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야성 (4)
망나니에 미친놈.
천무신동 서문경을 관통하는 소문이었다.
무공에 재능을 가졌으나 가진 성정이나 인성이 뒤떨어졌다고 하였다.
하지만 거지가 직접 마주한 서문경은 망나니일지언정 취하지 않고 미친놈이나 모자라지 않았다.
‘아쉬운 것 없는 놈이 왜 천무학관에 들어가려는 걸까.’
궁금증이 불쑥 들었다.
거지의 위치상 반드시 알아야 하는 처지였다.
자신이 바로 서문경이 찾던 호북성의 분타주였으니까.
그리고 이번에 천무학관의 합격자인 둔걸의 스승이기도 했다.
“게을러터진 놈아.”
그 말에 방구석에서 누워 있던 소년, 둔걸이 배를 벅벅 긁었다.
“왜요?”
“방금 네 동기 봤다.”
“그래서요.”
“……말이 짧다? 너 뭐, 학관 안 갈 거냐?”
“안 돼요?”
터무니없는 소리로 대꾸하는 걸 보니 둔걸이라는 별호가 참 적절하다.
분타주의 이마에 핏줄이 우뚝 솟았다.
“구걸도 안 하는 밥버러지가 학관에 얼굴이라도 비춰야 할 거 아니냐?”
“밥버러지가 어찌 남들 앞에서 얼굴을 보이겠습니까……?”
느릿하게 대꾸하는 것조차 화를 돋운다.
분타주가 가만히 분노를 축적하고 있으니, 둔걸이 황급히 한마디를 덧붙였다.
“밥버러지라도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을 수도 있죠.”
‘저게 X발 내 기분을 풀어 주려고 하는 말이 맞나?’
아무리 개방의 사승 사이에 격의가 없다지만, 이럴 때면 진심으로 쥐어 패고 싶어진다.
분타주가 가까이 다가가니, 둔걸이 누운 채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스윽, 스윽.
손가락으로 바닥을 잡아당기며 이동하는 모습.
이제는 두 발로 서는 것조차 귀찮은 건가 싶어서, 분타주는 손수 타구봉을 들었다.
“이런, 개, 염병할, X, 새끼. 두 발을 부러뜨려서 진짜로 기어 다니게 해 주마.”
“안 돼요!”
진짜로 살기를 흘리고 나니까 재빠르게 튀기 시작하는 소년의 뒷모습이라.
분타주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저게 개방의 미래라는 게 안타까웠다.
“밖에 누구 있냐?”
“예! 있는뎁쇼!”
“저 새끼 잡아 오고, 천무신동에 대해 일주일 동안 조사해와. 연통은 그때 보낸다.”
“알갔소!”
밖에서 거지 한 무리가 우르르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분타주는 화를 애써 몰아내며 창가에 다가갔다.
“배경 좋네. 거지새끼가 있기엔 너무 좋은 곳이야.”
쏴아아…….
동정호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뺨을 쓸었다.
* * *
일주일 뒤.
서문경은 전낭의 무게가 허전해진 것을 깨달았다.
“와…… 진짜 개털 됐네.”
이렇게 된 이유는 오직 하나.
살집이 부쩍 늘어난 연준호를 날카롭게 흘겨보았다.
“양심에 찔리지 않더냐? 도적놈아?”
“어허, 도사에게 그게 무슨 발칙한 소리야?”
“밥도 술도 잘 처먹어, 기녀랑 잘 놀아…… 이런 씹…….”
“그분들이 대화를 잘 맞춰 준 거지. 내가 노력한 건 없어.”
“그게 더 짜증 난다는 거다!”
잘생기면 다란 말인가?
서문경은 주먹을 꽉 쥐고서 부들거렸다.
저놈은 그냥 가만히 앉아서 사숙 이야기를 몇 번 하면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진다.
그뿐만이 아니라, 술을 주면 넙죽넙죽 잘 처마셨다.
연준호가 취하는 꼴을 보질 못했다.
옆에 있는 주백경과는 다르게 말이다.
“흐으…… 시원한 국물…….”
어제도 술 몇 잔에 뻗어서는 정신이 사해에 둥둥 떠다니고 있다.
서문경은 주백경의 등을 뻥뻥 두드렸다.
“주 무사야, 그냥 못 마시면 가만히 있기라도 해라.”
“하, 하지만…… 술잔을 채워 주면 마셔야 하지 않습니까?”
“아이고. 환장할 것아.”
나이가 약관을 넘었으면서 술도 못 마시고 여자와 대화하는 것 자체를 수줍어한다.
말쑥하게 생기면 뭐 하나, 사내구실을 못 하는걸.
