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관 (2)
서문경이 입관 시험을 시작한 뒤.
책임자인 제갈엽은 무사부들과 함께 시험장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저런 수양을 쌓은 아이가 어찌 방탕하게 술을 즐기고 기녀를 협박하였겠습니까?”
주 화제는 역시 서문경이었다.
천무학관에 입관하지 않았음에도 천무신동이라는 별호를 썼고, 좋지 않은 풍문을 지니고 있었다.
고로 무사부들 중 좋아하지 않는 자가 많았다.
“언젠가 본색을 드러낼걸요?”
“검봉과 백련에게 어떤 마수를 드러낼지…….”
걱정스럽다는 시선이 가득했다.
서문경의 신분이 군문이란 점에서 더더욱 그러했다.
어느 날, 갑자기 서문세가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압박이 천무학관에 가해질 터였다.
……하지만 시험을 통과하는 서문경의 모습은 무척 이상적이다.
제갈엽은 섭선을 펴며 부드럽게 웃었다.
“하단전 공력을 호신기로 운용하는 짜임새와 어떠한 압박에도 침착한 태도를 보십시오. 마지막 날에 귀한 손님을 맞이한 것 같지 않습니까?”
“……그래도.”
“군문의 자제라는 신분이 문제라면, 한때 선비족이었던 모용세가를 정파로 받아들이지 않았겠지요.”
그 말에 무사부들이 순간 침묵하였다.
지금은 신창양가에게 밀렸다고는 하나, 한때 오대세가.
모용세가의 과거를 논한 제갈엽의 언사는 파격적이다 못해 충격에 가까웠다.
“제갈 사부의 말이 맵다더니 역시 감히 대꾸를 못 하겠군요.”
한 무사부가 너스레를 떨고 나서야 분위기가 너그럽게 변했다.
그 와중에 서문경이 유등행으로 떨어졌다.
“오…….”
“겁이 없는 건가?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군요.”
“그나저나 저 책은 언제 놓으련지!”
시끄럽다는 둥, 질척거린다는 둥.
불만이 많은 듯 보였지만, 겁먹은 것을 숨기려는 모습처럼 보이진 않았다.
몸이 아래로 밀리는 상황에서도 서문경의 눈빛은 차분했다.
“자, 이번에는 어떻게 통과할지 볼까요?”
제갈엽이 호의적인 시선으로 지켜보는 그때.
쿠웅……!
서문경이 돌발 행동을 벌였다.
그가 힘껏 차 버린 유등행의 장치 하나가 부러진 것이다.
‘저 나이에 내 진식을 부순다고?’
제갈엽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조수.”
“예!”
“전 진법을 확인하러 갈 터이니, 함을 가져오십시오.”
“혼자서 들기엔 무게가…….”
조수의 말은 끝까지 듣지 않았다.
제갈엽은 곧바로 진법의 중공으로 향했다.
저 발길질에 무엇이 멈추었나 확인하니 탄식이 나왔다.
“아……!”
타인이 진법에 간섭하는 것을 막는 장치.
쉽게 구할 수 없는 벼락 맞은 대추나무 조각이 부러져 있다.
“시험을 모두 중지시키시오!”
제갈엽이 무사부들에게 외친 순간.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사건이 먼저 터졌다.
“불영행에 진입한 서문경의 모습이 보이질 않습니다!”
“……뭐?”
제갈엽은 신법을 펼쳐 불영행의 시험장으로 향했다.
반드시 있어야 할 서문경은 보이지 않고, 닭 피가 잔뜩 번진 부적 수백 장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방문좌도의 술수다!’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둥 사특한 술수로 대우주의 섭리를 뒤틀어 버리는 놈들.
제갈엽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설마…… 무림과 군문끼리 싸우게 만들려고?”
두 달여 전, 사천성에서 서문경이 무찔렀다던 마인.
그들의 세력이 호북성 무한, 천무학관까지 스며든 것일까?
제갈엽은 일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는 것을 깨달았다.
“관주님을 불러라!”
* * *
불영행.
상단전을 시험하기 위한 장소 아니랄까봐, 감각이 점차 소실되어 정신을 갉아 먹히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왼손에 들고 있는 무공사전의 촉감마저 없었다.
“……아, 이건 좀 심한데.”
이 혼잣말까지도 잘 들리지 않았다.
서문경은 검은색으로 칠해진 허공을 바라보았다.
시험이 아니라 고문.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밀실에 가둬진 듯하다.
그러다 문득, 왼손을 꼼지락거렸다.
‘내가 들고 있는 무공사전의 형상을 머릿속에서 재현하여, 없어진 촉감부터 되살리는 거다.’
이렇게까지 잘 만든 진법을 부수고 싶진 않았다.
그저 진법이 가려 놓은 인지를 초월하여 감각을 되살리고자 하였다.
이에 서문경의 하단전 공력이 꿈틀거렸다.
“……후우.”
자신에게 씌워진 장막과 본래 가지고 있는 감각.
두 가지를 안법으로 분리하기로 했다.
기해혈에서 타고 오른 공력이 동자료와 사백혈을 점했다.
