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34화 (32/250)

입관 (4)

“뭐, 먼저 내 소개부터 할까!”

이마에 화려한 영웅건을 멘 소년.

그가 멋스럽게 차려입은 도복을 매만지는 둥 은근슬쩍 자랑하였다.

“나는 근래 운룡(雲龍)이라는 별호로 불리는 곤륜파의 청겸(淸謙)이라고 하네!”

과연 연준호가 말했던 대로, 외견을 꾸미는 데 정신이 팔린 소년 같았다.

이해가 되기도 했다.

곤륜파가 있는 청해성은 완전히 벽지인지라, 색이 있는 옷조차 보기 힘들 테니까.

호북성 무한에서만 즐길 수 있는 여흥일 것이다.

서문경은 피식 웃으며 청겸을 훑었다.

다부지게 발달한 종아리에서 보신경의 단련을 가늠할 수 있었다.

바로 그때, 고검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청겸이라는 이름이 어울리질 않는군. 저렇게 잘 꾸미는데 어찌 청렴하고 겸손하단 말인가?”

“잘 꾸몄다고? 하하! 잘 알아보네.”

청겸이 호탕하게 웃으며 고검에게 눈을 찡긋거렸다.

그걸 보며 서문경은 속으로 생각했다.

‘생각보다 입에 기름칠이 잘되어 있는 아이네.’

남궁세가의 고검(孤劍)이라고 했던가?

처음 보았을 땐 남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건만, 지금 보니 입심이 대단했다.

뒤이어 고검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남궁세가의 고검, 남궁명(南宮明)이라고 해. 연준이와 검봉, 둔걸과는 미리 알고 있던 사이일세.”

“연준호라니까.”

“연준이가 부르기 편한 걸 어쩌겠나?”

연준호와 남궁명이 티격태격하는 사이에 백련이 손을 들었다.

“양무연(楊舞蓮)이에요.”

“겨우 그게 끝인가?”

“더 할 이야기가 없는걸요.”

남궁명의 말에 양무연이 고개를 슬며시 돌렸다.

마음은 풀렸다지만 잡생각은 여전히 많은 모양이다.

그녀를 뒤이어 둔걸이 안 왔다고 말했던 검봉이 입술을 달싹였다.

“아미 제자 유화(柳花)예요.”

“왜 검봉이란 좋은 별호를 빼먹는가?”

“너무 거창한 별호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유화의 언동에 격조가 담겨 있다.

다만 서문경으로선 불편한 점이 있었다.

‘저렇게 머리가 길어서야 비무할 때 불편하지 않나.’

백련, 양무연처럼 머리를 한쪽으로 묶거나 하지 않고 긴 생머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저러고도 검봉이란 별호를 얻고 천무학관에 합격한 걸 보면 가진 실력이 분명할 터.

서문경이 유화의 기세를 가늠하는 사이에 연준호가 빙긋 웃었다.

“매화옥검이란 허명으로 불리는 연준호일세. 앞으로 잘 부탁하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성하민이 자신을 흘낏거리고는 재빠르게 자기소개를 쏟아 냈다.

“저는아무런문파가없는성하민이라고해요!”

“……그리 급하게 말하지 않아도 되네.”

남궁명의 조언에도 성하민은 꾸준했다.

“아, 천무신동이라는별호도가지고있는데요신경쓰지않으셔도돼요!”

“잘 들었네.”

남궁명은 억지로 웃고는 서문경에게 시선을 돌렸다.

“둔걸이야 원체 게으른 놈이라 오지도 않았으니, 남은 건 서문 공자, 자네뿐일세.”

“그런가.”

서문경은 남궁명을 비롯해 여섯 후기지수를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개성적이었고 밝은 영성을 지니고 있었다.

처음에는 연준호만을 생각하고 왔지만, 다른 아이들도 대단히 뛰어난 기재였다.

서문경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맺혔다.

“나는 천무신동이란 별호를 가지고 있는 서문경이야. 지금은 망나니라고 불리지만, 앞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 주지.”

“……흥.”

“기대하네.”

양무연의 코웃음과 남궁명의 미소가 되돌아왔다.

이에 연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얼굴 붉힐 일 없이 잘 지냈으면 좋겠어. 특히 경이에게 배울 게 많거든.”

“술이요?”

양무연이 까칠하게 말하자, 연준호가 부드럽게 받아쳤다.

“그냥 술이 아니라, 무술.”

“……무술?”

