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53화 (51/250)

교착 (3)

적마를 즉사시키기 위해선 어떠한 절초를 펼쳐야 할까?

걸레짝이 된 몸으로는 두 절대고수가 자아내는 영역을 돌파할 순 없다.

고로, 번결로 상단전 의념을 날카롭게 갈아서 비검절우로 베어야 한다.

서문경은 그 심상을 수없이 고민했다.

평범한 칼질로는 안 됐다.

‘저 몸을 꿰뚫으려면 최소한 천주를 검에 담아야겠지.’

적마가 타고난 신혈의 육신을 꿰뚫으려면 최소한 상단전의 의념이 담긴 절초가 필요하다.

그저 번결로 칼을 내던져서야 돌멩이를 던지는 것뿐.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깊었다.

전생에서는 겨를 비벼 만든 줄처럼 잘 짜인 몸으로 적마를 철저히 분쇄했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조차 없었다.

무인의 방식으로 해야 한다.

약자로서 강자를 무찌르는 지혜와 궁리.

상단전 심상을 현실로 가져와서 펼치는 절초는 서문경이 선호하는 방식이 아니었기에.

“……큭!”

이 사이에도 적마가 가볍게 던져 대는 화풀이 따위에 주백경이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그가 벌어준 시간 동안 의념이 실린 절초를 짜내야 하건만.

‘삼단전을 능히 사용하는 번천광검결과 직선적인 가전검법, 그리고 천주심경이라…….’

하나의 무공을 대성하는 데 평생을 바치는 게 무인인데, 어찌 단기간에 세 무공을 조화롭게 합친단 말인가?

그건 제아무리 천재인 서문경일지라도 쉽지 않았다.

‘옥화산에서는 무공사전을 쥐고 있을 때 직관이 떠올랐는데.’

무공사전을 능히 사용하는 조건이 있는 걸까?

주백경이 벌어 주는 시간이 속절없이 지나가는 동안, 서문경은 적마와 담정의 생사투를 눈에 담았다.

적영창과 기병의 부딪침.

압도적인 힘에 대항하는 기예.

눈부시게 아름다우면서도 애처로운 방어였다.

담정은 패배를 직감하면서도 매 순간마다 최선의 반격을 행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이었다.

“……아.”

서문경의 시야가 별안간 넓어졌다.

무공사전의 도움 따위는 없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어쩌면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이 머릿속을 스쳤다.

눈동자가 한순간 청량해지는 듯했다.

천주심경을 오랫동안 수련한 결과인 걸까?

아니면 자신을 보다가 답답해진 삼청의 구원일까?

아무렴 좋다.

서문경은 강하게 쥐었던 검을 놓았다.

숨은 반절 쯤 들이쉬고서 여유를 두었다.

“……수고했다.”

줄곧 자신을 호위한 주백경에게 작게 중얼거렸다.

적마와의 거리는 셈하지 않았다.

당연히 절초가 닿는다고 여겼고, 재차 확신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것.

그것이 상단전 심상으로 펼치는 절초라면, 단 하나의 형상으로 고정시킬 필요가 없다.

검조차도 필요하지 않다.

가능하냐고 고민할 이유 또한.

……우습게도, 이 단서를 적마의 검붉은 안개에서 얻었다.

‘생각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던 거야.’

세 무공을 조화롭게 합친다?

서로 맞지 않는 옷을 어떻게 맞춰 입는단 말인가?

저기 저 마귀 놈은 안개 안에 혈기와 마기를 감추고서 자기 마음대로 마공을 펼치는데, 서문경이라고 못 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심상까지 상단전에 기거하고 있지 않나.

굴강하고 부동한 의지로 쌓아 올린 상단전의 쇠기둥.

천주는 서문경에게 주어진 화구(畫具)이자 큼지막한 바위였다.

‘내 정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 무한한 형상을 취할 수 있었는데 말이지.’

전생에서 단순무식하게 펼친 것을 그대로 따라갈 뻔했다.

서문경은 자신의 어리석음에 피식 웃으며 상단전에 기거한 천주를 깎았다.

번결이나 비검절우 같은 무공을 가미해야 한다는 사실도 이미 잊었다.

그건 이미 의지에 담겨 있다.

