?”
서문경은 피식 웃었다.
무영신투가 강호에서 살며 쌓은 업이나 악연이야 당연히 많다.
지부대인이나 현령과 얼굴을 붉힌 일도 있었다.
그리고 그는 몇 번이고 탈출했다.
천하에서 천라지망이라고 하는 것들 모두 무영신투의 발아래에서 돌파당했다.
‘……그런 사람을 끝내 붙잡아서 죽인 마교도 참 대단하긴 하네.’
적의 집념과 힘을 오판해서는 안 된다.
어쩌면 무림맹이 적진 한복판일지도 모르기에.
생각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끔, 마교를 더더욱 냉정하게 여겼다.
곁에 두는 주백경 또한 마찬가지로 견지하여야 한다.
“네가 도둑으로 생각해서 거리를 두는 건 상관없지만, 지금은 마교와 함께 싸울 아군이야. 오판하지 않길 바라서 하는 말이야.”
“……예.”
그저 농담이었는데, 주백경이 잠시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금세 고쳤다.
“그나저나 무림맹은 언제 갑니까?”
“당장.”
“공자님이나 저나 상처가 심하지 않습니까?”
“아, 그거 말이지.”
서문경은 남궁명에게 받은 약을 주백경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천 속에서 찰랑이는 소리와 함께 콧등을 스치는 약향.
조금 역하긴 해도 군인이라면 잘 알 것이다.
“아플수록 약효가 좋은 건 알고 있겠지?”
“……으윽.”
“마차로 이동하는 도중에 발라 주마. 다른 사람도 기다리니까 얼른 움직여.”
“누굽니까?”
“남궁 소가주와 한족의 무신.”
“……엑.”
저게 무슨 조합인가?
남궁명과 서문패와 한데 묶여서 무림맹에 가게 될 줄이야.
주백경은 설명이 필요하다는 듯 서문경을 주시했다.
그 시선을 눈치챈 서문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면서 설명하지. 혹여나 말하는데, 째려보거나 해서 티 내지마.”
* * *
덜컹, 덜컹.
마차가 관도를 질주했다.
마차의 바퀴가 돌이나 자갈에 부딪쳐, 엉덩이가 위아래로 튀어 오르거나 작은 소음이 귀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그러나 무인에게는 문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말을 타는 것이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침묵을 부른 사람은 마차 같은 것이 아니라.
“……제가 대체 무슨 잘못을 한 겁니까?”
줄곧 남궁명을 노려보는 한 쌍의 눈.
주백경이 마차 구석에 앉아서 남궁 소가주를 흘겨보고 있었다.
자기는 아닌 척하겠지만, 곁에서 보는 사람 모두 알았다.
“그쯤 하지?”
서문패가 웃음기를 빼고 타박해도 주백경의 충심은 쇠하지 않았다.
도리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아이라지만 남궁 소가주입니다. 자기 가문에 쪼르르 달려가서 이르지 않았겠습니까?”
“티 내지 말랬잖아.”
무림에서 지낸 지 석 달이 가까워지는데도, 아직도!
서문경은 진심으로 머리가 아파 왔다.
“그 아이가 널 치료할 약을 가져다 줬고, 마차도 남궁세가 소유인데 무림맹에 도착할 때까지 불편하게 만들 생각이야?”
“그래도…….”
주백경이 무언가 항변하려는 찰나에 남궁명이 입술을 달싹였다.
“오해입니다. 저는 본가에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믿겠네.”
말은 저렇게 해도 남궁명을 향한 눈초리가 여전히 따갑다.
서문경은 이 좁은 마차에 정상인이 자신뿐이라는 게 참으로 통탄스러웠다.
‘철없는 삼촌에, 절대고수한테 상식이나 인의를 들먹이는 무사에, 남궁 소가주까지.’
무림맹에 가 봐야 혼란만 더할 군상이 아닌가?
여기서 서문패라도 떨어뜨려야 하지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이에 마부석에서 헛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엇, 어엇!”
“……충격에 주의해라!”
