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관 (3)
무수한 소문이 퍼졌다.
그도 그럴 것이, 사천성 같은 변방에만 존재할 줄 알았던 마교가 무림의 중심인 호북성에서 야욕을 드러낸 것이다.
천무학관의 후기지수를 노렸다는 것 역시.
천하를 불안하게 했다.
역사상 마지막 마교인 백련교의 재림을 떠올리게 했다.
그렇게 무성해진 소문에 한 가지 이야깃거리가 덧붙여지니.
“천무신동 말일세. 그 아이가 천무학관에 침입한 마인을 홀로 제압했다는군!”
“허어…… 그 망나니가?”
“어리지만 대협의 자질을 가진 게지.”
천무신동 서문경의 무공이 동년배를 아득히 초월했다는 이야깃거리.
제갈세가의 진법을 중간에 가로채어, 방문좌도의 술법까지 사용한 마인을 홀로 제압하였다는 이야기다.
그 사건이 벌어진 이유, 서문경의 발길질은 퍼지지 않았다.
천무학관의 관주가 의도적으로 막은 것이다.
“학관의 위신만 더럽혀질 뿐이야. 그건 덮어 두게.”
한 무사부가 서문경에게 절대 부서지지 않는다고 보증하지 않았나.
서문경은 그 말을 믿었을 뿐이다.
장치가 부서진 것은 천무학관 측의 문제였다.
그러나 천무학관주는 체면과 자존심을 가장 중요시하는 무인이었다.
“그 아이, 입관한 이유가 의심스럽지 않던가?”
그가 입을 열고 나서 며칠 뒤.
저잣거리의 이야기에 살이 덧붙여졌다.
“그나저나 천무신동이 막말을 쏟아 냈다더군!”
“그야 천무학관의 방비가 부족하지 않았나? 분노할 수 있다고 보네만.”
“이 사람아, 군문에서 왜 무공이 뛰어나다는 일공자를 보냈겠는가? 소가주였던 놈이 왜 망나니가 되었고?”
“설마…….”
“그래. 필히 노리는 바가 있겠지! 현 서문세가의 가주가 그 ‘철인’이니까!”
애초에 관무불가침이란 언제 깨질지 모를 불안한 소리가 아니었냐며.
서문경은 마교와 홀로 맞선 어린 대협과 서문세가의 비밀병기 사이에서 설왕설래하였다.
말과 말.
소문과 설화.
이야기가 여러 갈래로 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천무신동이 아니라 서문신동이란 별호가 옳지!”
서문경의 별호를 헐뜯는 호사가가 있는가 하면.
“이번 마교의 침입은 서문세가가 사주한 게 틀림없어!”
이 사람은 다음 날부터 보이질 않았다.
며칠 뒤에 폐인이 되어서 나타났다는 말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소문에 불과했다.
천하는 그사이에 변화하고 있었다.
이것이 옳고 그르냐는 후대가 평가하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아예 마교의 존재조차 잊고 있던 전생과는 다르다.
“……좋아, 드디어 오늘이 첫 출석인가.”
수많은 혀 위에 놓인 장본인.
서문경은 열네 살 인생을 즐기는 데 여념이 없었다.
* * *
“연 소제, 서문신동과는 어울리지 말게.”
화산파의 속가제자 중 일인, 위성현이 연준호에게 진지하게 조언하였다.
“소제가 서문신동과 친밀한 사이라는 건 알지만, 천하의 눈총이 따갑네. 망나니인 것이야 호걸 중 적지 않다지만 적이 많은 건 다른 문제지.”
“저도 충분히 압니다.”
연준호는 침중한 표정으로 답했다.
어제 둔걸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들었기에, 서문경이 삿된 이야기에 얽혀 있다고 확신했다.
“선배께서 무엇을 걱정하시는지 압니다. 이미 얽혀 있으니 확실하게 선을 그으라는 소리겠지요.”
“…….”
“하지만 함께 지내봤기에 압니다. 그 친구는 무림을 멸시하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천무학관주가 있는 자리에서 호된 소리를 쏟아 낸 것도, 선한 의도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소문이 진실이 되는 법도 있기 마련이네.”
위성현은 호북성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상단주의 아들이었다.
그 위치에서 여러 광경을 보았기에 소문의 무서움을 알았다.
하물며, 연준호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천무학관의 이번 기수. 다른 후기지수들도 같은 생각인가?”
“……그건.”
연준호가 잠시 침묵하자, 위성현은 부드럽게 웃었다.
“소제가 진실로 믿는다면 바꿔 보게. 지켜보겠네.”
“귀한 조언 감사합니다.”
연준호는 두 손을 모아 올리곤 등을 돌렸다.
드디어 오늘.
입관 시험에 통과한 후기지수가 모이는 날이었다.
* * *
전생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이란 불행하고 고통스럽거나 작고 왜소한 것뿐이었다.
마인에게 납치당하여 주백경을 희생시키고 살아 나온 기억.
수년 동안 폐관하여 가전무공을 전부 원숙하게 익히던 나날.
삶의 질감이 없었다.
언제나 무채색이었고, 휑하게 비어 있었다.
