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36화 (34/250)

분심조화결 (1)

어쩌다가 서문경에게 비무를 청하게 된 것일까?

양무연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막았다.

충동적이고 어딘가 비틀려 있었다.

그렇게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자, 잠깐…….”

어떤 말을 해도 수습되지 않겠지.

그걸 알면서도 말을 더듬거렸다.

눈앞의 시야가 핑 돌다가 불현듯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근본이 없다고 모욕하였는데, 역사가 극히 짧은 무공에 밀린 것이 그리 화나던가?

-혹여, 연 소저에게 삐뚤은 마음을 품지 않았나. 그걸 걱정한 걸세.

갑자기 고검의 따끔한 고언이 머릿속을 헤집었고.

어제부터 쭉 잊지 못하다가, 성하민이 서문경과 헤실헤실하며 같은 수업을 들으려는 걸 보고 심사가 뒤틀린 것이다.

양무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

‘이, 이건 너무…… 못된 년 같잖아.’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안 그래도 신창양가의 본가에서 자신을 지켜볼 텐데.

괜한 구설수를 하나 더 추가해 버린 건 아닐까, 압박감이 어깨를 꾹꾹 눌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자꾸 누군가에게 표독한 소릴 하는 자신이 너무나도 싫어서, 제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싶을 때가 있었다.

바로 지금이 그러했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거, 거절당하면 어쩌지.’

오늘은 수업을 정하는 날이라든가.

겨우 이틀째에 동기끼리 검을 맞대고 싶지 않다든가.

신창양가의 예법은 비무였냐고 비웃는다든가.

서문경이 비무 신청을 거절할 이유야 수백 가지는 됐다.

하물며 당장 어제, 서문경과 성하민을 그렇게 깎아내리고 사과도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

거절당해도 싸다.

그렇게 못되게 굴었으니, 각오하자.

양무연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그때.

“좋아.”

서문경이 선뜻 비무를 승낙해 버리는 것이다.

그 옆에서 성하민이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저런 여자의 생떼를 받아 줄 필요가 없다고, 어차피 너한테 도움이 될 비무가 되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양무연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천무신동의 무예가 무사부보다 위에 있다는 말이 있었지.’

믿기는 힘들지만, 마인을 두 번이나 마주하고도 당당히 꺾어 버린 전적이 있다.

그에 비해 양무연은 어떤가?

……입관 시험의 진법까지 간섭했다는 마인에게 이길 자신이 없다.

할 말이 없어서 침묵하고 있는데, 서문경이 입술을 달싹였다.

“걸어온 싸움은 피하지 않는 성격이라서, 또. 나한테 질 걸 각오하고 청했을 거 아니야. 받아 줘야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저렇게 말해 버리는 것이다.

정작 양무연은 충동적이고 비틀린 마음으로 내뱉었는데.

부끄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지만, 신창양가에서 겪은 세파가 무너지려는 표정을 잘 조율했다.

본심과는 다르게 뻔뻔한 어조를 입에 담았다.

“제가 져도 앙심을 품을 일은 없으니까, 괜히 두려워하진 마세요.”

“그거 다행이네. 난 동기들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거든.”

불운하게도 다들 자길 피한다며, 서문경이 엷게 웃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양무연은 그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 말이 진심이어도 여기선 긍정할 수 없었다.

서문세가의 망나니와 어울린다는 소문이 돌았다간…… 상상하기 싫었다.

“비무장으로 따라오세요.”

승낙해 줘서 정말 다행이다.

양무연은 부드러운 미소를 속으로 욱여넣었다.

* * *

‘이게 웬 떡이야.’

안 그래도 비무를 청하기가 마땅치 않은 때, 가장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던 양무연이 다가왔다.

어떻게 승낙할까.

건방지게, 아니면 예의 있게 할까.

여러 생각을 하던 차에 문득 귓가에 한마디가 스친 것이다.

“자, 잠깐…….”

주저하는 기색이 가득한 목소리에 서문경의 눈앞이 깜깜해졌다.

취소하기 전에 얼른 받아야겠다.

그 생각에 곧바로 입술을 달싹여,

“좋아.”

라고 대답했더니 성하민이 옆에서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생떼를 받아 주는 거야? 어차피 너한테 도움도 되지 않을 거고, 오늘처럼 바쁜 날이 어디 있다고.”

‘아, 산 넘어 산이다.’

이번엔 성하민을 달랠 차례인가 싶었다.

게다가 주변에 지켜보는 눈 또한 많았으니, 안 좋게 퍼진 소문을 희석하기 위해서라도 대협처럼 굴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서문경은 전생에 스치듯이 보았던 홍 장군을 모방했다.

