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50화 (48/250)

침입자 (5)

넓은 부두만큼 배와 사람 모두 각양각색이었다.

노 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놀러 온 파락호가 있고.

물고기를 낚는 어부와 사람을 붙잡는 흑도를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햇볕에 시꺼멓게 탄 피부가 비슷하듯, 바늘이나 작살에 긁힌 자국은 검상과 분간하기 어려우니까.

“모래벌판에서 바늘 찾기다. 그지?”

“솔직히, 쉽지 않습니다.”

주백경은 구슬땀으로 젖은 이마를 닦았다.

동정호와 인접한 부두에 세워진 배가 몇 척이던가?

개중에 사람이 버린 배가 있기 마련이고, 그사이에 버린 것처럼 위장한 수적의 나룻배가 있었다.

불야성에 가까운 것 또한 문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웬만한 안력으로는 얼굴을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이 사이에서 어찌 마인을 분간하겠습니까? 수적이나 흑도를 찾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내가 설마 근거 없이 무작정 왔을 것 같아?

-적어도 옥화산 때는…….

-어허, 그건 지난 일이야. 넘어가자고.

서문경은 주백경의 반박을 가볍게 웃어넘기며 아침에 마주쳤던 개방도를 떠올렸다.

-나한테 쪽지를 전달한 거지 기억하지?

-얼굴은 외웠습니다.

-그거론 모자라. 주 무사 말마따나 어찌 얼굴을 분간하겠어?

서문경은 추종향이 담긴 병을 꺼냈다.

그걸 본 주백경이 재치에 감탄했다.

-하면, 공자님께서 일부러 도발하신 겁니까? 추종향을 묻혀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왜 초면의 거지에게 반말과 도발을 던졌는가?

예의 바른 아이가 갑자기 그런다면 이상하겠지만, 서문경은 다르다.

무공이 뛰어나지만 한없이 오만한 망나니.

그 소문을 이용해서 개방도를 기만하고 추종향을 묻힌 것이다.

서문경은 고개를 끄덕여 주백경의 의문에 긍정했다.

-웬만하면 다 웃음으로 넘길 거지가 정색까지 하길래 일단 추종향을 옷 끝단에 묻혔지.

-가끔은 공자님께서 두렵습니다.

-그럴 땐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야지. 주 무사는 너무 바른말만 해.

그 말에 주백경이 순간 입술을 오물거렸다.

천하에 어떤 소년이 남을 밥 먹듯이 기만한단 말인가?

무서운 소식을 듣고 말을 더듬는 둔걸이나, 티끌 하나 없이 밝게 행동하는 성하민이 정상이지.

잠시 고민하던 찰나에 서문경이 먼저 움직였다.

“내가 먼저 앞장선다. 경계 늦추지 말고 따라와.”

‘대체 언제 추종향을 따라가는 기술을 익히셨단 말인가?’

재능이나 재지가 뛰어난 걸 넘어서 몸으로 직접 체득한 경험에 가깝다.

마치 일평생을 미리 살아 본 것처럼…….

거기까지 생각을 이어 가다가 주백경은 헛웃음을 머금었다.

‘내가 무슨 헛생각을. 공자님께서 앞장서고 있는데.’

편하게 대해준다고 너무 가볍게 군 것이 아닐까?

반성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내저은 주백경이 전신의 감각을 끌어 올렸다.

사천성에서부터 줄곧 동공을 행하며 정련한 오감과 새로이 얻은 육감.

그 감각을 통해서 주변을 철저히 경계했다.

서문경을 노리려거든 반드시 자신을 거칠 수밖에 없도록.

“……주 무사, 제법 강인해졌는데?”

서문경의 잇새에서 감탄하는 음색이 새어 나왔다.

주백경은 더 많은 칭찬을 바랐지만, 촌평은 거기까지라는 듯 바쁘게 움직였다.

저벅, 저벅.

추종향을 따라 보법을 행했다.

부두가 아무리 크다지만 동공으로 단련한 무인의 발걸음을 따돌릴 순 없는 법이다.

일식경도 지나지 않아.

햇빛이 비치지 않을 정도로 구석진 창고에서 개방도와 마주쳤다.

처음 보는 여자가 그와 함께 있었다.

……아주 좋지 않은 모양새로.

“사, 살려 주세요!”

여자의 구슬픈 외침이 창고의 벽을 때리고 주변에 울렸다.