‘나이가 열넷이면 갓 어른 소릴 듣기 마련인데.’
이제 막 열넷인 연준호가 어른 같고, 주백경은 호기로 술에 취해 해롱거리는 애송이 같지 않나.
서문경은 고개를 가볍게 내저었다.
이쯤 되면 연준호가 의심스러웠다.
“너 혹시 사문에서 술이라도 몰래 담가 마시냐?”
“사실은 이 년 전부터 사숙께서 몰래 먹이곤 하셨지.”
“진짜 뵙고 싶으신 분이다.”
얼마나 기인이면 연준호가 입에 달고 살아도 이야기가 항상 다를까.
서문경은 뚱한 눈으로 전낭을 쳐다보았다.
“이러다가 금방 끝나겠는데.”
“……우윽, 진짜입니까?”
제발 그만하길 바라는 주백경이 양(陽)이라면.
“아쉽구나. 입관까지 아직 열흘이 조금 넘게 남았는데.”
불야성에 완전히 적응해서 밤의 별이 되어 버린 연준호가 음(陰)이다.
서문경은 이 일행의 미래가 참으로 걱정스러웠다.
‘아니, 내가 천무학관에서 나가면 연준호랑은 끝인가.’
마교의 모략만 막으면 천무학관에 있을 이유가 없다.
그 생각은 속으로 감추었다.
지금 당장 말해서 연준호와 거리를 둘 필요가 없었다.
다만 미소가 쓰게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 자연스러운 척하려고 농담을 던졌다.
“방계에 가서 술 마시겠다고 돈 달라고 하긴 그렇잖아?”
“그건 그렇지.”
연준호가 마주 웃었다.
그에게 본심을 들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도중이었는데.
-공자님, 심기가 불편하십니까?
숙취에 시달리고 있던 주백경이 전음을 보내왔다.
서문경은 고개를 가볍게 내저었다.
-아니.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우윽……. 실례 좀 하겠습니다.
갑자기 어딘가로 달려가는 주백경의 뒷모습을 보았다.
항상 눈치가 없어서 부끄러울 지경인데, 꼭 이럴 때만 유난히 날카롭다.
서문경은 그에게 시선을 떼고는 전낭 안쪽의 패를 꺼냈다.
“이걸 가게에 맡기면 적어도 열흘은 너끈히 버틸걸.”
서문세가의 일공자임을 증명하는 철패.
그것을 본 연준호가 깜짝 놀랐다.
“아, 아니 그건…… 네 신분패잖아!”
“그렇지.”
“안 그래도 나쁜 소문을…… 더 나쁘게 만들려는 거야?”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망나니.
고서를 한 손에 쥐고서 싸우는 미친놈.
연준호가 보기에 서문경은 그 소문을 부정하기는커녕 공고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장본인은 무덤덤하기만 했다.
“내가 고서를 한 손에 들고 싸우는 건 사실이잖아?”
“하지만…….”
“걱정이 과하다. 어차피 나는 군문이고, 너는 도문이잖아.”
“벗끼리 이렇게 벽을 치겠다고?”
“사실은 사실이지.”
서문경은 연준호의 얼굴에서 서운함을 읽었다.
하지만 너무 가깝게 지내기도 미안했다.
언젠가 그의 무공을 무공사전으로 수집할 운명이었으니까.
‘부채감이라고 해도 좋고, 견해차라고 해도 좋겠지.’
친우로 생각했는데 어느새 자기 무공을 펼치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엄청난 배신감을 느낄 것 같았다.
서문경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그러한데, 무림인이라면 더욱 심하지 않을까.
그래서 밀어냈다. 밀어낼 수밖에 없었다.
“나랑 너무 친해지면 똑같은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니까 조심해.”
“…….”
연준호가 적막한 눈으로 자신을 직시했다.
진의가 무엇인지 궁금하단 눈치였지만, 무시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니, 연준호가 쓸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갑자기 정색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소문을 정론으로 굳히려는 이유가 있겠지.”
‘열네 살답지 않네.’
연준호가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도 이상하지 않았건만.
서문경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생각해 주면 좋지.”
“……내가 재담꾼이고 별종이라 이러는 거야. 다른 입관생들은 오해할 거고.”
“따돌려질지 모른다?”
“그건 내가 있어서 괜찮을걸.”
연준호가 농담을 던지는데 어조가 어색했다.
차가워졌던 분위기를 되살리려는 노력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마저도 무시할 수가 없어서, 서문경은 연준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나저나 주 무사는 술 담으러 갔나? 왜 이리 안 온대?”
“찾으러 가자.”