“저래 봬도 무예십팔반을 전부 배웠거든. 심지어는 사슬이나 철퇴를 다루는 것도 봤어. 검기를 다룰 줄 아는 일류 호위도 애 다루듯 하더라.”

그 말에 다른 후기지수들도 인상을 찌푸렸다.

연준호가 친분을 내세우기 위해 괜한 허세를 부린다고 여기는 듯했다.

실제로 청겸과 유화가 의심스럽다는 목소리를 내었다.

“그런 실력이 있으면 왜 천무학관에 왔겠나?”

“믿기 어려운 말이야.”

그러는 한편.

성하민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한두 번 휘둘러보면 가능하지 않을까?”

“…….”

주변이 금세 조용해졌다.

그것을 본 서문경의 눈이 가늘어졌다.

오늘 이전에 성하민과 비무해 본 후기지수가 대다수인 듯해, 연준호에게 곧바로 전음을 보냈다.

-하민이랑 싸워 본 애가 있나봐?

-우리 둘 빼고 다. 아, 둔걸도 빼고.

-……모두 졌나?

-졌지. 그래서 자네만큼 천무신성이 경계 당하고 있던 거야.

자신이 검치와 척안룡 같은 광인과 노는 동안, 성하민은 소년·소녀와 멋진 비무담을 잇고 있었나 보다.

서문경은 왼손의 무공사전에 시선을 던졌다.

천무학관에서 무공을 수집할 때, 가장 큰 소득이 될 것 같았다.

그러다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남궁명이 허허 웃었다.

“그나저나 둔걸은 첫날마저도 안 오다니, 참으로 게으른 친구가 아닌가?”

“게으르지만 않았어도 개방주님의 제자가 되었을 친구라고 들었네.”

“청겸의 말대로 한때 후기지수 중 제일이라고 불렸지.”

남궁명의 말에 서문경이 순간 헛생각을 품었다.

‘패 버리면 되지 않을까?’

그와 동시에 어색하게 웃었다.

어차피 둔걸처럼 게으른 사람은 때려 봐야 잠깐 하는 척하며 자리를 피할 뿐, 노력을 이어 갈 성향은 아니었다.

가능하다면 게으름을 완전히 벗어 버릴 자극.

요컨대, 복수 같은 강렬한 목표가 필요했다.

‘뭐, 그런 건 어렵겠지.’

서문경이 생각을 정리하곤 정면을 보았다.

어느새 천무학관의 무사부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자! 천무학관의 내부를 소개해 주마! 특히 기숙사에서 지낼 아이는 더더욱 집중하도록!”

“예!”

그 말에 일곱 후기지수가 무사부를 따라갔다.

* * *

긴 시간과 공을 들여 준비하던 중경의 모략이 허무하게 끝났다.

적마는 검치와의 싸움에서 입은 내상을 다스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한 놈이 독단적으로 일을 벌여서 붙잡혔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호북성을 관리하던 수제자가 땅바닥에 이마를 처박았다.

피가 줄줄 흘러 웅덩이가 될 정도였지만, 적마의 기분은 풀리질 않았다.

안 좋은 소식이 한둘이 아니었다.

“하물며 양귀비의 유통이 막혔다고 들었다. 맞느냐?”

“그…… 서문세가의 망나니에게 팔다가 거지한테 꼬리가 잡혔다고 합니다! 그 뒤로 호북성 분타주가 사사건건 방해하고 있습니다!”

“개방에 심은 놈은 어떻게 되었지?”

“분타주의 거처를 알아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남은 양귀비는 망나니에게 모두 처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

적마는 한 손으로 미간을 주무르다가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대의에 방해되는 놈은 치워라.”

“하, 하지만 호북성 분타주는…….”

“불가능한가?”

“아닙니다. 이른 시일 내에 거처를 파악하여 호북성 분타주를 죽이겠습니다.”

“그리하여라.”

수제자는 불안함에 벌벌 떨었지만, 정작 적마의 내면은 평안하고 고요하였다.

마교의 존재가 들켰다.

옥화혈사의 모략이 무너졌다.

호북성을 안에서 망가뜨리고 금전을 취하기 위한 양귀비마저 사사건건 방해당하고 있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천하의 대세가 본교에 있다.’

적마 자신을 포함하여 일곱 명의 마두.

칠로두가 가진 힘은 이미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아득하게 뛰어넘었다.

이러한 모략을 펼치는 건 그저 쉽게 천하를 집어삼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천마께서 임하시면 결국 무공이란 무용한 것을.’

