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37화 (35/250)

분심조화결 (2)

유쾌불파(唯快不破).

속도는 격파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쾌검을 중시하는 검객끼리 농담 삼아 꺼내는 말이기도 했다.

그 뜻이 신창양가의 동공과 양무연의 창술에 있었다.

한 번을 내지르면 허공에 잔영이 새겨질 정도였다.

‘확실히 빨라.’

나이가 어리다고는 하나 귀기가 어릴 정도로 신속을 수련한 창술가.

양무연의 분노는 우박이었다.

그것도 천둥과 함께 몰아치는 우박.

스슥.

공세를 견디지 못한 서문경이 옆으로 느슨하게 걸으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걸 본 양무연의 시선이 깊게 가라앉았다.

“……또!”

신묘하기까지 한 기교를 부려서 흘리거나, 한꺼번에 붙잡아버릴 작정일까?

그걸 알면서도 마땅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였다.

그저 몸이 기억하는 대로 휘두르며 전진했다.

일보에 이격, 삼격, 사격.

모든 것을 때려 박았다.

눈에 담았던 신창양가의 진수를, 본가의 직전제자가 펼치던 강격까지도.

그럼에도…… 닿지 않는다.

서문경이 당연하다는 듯 창대를 후려쳤다.

양무연은 몸이 옆으로 밀리는 것을 억지로 멈췄다.

“이익……!”

마음에 차지 않아서, 한 손으로 싸우는 동년배 하나 이기지 못해서.

너무 분해서 내쉰 한숨이었다.

신창양가의 동공을 최대한 일으켰음에도 서문경의 방어를 꿰뚫질 못했다.

“대체, 왜.”

양무연이 더 빠르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아까부터 서문경은 느릿하게 손으로 기교를 부리거나 은근슬쩍 반보를 내디디며 피했을 뿐, 반격하지 않았다.

마치 양무연이 스스로 깨닫길 바라는 것 같아서 심기가 불편해졌다.

“그냥, 말로……!”

“내기는 내기니까.”

서문경의 눈동자가 시퍼렇게 물들었다.

안법의 공능이 눈 전체를 점한 듯했다.

양무연으로선 아직 배우지 못한 기예인지라, 괜스레 부아가 치밀었다.

“쓰지 마!”

“그럴까?”

까짓것 들어준다는 듯.

서문경이 안법을 풀었다.

범상치 않던 눈동자가 원래 색을 되찾았다.

……그걸 보니 정작 양무연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진짜 풀라고 풀면 어떡해!”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서문경은 씩 웃으며 여유롭게 주변을 관조했다.

삼단전, 즉 정기신의 균형을 이룬 경지.

절정고수 이상에겐 신속만으로 승부를 결정지을 수 없었다.

공격이 아무리 빠르다고 한들 의념보다 빠를 순 없으니까.

대우주의 섭리에 도전하는 무인에게 있어 단순한 속도는 무용하다.

고로, 양무연에게 보여 주고 싶은 광경이 있었다.

꽈아악……!

네 손가락을 반으로 굽혀서, 단창.

양무연의 철창과 비교하면 길이가 삼분지 일도 되지 않는 무기로 가까이 다가섰다.

“나도 창법엔 조예가 조금 있는 편이라.”

“……그따위 손장난으로!”

양무연의 얼굴이 붉어졌다.

철창과 권법으로 분류되는 단창.

비슷하지도 않은 걸 가지고 창법으로 우기는 꼴이 화가 났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던 한 후기지수가 본질을 보았다.

“주먹을 창처럼 쓰다니, 대단해!”

천무신성 성하민.

그녀는 밝은 웃음을 지으며 서문경의 단창을 보았다.

형태는 권이되, 풀어 내는 과정은 창.

그것도 양무연이 펼치는 창법과 대단히 비슷했다.

중간에 책을 힐끗거린 게, 마치 상대의 무공을 훔쳐본 것 같았다.

카가각……!

창날과 사람의 피륙이 부딪친다.

그럼에도 서문경은 일절 밀리지 않고 전진했다.

단순히 힘과 공력이 더 강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양무연의 기세가 더 강했다.

그럼에도 밀렸다면 단연…… 묘리의 차이였다.

“내지르는 것에 집중하지 말고, 회천(回天)과 발경을 담는 거야. 빠른 것에 천관(千貫)의 힘을 더하면 넉넉잡아 세 배는 더 강해질 수 있지.”

“…….”

