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44화 (42/250)

따라쟁이 창 (4)

신호는 없었다.

비무대에 자리를 잡은 순간.

두 창술가가 서로를 향해 돌진했다.

“방구석에서 창밖이나 보던 애가…… 대가리가 굵었구나!”

양철심이 양무연의 과거사를 들먹이며 분노를 토했다.

아주 조금, 찰나 동안 자신이 멈칫거리길 원해서 뱉은 말처럼 들렸다.

“……추해.”

어째서 이런 작자를 두려워하고 있었던 걸까?

또,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양무연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양철심의 선공을 역으로 후려쳤다.

카가강!

양철심의 몸이 속절없이 밀려나갔다.

체구의 차이와 내공 수위로 따지자면 불가능한 일.

단 일합만으로 양무연이 무엇을 펼쳤는지 짐작이 갔다.

‘전신 발경?’

외공에 관한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펼칠 수 없는 기교.

당연하지만 신창양가가 양무연에게 가르친 적은 없었다.

양철심의 인상이 더럽게 구겨졌다.

“겨우 열흘 사이에……!”

자기가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는 걸까?

양철심은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 이길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직감했다.

‘힘줄을 하나 끊어 놓는 수밖에.’

어차피 양무연은 신창양가의 직계가 아닌 양녀일 뿐.

하물며 신창양가에서 가지게 될 입지를 생각하면…… 자신보다 뛰어난 어린 창술가는 존재해선 안 된다.

‘여기서 전력을 다한다.’

양철심의 전신 근육이 맥동했다.

철창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작은 폭풍이 일어나고 허공이 찢어진다.

강철이 휘어지고도 남을 굴강(屈强)한 연계.

비무를 지켜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골이 송연해지는 일격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쩌적, 쩍!

양무연의 창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했다.

몸에 스치기만 해도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뭉개지고도 남는다.

눈이 화등잔처럼 커진 남궁명이 서문경에게 다가갔다.

“이건…… 가정사로 치부될 친선 비무가 아닐세.”

망나니라는 소문 이전에 뛰어난 신진고수.

서문경이라면 저 싸움을 말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냥 둬.”

“……무책임한 소리하지 말게. 나라도 무사부를 데려와야겠네.”

헛소리를 이어 갈 여유가 없다.

남궁명이 등을 돌리자마자 서문경에게 어깨를 붙잡혔다.

“네가 쟤 동기라면, 믿고 기다려.”

“그게 무슨……!”

허튼소리란 말인가.

인상을 찡그린 남궁명이 어깨를 털어 버리려던 그때였다.

투웅!

정과 반.

한 치도 다르지 않은 두 창이 교차한다.

“……!”

자신의 수를 앞선 것일까?

양철심의 몸이 한순간 굳었다.

양가창법을 눈대중으로 따라 하는 것에 불과한 양무연의 창법이 아니었다.

“감히!”

인정할 수가 없어서, 양철심은 은연중에 살기를 드러냈다.

그러자 양무연의 표정이 무너지는 것이 보인다.

본가에서 수없이 마주한 벽에 부딪힌 경험을 되새기게 만들고자 했다.

‘역시.’

제깟 것이 아무리 커 봐야 자신에게 대항하진 못한다.

본디 그러했을 터인데.

스윽.

양무연이 일보 전진했다.

과거로부터 여태까지.

줄곧 갇혀 있었던 한 칸짜리 방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몸부림치듯.

양무연의 창이 허공을 격했다.

쩌적……!

양철심의 늑골이 두세 개쯤 부러지는 소리가 비무대 중앙에 울렸다.

“커윽……!”

비무를 당장 멈춰야 하는 중상.

적어도 보름은 앓아야 할 부상이다.

그걸 알아차린 양무연이 창을 회수하고서 뒤로 물러나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양철심은 전보다 철창을 굳세게 쥐었다.

‘역시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어!’

지금 꺾지 않으면 가문의 시선이 양무연에게 쏠릴 터.

그때가 되면 위아래가 뒤바뀌게 된다.

방계에서 온 입양아 따위에게 져서야 직계의 위신이 서질 않았다.

비무 중에 일어난 사고.

그거면 열흘의 면벽으로 끝난다.

‘직계도 아닌 방계인 네가…… 양가를 대표하게 둘 순 없다!’

양무연의 창극이 완전히 땅에 맞닿을 정도가 되자, 양철심은 내상이 심해지는 것을 각오하고 보신경을 펼쳤다.

