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착 (4)
“아니, 저 상태로 출석한다고?”
“출신과 나이를 떠나서 참으로 존경스럽군.”
천무학관의 후기지수와 무사부 모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붕대로 목 아래까지 휘감은 사내.
침상에서 앓아누워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
그 자체가 시선을 모은다.
그 사내가 불과 며칠 전, 마도 고수와 맞서 싸운 소년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천무신동 서문경.
그의 무위와 분전은 동정호 부두 인근에서 지켜본 무인들에 의해 호북성 무한 너머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여.
어쩌면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서문세가에 미칠지도 모른다.
서문경은 자신을 힐긋거리는 시선과 소란에 한숨을 내쉬었다.
‘개방 분타주에게 부탁하긴 했지만, 잘될지 모르겠군.’
아버지를 비롯한 본가의 중진이 들으면 자신의 강호행은 곧바로 끝나게 될 터.
이 때문에 하루 전.
서문경은 양회광에게 한 가지를 부탁했었다.
“적마와 싸운 이야기가 퍼지지 않게, 호북성 내에서 막아 주시오.”
사실상 불가능한 부탁이었다.
마교가 사천성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후, ‘마공’이 의심되기만 해도 각 문파끼리 서신을 주고받는 와중이다.
부두 인근에서 본 눈이 몇 쌍인데 어찌 막을까?
기대하지 않고 물었지만, 양회광의 대답은 명쾌했다.
“큰 빚을 졌는데, 그 정도 억지는 받아 주지.”
“그게 가능하오?”
“이 자리까지 노름판 짓으로 왔을까? 나중에 보면 깜짝 놀랄 거다!”
그 호언장담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해할 수 있었다.
-천무신동이 탈마에 이른 마도 고수에게 치명상을 입혀? 제정신인가?
-서문세가가 이제 한물갔나 보군. 아무리 그래도 그리 허황한 소문을 퍼트리다니.
-쯧…… 다른 후기지수가 저 헛소문에 홀리지만 않길 바라오!
진실을 중간에 상식으로 짓누른다.
그 와중에 서문세가의 악명을 가지고 깎아내리는 자가 있긴 했지만, 개방은 그것마저도 이용했다.
그렇게 의심을 심어 둔 뒤, 거짓을 추가로 심는다.
또 다른 진실에 기반한 거짓을.
-천무학관 내부에 무영신투가 무사부로 있었다는데?
-오걸의 신투? 그자라면…… 과연,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군. 내가 잘못 본 걸지도 모르겠어.
천무학관주가 모종의 이유로 숨기고 있었을 진실.
잡기를 가르치는 무사부가 무영신투라고 폭로하자, 부두 인근에 있었던 무인들이 스스로 눈을 의심했다.
무영신투의 암행술은 가히 신에 가까우니까.
자기 신분을 숨기려고 제자의 신분을 빌렸다는 둥. 여러 의혹과 의심으로 주백경의 존재까지 뒤덮었다.
‘오걸이란 칭호가 가진 힘과 신비함으로 진실을 변질시켰다라, 배배 꼬인 방법이군.’
자신에게 보내는 아부일 것이다.
개방은 은혜를 갚기 위해 천무학관과 무영신투와 척까지 졌다고.
서문경은 속으로 코웃음 쳤다.
이 정도로 끝낼 거라면 애초에 적마와 싸우지도 않았을 터였다.
“……크으.”
똑바로 걸어, 지면에 땅을 디뎌 생기는 진동만으로 속이 뒤흔들리는 것처럼 쓰라리다.
겨우 하루 쉬었다고 적영창과 마주해서 생긴 내상이 나을 리가 없나.
피식 웃고 있자니 온갖 억측과 소문에 귀 기울인 몇몇이 작은 소리로 주절거렸다.
“웃는 거 봐, 적마와 싸웠는데 저렇게 걸어 다니겠어?”
“역시…… 애초에 잡기를 배우러 지원했다는 것 자체가 무영신투와 거래한 증거 아니겠나?”
‘막상 직접 들으니 짜증 나네.’
싸운 건 서문경 자신인데 세간에선 무영신투와 전부터 거래를 해 왔다는 둥.
명성을 얻기 위해 대신 싸웠다는 둥.
온갖 잡소리가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서문경의 인상이 매서워지자, 주절거렸던 몇몇 놈이 서둘러 자리를 떴다.