절정고수가 상단전 심상을 깎아 만든 최강의 형을 펼치듯. 서문경도 마찬가지였다.

“……뭐냐, 너는?”

뒤늦게 이변을 눈치챈 적마가 고개를 돌렸지만, 때는 늦었다.

쩌적, 촤악!

상단전의 천주를 깎아 만든 의념절기가 적마의 상반신을 관통하는 모습.

서문경이 본 마지막 광경이었다.

* * *

촤아악!

적마의 상반신 절반이 터져 나갔다.

“……!”

예기치 않은 중상에 적마가 일순 반응하지 못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순간 등 뒤에서 느껴졌던 부동한 의념.

그 의념에서 발한 절기가 상반신을 꿰뚫었다. 거기까지는 이해했다.

……하지만 절기를 펼친 장본인이 겨우 열네 살 소년이라니?

‘살려 두면 절대 안 된다.’

천무신동 서문경이라고 했던가.

육체와 정신, 둘 다 한계에 이르렀는지 제자리에서 기절하는 것이 보였다.

“……젠장할!”

담정 또한 그걸 본 것인지 가볍게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 사이에 뇌전이 시야 한구석을 채웠다.

다른 방향에서는 서문경의 호위로 보이는 무사가 검을 든 채 달려들고 있었다.

“버러지들이.”

적마는 수십 년 만에 수세에 몰렸다는 것을 느꼈다.

서문경이 지적했던 것처럼, 일개 소국에서 노예이자 고아로 살았던 과거사가 언뜻 머릿속을 스친다.

……떠올리게 만든 대가를 치르게 해 주리라.

적마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적영창을 양손에 쥐었다.

그때가 돼서야 한 가지 변화를 깨달았다.

“……이게 무슨.”

상반신이 꿰뚫린 상처가 쉽사리 재생되지 않는다.

신혈의 육체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신령한 기운과 맞서 싸우고 있다.

죽음이란 단어를 떠올린 것도 대체 몇 년 만인가?

그 생각이 망설임을 낳아, 담정의 절초에 대응할 시간이 늦어졌다.

“뒈져!”

뇌전이 자신의 목과 머리를 동시에 점했다.

만뢰백우형의 운용이되 한없이 자유로워, 상단전의 심상을 실은 듯했다.

위험하다.

적마의 본능이 혈영보를 펼치게 했다.

스르륵……!

전신과 장포가 안개 속으로 녹아들며 뒤로 움직였다.

문제는 그것을 두고 보지 않는 무사가 있었다.

“서풍광아.”

서문경이 그러했듯.

주백경은 초식명을 입에 담은 채,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휘둘렀다.

상단전 의념이나 강기가 실리진 않았지만 혈영보의 진로를 방해하기엔 충분하다.

담정의 그림자가 순식간에 옆을 스쳤다.

“잘했다. 답답한 놈!”

소리가 뒤늦게 귓가를 스치고 나서야 주백경은 깨달았다.

적마라는 위협이 드디어 멀어졌다.

털썩!

제자리에서 주저앉았다가 일어나, 천천히 서문경에게 다가갔다.

“괘, 괜찮으십니까?”

“…….”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희미하게 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비록 내상이 심할지라도, 어쨌든 살아 있지 않나?

그 안도감이 다시 주백경을 주저앉게 했다.

“허어, 하.”

한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질 않을 정도로 지쳤다.

그렇게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그놈은 죽었냐?”

“척안룡이 뒤쫓긴 했습니다만,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런가.”

서문경은 피 젖은 땅바닥에 등을 누인 채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적마가 실제로 죽었을지는 모르겠다. 아니, 죽었으면 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손끝에, 감각이 있었어.’

전심전력을 다한 의념절기.

천주를 적마의 상반신에 박아 넣었다.

적어도 수 년 동안은 몸을 재생하느라 시간을 소모해야 할 터였다.

또 한 가지, 기대하는 부분이 있었다.

‘칠로두끼리 사이가 좋진 않았지.’

저렇게 약해진 적마를 다른 칠로두가 방치할 리가 없다.

기왕이면 서로 칼질하다 죽었으면 하지만,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일 뿐.

