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38화 (36/250)

분심조화결 (3)

무영신투.

도둑놈인 주제에 천하십대고수의 윗줄, 오걸에 속한 초절정고수다.

마교가 나타나고 나선 아예 북해 너머로 튀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탓하는 무인은 없었다.

‘도둑놈 새끼가 그렇지.’

도둑이 목숨 아끼는 게 특별한 일인가?

그냥 그러려니 했다.

나중에 천마한테 직접 붙잡혀서 문제지.

-사, 살려 줘!

-아아악!

끔찍하게 큰 목청이 정의맹의 담벼락을 열흘 동안이나 두들겼다.

당연하지만, 누구도 구하러가지 않았다.

그럴 만한 상황도 아니었고 무영신투의 인망이 최악이었다.

나무막대에 매달린 꼬락서니가 추하게 보이기도 했다.

“망신시키지 말고 얼른 죽어라!”

“어딜 도망쳤던 사람이 구해 달라고 그러는 거냐!”

불안함과 초조함이 죽어도 마땅한 사람 앞에서 공격성으로 변화하였다.

서문경은 그것을 보고도 딱히 말리지 않았다.

어차피 천마에게 죽을 고수라면 긴장과 불안을 푸는 데 써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유언을 듣기 전까지는.

-나는 도망친 것이 아니야……! 천마에게 이길지도 모를 신공을 찾으러 간 거다……!

-소득이 있었다! 내 노력을, 죽음을 이렇게 무의미하게 만들지 말아다오……!

죽기 싫어서 하는 말일까, 진실이었을까.

그때는 확인할 방도가 없었다.

천마와 칠로두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무영신투를 구출할 수가 없었다.

한데 지금은…….

-네가 진짜 사람이면 열넷에 초절정고수이진 않겠지. 아니면 알에서 태어났든가.

‘와, 진짜 그때 그 작자라고?’

건들거리는 것이 보통이 아니다.

나무막대에 매달려 처절하게 목숨을 구걸하던 그 무영신투가 맞나 싶었다.

하물며 이 시기에 천무학관에 있었을 줄이야.

서문경은 무덤덤한 낯빛으로 그를 맞이했다.

“뉘십니까?”

“뉘긴, 당연히 학관에 속한 무사부지. 잡기술 수업을 신청하지 않았더냐?”

“아, 그랬지요.”

흉가에 가까운 오두막.

그곳의 주인임과 동시에 잡기술 수업을 담당하는 무사부가 무영신투였다.

말뚝의 암호문을 진즉 해석했기에 서문경은 놀라지 않을 수 있었다.

오히려 무영신투가 걸어온 시비를 되받아쳤다.

-그나저나 신투께서 여기 계신 걸 알았다면, 아버지께 미리 말씀드릴 걸 그랬습니다.

-……네가 어찌!

-말뚝에 대놓고 자기 집이라고 써 놓고 놀라면 어쩌잔 겁니까?

-아니, 네가 그걸 풀었다고!

-풀만 하니까 풀었지요.

서문경은 무영신투의 눈동자를 보고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잡기술만 잘 가르쳐 주십시오. 그거 배우려고 신청했습니다.”

“……허허.”

만만하게 보던 시선이 착 가라앉았다.

무영신투의 신색에 교묘한 호기심과 의심이 드러났다.

‘겨우 열네 살 후기지수를 경계한다라.’

무영신투가 어떻게 오걸까지 올라갔는지 알겠다.

서문경은 자질구레한 대화와 전음을 동시에 나눴다.

“수업은 언제부터입니까?”

-호북성 분타주와 안면이 있습니다. 그가 신원을 증명할 거고 어차피 마교한테 노려지고 있으니까 헛생각하지 마십쇼.

이렇게 말하면.

“당장 내일부터 시작하지. 수련장은 네가 본 오두막 앞이다.”

-마교가 유난히 너와 자주 마주치는구나? 이상하게.

무영신투가 의심병 환자처럼 받아치는 것이다.

알아서 엎드리길 바랐겠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도 선배로 예우해 줄 생각이 들면 병신이었다.

서문경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완전 흉가던데요. 거기 사시긴 합니까?”

-잡기술이나 제대로 잘 가르쳐 주세요. 그 마교한테 안 죽게.

“이거 웃긴 놈이네.”

무영신투가 히죽 웃으며 서문경의 팔뚝을 툭툭 쳤다.

이래도 안 굽히겠냐는 의도가 보였지만, 서문경은 꿋꿋했다.

어차피 마교가 나타나면 오걸이든 천하십대고수든 의미가 없었다.

