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쟁이 창 (5)
“내 소문엔 어째 살만 계속 붙네.”
“공자님, 솔직히 아예 없는 말은 아니잖습니까?”
주백경은 서문경에게 충신의 마음으로 고언(苦言)을 토했다.
“불야성의 주루에서 매일 시간을 보내셨고, 기녀에게 술값을 뺏었으며…… 눈물을 흘리며 도망친 동기를 가전무공으로 꺾으셨지요.”
“……그만.”
“이 학년 선배의 무릎을 꿇렸다는 건 저도 봤어야 했는데! 가주님이 듣는다면 흡족해하시겠지요. 무림인의 기를 잘 죽이셨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주루에서 시간을 보낸 건 마교의 끄나풀을 잡기 위함이었고, 기녀는 주제를 모르고 선을 넘었다.
하물며 눈물을 뽑은 건 자신이 아니지 않나.
‘……가전무공으로 꺾은 건 사실이긴 하지만.’
이러니까 동기가 다가오질 않는 것일까?
서문경은 진지하게 자신의 계획이 잘못됐나 고민했다.
‘분타주 말로는 마교의 끈이 잡히는 순간에 공표한다고 했으니까, 잘 진행되고 있는 건 맞는데…….’
어째 서문경이라는 이름에 계속해서 먹칠을 하고 있다.
각오하고 있던 일이긴 했지만, 실제로 겪고 있자니 기분이 나빠지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주 무사.”
“……예.”
“놀리는 건 그쯤하고, 내가 시킨 일은 어떻게 됐어?”
그 말에 주백경이 은연중에 웃고 있던 안색을 뒤바꿨다.
서문세가의 일공자를 모시는 군인.
주백경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냉막한 어조로 양철심의 처분을 고했다.
“가주님께서 세 번째 등급인 병급으로 처리하셨습니다. 앞으로 양철심이 공자님 앞에서 얼쩡거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 * *
길게 기른 머리카락으로 가린 오른눈과 무감정한 왼눈.
창술가답지 않게 신비로운 인상이다.
무림인보다는 악공이나 시인에 가까운 외견이었다.
하지만 양철심은 그 앞에서 두 무릎을 꿇는 것으로 모자라 땅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수, 숙부!”
“왜 그랬느냐?”
남자의 목소리엔 어떠한 감정도 없었다.
그저 궁금한 것을 묻듯. 답을 채근하기만 했다.
“주저하지 말고 대답해라.”
“하, 하지만…….”
양철심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신창(神槍) 양전(楊電).
강호의 십대고수이자 가문의 최고수가 여기까지 왔다는 건 사안이 제법 중대하다는 뜻이었다.
“어디 하나 분질러져야 말하겠느냐.”
“그, 그…… 그 아이가 양가창법을 자기 멋대로 변형했습니다! 가문의 선배로서 가만히 둘 순 없었다고요!”
“그래?”
그 말에 양철심은 속으로 안심했다.
이대로라면 양무연의 잘못으로 돌릴 수 있겠노라고, 어쩌면 자기 대신 복수해 줄지도 모르겠다고.
그 생각은 착각에 불과했다.
양전의 고개가 삐뚤게 기울어졌다.
“그게 뭐 어쨌다는 게냐?”
“……예?”
“무인이란 종래에 천하와 맞서고 만들어진 법식을 부수기 마련. 가전무공일지라도 필요하다면 무너뜨리고 새로 쌓아야지.”
“하, 하지만 그 애는 양가창법을 구술로 익힌 따라쟁이에 불과합니다!”
“너야말로 선현이 남긴 비급을 따라한 것뿐인 인형이지 않느냐?”
“…….”
“귀찮게 굴지 마라. 네 칭얼거림을 받아 줄 생각 따윈 없으니까.”
그 문답을 듣고 나서야 양철심은 당연한 의문을 떠올렸다.
“한데 숙부님께서 왜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네가 방계의 돈을 갈취하였다는 증거가 나왔다.”
“그, 그게 무슨……!”
양철심은 입을 쩍 벌렸다.
여태껏 방계의 사람을 업신여겼을지언정 돈을 탐하지는 않았다.
그 죄가 너무 무거워서였다.
“너는 앞으로 가문의 대소사에 관여하지 못하고 평생 강호에 나가지 못한 채 살아갈 것이다.”
“아닙니다! 오해입니다!”
“이걸 보고도 모른 체할 테냐?”
세월을 머금고 누렇게 변색된 장부.
그 안쪽에 통한의 심정이 담긴 서체와 용돈 삼아 받아 간 금액, 용처가 상세했다.