뒤이어 진법이 자아낸 어두운 천하를 눈에 담았다.
‘내가 배격하고자 하는 것은, 거짓된 세상이니.’
장막 너머에 진실한 천하가 있다고 믿었다.
두 가질 구분하는 기준은 왼손의 무공사전과 이곳에 존재하는 서문경의 백(魄)이니.
“……후우.”
서문경은 시퍼렇게 물든 안광으로 천하를 보았다.
안법으로 진법의 환상과 실재하는 현실을 판별하였다.
뒤이어 하단전 공력으로 진각을 지르밟는다.
땅을 때리는 오른발의 감각이 용천혈을 통해 찌르르 올라왔다.
그렇게 되살린 시각과 촉각.
두 감각을 중심으로 삼아서 다른 감각을 끌어 올린다.
진법이 자아낸 장막을 억지로 젖히고자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대천파(大天波).”
가전무공, 서문권법의 초식 이름을 논하였다.
아예 들리지 않던 목소리가 뜨문뜨문 들리는 순간에 주먹을 내질렀다.
꽈아앙……!
천주의 심상을 주먹에 담았다.
꺾이지 않는 강철의 기둥을 팔뚝에 벗 삼아 휘둘렀다.
어둡던 시야가 걷히는 찰나.
“……이런.”
누군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서문경은 그것을 좌시하지 않았다.
대천파를 펼친 직후, 하박을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휘둘렀다.
쩌억!
살과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손이 맵군.”
목소리에 내리깔린 살기.
서문경은 그제야 자신이 불온한 일에 휘말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긴 시험장이 아닌데?”
천무학관의 내부가 아니라 무한 바깥에 있는 숲 어딘가.
하물며 사내의 머리카락이 시뻘건 색인 것 역시.
서문경의 시선이 차갑게 일변했다.
“넌 누구냐?”
“염라대왕.”
사내가 터무니없는 이름을 답하곤 크게 웃었다.
그 사이에 서문경은 사내의 전신을 훑었다.
길게 기른 손톱, 새까맣게 물든 눈가.
또, 붉은색 장포라.
“적마의 하수인이더냐?”
서문경의 말에 사내가 웃음을 뚝 그치고는 서늘한 시선을 드러냈다.
“……견식이 넓다는 말로는 끝나기 어렵구나. 어떻게 알았느냐?”
“시뻘건 머리카락, 시뻘건 장포를 걸치면 보통 미친놈이기 마련이지. 그중에 급이 떨어지면 하수인 아니겠냐?”
서문경은 사내를 비웃으며 무공사전을 쥐었다.
이런 말장난을 이어 갈 필요 없이, 사투를 시작하면 무공사전에 사내의 정체가 드러날 터였다.
하지만 적마의 하수인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하나같이 말이 많은 새끼들이었으니까.’
적마가 무게 잡길 좋아하는 놈이었듯, 그를 따르는 하수인도 비슷비슷했다.
바로 지금의 사내처럼.
“부하일지언정 상관하지 않는다. 난 이미 적마님에게 인생을 구원받았다.”
“병신.”
“……뭐라고?”
“정작 적마는 널 부하로 생각하지도 않을 텐데, 뭘 구원받았다고 지랄하는 거냐!”
서문경은 히죽 웃으며 사내의 위치를 비웃었다.
“적마에게 진짜로 인정받았다면 적영창식을 배웠겠지?”
“닥쳐라!”
‘못 배웠구먼.’
사내의 얼굴에 열등감이 강하게 드러났다.
마공을 익힌 놈답게 감정의 변화가 극명하고 괴팍하다.
그를 향해 서문경이 재차 입술을 달싹였다.
“적마의 직전제자가 되지 못하고 평생 잡일이나 하다가 나 같은 놈한테 뒈지는 게 네 인생이야. 그마저도 구원이라고 할 테냐?”
“……놈! 닥치라고 하지 않았더냐!”
“안타깝고 가련한 인생이다. 몸에 맞지도 않는 마공을 익히다가 골수까지 파먹혀선, 혼백까지 어둡게 물든 것이 훤히 보여.”
그 말에 사내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이를 뿌득 갈았다.
그의 입가에서 적혈마공 특유의 시뻘건 기운이 흘러나왔다.
“곱게 데려가려고 했더니 안 되겠구나! 본교로 향하는 동안 피눈물을 쏟게 해 주마!”
“누가 누굴.”
서문경은 겉으로 피식 웃었지만, 속으론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시험 중에 갑자기 이곳으로 온 건 이놈이 벌인 짓일 테고, 주변을 기감으로 훑으니 다른 놈이 없었어.’
마교가 일을 벌이려면 최소한 셋은 움직인다.
그렇다면 사내가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라는 건데, 저놈 수준에 천무학관의 진법을 뒤틀 힘은 없어 보였다.
누군가가 도와준 것이 아니고서야.
거기까지 생각하는 와중에 한 가지를 떠올렸다.
‘……아.’
유등행을 걷어찼던 행동.
장치 하나가 부서진 것이 이 사태를 불러온 걸까?