비무가 어쩌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지도의 장으로 바뀌었나.

양무연은 입술을 비틀었다.

서문경의 목소리에 호의가 가득 있었음에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질 않았다.

“……시끄러.”

낮게 중얼거리며 기해혈 쪽으로 파고들었다.

서문경이 단창을 고수한다면 어깨로 상반신을 후려쳐 버릴 심산이었다.

그러나, 일절 먹히지 않는다.

양무연은 어린아이를 대하는 미소와 마주했다.

“여기선 너무 급하게 들어왔어. 간합 사이에 심리 싸움을 걸었어야지. 네 동공에 신속의 장점이 있잖아.”

“…….”

“부족하면 부족한 걸 인정하고 나아가야지. 자존심이 밥 먹여 주고 목숨도 살려 주냐?”

“시끄러웟!”

내뱉은 말과는 달랐다.

조언 한마디, 한마디가 절실했다.

단둘이었다면 진지하게 곱씹으며 연습했을 터였다.

하지만 이곳엔 동기가 셋이나 있지 않나.

“나도 사문에선 재수 없단 소리 좀 듣는데, 이건 심하군.”

“……소문이 헛되진 않았네요.”

딱하다는 듯 혀를 차는 연준호와 도도한 목소리의 유화.

“잘한다, 잘해!”

자신에게 악감정이 있을 성하민의 응원까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언제까지 여유가 있나 싶어서, 절초를 연거푸 펼쳤지만, 서문경은 세 걸음 이상 움직이질 않았다.

조금 전까지 움직인 건 자존심을 챙겨준 거라는 듯이.

그것이 더 견딜 수가 없었다.

양무연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철창을 쥐었다.

“이길 때까지야! 못 끝내!”

“근기 하나는 대단하네.”

서문경은 빙긋 웃으며 주백경의 얼굴을 떠올렸다.

참을성이 대단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재능은 양무연이 훨씬 나았다.

‘문제는 고집이지.’

상황이 어떻든 간에 조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체화하는 것은 타고난 성정에 달려 있다.

그런 점에서 주백경은 괜한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머리가 부드러웠다.

그보다 어린 양무연은 왜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리는 걸까?

‘자기도 뭐가 더 옳은지 알고 있으면서 말이지.’

서문경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안법을 쓰지 않았음에도 양무연의 호흡이 가팔라지는 것이 보였다.

“슬슬 그만할까?”

“아직, 아직…….”

“지쳤잖아. 무인이 되어서 억지나 떼를 부릴 생각이냐.”

이만하면 충분히 알려 주기도 했다.

서문경은 지체하지 않고 수도를 휘둘렀다.

쩌억!

창대를 부러뜨리곤 넘어지려는 양무연을 가볍게 붙잡았다.

그것으로 비무가 끝났다.

[양가창법-위, 수집 완료.]

‘지금 양무연이 익힌 무공 중 가장 가치 있는 게 양가창법의 가짜란 말이지.’

흑선채를 비롯한 수적과 산적을 처리하면서 떠오른 가설이 있었다.

무공사전은 현재 가장 가치 있는 무공을 수집한다.

따라서 홍화연에게는 홍가권을, 양명성에겐 번천광검결을 수집한 게 아닌가 하는 가설.

아직은 생각에 불과하지만, 양무연을 상대하면서 신빙성이 있단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본 양가창법보다 미숙하지만…… 가능성이 커.’

보무동공? 사요심경?

처음 보는 무공명에 흥미가 동하긴 하나 거기까지다.

어느 연유인진 모르겠지만, 양무연이 스스로 창안하기 시작한 창법의 가능성은 더욱더 컸다.

‘양무연의 경향을 파악하기 전까지는 제법 고전했으니까.’

그 격을 스스로 높이게 도와주고 싶었다.

따라서 단창으로 여러 가질 보여 줬다.

그대로 자신에게 갚아 주길 바랐다.

……하지만 양무연은 그러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하늘을 부숴야 한다는 게 그 뜻이겠지, 아마.’

제대로 익히지도 못한 채 눈으로만 보고 따라 하는 듯한 양가창법.

그 형식에 얽매여 파격(破格)을 떠올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애초에 자기가 산의 정상에 올랐다는 것도 몰랐다.

눈앞에 더 올라갈 수 있는 거대한 나무가 있는데도 말이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서문경이 입술을 달싹였다.

“참견해 줄까?”