양전은 장부를 거두어들이며 뒷말을 덧붙였다.
“내용은 충분히 조사했다. 네 용모파기를 아는 자와 물건이 구매된 시기, 창고의 적재량이 맞아떨어졌어.”
“야, 양무연이 저를 모함하는 겁니다!”
“학관에 있는 아이가 장부를 조작하고 사람을 매수해서 꾸몄다? 농담하느냐?”
“그, 으…….”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양철심은 자기도 모르는 명약관화한 증거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어제 있었던 비무 이후로 무인으로서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을.
천무학관에서 나가야 한다는 사실까지도.
* * *
양철심이 양전에게 끌려가는 한편.
양무연은 소스라치게 놀란 무사부와 마주하고 있었다.
“양가창법을 이렇게 독자적으로 연마한 거니? 너 혼자서?”
“……예.”
“내가 손보았다간 오히려 독이 될 것 같구나. 앞으로 내 수업 시간엔 자율로 수련해도 된단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찾아오렴.”
“감사합니다.”
“아, 따로 지은 이름은 있니?”
“……아, 아니요!”
양무연은 화들짝 놀랐다.
사실 무연창이라 명명했지만, 남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이름이었다.
자기가 무슨 대종사도 아니고 무공에 이름을 붙인단 말인가.
양철심을 이기긴 했지만 바닥난 자존감은 밑바닥에서 차오르질 않았다.
단 한 남자의 존재 때문에.
‘아직, 경이를 넘어서진 못하니까.’
무연창을 만들던 날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저 즐겁기만 했다.
비무가 계속될수록 자신이 모르던 양가창법의 일면을 계속해서 발견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경이가 나를 이끌어 준 거야. 양가창법의 껍데기만 따라 하고 있던 날 바깥으로…….’
껍데기를 따라 하기만 하던 나날.
한 칸짜리 방에서 구술로 배운 양가창법에 집착하던 과거에서 벗어나, 무연창이라는 무공으로 나아간다.
그 생각에 잠기니 얼굴이 붉어졌다.
‘내가 처음에 왜 그랬지?’
서문세가의 망나니라는 소문 하나를 무작정 헐뜯었고, 옆에 있던 성하민에게 열등감을 드러냈다.
당연히 추레해 보였을 것이다.
백련이라는 무인 이전에 양무연이라는 인간이.
그걸 듣고도 도와준 것이 너무나도 고마워서…… 어떻게 사과하고 처음부터 시작할지 막연히 두려웠다.
“……같은 수업을 받는다면 한결 수월할 텐데.”
얼핏 듣기로 ‘무명신’이라는 무사부가 담당하는 잡기 수업만 받는다고 했던가.
뒤늦게 수업 신청을 넣을 순 없었다.
하물며, 잡기 수업이라는 존재 자체를 모르는 동기가 많았다.
지나가는 선배를 붙잡고 물어도 마찬가지였다.
-잡기를 듣는 친구가 있어? 당장 취소하라 해. 시간 낭비야.
-무영신 무사부? 아, 명부에서 본 것 같긴 한데 나도 본 적이 없어.
-그 사람, 천무학관주의 불미스러운 약점을 잡고 있다는 소문이 있던데.
서문경만큼이나 무영신 무사부와 잡기 수업에 안 좋은 소문이 즐비했다.
개중엔 정말로 사실인 것도 있었다.
비무할 때 얼핏 본 수업장이 정말로…… 폐허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정원과 주인의 성정이 비슷하듯.
수업장만 봐도 무영신이 어떤 사람인지 대강 알 것 같았다.
‘지독하게 자기만 생각하고, 남 돌보긴 귀찮아하는 성미겠지.’
어렸을 때부터 눈칫밥만 먹고 살았기에 감을 신뢰하는 편이었다.
그래도 마음에 걸려서 한숨을 푹 내쉬다가, 하늘을 보고, 잡기 수업장이 있는 동편을 흘깃거리기도 했다.
……수련에 집중이 되질 않았다.
자신이 그토록 고대하던 상승의 창법을 가지게 되어서 더더욱 그랬다.
‘나는 내 창법을 만들었는데, 그 앤…… 날 도와주기만 했잖아. 그럼 한 번쯤, 그만큼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닐까?’
안 그래도 양철심을 그냥 보내 준 걸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 자리에서 보내 줬다.
양무연의 결정을 존중해 준 것이다.
“어쩌지.”
양무연은 한참 동안 철창을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도.
* * *
“무슨 자비고 용서고, 어우. 후환을 날려 버리니까 속이 다 시원하네! 아버지니까 일 처리는 정확하게 하셨겠지.”
