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39화 (37/250)

분심조화결 (4)

분심조화결.

이름만 들었을 때는 잡스러운 심공인 줄 알았다.

무영신투가 진짜 신공을 베풀 리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서문경에게 그는 마교에게 도망치다 붙잡힌 고수에 불과했다.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무영신투를 오해하고 있었나?’

진짜배기 신공이었다.

분심조화결의 비급을 받는 순간 신령한 영성을 느꼈다.

연준호에게도 느끼지 못한 거대한 영기.

그것이 자그마한 책에 잠들어 있었다.

글줄 하나하나에 담긴 행간과 가르침이 직접적으로 와닿았다.

‘내가 죽기 직전에도 신비에 가까웠던 상단전의 원리가 이리 자세히 적혀 있다니……!’

서문이현의 안법이 명검이라면, 분심조화결은 기록으로만 남은 간장·막야 같은 전설의 무구.

자칫 잘못하면 의식을 잃는 동자료혈과 아문혈을 다스리는 방식이 너무 과감했다.

내공 수발의 세심함이 극에 이르지 않은 이상에야 불가능한 운용이니.

-주 무사는 나중에 숙소에서 따로 가르쳐 주마. 무사부께서 화를 내도 참아라.

혹여나 주백경이 주화입마에 이를까 싶어서 충고했다.

그와 동시에 전생의 기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무영신투는 정말로 신공을 찾다가 붙잡힌 걸지도 몰라.’

마교가 천무학관을 없앤 시기와 무영신투가 무사부로 있던 시기가 겹쳤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후기지수가 떼죽음을 당하는 걸 보고 신공의 필요성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 이렇게 분심조화결을 베푸는 걸 보면…….

“사부는 정말 마교를 싫어하시는군요. 이렇게 신공을 아낌없이 보여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마교와 대적할 각오를 예전부터 다지고 있었으리라!

서문경이 시선에 무영신투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지! 누가 마교를 좋아하겠느냐!”

사실 아무래도 좋았다.

서문경이 본가에 자기 신상을 일러바치지 않았으면 해서 듣기 좋은 소리만 주절거렸다.

……그러다 슬금슬금 부아가 치밀기도 했다.

“한데 익히는 게 그리 쉬우냐?”

“감각이 생경하긴 하지만, 심상 세계를 구축할 때처럼 마음을 나누고…… 제멋대로 움직이려는 내력에 순서를 두어서 운용하면 됩니다.”

“……그게 쉽다고?”

“검사가 적이라면 칼을 휘두르기 전에 끝내면 될 것이고, 권사가 적이라면…… 어렵긴 하겠지요.”

“……아, 쉽구나.”

“사부라면 금방 익힐 수 있을 겁니다.”

줄곧 건방지던 말투가 왠지 모르게 온화해졌다.

저 속 검은 것이 자길 놀리려는 건 아닐까?

무영신투는 이걸 기뻐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심지어 성하민도 마찬가지였다.

붕, 휘르륵……!

철필(鐵筆)과 칼.

두 가지를 양손에 들고서 자유자재로 휘두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서로 다른 체계를 갖춘 무학을 손아귀에서 굴려댔다.

“이거 진짜 재밌어요!”

성하민이 깔깔 웃으며 수련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가뜩이나 흉가에 가깝던 오두막이 흙먼지로 뒤덮였다.

‘몸이나 누일 수 있을까?’

속이 시꺼메지는 것을 느꼈다.

오걸이라 불리는 자신이 새파랗게 어린 두 후기지수한테 질투를 느끼게 될 줄 몰랐다.

특히 서문경은 기이한 신공을 익히고 있었다.

“……아까부터 삼단전의 균형이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는데, 그건 뭐냐?”

“제가 익힌 심공입니다. 두 구결을 지니고 있는데, 분심조화결과 아주 잘 어울리네요.”

“삼단전을 조율하는 심공이라고? 그건 난생처음 듣는구나.”

“가르쳐 드릴까요?”

그 말에 무영신투는 기가 막혔다.

듣기만 해도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어려울 게 분명했다.

‘저 열매는 시다. 셔.’

애초에 제대로 알려 준다는 신뢰가 없지 않나.

……기분이 울적해졌다. 지금이라도 관주를 찾아가서 무사부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서문경이 본가에 자신의 신상을 고한다면 또 쫓겨 다녀야 할 테니까.

‘으아, 시X. 어쩌다가 일이 꼬인 거지?’

애초에 천무학관주의 부탁을 들어주지 말았어야 했나?

번민에 빠진 무영신투의 시선에 주백경이 들어왔다.