물론, 어린 잡놈들답게 속을 뒤집는 잡담을 남겼다.
“저것 봐. 찔려서 저런다니까?”
“망나니가 뭐 그렇지.”
‘……일을 너무 잘하네, 잘해.’
진실을 헛소문으로 만드는 도중에 망나니라는 악명까지 엮었단 말인가?
기녀한테 돈을 갈취하고, 가문의 힘을 이용해 무영신투와 거래하여 마인과 싸웠다는 명성까지 탐한다니.
이러다간 강호를 통틀어서 최악의 망나니로 불리겠다.
서문경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리고는 무영신투가 있는 천무학관 동편(東偏)으로 향했다.
도착하자 반기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제 오냐?”
서문경은 얼굴에 불만으로 가득한 무영신투에게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대신 싸워 줘서 고맙습니다?”
“지금은 미안합니다가 먼저 나와야지?”
“미안합니다. 여기서 정체를 숨기고 있는 이유가 있을 텐데, 제가 망치긴 했네요.”
“…….”
그 말에 잠시 침묵한 무영신투가 언제 그랬다는 듯 히죽 웃었다.
“아니야, 됐다. 어디서 처맞고 오진 않았으니까. 그거면 됐지.”
“정말요?”
“어쩌다 보니 네가 내 제자처럼 되지 않았냐? 마교한테 맞았다 그러는 것보단 낫지.”
신공을 베푸는 것에 이어서 저런 도량까지 갖췄을 줄이야.
무영신투가 당연히 화를 낼 줄 알았던 서문경은 속으로 감탄했다.
‘전생에선 왜 좀팽이에 겁쟁이라고 불렸는지 모르겠네.’
“뭐야, 갑자기 왜 그런 눈으로 봐?”
“당연히 사부한테 보내는 존경심이죠.”
“사부는 무슨, 세상 사람들은 네 가문에서 천금만금을 준 걸로 알던데.”
“드릴까요?”
“……진심이냐?”
무영신투의 눈에 미약하게 욕심이 올라왔다.
그걸 보니 조금이나마 생기려던 존경심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역시 도둑은 도둑인가 싶어서, 서문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연히 농담이죠. 본가에 재산이 많긴 해도 대부분 나랏돈이거든요?”
“아니, 그럼 장난을 치질 말든가. 어른 놀리냐?”
가볍게 혀를 찬 무영신투가 다짜고짜 의표를 찔렀다.
“그나저나. 계속 마교랑 싸울 작정이냐?”
“천하를 어지럽힐 환난을 일으킬 놈들인데, 당연하죠.”
“……끄응. 다른 놈이 저리 말하면 허세로 여길 텐데, 이미 싸운 놈이 저러니까.”
하물며 열네 살에 의념절기를 펼쳤다는 놈이 아닌가?
무영신투는 당장 서문경을 뜯어말리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자신에게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듯. 나이가 어리긴 하지만, 저놈도 비슷해 보였다.
그것도 마교와 싸우겠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고집이다.
무영신투의 입가에서 한숨이 비집고 나왔다.
“에휴…… 그래서 오늘은 뭐 하러 나온 거냐? 집구석에서 얌전히 누워나 있지.”
“오늘 동기끼리 비무하는 날이잖습니까?”
“그게 뭐?”
“괜히 사람 이목 끄느니 일찍 나와서 하민이 기다리고, 비무나 하러 가려고 했죠.”
“……뭐?”
이놈, 제정신인가?
무영신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불과 하루 전에 적마와 싸워서 중상을 입어선, 비무를 하러 왔다는 게 웬만한 광인 못지않았다.
자신의 표정을 본 것인지 서문경이 말을 덧붙였다.
“제가 그리 미친놈은 아닙니다.”
“미친놈이 아닌데 그 몸으로 비무를 해?”
“이게 다 사연이 있습니다.”
사연이 무슨 소용일까?
저러다가 칼 하나 잘못 스치면 황천행이겠구만.
무영신투는 못 미덥다는 표정으로 서문경을 흘겼다.
“네 동기가 약하다곤 하지만, 너무 X으로 보는 게 아니냐?”
“하하. 그럴 리가요. 지금 당장은 저보다 약해도 얕잡아보진 않아요.”
처음 듣고 거짓말 혹은 겸양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수십 년 동안 쌓은 경험으로 서문경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그 나이에 의념절기를 펼치는 네가, 동기의 가능성을 그렇게까지 점치고 있다고?”