꽈앙!

비무대를 받치는 주춧돌 일부에 금이 갔다.

그만큼 전력을 다한 보신경의 속도가 창에 휘감기니.

살기가 깔린 일선(一線)이 양무연의 손목을 겨냥했다.

“……늘 이랬지.”

양무연은 작게 입술을 달싹였다.

본가에 큰 행사가 있을 때, 승리를 잡아가려던 찰나마다.

양철심은 살기를 내비치며 강격을 날리곤 했다.

특히 손목을 노려서 창술가로서의 생명을 끊는 걸 시도했다. 과거로부터 쌓인 공포와 무력함을 되새기게 만드는 악의였다.

그때마다 두려움에 꺾였다. 자존심은 다시 깎였다.

자연히 누구에게 다정할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양가창법에 얽매이지 않아도 될 창법을 만든 지금도?

‘……확신은 솔직히, 아직 없어.’

어제 창안한 창법을 신뢰하기엔 시간이 짧다.

하물며 창안자가 이제 겨우 열네 살인 자신이다. 그러면서 오만하게 무공의 이름을 자기 것으로 땄다.

이유는 간단했다.

-네 것이잖아.

줄곧 비무를 함께한 망나니, 서문경의 한마디가 마음을 동하게 했다.

‘왜였을까?’

양무연은 아직도 알지 못했다.

항상 남의 생각과 선택에 운명이 달라진 삶이었기에 자기 자신을 관조하는 일이 익숙지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지 않을까.

‘난 이제 따라 하지 않아.’

양무연의 눈동자가 깊어졌다.

휘르륵!

양철심이 전력을 다한 일로(一路).

그 사이로 창을 비집어 넣었다.

“가소로운!”

감히 자기한테 힘 대결을 도전한 건가?

양철심은 음험하게 웃으며 창을 비스듬하게 내리찍었다.

양무연의 어깨를 탈구시키거나 힘줄을 끊어 버릴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

양철심의 입가에서 의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단 한순간.

두 창술가가 교차하는 순간에 양철심이 철창을 놓친 것이다.

정과 반.

공수의 유전(流轉).

그저 두 창이 얽히는 순간에 신비한 일이 일어났다.

그렇게밖에 이해하지 못했다.

손목이 시뻘겋게 짓눌린 자국만이 남아 있을 뿐.

“사, 사술…….”

“…….”

“이런 건 창법이 아니야! 금나수 같은 잡기로 나를 희롱한 것이냐?”

절대 인정할 수 없다.

양철심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양무연의 어깨를 붙잡았다.

“내 창을 떨쳐낼 정도였다면 손목이 부러졌겠지! 그러지 않으냐?”

“……그쯤 하지요.”

“닥쳐라!”

“외인 앞에서 너무 추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온화하게 웃는 양무연.

그녀의 눈동자를 보고 양철심은 자기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음을 깨달았다.

또, 주변의 시선을 뒤늦게 느꼈다.

“추하지.”

“…….”

기다렸다는 듯 맞장구치는 서문경과 침묵하는 남궁명.

망나니야 원체 뺀질거린다지만, 남궁명은 양철심에게 큰 실망을 받은 듯했다.

양철심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아니, 아니야. 이건…….”

“선배. 가정사라고 하여 지금까지 지켜보기만…… 아니, 누가 만류해서 참고 있었소만.”

남궁명의 목소리에 고저가 없이 무심하고 냉정했다.

“아까부터 선배의 초식에 자비심이라곤 없었소. 내가 어떻게 생각하면 되겠소?”

“그건…… 양가의 비무는 원래 실전적으로…….”

“명가의 무인이라는 작자가 두려움에 떨고 있군. 진심이 보이질 않아.”

남궁명의 말에 서문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선배. 아까부터 손목을 집요하게 노리던데…… 힘줄이 끊어져서 엉망이 되었다면 어쩔 작정이었어?”

“그럴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언제까지 발뺌할 생각인지 모르겠네. 그냥 사고라고 했겠지.”

“허튼, 허튼소리를……!”

패배에 큰 충격을 받은 듯 비틀거리는 양철심을 보니, 서문경은 헛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아무리 봐도 백전백패.

처음부터 기량의 차이가 현저했는데, 왜 저렇게 억울해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냥 간단하게 말했다.