제일 인간적인 녀석.

저 아이라도 제자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부쩍 들었다.

“야, 너 잠깐 나 좀 따라와라.”

“……예?”

“내가 잡아먹겠냐, 안 때릴 테니까!”

무영신투가 주백경을 데리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 사이에 서문경은 분심조화결을 계속해서 연습하고 있었다.

‘정말로 대단한 신공이야.’

천주심경이 엄청난 심력을 소모하는 것에 비해, 분심조화결은 한번 감을 익히면 무의식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스윽, 탁.

왼손으로 무공사전을 펴고 닫는 것과 동시에 오른손으론 서문검법을 펼친다.

이것이 막힘없이 이어졌다.

진정한 융통무애가 이런 것인가 싶을 정도였다.

‘사천삼악의 합공도 이렇게 유려하진 않을 텐데.’

한때 사천성에서 악명을 떨쳤던 삼인조.

그들조차도 이렇게까지 한 몸처럼 움직이진 못했을 것이다.

왼손에 무공사전을 들고서 싸운다는 약점을 타파할 잡기.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기예가 바로 분심조화결이었다.

‘이대로 더 익숙해진다면 내가 원하는 수준까지 끌어 올릴 수 있겠어.’

비무나 생사결 같은 일대일이 아니라 수십과 싸우더라도 무공사전을 참고삼아서 싸울 수 있는 경지.

그렇게 서문경은 분심조화결을 쌍수(雙手)에 집중시키고 있었다.

석양이 천하를 물들이는 순간까지도.

* * *

같은 시각.

연준호는 청겸, 유화, 양무연과 함께 객잔에 모여 있었다.

동기끼리 한번 제대로 모여서 밥이나 먹자는 뜻이었는데 대화의 화제가 몹시 불편했다.

“자네, 망나니랑 같이 다니더니 변했어.”

여전히 시뻘건 영웅건이나 메고 다니는 청겸.

그가 히죽 웃으며 자신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은연중에 불쾌함을 느꼈지만,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기 싫어서 빙긋 웃었다.

다만 뼈 있는 말을 남겼다.

“망나니도 없는 자리에서 남 욕을 하진 않았네.”

“……크흠.”

그렇게 말하자면 청겸도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물 잔이나 홀짝이다가 유화에게 도움을 청했다.

“유 소저가 생각하기엔 어떤가?”

“옥검께서 유난히 서문 공자를 많이 두둔하긴 하지요. 저에게 들으라는 듯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고요.”

“역시, 그렇지?”

청겸의 어깨가 위로 치솟았다.

연준호는 그 꼴을 보고도 화를 내진 않았다.

다만 웃음이 짙어졌다.

“그래도 동기 중에 가장 강한 건 부정할 수가 없지. 백련이 아니라 나였어도 패했을 거야.”

“……그거야 그렇지만.”

어제 그렇게 처참히 진 양무연이 불쌍하지도 않나?

청겸은 양무연의 눈치를 살폈다.

기분이 상하지 않았으면 했지만, 연준호의 말을 꺾어 주길 바라기도 했다.

그런데 그녀의 태도가 뭔가 이상했다.

“많이 배우긴 했어.”

양무연은 기가 죽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솔직하게 말해서, 머리가 식고 나니 서문경의 조언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검사라고 듣긴 했지만, 창술가로서 조예가 부족하지 않아. 가전무공으로 십팔반을 익혔다는 게 허세는 아닌 것 같고.”

“……소저?”

“진짜인 걸 어떡해.”

양무연이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다른 후기지수들이 보기에도 흑심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그저 몹시 진지할 뿐이어서, 대단하게 보였다.

“그렇게 지고도 하루 만에 정신을 수습하다니, 대단하군.”

“약 오르긴 했지만 틀린 말을 하진 않았으니까.”

그렇게 독기가 가득하던 양무연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시원시원한 소회였다.

나름 그녀를 파악했다고 생각한 유화의 눈이 커졌다.

“……속이 넓으시네요.”

“곯아 있을 수는 없으니까. 내가 그 망나니보다 약하다는 것도 인정은 해야지.”

언젠가 따라잡으리란 각오가 가득했다.

그 모습을 본 청겸이 흐뭇하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역시 백련이야. 눈치를 본 내가 민망해지는구먼.”

“됐어. 이게 뭐 잘한 일이라고.”

양무연은 뒤늦게 나온 식사를 뒤적거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서문경이 말한 단점과 묘리를 모두 습득하더라도 이길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할 거 같았다.

애초에 격의 차이가 났다.

“한 삼십 일 뒤에 여러 비무가 치러질 텐데, 그때 갚아 줄 수 있으려나.”

