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56화 (54/250)

교착 (6)

과거에는.

그러니까…… 관존으로 불렸던 전생에는 이러지 않았다.

‘결국 전장에 발 한번 담가 보지 않은 자들끼리, 실전성 없는 무예를 뽐내는 곳 아닌가?’

그리 생각했었다.

군부를 대표하여 무림과 손을 잡았지만, 내심 얕잡아 보았다.

특히 무당파와 처음 교류하였을 때 웃음을 참아야 했다.

‘마공은커녕 본가의 가전무공조차 흘려내지 못하는데 어찌 태극의 이치를 논하지?’

그 첫인상은 아주 지독하게 남았다.

과거에 ‘주백경’이라는 호위무사가 강호의 일에 휘말려 죽은 것이 증오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십수 년.

오걸과 십대고수라고 불렸던 고수가 제 한 몸을 희생하면서 마교와 싸웠지만, 끝내 패배하지 않았던가?

아픔을 겪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내 아집과 오만이 눈을 흐렸어.’

뒤늦게 서문이현의 비밀 창고를 찾았지만, 천마에게 발각 당하여 사망했다.

그 후회를 풀기 위한 두 번째 삶.

열네 살 소년은 소가주의 자리를 내려놓고서 천무학관에 입관하였으니.

“……하하.”

서문경은 엷게 웃으며 남궁명의 칼을 받아냈다.

어제 생긴 내상과 자상 때문에 몸 곳곳이 아파 왔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무공사전을 쥐면서 생긴 오성(悟性)과 본래 가지고 있던 명민함으로 맞섰다.

카캉! 까드득……!

두 쇠가 부딪쳐 생긴 불똥, 적선(赤線)이 하늘을 물들였다.

뜨겁게 달구어진 허공에 두 무인의 숨이 뒤섞인다.

몇 번이고, 쉼 없이.

각자 본가에서 배운 가전무공으로 우열을 가리려는 싸움이 이어져서.

“……뭐가 즐겁다는 거냐! 이제 좀! 그만!”

남궁명의 목소리에 짜증과 걱정이 뒤섞였다.

그가 자신의 손목을 보고 있었다.

붕대를 완전히 적신 핏물이 뚝뚝 떨어져 비무장 틈새에 고였다.

서문경은 그것이 기꺼워서 피식 웃었다.

“뭐 어때?”

중상의 몸으로 비무를 억지로 이어간다.

이 행동 자체가 명가의 무인에게 미련하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서문경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기회였다.

[남궁명(南宮明) – 14세]

[명가의 자제로서 고수가 될 재지(才智)를 지녔다. 정진한다면 창궁의 무예를 펼칠 자격을 갖추리라.]

[보유 무공 :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 대연신공(大衍神功), 천뢰기(天雷氣), 천풍신법(天風身法)]

명가의 무공을 수집한다.

그 자체로 부상을 각오할 가치가 있었다.

무공사전으로 수집한 무공에는 명가가 쌓은 수십, 수백 년의 역사까지 깃들어 있었다.

서문이현의 비밀 창고에 있었던 비급처럼 단순히 글귀와 그림만 적혀 있는 것이 아니라.

‘창궁무애검법의 진수(眞髓)까지 얻을 수 있다면……!’

이깟 아픔이야 감내할 수 있다.

까드득!

서문경은 남궁명과의 공방을 이어 가며 창궁무애검법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무공사전을 통해 얻은 오성과 경험.

전생에서부터 쌓은 관록과 눈썰미.

그 모든 것을 이용했다.

두 검을 부딪치면서 남궁명의 사소한 떨림과 움직임마저 눈에 담았다.

지금은 미숙하나, 언젠가 대성할 그릇이라면.

그 재능마저 담아야 한다.

남궁세가의 고수로서 장성하기 위한 수련의 결과물일 테니까.

그렇게 십수 초를 나누다가.

“어째서……?”

억눌린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누가 말했는지야 당연하다.

눈앞의 남궁명.

그가 어딘가 분하다는 듯이 명확한 적의를 담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서?

그 의문은 몇 초식을 교환하고 난 뒤 해결되었다.

“어째서, 소가주 자리를 포기한 망나니가…… 뭐가 그리 즐겁다는 듯이…….”

여전히 억눌린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남궁명의 눈동자에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었다.