그녀는 개방의 징표인 허리띠에 결박된 채 목덜미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뭔 짓을 하고 있었을까?”

서문경의 물음에 그녀의 피를 탐하고 있던 개방도가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로, 변명할 여지없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이렇게 된 이상, 자네를 죽일 수밖에 없지 않나?”

양회광의 심복이자 마교 오대 종파에 속한 마인.

무정겸은 기괴한 웃음을 흘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콰르르……!

적혈마공 특유의 끈적끈적하고 시뻘건 기운이 주변을 잠식했다.

서문경도 마찬가지로 공력을 운용하며 왼손으로 무공사전을 펼쳤다.

파르륵, 책장이 펼쳐지는 소리와 음성이 얽혔다.

“천무학관에서 마주쳤던 놈이랑 다르게 적마에게 제대로 배웠네?”

“그딴 버림패와 나를 비교하느냐?”

“똑같은 마교 잡것끼리 무슨.”

서문경의 신랄한 어조에 무정겸이 인상을 찡그렸다.

안 그래도 핏물에 젖어서 더러운 얼굴이 기암괴석처럼 변했다.

“이렇게 된 이상, 살인멸구하는 수밖에.”

터엉!

무정겸이 땅을 박차는 소리가 유독 둔중하다.

적혈마공의 혈기로 개방의 보법을 펼치는 듯했다.

“……!”

그 짧은 순간에 서문경과 주백경이 시선을 교환했다.

손가락을 하나 까딱일 정도로 짧은 수신호.

서문경이 무정겸을 상대하는 동안, 주백경은 여자를 구출한다.

그렇게 역할을 분담하고서 두 무인이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다만, 서문경의 얼굴에는 살기와 호기심이 공존하고 있었다.

“나도 처음 써 보는 거라 미숙할 수가 있어.”

“……?”

“죽지 마라. 물어볼 것이 많으니까.”

서문경의 손이 벽에 기대어져 있던 막대로 향했다.

양무연과 함께 창안한 무연창.

그 위력을 제대로 체감하기 위해 일부러 날이 달리지 않고, 단단하지도 않을 나무막대를 쥐었다.

“……네놈!”

자길 얼마나 무시하고 있는 것인가?

치욕에 어깨를 부르르 떤 무정겸이 쌍수를 강하게 휘둘렀다.

피처럼 시뻘건 기운이 양팔에 휘감겼다.

휘르륵, 팡!

수투처럼 휘감기려던 기운을 서문경이 막대로 휘둘러 쳐낸다.

기의 흐름을 끊어 버리는 기예.

무정겸의 얼굴이 한층 더 일그러졌다.

“가진 재주가 많다고, 달라질 것 같으냐?!”

기예가 뛰어나다고 한들 내공이나 체력에 한계가 있기 마련.

마교의 전법에는 기본적으로 적보다 공력이 심후하다는 전제가 깔려있었다.

‘분명, 이놈도 그렇게 죽여 댔겠지.’

서문경은 무정겸의 장법을 쳐 내고서 기억을 반추했다.

관존으로 불리던 시절 이전부터 천마에게 죽기까지.

속칭 오대 종파라는 것들을 수없이 상대하며 쌓인 경험과 감이 있었다.

‘간자 짓을 하면서 이렇게 피를 탐하는 걸 보니…… 이놈도 그저 그런, 병(丙)급에 불과해.’

마교 내부에 계급 체계가 존재했다.

천무학관에서 마주한 버림 패가 정(丁)급이라면, 무정겸은 간자로 써먹을 오대 종파의 기명제자.

적혈마공의 힘으로 펼치는 개방 무공은 제법 강맹했으나 쳐 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아니, 그 이상까지도.

툭, 따악!

막대로 무정겸의 뺨을 때렸다.

“……!”

자신에게 능욕 당한 것이 그토록 분한지, 무정겸의 두 눈에 시뻘건 핏발이 섰다.

물론 서문경에게는 하등 상관없었다.

어차피 무연창의 완성도를 확인하려는 심산이었으니까.

‘허수아비가 화나면 어쩔 건데?’

따악, 딱!

무정겸의 인중과 미간, 관자놀이를 계속해서 때려 댔다.

점혈해서 완전히 제압하는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선천진기까지 잠력을 폭발한 무인을 상대로도 기예를 유지할 수 있는가.

그 가능성을 점하기 위함이었다.

“네놈,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

“언제 그 소리 하나 했다.”

