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입자(1)
서문세가의 이공자.
서문휘는 만면에 미소를 띤 어머니를 눈앞에 두고 복잡한 미소를 머금었다.
도대체 친형, 서문경은 무슨 짓을 하고 다닌단 말인가?
“……기녀의 돈을 갈취해 향락을 즐기고 무림인의 가전무공을 훔쳐 배워 모욕 주길 즐긴다고요?”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다.
아니, 어처구니가 없는 걸 떠나서 실소조차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서문경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 사람.
어머니가 눈앞에서 홍소(哄笑 : 큰 웃음)를 터트리고 있었다.
“소가주의 자리를 스스로 내치더니 패악질을 부리고 싶었던 게지. 제 아비의 얼굴에 먹칠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최근 강호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듣고 입맛이 돌아왔다고 하니 오죽할까?
서문휘는 어머니가 쏟아 내는 서문경의 험담을 말없이 듣기만 했다.
그저 한쪽 귀로 듣고 흘렸다.
‘저리 기뻐하시는데 딴소리를 덧붙일 순 없지.’
서문경의 행동거지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내심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으나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겨우 열 살임에도 주변의 눈치를 볼 줄 알았으니까.
……그렇게 된 연유가 눈앞의 어머니에게 있었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단다. 처신을 조금 더 조심하렴. 이제 소가주가 되는 일만 남았으니.”
“소가주요?”
“그래. 강서의 군부를 아버지와 함께 다스리는 거야.”
어머니가 부드럽게 웃으며 늘 하는 얘길 덧붙였다.
본처가 아닌 후처로서 살며 겪은 고난과 열패감.
그러다 생긴 결실, 서문휘에게 얻은 안도와 희망.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 달콤한 꿀이 떨어지는 듯했다.
“네가 이렇게 자라서 얼마나 고맙고 미안한지.”
“아니에요, 어머니. 어머니 덕분에 얼마나 행복한데요.”
서문휘는 여느 때처럼 거짓말을 입에 담았다.
행복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과 놀고 싶었고 매일 하는 공부가 지겨웠다.
그러지 못한 것은 불효자가 되기 싫어서, 어머니의 눈물을 보기가 싫어서였다.
남들은 자신을 두고 재기 넘치는 신동이라 부르지만, 자신은 알았다.
그 외피는 어머니가 만들었다는 것을.
진정한 신동은 어머니가 헐뜯은 서문경이라는 것 역시.
‘아마, 어머니가 가문 내부에 악소문을 퍼트리겠지.’
이공자 서문휘를 소가주의 재목으로 치켜세우기 위해.
서문휘는 입술을 씰룩였다.
곯은 감정과 생각을 숨기다 생긴 버릇이었다.
‘왜 기쁘지 않을까?’
그토록 바라던 소가주의 자리가 공고해지는데, 정작 손아귀에 잡힐 만하니 값지지 않았다.
기분이 묘했다.
사색과 기억이 얽혔다.
서문경이 떠나기 전날 나누었던 대화와 놀이 따위가 머릿속에 떠오르다 침잠해졌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잠시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서문휘는 곧장 서문세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타인에겐 무작정 쏘다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일정한 주기가 있었다.
“어젯밤은 훈련이 조금 과하지 않았나?”
“곽 장군께서 워낙 깐깐해야지. 흐트러짐 하날 용납하질 않아. 그나저나 자네, 그거 들었나?”
대문과 보급로를 경비하는 병사끼리의 뒷담.
“어제 들은 건데…… 너만 알아야 한다.”
“아이참! 뜸 들이지 말고 빨리!”
식사를 나르는 시비들이 떠드는 소사(小事).
“칠 주야 뒤에 북적의 주둔 지역을 탐색한다더군.”
“아이고야!”
훈련장 안에서 이루어지는 휴식 시간에 소곤거리는 출병 시기와 지역.
그것들을 몰래 듣기 위해 서문휘는 무진장 애를 썼다.
일공자 서문휘라는 벽을 넘기 위해 치사한 술수까지 병행했다.
하나 지금은 어떠한가.
“일공자님이…….”
“도련님께서 말이지, 글쎄! 호북성에서…….”
“우리가 북적과 맞서는 동안 누군 술이나 마시고, 살판났군.”
* * *
어느새 퍼진 서문경의 추문이 서문세가 곳곳에 드리웠다.