열패감이나 자존심 혹은 분함 따위가.

어느 쪽이든 반길 수 없었다.

어린아이답지 않게, 벌써 소가주란 자리에 막중한 무게감을 느끼고 있단 뜻이었다.

소가주의 자리에서 내려간 ‘서문경’이라는 동기를 보고, 적어도 저 녀석보다 잘나야 한다고 여기면서.

‘평소에 망나니라고 얕잡아 보고 있었던 거 아냐? 이 자식.’

저도 모르게 쓰게 웃었다.

제아무리 재능 있는 아이라고 한들 두 번째 삶을 사는 자신에게 비할 순 없으니까.

“즐거웠어, 정말.”

서문경은 남궁명의 검을 비스듬하게 흘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 * *

‘소문대로 후기지수로 논할 수준이 아니야.’

무사부 정현은 두 소년 검객이 자아내는 검무를 보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검무로 만들었다.

압도적인 솜씨로 비무를 주도하는 아이, 서문경.

저 아이가 전신으로 기교를 부린다.

시시각각, 남궁명이 행하고자 하는 검의 방향을 기울이거나 비스듬히 쳐 낸다.

‘상대가 모든 기량을 펼칠 수 있게 배려하는 건가.’

정작 남궁명은 배려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 두 눈에 핏발이 섰다.

평소 남궁세가의 귀공자라느니, 고검(孤劍)으로 불리는 후기지수에게 어울리지 않는 귀기.

그 정념까지 검에 담고 있음에도 서문경에겐 닿지 않는다.

창궁무애검법의 초식을 쏟아 내도 중간에서 무참히 끊어진다.

그렇다고 서문경이 무적인 건 아니었다.

뚜둑, 뚝.

아무리 흘려도 두 검이 부딪치며 생긴 충격은 남는다.

시뻘겋게 물든 붕대에서 핏물이 뚝뚝 흘러 비무장을 적신다.

비무가 이어지며 생긴 균열 사이로 점차 고였다.

“이제 그만…….”

“이대로라면 경이가 크게 다칠 텐데.”

성하민과 연준호가 말려달라는 듯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정현은 알았다.

서문경은 남궁명에게 어떠한 가르침을 내리고 있었다.

저렇게 다친 몸으로. 같은 나이임에도.

“정녕 모르겠느냐?”

정현의 말에 소년소녀의 시선이 달라졌다.

누가 비무의 중심에 있느냐, 누가 더 초조해하고 있는가…….

비무장에 흐드러지는 핏물이 아니라, 비무 자체를 보면 자연히 본질을 볼 수 있다.

“……역시.”

양무연은 처음부터 서문경을 걱정하지도 않았다는 듯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무연창을 창안한 이래로 오늘까지.

그녀의 심상에는 온갖 기교로 가전무공을 깨부수던 서문경이 존재했다.

상처가 심하더라도 저런 도련님한테 패배하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

그 기대는 그대로 이어져.

스각!

서문경이 검을 흘리며 앞으로 나아가자, 남궁명의 인상이 일그러지고 동공이 수축했다.

그렇게 두 검이 교차한 찰나였다.

정현과 성하민만이 포착한 다섯 차례의 공방.

과정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갔다.

남은 것은 한쪽 무릎을 꿇은 남궁명과 지쳤다는 표정을 지은 서문경이었다.

“……으음.”

“역시, 다르구만.”

“나만 못 본 건 아니었군. 하하.”

과정을 보지 못한 것이 부끄러워서, 공허한 감탄사들이 비무장 주변을 유영했다.

하지만 정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비무가 끝났다는 선언을 하는 것조차 잊었다.

‘방금, 그건…….’

처음에는 분명히, 서문검법 특유의 직선적인 검로가 남궁명의 검을 꺾는 듯했다.

거기서 끝났다면 놀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원래 그 정도 격차가 있었으니까.

저 상태로 강검을 펼친 정신력에 감탄은 했겠지.

하지만 중간부터 달라졌다.

‘저 아이와 비무하는 사이에 창궁무애검법을 수년 동안 배운 것처럼, 아주 능숙하게 가전검법에 섞어서 반격했다? 이게 말이 되는가?’

젋은 나이에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될 줄이야.

서문경의 검을 곱씹는 와중에 성하민이 다가왔다.