“가능할 거예요.”

유화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다 문득 연준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문경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나마 나아져서 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그것이 마뜩잖았다.

“백련이야 자기 무공에 도움이 된 사람에게 친절해질 수 있다지만, 저는 여전히 망나니가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긴 해.”

청겸이 유화의 말을 거들었다.

단순히 성격이 나쁘다면 모를까, 열흘 넘게 불야성의 주루에서 있었다는 것이 정파답지 않았다.

그걸 묵묵히 듣던 연준호가 한마디를 툭 던졌다.

“그 녀석은 상관없다고 말할걸.”

“그게 무슨 말이죠?”

“말 그대로야. 누가 뭘 얼마나 싫어하든, 상관하지 않을 거라고. 그러니까 입관 시험 때 관주님과 무사부님들 앞에서 그렇게 말했겠지.”

연준호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만약 반대라고 생각해 봐. 네가 관 때문에 위험에 처했다고 해도 금의위이나 동창 앞에서 대명을 깎아내릴 수 있겠어?”

“……!”

“그래. 바로 그 차이야. 경이가 진짜 망나니일지언정 병폐를 남 눈치 보면서 넘어가진 않는단 거지.”

연준호가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났다.

틀린 말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자리를 싸하게 만들었으니 앉아 있기가 불편했다.

그래도 하려던 말은 꿋꿋이 덧붙였다.

“여기가 앞으로 누구 뒷담이나 하는 자리가 된다면, 나는 출석하지 않을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연준호가 객잔에서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무연도 수련을 핑계로 떠났다.

……적어도 유화와 청겸이 보기엔 그러했다.

“어쩌다 우리가 나쁜 사람이 됐죠?”

“그러게.”

두 후기지수는 조용히 밥만 먹다가 떠났다.

* * *

“벌써 열흘짼가.”

천무학관에서의 생활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서문경은 이마에 맺힌 땀을 슥 닦아냈다.

어느덧 여름이 가까워서인가, 날이 점차 더워졌다.

그에 반해 달라지지 않은 점도 있었다.

‘준호와 양무연이랑은 가벼운 인사 정도는 하는데…… 아직 다른 아이들은 마주친 적도 없네.’

고검과 둔걸, 검봉과 운룡.

그 넷은 천무학관에서 보기가 어려웠다.

특히 둔걸은 다니고 있긴 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언젠가 연이 닿으면 만나긴 하겠지.’

비무를 통해서 무공을 수집하는 것보다 분심조화결을 숙하게 익히는 게 먼저다.

그것부터 되어야 수집한 무공을 제대로 펼치거나 상대의 움직임을 무공사전으로 파악할 수 있을 테니까.

‘……사실은 아무도 안 받아 줘서였지.’

분심조화결을 익히고 일주일.

무사부나 천무학관 선배에게 비무를 청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받아 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는 아예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도망치는 이도 있었다.

‘역시 준호가 말한대로였나…….’

천무학관까지 온 후기지수라면 무공을 자기 자신으로 여겨, 적수 또한 격에 맞아야 한다고 여기는 족속들.

그 기준에서 망나니임과 동시에 천무학관에 입관한 이유조차 불분명한 고수, 서문경은 꺼림칙하기 그지없을 터였다.

기분이 나쁘긴 해도 서운하진 않았다.

‘어차피 나도 제대로 된 무공만 사전에 담고 싶으니까.’

가전무공에 여러 가질 뒤섞어 봐야 잡스러워질 뿐.

검보인 번천광검결이 그렇듯. 연준호가 지닌 매향지로의 향취를 서문검법에 담고 싶었다.

문제는…….

“군문의 직선적인 무공에 화산파의 화검이 어울리겠냐?”

남의 비급깨나 훔쳐보았다는 무영신투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그도 고개를 내저었다.

서문검법과 매화검법.

그 둘은 아예 상극에 가까웠다.

상대를 해하기 위해 직선으로 움직이는 검에 감각을 희롱하는 화려함이 담길 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첫 만남에서 연준호의 검무를 본 주백경이 탄식한 것이다.

‘그렇게 좋은 걸 보고도 얻어 갈 수가 없으니까.

이건 나도 마찬가지네.’

서문경이 아쉬움을 뒤로 하고 무공사전을 펼치니.

[양가창법-위]

[양가창법의 수련 과정을 창술의 천재가 눈으로 익혀서 만든 무공이다.]

[직접 익히거나 책장을 소모하여 즉시 펼칠 수 있다.]

서문창법에 담아도 어색하지 않을 창법이 눈에 들어왔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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