“……진심이니까 여기서 시간 보내고 있죠.”
서문경의 말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 듯했다.
저 나이에 저런 실력을 갖추고 천무학관에 들어온 이유가 존재한다면 대체 무엇일까?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도 쉽사리 이해가 가질 않아서, 호기심과 두려움이 동시에 생겨났다.
‘설마 천무학관주가 퍼뜨린 헛소리가 진짠가? 천무신동 혼자서 무림을 무너뜨리려고?’
생각한 즉시 지웠다.
만일 그렇다면 적마가 개방 분타주를 죽이는 걸 방치했을 것이다.
무영신투는 얼굴에서 장난기를 지우고서 서문경에게 물었다.
“그럼 천무학관에 들어온 이유가 뭐냐?”
서문경이 아주 잠시 고민하고는 대답했다.
“나중에. 나중에 말해 줄 수 있을 때, 말해 줄게요.”
그렇게 말하는 어조와 목소리가 나이답지 않게 차가웠다.
* * *
서문경은 얼이 빠진 무영신투를 뒤로했다.
원랜 성하민이 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지만, 저 모습을 두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가 힘들었다.
‘비록 나한테 분심조화결을 베풀었어도, 천무학관주와 연이 있으니까.’
무영신투가 무사부로 있는 것 자체가 천무학관과 깊게 연루되어 있다는 뜻.
그에게 마교의 간자가 있다고 말했다가 소문이 퍼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적마보다 더 큰 악재가 찾아올 가능성이 있었다.
‘일단은 적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으면 좋겠는데.’
양회광의 능력이 부족하진 않을 테니, 아직도 추격하거나 싸우는 중이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모르는 걸 가지고 걱정을 쌓아 두는 성격은 아니었다.
“저기…….”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서문경은 반사적으로 손을 들었다.
투둑, 탁!
땅을 진각으로 때리면서 일권(一拳), 일장(一掌).
쌍수에 상반된 무공을 담아서 선공했다.
“……이런.”
서문경은 저도 모르게 탄식했다.
적마와 싸우면서 예민해진 본능이 행인조차 적으로 삼은 듯했다.
하지만 말을 걸어온 남자의 대응이 뛰어났다.
“당황스러운데.”
이 정도 주먹질 정돈 익숙하다는 듯.
자신의 일권에 일권을 마주 부딪치고, 한쪽 어깨로 일장을 흘린다.
서문경은 그제야 상대의 얼굴을 확인했다.
“둔걸?”
“앞으로 일주일은 보기 어렵겠다 싶었는데, 이렇게 보니까 반갑네.”
둔걸이 어제 들었던 말을 떠올린 건지, 복잡한 미소를 지은 채 머리칼을 매만졌다.
“그,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학관 다니려고 나왔어.”
“진즉 그랬어야지.”
“근데 진짜야? 적마랑 싸운 거…….”
그 말에 서문경은 둔걸의 처지를 대강 알아차렸다.
어제 자신의 숙소에 온 걸 양회광에게 들켰다는 것을.
양회광이 분노하여 다시는 전서구에 손도 대지 말라는 것 역시.
“당연히 아니지. 내가 그랬으면 여기 올 수나 있었겠어?”
서문경은 양회광의 손을 들어주었다.
애초에 전서구를 보고 숙소까지 찾아온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어디 말하지나 않을까 고민하느니 이게 낫다.
그 말에 둔걸이 미약하게 웃었다.
“그랬구나. 하긴, 의념절기를 펼치는 동년배라니…… 믿기가 쉽지 않았어.”
“어.”
서문경은 짧게 대꾸하고는 저 멀리 보이는 성하민에게 다가갔다.
그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둔걸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거짓말.”
사실은 이미 양회광에게 들을 만큼 들었다.
앞으로 차대 방주.
즉, 후개가 될 처지였기에 웬만한 정보에는 모두 접근할 수 있었다.
서문경이 어떤 경지에 도달하였는지도 안다.
나이답지 않은 심계에는 양회광마저 감탄하여 절대 적으로 돌리지 말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뭔가, 뭔가인데. 모르겠네.”
이것이 어떠한 감정인지, 둔걸 스스로 알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모든 걸 뒤로 미루던, 나태한 거지는 이제 없다.
둔걸은 반쯤 감고 있던 눈을 크게 뜨며 서문경을 뒤따라갔다.
신비한 무공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