온갖 위험에 잔뼈가 굵은 서문패가 일행에게 경고했다.
서문경이야 자연스럽게 옆에 있던 남궁명을 감쌌다.
아무리 고강하다고 한들 경험이 일천하니, 쉬이 반응하지 못하리란 판단과 한 가지 계산이 있었다.
‘여기서 다쳤다간 서문세가의 무인 세 명이 작당했단 소리밖에 더 들어?’
순수한 선의를 품을 수 없게 된 것이 조금은 아쉽지만.
쩌적, 쿵!
마차가 옆으로 굴렀음에도 누구 하나 다치지 않았다.
마부의 생존 여부는 아직 모르지만, 기감을 돋워서 주변을 경계했다.
“……누가 있다.”
남궁명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에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남궁세가의 표식을 보고도 마차를 습격한 자들이라.
분명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천하를 공포에 떨게 한 마교일지도 모른다.
그 예상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서문경은 마차의 문을 발로 찼다.
쿠웅!
문이 위로 크게 튀어 오르자 쇠침이 날아왔다.
서문경의 눈가가 좁혀졌다.
‘독침인가?’
경계심이 한층 높아지려는 찰나에 서문패가 먼저 움직였다.
후우.
한줌의 한숨이 마차 안쪽을 누볐다.
서문패의 도약이 소리보다 빨랐다는 뜻이었다.
“어이, 쓰레기들아!”
서문경이 찼던 문과 서문패가 같은 높이에 있었다.
눈을 의심할 정도로 기묘한 풍경.
마차를 습격한 자들마저 굳어 버린 찰나에 서문패가 주먹을 휘둘렀다.
쩌적, 콰아앙!
살가죽과 나무가 부딪친 게 아니라 포음(砲音)에 가깝다.
마차의 문이 마치 대포처럼 날아가지만, 포물선을 그리지도 않았다.
‘저게 직선으로 날아간다고? 얼마나 강한 거야?’
당연한 상식을 부수는 무위(武威).
무위를 증명하는 압도적인 힘.
서문패가 후려친 문은 쇠침이 날아온 곳으로 향했다.
……무수한 나무 파편과 함께.
“크으윽!”
“아악! 팔이!”
뼈가 부러지고 피륙이 찢어지는 소리와 고통스러운 비명.
피 냄새가 서문경의 인중을 스쳤다.
단 한 번의 주먹질에 멀리서 마차를 습격한 자들을 전멸시킨 듯했다.
그 와중에 서문패가 마부와 마차의 상태를 확인했다.
“줄을 팽팽하게 당겨서 말을 넘어트렸나…… 이거 아찔하구만. 마부, 괜찮은가?”
“괘, 괜찮습니다!”
서문패의 힘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참이다.
마부는 남궁세가의 무인이라는 자존심을 지키지 못하고 고개를 수그렸다.
“말의 다리 상태를 보고, 바퀴를 교체해서 출발하겠습니다.”
“군마(軍馬)라면 줄을 피했을 텐데, 그건 아쉽군.”
말은 다리가 쉽게 부러지는 동물이다.
따라서 서문세가는 말이 넘어지지 않게, 무엇에도 겁먹지 않게 교육하지만 무림에서 그런 건 바랄 수 없다.
서문패는 쯧 하고 혀를 찼다.
“마차를 끌다가 넘어졌으니 다리가 성치 않을 거다. 아쉽지만 여기서 두고 갈 수밖에 없어.”
“이렇게 시간을 끌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서문경의 말에 서문패가 불쾌하다는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러겠지. 정면으로 싸울 자신이 없으니까, 감히 관도에서 장난질을 쳐서…… 쯧! 겁쟁이 놈들!”
“한 시진이면 갈 거리가 하루로 늘어났네요.”
“정확하다. 정확해서 문제야.”
저벅, 저벅.
서문패는 마차를 습격한 흑의인들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입술을 달싹였다.
“우리나 남궁 소가주가 무림맹에 도착하면 안 될 일이 있어서, 이딴 짓을 벌였다는 뜻이니까.”