둘은 열네 살 소년답게 키득거리며 주백경이 사라진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한참을 가니, 주백경이 취월루의 기녀와 어색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도 오시는 건가요?”
“그건 공자님께서 정하실 일이요.”
“하지만 주 호위님이 어른이시잖아요……?”
“어른이나 호위일 뿐이오.”
“……흐응.”
기녀가 은근슬쩍 주백경의 목덜미를 매만지는 게 아닌가.
서문경은 인상을 팍 쓰며 외쳤다.
“오냐오냐하니까 내가 돈 주러 가는 사람으로 보였느냐?”
“고, 공자님!”
참으로 다행이라는 듯 표정이 밝아진 주백경과 눈을 크게 뜬 기녀.
그것도 잠시였다.
기녀의 입가가 가늘어지더니 교태를 부렸다.
“하지만…… 공자님께서 오시길 너무 기다렸는걸요.”
“내가 어리다고, 구슬리면 된다고 생각했느냐?”
참으로 얕은 생각이 아닌가.
서문경은 기녀를 비웃으며 적절한 처벌을 떠올렸다.
그때 마침,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취월루가 내는 공납이 얼마더냐? 문관을 불러서 제대로 내고 있는지 확실하게 판가름해 볼까?”
“……괜한 허세는 안 돼요. 공자님”
“허세? 허세라고 했겠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다.
서문경은 전낭에서 철패를 꺼냈다.
글을 읽을 줄 안다면 똑똑히 보일 터였다.
서문세가 일공자.
명장의 손길을 타고 양각된 글자가 햇빛에 번뜩였다.
“이래도?”
“……!”
그제야 기녀가 넙죽 엎드렸다.
눈과 귀가 뚫려 있다면 서문세가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 것이다.
군문 제일의 서문세가.
이런 가게 하나쯤, 발가락만 꼼지락거려도 부술 수 있다.
“자, 잘못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세요!”
“마침 떠올린 처벌이 있긴 하다.”
“무……엇일까요?”
기녀가 눈물 젖은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이에 서문경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기녀를 손가락질했다.
“앞으로 열흘 동안! 우리가 취월루에서 노는 비용을 전부 내라!”
“……예?”
“공자님?”
“아니…….”
바닥에 엎드렸던 기녀와 주백경, 심지어 연준호마저 경악했다.
도저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제가 잘못 들은 거지요……?”
그나마 서문경과 오랫동안 동행한 주백경이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서문경의 대답은 단호했다.
“네가 들은 것이 맞다!”
“그, 정말 그렇게까지……?”
“오냐!”
“…….”
주백경이 진심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의 시선에 왠지 모를 혐오감마저 느껴질 정도.
저런 반응은 연준호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네, 진심으로 망나니짓에 진심이었구먼…….”
얼마나 황당했는지 단어가 겹치는 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서문경으로선 오히려 좋았다.
“하하, 돈도 해결됐으니까 취월루로 갈까? 철패를 맡길 일도 없어졌으니 좋구먼!”
“…….”
“…….”
서문경이 앞서 걸어가는데 따라오는 이 없었다.
왠지 슬퍼졌다.
* * *
그날 밤.
서문경은 취월루에서 온갖 시선을 마주하며 술을 마셨다.
그들 중에 어떤 파락호가 다가와서 존경의 시선을 보냈다.
“공자님은 망나니 중의 망나니입니다! 와, 그 나이에 시녀를 협박해서 돈을 뜯다뇨! 엄청납니다!”
‘죽일까?’
망나니짓하긴 했어도 직접 들으니 술맛이 떨어진다.
심지어는 주백경과 연준호의 시선도 싸늘했다.
“그, 왜 한 자리씩 떨어져 앉았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요.”
“멀리하려는 건 아닐세. 허허.”
거리를 두고서 적당한 대답만 일삼는 두 사람.
……오늘따라 마시는 술이 달았다.
‘고독하구먼.’
서문경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바람을 쐬러 취월루 밖으로 나갔다.
내심 기대하는 만남이 있었다.
호북성의 전설로 남을 망나니짓을 한 이유.
나쁜 소문을 퍼트려서 공고하게 만든 건 오직 하나뿐이었다.
“자네.”
서문경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악취를 풍기는 노인이 소매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겉보기엔 개방도처럼 보이지만…….’
그들과는 다른, 확실한 차이가 있다.
서문경은 전생의 기억을 가다듬었다.
노인에게 나는 악취는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꽃에 관심 있나?”
양귀비.
한번 시작하면 끊질 못하는 패악(悖惡).
‘드디어 찾아왔나. 마교의 끄나풀 놈.’
일주일 동안 망나니짓을 한 보람이 있다.
서문경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신비한 무공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