“걸어온 싸움은 피하지 않는 성격이라서, 또. 나한테 질 걸 각오하고 청했을 거 아니야. 받아 줘야지.”

이 정도면 잘하지 않았나?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려는 찰나에 양무연이 대답했다.

“제가 져도 앙심을 품을 일은 없으니까, 괜히 두려워하진 마세요.”

“그거 다행이네. 난 동기들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거든. 불운하게도 다들 날 피하지만.”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마교의 모략을 막으면 떠날 생각이지만, 교우를 무시하고 싶진 않았다.

상대가 마교인 이상, 관과 무림을 가를 필요가 없으니까.

그렇게 말해도 역시 상대는 양무연이었다.

그저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무장으로 따라오라는 것이 속내를 알기가 어려웠다.

‘앞으로 친해지기 어려우려나.’

애석하게도 신창양가는 앞으로 팔 년 뒤에 멸문당한다.

그것도 창을 쓰는 칠로두인 적마의 손에.

그 전에 양무연과 친교를 쌓아서 경고하려고 했거늘, 쉽지 않았다.

“……후우.”

한숨을 푹 내쉬니까 앞서 걸어가던 양무연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왜 그러나 싶어서 인상을 찌푸리는데, 그녀가 말을 걸어왔다.

“비무를 받아들인 걸 후회하나요?”

“내가 왜?”

“질지도 모르잖아요. 수업을 신청할 여유가 없어질지도 모르지요.”

“상관없어. 이미 내가 듣고 싶은 걸 적었으니까.”

“그런가요. 그건 다행이네요.”

그렇게 대답하고는 양무연이 걸음을 빨리했다.

대체 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서문경은 어이가 없어서 눈을 끔뻑거렸다.

이제는 한숨만 쉬어도 시비를 걸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따라오는 놈들 참 많네.’

원래 동행인 성하민을 제외하고 세 명이 뒤따라왔다.

연준호와 검봉 유화, 그리고 운룡 청겸.

앞의 둘은 수업을 세세하게 짜다가 어느 순간 호기심이 발동한 것 같았다.

근데 청겸은 왜 따라왔는지 모르겠다.

서문경이 듣기론 수업 신청 자체를 아직 못했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뭐, 학관 측에서 알아서 해 주지 않겠나!”

“자네 진짜 인생을 대충 사는구먼. 옷은 고르는 데 시간을 엄청나게 들인다더니…….”

연준호가 저렇게 말할 정도다.

유화는 애초에 말도 섞기 싫다는 듯, 청겸에게 시선을 주지도 않았다.

“저게 요즘 유행일까?”

성하민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 왔다.

이에 서문경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 절대.”

빨간색 영웅건, 청색 도복, 검은색 신발.

진짜 상종도 하기 싫은 꼬락서니다.

멋이라고 꾸몄는데, 세상사 따윈 조금도 모르는 선인도 저렇게 입지는 않을 것이다.

서문경은 혹시나 해서 청겸에게 물었다.

“진심으로 멋있다고 생각하나?”

“물론! 내 듣기로, 불야성에서 이렇게 입는다던데 맞나?”

“아니, 제발…… 그냥 도복만 평범하게 입으면 안 되나?”

“자네, 불야성을 그렇게 들락거렸다더니 유행을 모르는군.”

묘하게 으스대는 청겸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저게 진짜 유행이면 내가 어떻게든 바꿨을 거다. 이것아.’

너무 보기가 힘들어서 서문경도 시선을 돌렸다.

이렇게 말없이 걷자니 어느새 비무장이 가까워졌다.

이에 연준호가 은근슬쩍 다가와서 물었다.

“그 책, 든 채로 할 건가?”

“당연하지.”

“……자네도 청겸 못지않아.”

“날 모욕하는 거야?”

“다른 사람이 보면 더하다고 할걸.”

옷을 입은 꼬락서니가 병신 같은 것과 한 손에 책을 든 채로 싸우는 것.

차라리 전자가 낫다고 여길 사람이 대다수다.

적어도 옷을 병신처럼 입어도 목숨이 위험하진 않았다.

연준호의 표정을 본 서문경이 피식 웃었다.

“잘 보라고. 여유롭게 승리할 테니까.”

비무장 위로 올라가서 정면을 보았다.

양무연이 철창을 가볍게 휘두르며 몸을 풀고 있었다.

전신의 근육을 가히 쥐어짜듯이 움직이는 게 인상적이었다.

감탄하긴 했지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신창양가의 것과는 좀 다른데.’

굳이 비교하자면 양무연의 방식이 더 세밀하고 뛰어나다.