서문경은 무정겸의 외침을 한쪽 귀로 흘리며 주백경의 상황을 확인했다.

금세 여자를 구출하고서 지혈하는 와중이었다.

‘너무 쉬운데.’

겨우 정급에 불과한 무정겸에게 분타주 암살을 맡긴다?

서문경은 자연히 떠오른 의문을 오만으로 덮어 버리지 않았다.

“다른 놈은 어디에 있나?”

“……?”

“설마 너 혼자 분타주를 노리진 않았을 텐데?”

그 말에 무정겸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적마에게 무언의 금제를 당했거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듯했다.

‘이제 슬슬 제압해서 분타주한테 데려갈까?’

무연창을 구성하는 초식 모두 무정겸에게 써먹었다.

강맹한 힘을 가볍게 흘리고 역이용하는 기예.

사량발천근이나 이화접목이 기본적으로 숨어 있는 초식이 많아, 상대하기가 유독 수월했다.

‘나를 상대하느라 자연스럽게 집어넣은 것 같긴 한데. 더 강한 상대에게 시험해 보면 좋겠군.’

만일 무정겸이 을(乙)급 수준이었다면 무연창의 실전을 제대로 체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

분심조화결의 운행 또한 마찬가지로 너무 시시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을 정돈하는 와중이었다.

“……서문경.”

저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온 소리가 있었다.

그와 동시에 사람의 그림자 따위가 비치고, 파공성이 허공을 찢었다.

‘투검(投劍)?’

검을 던지는 기예란 강호에서 흔치 않다.

일단 칼 자체가 비싼 데다 자칫 잘못하면 빈손으로 적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만큼 까다로운 무공이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공자님!”

활만큼이나 적의 의표를 찌르는 데 능하다.

서문경에게 갑작스레 투검이 날아들자 주백경이 몸을 날렸다.

서문검법 오 초식, 번검유회.

칼날이 무수한 잔영을 그리며 막을 이루니.

까가가강!

투검에 실린 힘이 연신 깎여 나갔다.

그럼에도 만만치 않은지 주백경의 팔뚝에 힘줄이 솟았다.

“……큭!”

투검을 가까스로 막아 낸 주백경이 신음을 흘리는 사이.

서문경은 무정겸을 기절시키곤 남자의 정체를 확인했다.

왼뺨부터 입술을 가로지르는 상처.

과거에 본 적이 있었다.

호북성에 도착하기 이전에, 삼단전의 균형을 이루었던 날.

잔악한 짓으로 자신과 주백경을 위험에 빠트렸던 채주의 이름은…….

“흑선채주 공소심. 네놈이 마교와 손을 잡아?”

서문경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공소심은 코웃음을 치며 살기를 흘렸다.

“네가 내 힘줄을 끊고 하루하루 복수할 날을 기다렸다. 마교와 손을 잡는 거야 어렵지도 않았지.”

“이거 어쩌나, 첫 투검이 통하지 않았으니.”

서문경은 공소심의 무위를 떠올리곤 한껏 빈정댔다.

공력이 늘어났다고 한들 그의 수준은 절정 미만.

첫 암습 말고는 위협적이지 않았다.

정면에서 붙는다면 세 초식 안에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공소심의 기색에는 무한한 자신감이 가득했다.

“흐흐, 언제까지 기고만장할 수 있을지 보자꾸나!”

“……?”

처음에는 저놈이 미쳤나 싶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공소심 뒤, 절대적인 기량을 갖춘 남자가 어느 새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네놈이 대업을 사사건건 방해하던 꼬맹이더냐?”

붉은 장포에 붉은 눈, 피로 물들인 듯한 머리카락.

그렇게까지 화려하게 입어 놓고는 얼굴은 무감정하다.

인세에 모든 미련을 끊은 도사처럼 보여도 서문경은 그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다.

“……적마.”

갑을병정이니, 급수를 논할 수준이 아니다.

마교의 칠로두.

오직 천마에게만 충성하는 마도 고수가 눈앞에 있었다.

서문경의 살갗에 소름이 돋았지만,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다.

“네가 분타주를 해하러 온 흉수냐?”

“과연, 익히 들은 대로 맹랑할 자격을 갖추었어.”

보통 자신과 마주하면 오줌을 지리며 목숨을 구걸하거늘.

적마가 무심한 어조로 감탄했다.

그런 고로, 평소처럼 한 가지를 제안했다.

“마교에 입교하면 죽이지 않겠다. 어쩌겠느냐?”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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