“정현 무사부님.”

“……응?”

“비무가 끝났다고 말하셔야죠.”

“아, 그래야지.”

“경이도 참, 성격이 나쁘다니까요? 전에 무연이한테 그랬지만 흉내 내는 게 지나쳐요.”

그 말에 정현은 생각이 지나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흉내에 불과한 것을, 무슨 수년 동안 배웠다니? 착각이 과했군.’

그래서야 음험한 소문을 좋아하는 호사가들처럼 ‘서문세가의 무고에 모든 비급이 잠들어 있다’고 주장하는 꼴이다.

정현은 쓰게 웃으며 지친 남궁명을 부축했다.

“내가 중간에 말려야 했는데, 지켜본다는 것이 너무 늦었구나.”

“……아닙니다.”

남궁명의 한숨이 깊었다.

이해는 됐다.

천무학관에 오기 전에는 남궁세가의 제일 후기지수라고 불렸을 텐데.

서문경이라는 격 높은 소년을 보고 곧바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터였다.

‘결국은 이겨 내겠지.’

지금 당장은 서문경의 경지를 인정하기 싫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천무학관에 다니며 천하가 넓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오늘 일 따윈 과거로 여기게 되겠지.

정현은 남궁명의 성장을 고대하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오늘은 네가 졌지만, 다음에는 다를지도 모르니 괘념치 말거라.”

“알겠습니다.”

짧게 대답하는 남궁명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 사이에 서문경이 손을 들었다.

“먼저 숙소로 돌아가도 되겠습니까?”

“……음? 아. 그래. 상처가 심하니 얼른 돌아가서 붕대를 갈고 약을 바르거라. 귀찮다고 바로 누워선 아니 된다.”

“예입.”

말은 건들거렸지만 서문경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가득했다.

그걸 보고 성하민이 따라가도 되겠냐고 물어서, 정현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머금었다.

‘청춘인가. 좋을 때로구나.’

그래도 정당하지 않은 이유로 수업을 빼 줄 순 없는 일.

정현은 단호한 목소리로 성하민을 가로막았다.

“걷지 못할 정도라면 경이가 먼저 부탁하지 않았겠느냐?”

“……하지만.”

“네 비무와 수업이 끝나고 나선 말리지 않겠지만, 지금은 아니 된다.”

그 말에 성하민이 퉁명한 표정으로 제자리에 풀썩 앉았다.

정현은 자애롭게 웃으며 목소리를 냈다.

“자, 다음은…….”

* * *

“너무 무리했나.”

서문경은 자신의 이마에 손을 댔다.

열이 펄펄 끓는 듯했다.

자상과 깊은 내상을 입은 채 행한 비무.

그 안에서 남궁명을 관찰하고 상단전으로 무공 자체를 관조했다.

매 순간마다 칼을 맞대며 궁리하는 동안에는 하늘을 나는 것 같았지만, 비무가 끝나니 땅에 곤두박질 쳐진 고통과 현기증이 가득했다.

그러나 얻은 것은 천금보다 귀한 명가의 가전무공.

창궁무애검법이었으니.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

[끝없는 하늘을 담은 검. 극성에 이르면 하늘과 비견될 중검(重劍)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직접 익히거나 책장을 소모하여 즉시 펼칠 수 있다.]

창궁의 무예란, 하늘과 비견될 중검이었던 걸까?

서문경은 무공사전을 뒤적거리며 비무 중에 떠올린 직감과 내용을 비교했다.

‘무작정 무공사전을 믿기엔, 너무 요물이란 말이지.’

어느 수단으로도 훼손되지 않으며 자신에게 무공에 관한 오성과 예지를 전해 준다.

이것에 의지했다가는 오만해지거나 안일해질지 몰랐다.

‘전생의 실수를 반복할 순 없으니, 물건에 지배당하는 게 아니라 이용해야지.’

어디까지나 무공사전은 오만함 때문에 배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부족함을 채울 도구일 뿐.

서문경은 창궁무애검법을 어느 초식에 덧붙이면 좋을까 고민하면서 숙소로 돌아갔다.

그곳에 전혀 예상치 못한 선객이 찾아와 있었다.

“어이, 꼬맹이. 그동안 잘 지냈냐?”

검치.

그가 주백경에게 술을 받아 마시며 히죽 웃었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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