서문휘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런 식으로 이기고 싶지 않았는데.’
허무함? 분노? 짜증?
명쾌하지 않은 감정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딱 떨어지는 낱말이 없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걷다가 한 장소에 도착했다.
가주, 서문이현의 집무실.
그라면 이미 가문 내에 퍼진 추문을 알고 있을 터였다.
이곳에 도착한 자신의 발걸음까지도.
“들어오너라.”
안쪽에서 들려오는 중후한 목소리에 침을 꿀꺽 삼켰다.
철인 서문이현.
강서의 군부를 다스리는 대장군이자 일가의 어른이었다.
얄팍한 언사 따위는 전혀 통하지 않으리라.
서문휘는 마음을 굳게 다잡으며 평안한 안색을 꾸몄다.
“예. 아버지.”
끼이이…….
열린 문 사이로 한 가구가 눈에 들어왔다.
과거 대명의 황제가 하사했다는 자단목 책상.
그 위에 놓인 문방사우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책상의 주인이 어떠한 성정인지 알기에 충분하다.
서문이현은 늘 그렇듯 무심한 얼굴로 자기 아들을 굽어보았다.
“여기까지 무슨 일이냐? 공적인 일이 아니고서야 찾아오지 않던 아이가.”
“실은…… 요즘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서문휘는 잠시 말하길 머뭇거리다가, 일거에 고민을 쏟아 냈다.
무척 신기한 일이었다.
누구에게도 속내를 밝히지 않던 자신이 서문이현에게 고민을 상담받다니.
‘방금 어머니가 처신을 조심하라고 하였는데.’
양심에 찔렸다. 불효자가 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어깨를 좁혔다.
그러다 고개를 드니.
“……!”
서문이현이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서문휘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표정을 관리하기가 어려웠다.
“제, 제가 무언가 잘못이라도…….”
“아니. 비밀을 공유할 사람이 생긴 것이 기꺼워서 웃었다.”
“……예?”
“항시 집무실에 있다고 하여 눈이 멀지 않으며 귀를 닫고 살진 않는다. 새겨들어라. 가주란 능히 그래야 하니까.”
툭툭 흘리는 언사에 묘한 뜻이 있었다.
진의를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설마, 자기 생각을 이미 알고 있는 걸까?
서문휘는 궁색한 미소를 머금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가문에 퍼지는 추문이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가, 당연히 알고 있다. 네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 그 때문이겠지.”
“…….”
“그걸 앎에도 관여하지 않았다. 이유를 아느냐?”
“모르겠습니다.”
“네 형이 방치하길 바랐으니까.”
“……예?”
서문휘는 경악하여 큰 소리를 질렀다.
가문에 자기 추문이 퍼지는 걸 알고도 방치했다는 뜻이 아닌가?
‘내가 알기로 형이 편지를 보낸 적도 없으니까…… 이럴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거잖아?’
맙소사.
서문휘가 할 말을 잃고 두 눈을 끔뻑이는 사이, 서문이현은 무덤덤한 목소리로 하려던 말을 덧붙였다.
“강호에서 추문이 퍼지거든 개방이나 하오문보다 빠르게 퍼트려 주길 바랐다. 네가 소가주로서 적합하단 말도 했지.”
“……왜요?”
“그건 네 형에게 직접 들어라.”
그 말에 서문휘는 전모를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어머니가 꾸미고 있는 모략은 사실 처음부터 서문경이 의도했다는 것을.
강호에서 큰일을 벌이고 있다는 것 역시.
‘가문 내에서 형의 추문에 관해 비웃고 떠드는 건…… 오히려 아버지가 거들고 있었구나.’
머릿속에 번개가 치는 듯했다.
서문휘가 남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할 때, 서문경은 누구보다 큰 그림을 강호에서 그리고 있었다.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을 떠받들고 서문경을 비웃기만 하고 있었으니.
“……하, 하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금세 붉어졌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서문이현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앞으로 어딜 가든 기록을 남기거라.”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말에 서문이현은 붓을 들어서 두 글자를 썼다.
마교.
서문휘의 눈동자가 커지는 가운데, 서문이현의 목소리에 담담한 음색이 담겼다.
“북적에 이어서, 우리 가문이 죽여야 할 두 번째 적이다. 네 형이 강호로 나간 이유가 바로 이놈들일 것이야.”
“……!”
“머릿속에 새겨 두고, 앞으로 주변을 경계해라.”