“그래서 정말 기뻤었는데.”
평생의 후회를 청산한 회귀 첫날.
본래 처참하게 죽었던 주백경과 사라진 아이들을 구했다.
그때부터 이번 생을 구원받았다고 생각했다.
서문경은 문득 목소리가 유난히 컸던 아이를 떠올렸다.
‘어디서 잘살고 있겠지?’
이름조차 모른다. 친분도 없다.
그저 얼굴을 기억에 담아 놓고 있었다.
갑자기 떠오른 것은 아이들이 많은 천무학관에 출석하게 돼서일까.
“정말로 입학하는구먼…….”
“취소하는 거 아니었나?”
천무학관으로 향하는 거리에 분주한 말소리가 뒤섞였다.
남 말하길 좋아하는 호사가와 입관 시험에서 탈락한 후기지수들.
저마다 다른 시선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주 무사를 집에 두고 오길 잘했네.’
그놈 성정이라면 울컥해서 당장 멱살을 잡을 텐데, 그러면 소문만 더 나빠지지 않겠나.
서문경은 그 시선들을 아무렇지 않게 흘리며 정문을 넘었다.
그곳에 여섯 명의 후기지수가 무질서하게 서 있었다.
‘마교가 무리를 해서라도 불태운 이유가 있구나.’
어깨에 창을 멘 말총머리의 창술가.
짙은 눈썹과 연갈색 눈동자를 지닌 검사.
연준호가 이야기한 대로라면 신창양가의 백련과 남궁세가의 고검일 테다.
여섯 명 중 저 두 사람의 기세가 유독 정련되어 있다.
당장 마교가 나타나도 바로 손을 휘두를 각오가 되어 있는 후기지수였다.
그들 외에도 연준호처럼 비범한 영성을 지닌 자가 넷이었다.
이들이 삼 년 동안 서로 경쟁하며 단련하였다면 어땠을까?
‘전생에서 승리를 조금 점쳐 볼만 했을 텐데.’
아쉬움을 삼키는 와중에 한 소녀에게 시선이 머물렀다.
서문경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무한에 온 이후로 지금처럼 놀란 적이 없었다.
“……너!”
“안 오는 줄 알았잖아요! 얼마나 기다렸는데!”
회귀 첫날, 유독 목소리가 크던 소녀.
그녀와 헤어지고 두 달이 넘게 지난 오늘.
천무학관에 합격한 후기지수로서 재회했다.
서문경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소녀에게 다가갔다.
“애, 애야…… 이름이 뭐였니?”
어린애를 대하듯 물었다.
여러 사람에게 지적당한 이후로 줄곧 신경 쓰고 있었는데, 지금은 무심코 잊었다.
소녀는 그걸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성하민이요! 그때, 공자님께서 자기도 어린데 강하다고 해서…… 저도 노력했거든요. 공자님처럼 천무신성이라는 별호가 생겼어요.”
“그랬구나.”
“근데 그…… 공자님 소문이 안 좋긴 하시더라고요.”
“편하게 말해. 같은 동기잖아.”
“그래……요? 그럴까?”
성하민이 싹싹하게 웃었다.
그 미소에 서문경은 뭐라고 해야 할지, 잠시 잊어버려서 입술을 달싹였다.
감상적인 생각이 떠오른 탓이었다.
‘전생에서 이 아인 어떻게 되었을까?’
연준호의 말대로라면 성하민은 아무런 뒷배 없이 스스로 무공 체계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한 재능을 가진 아이였다.
전생에서 용기를 내지 못하고 도망쳐, 이런 가능성을 지닌 성하민을 마교에 끌려가게 만든 것이다.
‘소년병이 그렇듯, 사특한 술수에 당했을 거야. 마교에게 이용당하다가 죽었겠지.’
그 생각에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서문경은 무의식이 행하는 대로 움직였다.
꽈악……!
“아, 아니…… 이게 무슨…….”
성하민은 어찌할 줄 모른 채 버둥거렸다.
갑자기 서문경이 다가와 자신을 껴안은 것이다.
이걸 싫다고 밀어낼지, 좋아해야 할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그렇게 머릿속이 터질 것 같은 그때.
“잘했다, 잘 살았어.”
성하민의 귓가에 자그마한 목소리가 울렸다.
이상했다.
이제 겨우 두 번째 마주했을 뿐인데, 서문경의 목소리에 물기가 있었다.
‘대체 왜?’
혼란하던 마음이 더더욱 커졌다.
성하민은 서문경을 밀어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바짝 굳었다.
눈만 겨우 끔뻑거리다가 주변에 도움을 청하려고 시선을 돌렸다.
“역시 망나니였는가! 첫날부터 이게 무슨……!”
서문경의 행실을 꾸짖는 듯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웃고 있는 곤륜파의 운룡.
그는 이마에 스스로 묶은 화려한 영웅건처럼 믿을 만한 사람이 못 되었다.
결국 서문경을 밀어내는 수밖에 없다.
성하민은 힘겹게 목소리를 냈다.
“저, 저기…….”
“아. 내가 너무 과했나.”