하물며 전생에 도망이나 쳤던 무영신투와 하하호호 웃으며 친분이나 다질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냥 본론으로 들어갔다.

“내일부터 저와 여기 있는 성하민, 호위인 주백경까지 셋이서 가겠습니다.”

“오랜만에 재밌는 제자가 들어왔네.”

무슨 깡으로 이러는 걸까.

무영신투는 서문경의 태도가 기이하게 보였다.

자기 정체를 알고도 이렇게 담대하게 구는 후기지수는 처음이었다.

아니, 구파일방의 장로도 저리 무성의하진 않을 것이다.

어이가 없어서 한마디를 물었다.

“그래서 뭘 배우고 싶은 거냐?”

“좀 희귀한 잡기입니다.”

“자세히 말해라.”

“싸우면서 한손으로 책장 넘기면서 읽고, 생각도 하고 싶고, 한눈도 팔 수 있는 그런 거요.”

“……와. 진심이냐?”

이거 생각보다 더 맛 간 놈이 아닐까?

무영신투는 동의를 구하기 위해 주변에 서 있던 후기지수에게 시선을 던졌다.

이에 연준호와 성하민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예전부터 저랬다는 뜻이다.

미간이 저절로 모아졌다. 평생 잡기를 배우고 만들었다지만, 저런 걸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미친놈일세.”

“흔히 듣습니다.”

“태연히 대답할 수 있는 말이더냐, 이게?”

“척 보니 무사부께서도 여러 번 들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이?”

기함도 나오질 않는다.

자고로 미친놈과는 정상적인 대화를 시도하는 게 어리석다고 배웠다.

무영신투는 한숨을 푹 내쉬며 위장 신분을 밝혔다.

“무영신(舞迎新)이라고 한다. 그냥 아저씨라고 하든, 사부라고 하든, 괘념치 않을 테니까 마음대로 불러라.”

“예, 아저씨.”

“……에휴.”

도대체 뭘 가르쳐야 서문세가한테 일러바치지 않을까?

골똘히 생각하다가 한 가지가 떠올렸다.

무영신투의 얼굴에 지저분한 미소가 도드라졌다.

“마침 한 가지가 있구나. 네가 터득할 수 있냐가 문제지만.”

“있습니까?”

이번엔 서문경이 놀랄 차례였다.

혹시 있나 해서 물어봤는데 진짜 있을 줄은 몰랐다.

‘역시 도둑이 잔재주는 기가 막혀.’

어려운 거야 각오했다.

싸우는 도중에 책을 흘낏거리면서 생각까지 분리한다는 건 쌍검술보다 어려웠다.

이제야 도둑놈과 말이 조금 통한다.

서문경은 씨익 웃었다.

“내일 수업, 기대하겠습니다.”

“……클클. 내일 군소리나 하지 마라.”

초절정고수라도 익히기가 불가능할 신공.

신공을 얻은 장본인인 무영신투조차 학을 떼었는데, 새파랗게 어린아이가 가능할 리가.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 지저분한 미소가 맺혔다.

그저 연준호와 성하민의 등줄기에 오한이 내달렸을 뿐이다.

-처음 보는 데도 저렇게 기 싸움이라니…….

-나는 내일부터 저 사람한테 배워야 한단 말이야!

서문경의 강압으로 무영신투의 수업을 받게 된 성하민은 눈물을 글썽였다.

* * *

“저 어떡해요!”

‘……아.’

주백경은 눈물을 글썽이는 성하민을 앞에 두고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안 그래도 여자를 대하는 것이 부끄럽고 쑥스러워서 술만 퍼마셨는데, 어린애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나마 조금 나은 건 말이라도 붙일 수 있다는 점.

주백경의 입술이 덜덜 떨렸다.

“원래 공자님이 그렇습니다. 저도 많이 경험해 봤지요. 그래도 무서워하실 건 없습니다.”

“무사님도 저랑 같이 수업을 받으러 갈 텐데요?”

“……?”

순간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서문경이 멋대로 성하민의 수업을 신청했다는 것까진 이해했다.

하지만 자신까지?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주백경은 얼음장처럼 굳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천무학관은 문외자 출입 금지 아닙니까?”

“그 수업은 가능하대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주백경의 눈동자가 불안함으로 뒤흔들렸다.

무한으로 오는 데까지 약 사오 십일.

그동안 서문경과 함께 다니며 온갖 수련을 당했다.

천하의 어떤 무인도 하루 종일 동공을 행하며 심상 수련까지 덧붙이진 못했을 것이다.

한데 이제는 천무학관의 수업이라?