서문휘가 고개를 끄덕이자, 서문이현은 작성하고 있던 서류에 시선을 던졌다.
-호북성 무한의 불법 침입자 색출 및 토벌 지원 요청.
천무학관의 위치가 호북성이던가?
서문이현은 호북성 무한을 중심으로 누군가가 모여드는 것을 의심했다.
‘설마 경이가 얽혀 있는 건 아니겠지?’
* * *
호북성 무한의 번화가.
짜고 매운 냄새와 소음이 가득한 거리 중앙에 한 사내가 길게 하품했다.
“흐아암…….”
금방이라도 침소에 늘어질 모양새였지만, 주변을 훑는 시선은 차갑고 날카로웠다.
또 손톱 안쪽에 낀 돌가루는 어떠한가?
하물며 거대한 벽을 두 손으로 기어오른 것처럼 손바닥 피부가 울긋불긋했다.
수 시간 동안 벽호공을 펼쳤다는 의미라.
사내의 의심스럽기 그지없는 행색에 번화가를 순찰하던 병졸이 다가갔다.
“이보시오.”
“음?”
“명패를 보여 주시오.”
최근 열흘.
호북성 무한의 성벽을 몰래 오르려는 침입자가 많았다.
대부분은 화살을 쏘아 쫓아냈지만, 성공한 사람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터.
병졸이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내자 사내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훌륭한 태도요.”
“……헛소리하지 말고 당장 꺼내라.”
표독스럽게 쏴붙이자 사내가 안섶에 손을 넣었다.
그 사이 병졸은 오른손의 곤봉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독이나 단검이 튀어나온다면 손목을 후리려고 했지만, 사내의 명패엔 눈이 번쩍 뜨일 신분이 적혀 있었다.
-서문세가 삼급 무사 주백경
일반적인 명패와는 달리 값비싼 자단목으로 만들어져 묵색의 광택을 머금고 있었다.
병졸은 곤봉을 쥐던 자세를 고쳤다.
“시, 실례했습니다!”
“아니오. 누가 봐도 의심스러웠을 테니까.”
주백경은 병졸에게 몇 마디 덕담을 던지곤 서둘러 자리를 떴다.
겉모습이야 담담한 척했지만 몹시 부끄러운 일이었다.
‘내가 어쩌다가 도둑 취급을 받게 된 건지.’
이게 다 천무학관의 무사부, 무영신 때문이다.
그가 가르치는 무공은 벽을 넘거나 잠금쇠를 여는 잔재주였다.
그러다 보니 손목 아래로 돌에 긁힌 자국이 잦아졌다.
고로, 누가 봐도 도둑처럼 보인다.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하곤 있는데, 이래서야 공자님의 명령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번화가의 수많은 인파 속, 마인을 찾으라는 서문경의 밀명.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하루에 수천 명이 왕래하는 거리에서 어찌 마인을 잡아내겠는가?
‘마인과 싸워 봤으니 마기에 대한 기감이 예민해졌을 거라곤 하는데…… 믿는 수밖에 없나.’
서문경의 호위인 자신이 믿지 않으면 누가 믿으랴.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서 번화가를 한 차례 더 쏘다니는 와중.
툭!
대로를 걷다 어깨를 부딪쳤다.
주백경은 저도 모르게 제자리에서 멈췄다.
예민하게 반응할 일이 아니었다.
수천 명이 왕래하는 번화가에서 어깨가 부딪치는 것 정도야, 시빗거리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뭔가, 이상한데.’
위화감을 느낀 주백경은 뒤늦게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어깨를 부딪쳤던 사람은 이미 어딘가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한 명이 아니었어.”
어깨를 부딪쳤던 사람 주변으로 십수 명.
한순간이었지만, 그들은 똑같은 기운을 지니고 있었다.
거무튀튀하고 더러운 것.
‘이게 공자님이 말씀하신 마기인가……!’
기감이 더 발달했지만 순수하게 기뻐할 수 없었다.
호북성에 마인 십수 명이 침투했다는 소리니까.
심지어 그들이 무엇을 노리는지조차 모른다.
주백경은 순찰을 멈추고 숙소로 향했다.
* * *
“그놈들이 어느 방향으로 향했지?”
“동정호였습니다.”
‘……호북성 분타주를 노리는 건가.’
예견하고 있던 위협이 지척에 가까워졌다.
서문경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신비한 무공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