“……끄으윽.”
“독단으로 자결할 생각이렷다?”
그렇게 둘 순 없다며, 서문패가 주먹을 재차 휘둘렀다.
쩌억!
멀리서 날린 권풍으로 흑의인의 턱을 하나하나 분쇄했다.
“묻고 싶은 게 많아. 근데 그 전에, 자기 멋대로 뒈질 자유는 다 뺏어 놓고 시작해 볼까?”
뿌득, 뿌드득.
팔과 다리를 전부 골절시키고서 하단전마저 손수 부순다.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았음에도 서문경을 제외한 모두의 등골이 서늘해지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서문패는 경쾌하게 웃었다.
“턱을 부서져서 대화가 어려울 테니까. 대답은 눈을 깜빡이는 걸로 대신하지.”
“느구, 마대로…….”
“대답하기 싫어?”
서문패의 눈가가 둥글게 휘었다.
“제발 질문해 달라고 울부짖게 해 줄게.”
그렇게 말하는 서문패는 악귀에 가까웠다.
* * *
“전부터 말이야. 적마 그놈이 무림인이나 관부를 자기 아랫것처럼 생각하는 게 병신처럼 보였어.”
심산유곡.
한낮에도 빛이 비치지 않는 어두운 계곡 사이에서 청마는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 등 뒤에 있는 남자에게 말을 붙였다.
“과거엔 비루하게 살았던 놈이 지금은 분에 넘치도록 잘 살고 있잖아? 그걸 깨끗하게 잊은 것 같아서. 한 번쯤 된통 당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지.”
“…….”
“게다가 서문경 그놈. 마교가 하는 짓마다 이상하게 끼어들어서 훼방을 놓는데…… 이번 일은 참아 주면 좋겠다 싶거든.”
적마에게 큰 굴욕을 주고서 화려하게 구출하는 그림.
그것을 위해서 청마는 많은 노력을 들였다.
무림맹에서 은둔하던 신분까지 버렸다.
“그렇게 적마를 내 손아귀에서 굴릴 수 있다면 이득이니까.”
“그걸 왜 저한테 말씀하시는 겁니까?”
“나 때문에 부하를 잃게 됐잖아.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끔찍하게 죽겠지.”
청마는 남자에게 미안하다고 중얼거렸다.
물론, 진심은 아니었다.
기르는 동물에게 밥을 제때 주지 않아서 미안하다는 감정.
딱 그 정도.
“적마를 이번 기회에 훈육하면, 네 아래로 둬 줄까?”
“그자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렇게 만들어야지.”
청마는 작게 휘파람을 불며 낚싯대를 들었다.
청마의 낚싯대에는 바늘이 없었다.
계곡 사이의 얕은 물에 사는 생선이라고는 피라미뿐이었다.
그래도 이곳에서 낚시를 즐기는 까닭이 있었다.
“고사(古事)에 강상이라는 자가 이렇게 한량처럼 놀다가, 호기심을 가진 왕자에게 등용되는 일이 있었다고 해. 학식이 높은 너도 알고 있겠지.”
“예. 태공망이나 강태공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하지요.”
“한때 그런 고사를 동경했거든. 머리 좋은 남자가, 전설에나 나올 듯한 사기로 환심을 사는 이야기.”
청마가 엷게 웃었다.
그 모습은 언뜻 보면 평범한 청년처럼 보였다.
하지만 남자는 청마의 외견에 속지 않았다.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어둠이 있다는 걸 알기에 신중하게 단어를 골랐다.
“검치는 어찌 하면 되겠습니까?”
“흐음. 그놈?”
청마는 기괴한 웃음을 드러내던 검치를 떠올렸다.
참으로 끈질긴 자여서 마음에 들었다.
적마가 그의 반이라도 닮았으면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큰 대국에 설 자격조차 없는 놈이야. 제자리로 돌아가게 둬.”
휘익, 탁.
청마는 낚싯대를 얕은 물가에 휘둘렀다.
신비한 무공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