앞으로 양철심이라는 무인은 강호에서 활보하지 못하리라.
수업장에 도착한 서문경은 히죽 웃으며 무공사전을 폈다.
무연창.
양가창법을 토대로 창법의 천재가 새로이 짜낸 신공.
무공사전에 적힌 내용이라면 번천광검결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수준일 터.
‘틈을 유지하고 조율하는 게 대단했지.’
두 창술가가 펼친 비무의 수준은 확실히 조악했다.
하지만 양무연과 양철심의 차이는 조악한 만큼 명확했다.
딱 봐도 양철심은 어릴 적부터 영약과 질 좋은 고기를 먹으며 자랐고, 양무연의 체격은 좋다고 보기 어려웠다.
그 격차를 좁힌 것은 오로지 기교와 기예.
정과 반을 정확하게 포착하여 충격을 덜어 주니.
양무연의 철창이 부서지지 않은 것은 기적이 아니라 본능적인 계산이었다.
‘특히 마지막에 펼친 창극의 유전은…… 무공사전이 왜 양무연을 천재라고 했는지 알겠어.’
강대한 힘이 담긴 양철심의 철창을 아래로 쳐 내면서 교묘하게 얽어, 순식간에 손목을 짓눌러서 창을 놓게 만든다.
과정만 놓고 보면 쉬운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압도적인 팔 길이와 근력 차이는 이론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마 본능에 가까웠겠지.’
관존이라는 위치에 있었던 서문경마저도 감탄한 임기응변이었다.
그녀가 만든 무연창의 속도와 파괴력, 유연함 또한.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았다.
의기소침해 있던 양무연을 계속해서 도와준 보람이 컸다.
“좋아. 제대로 익혀볼까!”
서문경은 한 손에 무공사전을 펼친 채 철창을 쥐었다.
마침 수업장도 고요했다.
무영신투는 늘 그렇듯 주백경을 은밀한 곳에서 가르치고 있었고 성하민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실, 그녀가 천무학관 동기 중에서 제일 신기했다.
‘양무연보다 더 말이 안 되긴 해.’
무연창을 창안한 양무연조차 상단전을 다루지는 못한다.
어디까지나 찰나.
비무 도중, 집중력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나 심적권청의 현상을 겪었다.
하지만 성하민은 어땠나?
자신처럼 전생을 살다가 되돌아온 것도 아니면서 상단전을 다루는 감각에 능통했다.
‘재능은 또 어떻고?’
판관필 때도 놀랐지만, 창은 몇 번 휘둘러서 자기만의 형식을 대강 만들었다.
이걸 보면 마교가 저 애를 잡아간 이유가 존재할 텐데, 몇 번을 물어도 자기 과거사는 이야기하질 않는다.
‘언젠가 말해 주겠지.’
서문경은 성하민에게 관심을 거두고서 무연창이 적힌 책장을 펼쳤다.
시작은 아주 단순했다.
란나찰.
좌우로 빗겨 내고 찌르는 것. 창술가라면 능히 다룰 줄 아는 기본적인 기교부터 완벽하게 익혀야 했다.
‘과연, 백련(百鍊)인가.’
백 번의 담금질.
어린 나이의 후기지수가 얻은 별호라기엔 너무 투박하다.
양무연이 얼마나 수련에 미쳐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무연창은 그러한 기질과 똑 닮아 있었다.
“제법, 지루하겠네.”
자연스럽게 동렬에 있는 무공, 번천광검결을 떠올렸다.
그 검법은 무인의 등을 절벽에서 밀어 버리는 것과 같았다.
삼단전을 쥐어짜듯이 운용해서 상승의 검형을 펼쳐라.
못하겠으면 익힐 엄두도 내지 마라.
그에 비해 무연창은 가전무공을 익히기 위해서 시도한 온갖 고군분투가 담긴 창법이었다.
‘이러니까 성격이 그렇게 배배 꼬였겠지.’
자기가 가진 재능에 비해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채 나이 많은 집안사람한테 핍박이나 받고 있었으니.
서문경이었다면 진즉 돈을 훔쳐서 가출이나 했을 것이다.
피식 웃은 서문경은 이틀 전부터 왕래가 잦아진 양무연을 떠올렸다.
‘다른 애들이랑도 친해지면 좋겠네.’
천무학관에 얼마나 붙어 있을지 몰라도 나쁜 인연으로 헤어지고 싶진 않다.
마음을 정리한 서문경은 허공을 향해 철창을 휘둘렀다.
“이건, 이렇게…….”
부쩍 여름이 다가오는 더운 날.
뜨거운 바람이 서문경의 솜털을 간질이고 있었다.
신비한 무공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