그 말에 헉헉거리던 양무연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뭘요?”

“알잖아.”

“…….”

양무연이 입술을 앙다물었다.

뒤이어 무언가를 곱씹듯 말하려다가, 고개를 돌렸다.

스윽.

두 동강이 난 철창을 붙잡고서 비무장에서 내려갔다.

“다음에는 이렇게 지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양무연이 비무장에서 조용히 떠났다.

그 뒷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비무를 지켜보던 후기지수들이 숨통을 틔웠다.

“백련도 범상치 않은 창술을 지녔는데, 역시 신동은 신동이군.”

“……허명은 아니었던 모양이죠.”

“대단해!”

패배한 동기 앞에서 소회를 나눌 수가 없었던 것이다.

특히 검봉, 유화가 향상심에 사로잡혔다.

“같은 기수의 망나니, 군문의 공자님께서 일인자가 되어서야…… 내 꼴만 우습게 되겠어요.”

서문경의 무공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동년배 중에 그보다 뛰어난 사람은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하지만 인품에서는 절대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유화의 눈동자가 매서워졌다.

“사람을 우습게 보는 건가요?”

“뭐가.”

그 사이에 서문경이 누런 고서를 흘낏거리고 있었다.

도대체 뭘 보는지도 모르겠는데, 자길 무시하는 것처럼 보여서 화가 치밀었다.

“끝까지 한손에 책을 들고…… 흘낏거리고…… 동기를 얼마나 우습게 만드는 건가요!”

“너도 비무대로 올라올래?”

서문경이 무신경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유화로서는 기가 찰 정도였으나, ‘윽’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차마 지금은 이길 자신이 없었다.

애써 표정을 고치는 것이 전부였다.

평소처럼 도도하게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삼십 일 뒤에, 학년별 비무 날이 있으니…… 그 뒤에 하지요.”

“오냐.”

다음에는 유화나 가르쳐 주면 되겠다.

서문경은 무공사전에 적힌 양가창법-위를 읽으면서 비무장 아래로 내려갔다.

[양가창법-위]

[양가창법의 수련 과정을 창술의 천재가 눈으로 익혀서 만든 무공이다.]

[직접 익히거나 책장을 소모하여 즉시 펼칠 수 있다.]

번천광검결처럼 보물이라는 소리는 일절 없었다.

그러나 창술의 천재라는 서술이 눈에 박혔다.

무공사전이 인정하는 재능을 양무연이 갖추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걸 스스로 막고 있는 것 역시.

서문경은 기가 막혀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준호야.”

“응?”

“백련 말이야. 본가랑 뭐 안 좋은 거 있대?”

“나야 모르지. 그래도 양 소저가 직접 자기 가정사를 말한 적은 없네.”

“그렇구나.”

연준호도 남궁명과 유화와 친할 뿐. 양무연이랑 가깝지는 않았다.

서문경이 아쉽다는 표정을 짓자 연준호가 피식 웃었다.

“정이라도 든 거야? 어제 그렇게 독한 소릴 했잖아.”

“앞으로 동기로 지낼 거니까 그렇지.”

“망나니답지 않네.”

연준호의 시선이 슬쩍 유화에게 향했다.

은연중에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표현하려는 것 같은데, 정작 유화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사저와 만날 일이 있어서 이만 가 보겠어요.”

이 학년인 동문이 있다고 했었던가?

어제 들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서문경은 빠르게 사라지는 유화를 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미운 털이 단단히 박힌 것 같지?”

“힘 센 망나니의 처지가 원래 그런 법이지.”

“연준아, 그 망나니한테 맞아 볼래?”

“따라해도 왜 하필 고검이야.”

연준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니, 서문경도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이와중에 성하민이 비무를 복기하며 손을 이리저리 휘둘러댔다.

속으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방금 펼친 걸?’

성하민이 내지른 단창에서 묻어나온 회천과 발경.

동공의 힘이 부족해도 요결은 정확했다.

‘이게 무공사전으로 수집 당할 무인의 마음일까.’

서문경이 한숨을 푹 내쉬는 그때.

-너는 요괴냐?

어기전성(御氣傳聲).

음습하기까지 한 기경(氣經)의 전음술이 귓가에 내리꽂혔다.

올 것이 왔나.

전음의 방향을 가늠한 서문경은 고개를 홱 돌리며 대답했다.

“사람이요.”

“……허!”

남루한 신색의 중년인이 뒷짐을 진 채 걸어 나왔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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