“내가 학관주한테 가서 이 일을 조사해 달라고 하면 떳떳해질 수 있을 텐데, 어때?”

“아, 안 된다!”

“내 성격이 좀 꼬여 있어서 저런 말을 들으면 하고 싶어지더라고.”

서문경은 히죽 웃으며 절망하는 양철심을 지나쳤다.

이제 막 비무를 끝내서 땀범벅인 양무연.

체구가 머리 하나 만큼 차이 나는 외가고수의 강격을 받아 내느라 팔뚝이 뻣뻣하게 굳은 채 부어 있었다.

“아프냐?”

“……아니.”

“또 허세 부리네. 어디 보자.”

꽈악.

서문경은 양무연의 팔뚝을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그러자 양무연이 윽, 하는 소리와 함께 오른손을 황급히 빼냈다.

“뭐야, 눈치 없어? 그냥 두라는 거잖아.”

“툴툴 대는 거 봐라. 누가 걱정해 주면 감사합니다, 라고 할 것이지 잔말이 많아.”

그 말에 양무연이 흠칫 놀라며 어깨를 움츠렸다.

“……걱정?”

“오냐, 워낙 속이 배배 꼬여 있어서 그런가 걱정으로 안 보이냐?”

“……고마워. 됐지?”

“엎드려서 절 받았네.”

“…….”

양무연은 고개를 홱 돌리고는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양철심을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초라하고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나?

별다른 동정심은 들지 않았다.

그를 걱정하거나 안쓰러워하기엔 많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겨우 한 번의 패배로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굴어서, 우스웠다.

“양 선배.”

“……뭐냐. 이제 비웃을 작정이냐?”

“그럴까 했어요. 내가 물러나는 와중에 급습한 것까지 완전히 되돌려 줄까, 생각했죠.”

평소 표독스럽게 남을 비하하고 깎아내렸던 양무연이라면 양철심을 밑바닥까지 짓눌렀을 터였다.

과거에 겪은 굴욕까지 곱해서.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지금은 뭔가…… 후련했다.

양가창법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난 것 같아서.

양무연은 빙긋 웃었다.

“하지만 우린 정파잖아요. 또, 아직은 제가 일 승이니까.”

“…….”

“다음에 또 싸우면 모르죠. 그렇죠?”

“…….”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일까?

양철심이 대답하지 않고 버티기만 하자, 양무연이 비무대에서 내려갔다.

그걸 지켜본 서문경은 두 눈을 끔뻑거렸다.

‘뭐 하는 거지?’

이 상태를 보면 보나 마나 자기 본가에서 수작을 부려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아니, 애초에 자기 손목을 노린 놈한테 무슨 자비야?

아직 애가 어려서 그런가 제대로 된 처리를 모른다.

서문경은 양무연이 아직 아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며 양철심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이, 선배.”

“……넌 또, 왜?”

“설마 이 희대의 개짓거리를 조용히 넘어가겠단 심보는 아니지?”

“무연이가 용서해 주지 않았느냐. 앞으로 내 과거를 후회하고, 태도를 고칠…….”

그 말에 가소로움을 느낀 서문경이 전음을 보냈다.

-정작 저 애가 양가의 대표 후기지수로 대두되면 배알이 꼴려서 손발이 덜덜 떨릴 텐데 말이야. 그치?

“……!”

정곡을 찔린 것처럼 눈을 크게 뜨는 양철심.

곧바로 부정하지도 못하는 걸 봐선 저놈도 애다.

그것도 심보가 못돼먹은 애.

서문경은 양철심의 귓가에 다가가서 은밀하게 속삭였다.

“내일부터 귀가 많이 간지러울 거야.”

적어도 자신이 당한 것 이상으로 하루 종일 시달리리라.

서문경은 악랄하게 웃으며 양철심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네가 아무리 잘났다고 한들, 날 집안에서 내치게 만들 순 없어!”

발작하듯이 양철심이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전히 패배의 상처가 진하게 남은 얼굴에 분노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멀리서 구경하던 남궁명이 순간 움찔할 정도.

하지만 서문경은 무명신투와 척안룡한테도 두려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얼굴에 힘 들어가네? 누가 웃나 해 볼까?”

“…….”

양철심이 끝내 두 무릎을 꿇었다.

다음 날.

남궁명에 의해 서문경은 이 학년 선배를 무릎 꿇린 신입생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선배는 소문을 정정하지 않은 채 신창양가로 떠밀리듯 쫓겨났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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