천하의 무공이 대단할지언정 하늘에 비하지 못한다.

칠로두가 합공을 펼쳐도 패배하지 않는 자.

천마는 모습을 드러낼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무사부가 천무학관 내부를 안내하는 동안.

“정말 사실이야? 객잔에서 허드렛일하면서 지낸다는 게?”

서문경은 성하민의 곁에서 여러 가질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러나 성하민 입장에선 매우 부끄러울 뿐이었다.

“……으응.”

“내 위치는 어떻게 안 거야?”

“중간에 네가 들렸다는 그, 검치? 그 사람 집에 들러서 가는 곳을 물어봤어…….”

“그랬구나. 여기까지 오는 줄 알았으면 본가에 여비를 더 달라고 하지 그랬어.”

“다른 아이들이 받는 만큼만 받아야겠다고 생각했거든.”

“대견하네.”

“……헤헤.”

두 소년·소녀의 대화에 무사부가 인상을 팍 쓰며 뒤를 돌아보았다.

“잡담은 적당히! 지금은 천무학관 내부를 소개하는 자리잖니!”

“그건 지도를 봐도 되잖아요.”

“허어…… 요놈…….”

무사부가 기가 막힌다는 듯 서문경을 쳐다보았지만, 그 이상으로 꾸짖는 일은 없었다.

며칠 사이에 있었던 일로 인해 서문경을 건드리지 말란 지시가 있는 듯했다.

‘나야 편하지 뭐.’

서문경의 목적은 천무학관을 지키고 후기지수와 연을 맺으며 무공을 수집하는 것뿐이다.

자신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오히려 감사한 일.

화가 나서 비무를 신청하면 무공을 수집할 수 있으니 대단히 좋다.

서문경은 느긋하게 걸으며 성하민과의 대화를 이어 갔다.

“준호한테 듣기로 다른 애들이 너한테 비무를 신청했다며. 괴롭히진 않았어?”

“응.”

“그래도 명문의 제자라고 뒤끝은 없었네.”

“아, 아니. 오히려 도와주기도 했어. 백련…… 그러니까 무연이 말이야.”

“쟤가?”

표독스럽기가 마인 저리 가라 싶었는데.

서문경이 깜짝 놀라자, 성하민이 엷은 미소를 지었다.

“신창양가에 오면 후원해 주겠다고 했거든. 너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거절했지만.”

“……아.”

설마 했다.

단순한 선의가 아니라, 신창양가의 빈객으로 지내게 하면서 자기편으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미래의 초절정고수를 겨우 삼 년의 학관비로 날로 처먹으려고 했네.’

이게 무슨 강호의 도의란 말인가!

서문경은 양무연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한마디를 이었다.

“내가 후원해 줄게. 서문세가에 올 필요 없이, 그냥.”

“저, 정말?”

“그래. 집안일 봐줄 사람도 고용해 줄 테니까, 편하게 다녀.”

“와!”

성하민이 두 팔을 크게 들었다.

방방 뛰고 싶은 것을, 앞에 있는 무사부 때문에 참는 듯했다.

서문경은 부드럽게 웃었다.

“그렇게 좋아?”

“이제 설거지는 내가 안 해도 되잖아. 정말, 정말 많이 깨먹었거든. 실수가 잦아서…….”

“그럴 것 같긴 하더라.”

자기소개마저도 남들의 다섯 배 속도로 하지 않았나.

마인에게 납치당하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해졌다.

“그나저나, 사천성에서 말이야.”

“응.”

“그놈들한테 납치당하기 전에도 객잔 같은 데서 일했던 거야?”

“……음.”

그 말에 성하민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뒤이어 대답하기 곤란하다는 듯 목덜미를 긁었다.

“미안, 좀 힘든 기억이라…….”

“아니야. 물어본 내가 더 미안하지.”

어릴 적부터 부모를 잃었던 게 아닐까.

서문경은 성하민의 어깨를 주물러 주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내가 도와줄게.”

“……고마워.”

성하민은 희미하게 웃으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앞으로 삼 년 동안 함께할 곳.

어둡고 축축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동년배 친구들과 즐겁게 지낼 학관이었다.

그러다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서문경에게 물었다.

“같이 졸업해서 사천으로 돌아가면 좋겠다. 그치?”

“……그러게.”

서문경의 대답에 망설임이 있었다.

하지만 성하민은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저 무사부의 뒤를 따라 천무학관을 둘러보았을 뿐이었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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