한숨을 내쉰 서문경은 자신이 직면한 문제를 떠올렸다.

아니, 이미 귓가에 들리고 있었다.

“방금 보았는가?”

“저 소년이…… 발한 존재감이나, 적마가 입은 상처는.”

어중이떠중이는 의념절기를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이곳은 호북성 불야성과 가까운 동정호 부근.

구경꾼이야 수없이 넘친다.

그들 중에 고수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서문경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적마에게 치명타를 입힌 건 좋은데…… 너무 이른가.’

천하에 천재는 무수히 많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이에 비해 뛰어날 뿐, 무림의 중추에 존재하는 오걸과 십대고수에 비교하진 않는다.

그러나 서문경 자신은?

세상이 보는 앞에서 의념절기를 적마에게 펼치지 않았나.

‘골치 아프네.’

천무학관에서 나가 달라고 슬슬 압력을 줄지도 모르겠다.

서문경은 호북성에 있을 날이 짧아졌음을 인지했다.

“주 무사.”

“예. 공자님.”

“본가에서 부르지 않을까?”

“오늘 일이 퍼지면 아마 가주님께서 그 재능을 전장에서 펼치라고 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겠지?”

대명의 군부에 속하는 이상, 명검을 무림에 썩히는 것보다 전장에 보내는 것이 상식.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문득 웃음이 터졌다.

“하, 크허. 컥.”

웃다가 간신히 멈췄던 출혈이 다시 터져서 고통이 엄습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지금도 후일을 걱정하는 자신이 우스웠으니까.

하물며.

“주 무사도 정상은 아니야. 이렇게까지 됐으면 내 호위, 그만둔다고 해야 정상 아냐?”

“언젠가 이런 짓을 벌일 줄 알았습니다.”

“짓?”

“어느 미친놈이 열네 살에 마도 고수와 싸우겠습니까? 공자님이 아니면 하지 않을 짓이지요.”

“……그건 그러네.”

서문경은 주백경의 불만 섞인 말을 인정했다.

그러다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지금은 너무 지쳐서, 쉬고 싶었다.

* * *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성하민은 걱정스러운 어조로 두 사내를 훑었다.

서문경과 주백경.

자기에게 숙소와 여비를 준 은인이 모두 빈사 상태가 되어서 실려 올 줄이야.

성하민의 눈동자에 점차 습기가 차올랐다.

“마교의 고수가 그랬다고? 적마가?”

“……그건 또 어떻게 알았냐?”

“시끄러워! 그걸 되물을 때가 아니잖아.”

쫘악!

성하민이 서문경의 붕대를 풀고 약을 재차 발랐다.

그 솜씨가 소녀답지 않게 몹시 능숙해서, 서문경은 묘한 궁금증에 휩싸였다.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느꼈지만, 순수한 아이 같으면서도 이상한 구석이 있다.

‘이거 병인가?’

조금만 이상하다 싶으면 궁금증이 일고, 남 몰래 조사하고 싶어진다.

전생에 마교와 싸우면서 생긴 의심암귀는 소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존재했다.

하지만 성하민이 기이한 소녀인 것도 사실이었다.

그 왜, 자신이야 전생의 기억을 지니고 있다지만…… 그녀는 명가의 자식이거나 엄청난 내력을 지니고 있지 않았으니까.

‘묘하지, 묘한데.’

자신과 주백경을 돌보는 와중에도 이렇게 의심해도 될까?

서문경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눈을 감았다.

성하민의 손길이 환부에 닿을 때마다 생기는 짜릿한 통증에 움찔거렸다.

그러다가 성하민이 한 가지를 물었다.

“수업은 어쩔 거야?”

“왜?”

“그…… 네가 제일 기대했던 거 있잖아. 동기끼리 비무하는 날.”

“아, 그거? 그거는 가야 하는데.”

서문경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대로 간다고 하면 말릴 거야?”

그 말에 성하민이 인상을 찡그렸다.

전신에 붕대를 칭칭 감고, 내상까지 심각한 사람이 대체 어딜 간단 말인가?

그것도 무인끼리의 비무에 끼겠다는 게 이상했지만.

“그래도 갈 거야.”

저렇게까지 말하는 서문경은 도무지 말릴 수가 없었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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