서문경은 그 사실을 떠보기 위해 입을 놀렸다.
“네깟 놈이 잘나서 성공한 일도 아니면서 자존심 하나는 세구나. 순전히 우연이지 않았느냐?”
“…….”
주둥이를 꾹 닫고서 인상만 쓰는 걸 보니 정확해졌다.
서문경의 음색에 한층 더 비아냥거림이 뒤섞였다.
“염라대왕이라고 별 지랄 병신 소릴 하더니, 그냥 내가 어쩌다가 발로 찬 걸 가지고 머저리처럼 좋아했느냐? 으휴!”
“……어찌 됐건 여기까지 옮긴 것은 내 재량이었다. 하물며, 이제 곧 본교로 옮겨질 놈이 말이 많구나.”
“사람인 척하지 마라. 그냥 적마가 심은 도구 중 하나일 것 아니냐?”
그 말에 사내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분노로 덧칠된 적혈마공의 마기가 십이정경에 고루 퍼진 것이다.
“이런 애새끼가!”
마공으로 인해 혼탁해진 혼백에서 악취가 났다.
서문경은 사내가 진심으로 한심하고 안타까웠다.
“차라리 적마 말고 나한테 창법을 배우는 건 어떠냐?”
“죽여 버리겠다!”
“마인 아니랄까봐 사람 죽인단 말은 쉽게 뱉네.”
자신에게 달려드는 사내를 보곤 제자리에서 발을 굴렀다.
그 동작만으로 평생 수련하고 단련한 동공이 대맥을 질주했다.
거기에 천주심공의 수행을 덧붙이니, 마인이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쩨쩨하게 구는 적마 대신 내 창법을 조금 보여 주지.”
“……감히!”
지척까지 다가온 사내가 손톱을 휘둘렀다.
적혈마공이 깃든 조법이다.
피부에 닿는 순간 출혈이 멎지 않게끔 살을 찢어 놓을 터였다.
그에 비해 서문경의 동작은 작고 섬세했다.
“서쪽 하늘에 벼락이 흐르니, 진류서천(震流西天)이라고 한다.”
서문경의 오른손에 천주를 가느다랗게 빚은 창이 잡혔다.
마치 적마가 의념으로 적영창을 빚어내던 모습과 같아, 사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네가 어떻게…….”
“잘?”
짓궂게 웃은 서문경이 창대를 한 바퀴 휘두르니.
그것만으로 사내의 손톱이 우수수 부러졌다.
뼈 또한 무사하지 못하고 산산이 조각났다.
그렇게 사내의 양손에서 흐른 피가 수풀을 붉게 물들였다.
허나 아직 진류서천의 초식은 끝나지 않았으니.
“끄아악……!”
창날로 사내의 어깨와 발목을 헤집었다.
도저히 움직일 수 없게끔, 완벽한 제압이었다.
일초반식.
적마의 직전제자도 아니고 마인이 되다 만 녀석은 이 정도로 족했다.
‘마공을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하고 정경과 골수마저 빼앗겼으면 마교에선 폐품 취급이었겠지.’
진법에 틈이 보였다고 한들 독단 행동을 벌인 것과, 사소한 도발에도 발끈한 이유가 훤히 보인다.
서문경은 자그마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이깟 놈이라면 아는 정보도 많지 않을 테고, 연습 상대조차 안 됐잖아.”
무공사전을 흘낏거리면서 싸울 짬조차 안 나왔다.
그 말에 사내가 원독에 찬 눈으로 노려보았지만, 거궐혈을 걷어차는 걸로 대신했다.
“끄윽…….”
“이놈을 어떻게 써먹는다.”
마인의 무공을 수집해 봐야 도움이 되질 않는다.
잠시 고민하는 사이, 멀리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쿠구구궁……!
가히 숲을 무너뜨릴 기세로 달려오는 고수들이라.
서문경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어차피 소문도 안 좋은데, 상관없겠지.’
고수들이 도착하는 시간을 적당히 계산하고서, 사내를 앞으로 강하게 내던졌다.
“이게 무슨……!”
가장 먼저 도착한 고수가 사내를 받아 냈다.
천무학관에서 얼핏 본 무사부였다.
서문경은 그를 사납게 노려보며 뒤늦게 도착한 무사부들과 가장 고강한 기도를 지닌 중년인에게 직언했다.
“이게 무림의 최고 학관이라는 천무학관의 첫인사인가?”
“…….”
침묵이 잠시 흘렀다.
그 사이에 서문경이 재차 몰아쳤다.
“이러다 죽었으면 어쩌려고 그랬을까!”
서문경의 얼굴에 짙은 조소가 맺혔다.
천무학관에게 굴욕을 주고, 마교의 침입을 방임한 책임을 지게 만들고자 했다.
‘이로써 천무학관이 더 안전해지고, 마교가 내 존재를 위험하게 여긴다면…… 전생과 달라지겠지.’
무림에겐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망나니로.
마교에겐 계속해서 모략을 깨뜨리는 적수로.
많은 이의 미움을 받을지언정, 감당하기로 하였다.
신비한 무공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