……쉽지 않을 것이란 직감이 섰다.

“저, 저는 신청서를 넣은 적이 없습니다.”

“문경이가 가자는데 거절하실 수 있어요?”

“……크으윽!”

상상만 해도 공포가 엄습한다.

나쁜 제안은 아닐 터였다.

자신이 성장하기 위한 수업이 되어 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순탄치 않을 것이다.

순탄해도 서문경이 그렇지 않게 만들 것 같았다.

주백경은 실소를 흘리며 성하민에게 물었다.

“어떤 무사부셨습니까?”

“낭인 같아요. 근데…… 평범하진 않았어요. 실력을 숨기는 것 같기도 했어요.”

“소저께서 그걸 어찌 아십니까?”

“그냥 감이요.”

그 말에 주백경은 다소 안심했다.

후기지수에 불과한 성하민이 실력을 숨기는 것 같다고 느꼈다면 딱 그 정도일 테니까.

‘설마…… 검치나 척안룡 같은 괴물은 아니겠지.’

기껏해야 지금까지 한 수련에서 조금 덧붙이는 정도이지 않을까?

주백경이 희망을 가지고서 빙긋 웃는 한편.

‘……재밌는 아이들이군.’

무영신투가 멀리서 그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앞으로 자신의 수업을 들을 후기지수와 무사라고 하니 흥미가 동했다.

특히 성하민에 시선이 갔다.

‘실력을 숨기는 것 같았다? 단순한 감인가? 그럴 리가 없는데.’

다른 무사부들이 자신을 무시할 정도로 기척을 죽였다.

내가기공을 연공한 흔적조차 없앴으니, 일개 마부만도 못하게 보여도 이상하지 않았다.

자기 정체를 아는 사람이라곤 학관주뿐이었건만.

‘이미 받은 부탁을 무시할 수가 없어서, 대충 시간이나 보내려고 했는데 재밌는 놈이 들어왔어.’

말뚝의 암호문을 독해한 것도 대단한데, 자신을 대놓고 무시하기까지.

무공을 가르치는 맛이 날 것 같았다.

‘일단은 같은 초절정고수여도 격이 다르다는 걸 보여 줘야겠지.’

불량배처럼 힘으로 드러낼 필욘 없었다.

내일 가르칠 신공으로 기를 죽일 생각이었다.

그렇게 얌전해지면 그때부터.

‘후학이나 남겨 볼까?’

비록 천무학관주는 싫어하겠지만, 알게 뭔가.

무영신투는 클클 웃느라 알지 못했다.

“저기서 뭐 하실까.”

성하민이 자신을 멀리서 발견하였다는 것을.

그녀가 범상치 않은 신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 역시.

* * *

다음 날.

“쉬운데요?”

“그러게. 이걸로 왜 겁을 주셨을까.”

성하민과 서문경이 하하호호 웃으며 서로의 성취를 칭찬했다.

그들이 좌절할 걸 기대하고 신공을 내준 무영신투로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 이게 아닌데…….”

속마음이 바깥으로 저절로 나올 정도.

그만큼 무영신투는 격동하고 있었다.

이런 미친 세상이 다 있나 싶어서, 하늘에게 원망을 퍼붓고 싶었다.

“이건 말도 안 돼…….”

분심조화결(分心調和訣).

언제 지어졌을지도 모를 왕릉에서 발견한 신공이었다.

마음을 나누고 조화롭게 다스린다고 하였다.

숙하게 익힌다면 두 가지 무공을 동시에 펼치고도 행공에 끊김이 없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익힐 수가 있어야지.

‘어떻게 마음을 둘로 나눠서 동시에 조율하고, 십이정경의 움직임까지 손아귀에 둔단 말이냐……!’

십수 년을 쏟아부었지만 감정 조절 장애밖에 남지 않았다.

고로 다른 놈들도 쉽사리 익히지 못하리라, 그렇게 여겼는데.

무영신투는 두 명의 천재를 보았다.

“너희…… 어떻게 하루만에 익힌 거냐?”

“사부님이 잘 알려 주셨죠.”

배시시 웃으며 대답하는 성하민이 있는가 하면.

“자기가 못 익힌 걸 가지고 화풀이하는 건 아니죠?”

처음부터 질문의 의도를 짚어 버리는 서문경이 있다.

무영신투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나머지 한 제자에게 풀었다.

“이놈! 너만 못 익히면 어떡해!”

“어윽!”

졸지에 정수리를 얻어맞은 주백경이 무영신투를 흘겨보았다.

“뭘 봐!”

따악!

하루만에 익히지 못한 게 죄란 말인가.

주백경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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