하지만 형태가 기이하게 비슷했다.

눈으로 보고 베꼈다는 감상이 퍼뜩 들었다.

“왜지, 왜……?”

저도 모르게 의문이 들어서 물어볼 뻔했다.

서문경은 고개를 내저었다.

나이가 어려지니 남 일에 불쑥 끼어들려는 철없는 잡념이 생긴 것 같았다.

그때 양무연이 불쑥 창으로 비무장 바닥을 찍었다.

“왜 책을 들고 왔지요?”

“들고 할 거니까.”

“……?”

설마 잘못 들은 건가.

고개를 한차례 갸웃거린 양무연이 되물었다.

“……그, 왼손에 들고 있는 건 책이 아닌가요?”

“맞아.”

“오른손엔 아무것도 없고요.”

“그렇지. 잘 보고 있네.”

“왼손은 책, 오른손은 맨손으로 비무하겠다고요?”

“어.”

“……하, 하하.”

고저가 없는 웃음소리가 비무장을 두들겼다.

하나도 안 웃기는데 억지로 웃어 준다는 감정이 느껴졌다.

이윽고 양무연이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자, 이제 농담은 그만두죠?”

“농담 아녔는데.”

서문경이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왼손의 무공사전을 쥐었다.

“놓게 만들면, 칭찬해 줄게.”

“…….”

양무연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무시무시한 살기가 비무장을 부술 듯이 짓눌렀다.

열네 살 후기지수의 수준을 아득히 넘었다.

서문경은 첫인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했다.

‘이 아이의 창법이 어떤지나 봐볼까.’

솔직히 말해서, 검치의 무공을 수집하고 난 뒤에 무공사전을 써먹은 적이 없었다.

흑선채는 수집할 가치가 없었고 마인의 것은 익히기가 꺼려졌으니까.

하지만 양무연은 다르다.

신창양가에서 배출한 기재라면 제대로 된 무공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선공까지 양보해 줄까?”

서문경이 입술을 실룩거리며 한마디를 던진 것이 신호가 되었다.

쿵!

신창양가의 창법은 신속(神速)이라고 하였던가?

발을 굴러서 돌진하는 동공의 속도가 일절이다.

서문경은 날카롭게 닥쳐오는 바람을 느꼈다.

뺨의 솜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돌로 쌓아 만든 비무장이 찰흙처럼 패이네.’

외공과 내공을 조화롭게 수련하였다는 뜻.

입술이 한쪽으로 비틀어졌다.

검치의 제자, 양명성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솜씨였다.

슬슬 움직여 볼까.

서문경은 오른팔로 기교를 부렸다.

강하게 부딪쳐 온 철창을 비스듬히 흘렸다.

“……!”

양무연의 몸이 옆으로 기우뚱 기운다.

돌진한 힘을 수습하지 못한 채 철창이 비무장에 처박혔다.

그것만으로.

쩌저적!

비무장 중앙에 큰 균열이 일어났다.

파편이 이리저리 튀며 양무연의 옷깃을 찢었다.

그 사이에 서문경은 무공사전의 책장을 흘낏거렸다.

[양무연 – 열네 살]

[어린 나이에 각고의 노력을 통해 벽을 넘어섰으나, 창법으로 대성하려면 하늘을 부숴야 한다]

[보유 무공 : 양가창법-위(楊家槍法-僞), 보무동공(步武動功), 사요심경(蛇????心境)]

‘……위? 가짜?’

양가창법이 가짜라는 것도 문제지만, 보무동공과 사요심경은 처음 듣는 이름이다.

극소수만 익히고 있거나 스스로 창안했다는 의미.

서문경은 무공사전을 보고서 인상을 찌푸렸다.

‘신창양가에서 배출한 기재라는 건 맞을 텐데.’

만일 거짓이라면 신창양가가 곧바로 부정했을 터다.

서문경이 잠시 고민에 빠진 사이, 창을 고쳐 잡은 양무연이 분노에 빠진 듯했다.

“이러려고 비무를 승낙한 거예요?”

“응?”

“내 첫수를 흘리고서 한다는 짓이, 빈 책을 보는 거냐고요.”

역시 남의 시선에서 무공사전을 흘낏거리는 건 미친놈 소릴 듣기에 딱 좋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서문경은 더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책을 놓게 만들거나, 그만 보게 만들거나.”

“……뭐라고요?”

“둘 중 하나라도 하면 칭찬해 줄게.”

서문경은 어서 덤비라는 듯 오른손을 까딱거렸다.

이에 양무연이 전신의 공력을 운용하며 달려들었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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