다행히도 서문경은 재빠르게 몸을 뒤로 뺐다.
어색한 표정에 악의는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자신을 좋아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대체 왜?’
성하민은 왠지 모르게 패배한 기분이 들어, 인상을 찌푸렸다.
오랫동안 기대한 재회가 이런 식으로 되다니.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가, 갑자기 이러시면은 곤란해……. 소문은 들었지만…….”
“내가 그렇게까지 경박한 사람은 아니야. 그냥 반가워서 그랬던 거지.”
서문경이 화해하자는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재회하는 상상과 조금이나마 비슷해졌다.
성하민의 얼굴에 화사한 미소가 피어오르는 그때.
한참 지켜보던 백련이 입술을 달싹였다.
“서문세가의 망나니와 근본 없는 입관자라…… 잘 어울리네요.”
유난히 표독스러운 어조였다.
인상을 찌푸린 서문경이 무언가 대꾸하려는데, 연준호가 먼저 끼어들었다.
“이보게, 백련!”
“연 소협께서는 망나니와 어울리셨으니 편을 들고 싶겠지요. 아까부터 계속 그러셨잖아요. 생각보다 나쁜 친구가 아니라고, 앞으로 보면 알 거라고.”
서문경을 흘겨보느라 백련의 말총머리가 흔들렸다.
“하지만 지금 보니까 제 생각이 틀리진 않았네요. 아무리 안면이 있다고 한들, 껴안아도 되는 건가요?”
“그, 친밀한 사이니까…….”
“친구라면 성 소저가 객잔에서 설거지나 하게 두진 않았겠지요.”
그 말에 서문경은 성하민의 손바닥을 보았다.
오랜 시간 물기에 젖어서 그런가, 습진이 걸려 있었다.
“본가에서 지원을 해 주지 않았어?”
“……무한으로 오는 동안 다 썼죠. 아니, 썼지.”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꺼낸 백련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부끄러움과 창피함이 더 컸다.
성하민은 고개를 푹 숙였다.
“욕먹게 해서 미안…….”
“아니, 아니야.”
서문경은 고개를 내젓곤 백련을 쳐다보았다.
기세가 유독 정련되었다고 생각했거늘. 가시 돋친 독기가 따로 없었다.
‘오대세가의 교육이 어떤지 아니까, 이해는 한다만.’
명문이나 명가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무지하고 약하여 진지하게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가풍.
지방 호족과 같은 꼴이라는 걸 안다.
어린 나이면 자기 주관이 없을 만도 했다.
하지만.
‘어이가 없네.’
자기가 뭐라고 남을 깔본단 말인가?
서문경이 무어라 꾸짖기 직전에 고검이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근본이 없다고 모욕하였는데, 역사가 극히 짧은 무공에 밀린 것이 그리 화나던가?”
“뭐라고요?”
백련이 눈을 흘기자, 고검은 애꿎은 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내다운 짙은 눈썹이 갑자기 쓸모없게 보였지만, 하려던 말은 묵묵히 이었다.
“혹여, 연 소저에게 삐뚠 마음을 품지 않았나. 그걸 걱정한 걸세.”
“…….”
백련이 주먹을 꽉 쥐었다.
무언가 분하고 갈급한 마음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걸 본 서문경의 눈에 이채가 발했다.
‘질투 혹은 열등감인가. 하긴…… 그러니까 객잔에서 일하고 있다는 걸 조사했겠지.’
백련(百鍊)이라는 별호를 가진 만큼 엄청난 노력을 했을 터.
그녀에게 성하민이란 어떤 존재였을까?
그리 생각하니 답이 금방 나왔다.
‘피곤하네.’
자기 집안에선 용이라고 어화둥둥 했을 텐데.
진짜 천재를 마주하고 나니 온갖 잡념이 들었을 것이 뻔했다.
무림에서 꽤 흔한 일이지만, 천무학관에 합격한 후기지수끼리 이럴 줄이야.
‘이 맹해 보이는 애가 그만큼 뛰어나단 건가.’
서문경이 새삼 놀랍다는 듯 성하민을 쳐다보는 사이, 고검이 끝말을 이었다.
“서문 공자와 연 소저에게 호감이 있어서 두둔한 건 아닐세. 하지만 삼 년 동안 함께할 동기가 잘못된 길로 빠지게 두진 말아야지 싶어서 끼어든 게지.”
소년답지 않게 예스러운 말투가 진했다.
남궁세가의 가풍이 무겁다는 소문이 와닿을 정도로.
한참을 침묵하던 백련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말 편하게 하게.”
“그래.”
“이제야 낫군.”
고검은 희미하게 웃으며 다른 후기지수에게 말했다.
“본래 연준이가 나서 주길 바랐지만, 분위기가 이래서야 내가 중심에 있어야겠어. 서로 인사나 하지.”
그 말에 줄곧 침묵하고 있던 아미파의 검봉이 한마디를 툭 내던졌다.
“둔걸은 오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이걸 어쩌지?”
“……여전하군. 그럼 우리끼리 하자고.”
그렇게 고검을 중심으로 여섯 명의 후기지수가 모였다.
신비한 무공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