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24화 (22/250)

생사일여 (4)

천무학관이 어디던가?

무림의 후기지수가 서로 교분을 쌓으며 절차탁마하는 교육의 장.

서문세가를 비롯한 군문이 항상 예의 주시하여 탈세의 정황이나 화약, 양귀비 거래를 감시하곤 했다.

한데 그곳에 마교가 숨어 있다?

그놈을 찾아서 또 뭘 어쩐단 말일까?

“공자님…….”

도무지 모를 사람이다.

주백경의 눈초리가 묘하게 돌아가자 서문경이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 날 의심하냐?”

“그게 아니라…… 그만큼 심각한 문제라면 가주님께 말씀을 드리고 도움을 받으셨어야지요.”

“도움이 아니라 직접 천무학관을 찾아가서 뒤집어엎지 않았을까?”

“그게 나쁘다는 겁니까?”

그 말에 서문경은 의뭉스러운 미소를 빼물었다.

“여기서부터 막히면 답이 없는데.”

“마교가 있으면 발본색원하여 죄를 밝히고 처벌하며, 혹여 천무학관이 감추었다면 꾸짖어 무림의 세를 당연히 줄여야 합니다.”

주백경은 늘 그렇듯 정론을 논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주백경에게 무림인이란 바름을 모르면서 협(俠)을 논하는 무뢰배였다.

특히 오대세가에 대해서는 사도(邪道)에 가깝다 여겼다.

패악질을 강함으로 착각하는 사특한 자들.

그런 놈들이 천무학관에 잔뜩 모여 있으니 마침 잘된 일이 아닌가.

주백경의 표정을 본 서문경이 부드럽게 웃었다.

“주 무사.”

“아무리 공자님이어도 이번 일은 묵과하기 어렵습니다.”

“만약에 말이야, 마교가 천하를 불태우기 위해 무림의 힘을 깎아 놓는 거라면 어떻게 하겠어?”

“…….”

주백경은 잠시 침묵했다.

무림인을 꺼릴지언정 그들이 가진 저력을 알았다.

하물며 대명의 황제가 대외적으로 무당파의 현천상제, 진무신(眞武神)을 밀어준 이유가 무엇이었나?

북적이 창궐할 때 힘을 빌려줄 테니까.

그만큼 군문 못지않게 강한 힘을 지닌 것이 무림이었다.

만일 서문경의 말처럼 마교가 존재한다면 무림을 경계하는 것이 당연했다.

“……가정이라지만 신빙성이 있습니다. 무림의 혼란을 노린다면 역시, 후기지수가 모인 곳을 노리겠지요.”

“그래서?”

“막긴 해야지요.”

주백경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림인이 후안무치한 족속이라고 하나, 공동의 적이 있다면 뭉칠 수 있습니다.”

“아버지라면 서문세가로 충분하다고 했겠지?”

“가주님이라면 그러셨겠지요. 하지만 공자님께선 군문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여기까지 오시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서문경이 가벼운 어조로 긍정했다.

자연히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천무학관에 마교가 숨어 있단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애초에 서문경은 상식적으로 움직인 적이 없었다.

검치와 기상천외한 만남을 꾀했고, 갑자기 옥화산으로 행하기도 했다.

묵묵히 뒤따른 것은 자신이 그의 호위이기 때문이라.

주백경은 잠시 주저하다가 물었다.

“공자님은 바른길을 걷고 계시지요?”

그 물음에 서문경이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래.”

“그거면 됐습니다.”

의문은 깔끔하게 접었다.

어차피 주백경은 서문세가의 공자 중 한 명의 보검이 되어야 했다.

암살이나 간자 같은 궂은일이나 외딴곳에서 쓸쓸히 죽는 것을 각오하였다.

하지만 서문경은 그러지 않았다.

자신을 물건처럼 대하지 않았으며, 함께 생사를 투쟁하였다.

‘물론 공자님께서 자초하신 일이 대다수지만.’

다른 군문의 공자들은 호위를 사지로 보내는 일이 흔하지 않나.

주백경은 빙긋 웃었다.

“본가에서 출발한 지 스무 일이나 지났습니다. 슬슬 중경을 넘어서야지요.”

“……그럴까.”

서문경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제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약을 취한 이후 시간이 제법 지나, 혈색이 안정되고 눈이 말갛게 변했다.

여전히 푹 젖은 옷과 어수선한 머리카락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건 주백경도 마찬가지였다.

“이러고 있으니까 우리, 수재민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집이 물살에 떠밀려 간 형제로 설정 바꿀까?”

“아이고, 공자님. 그 설정은 대체 언제 제대로 써먹습니까? 보는 사람마다 공자님의 정체를 알아보지 않습니까?”

“가끔 마을에 들러서 잘 땐 요긴하게 써먹잖아.”

“무림인한테 통해야 의미가 있는 거지요.”

그 말에 서문경이 껄껄 웃으며 동쪽으로 빠르게 걸었다.

평소처럼, 지난밤에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동공을 행하며 천주심경을 적공하는 데 집중했다.

대화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하지만 서로 목숨을 구한 신뢰가 깔려 있어, 안온(安穩)하였다.

열흘 뒤.

중경을 넘어선 두 사람은 곧장 호북성 의창까지 향했다.

그동안 서문경은 생사현관을 타통한 자리를 깔끔하게 정돈하며 삼단전의 균형을 조율했다.

‘너무 일찍 경지를 드높여도 문젠가.’

보통 생사현관을 타통하여 정기신의 균형과 합일을 꾀하는 고수라면 엄청난 내력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직 서문경의 공력은 미진했다.

옥화산에서 탈취한 영약을 퍼먹었음에도 쑥쑥 쌓이질 않는 것이다.

‘……아무래도 천주심경 때문인 것 같은데.’

강철의 기둥을 심상으로 삼아 하늘까지 쌓아 올리는 수행.

그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공력이 들어갔다.

동공을 행하며 걷다가도 갑자기 쉬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서문경의 인상이 자연스레 찌푸려졌다.

“금강심이랑 부동경만 아니었어도.”

“갑자기 왜 기만을 하십니까?”

수행이 부족한 주백경에겐 꿈처럼 요원한 구결인지라, 입술이 삐쭉 튀어나왔다.

이 경우에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수련이 부족한 걸 왜 나한테 탓하나……?”

“…….”

주백경이 맥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것으로 몇 승을 취한지 모르겠다.

서문경은 실소를 흘리며 의창의 정문을 따라 늘어선 줄을 보았다.

“지금부터 서면 두 시진은 걸리겠는데?”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입성하지요.”

평소라면 줄을 서자고 할 주백경마저 지쳤나 보다.

서문경은 곧바로 수문장에게 다가갔다.

“멈춰라! 어리다고 하여 봐주지 않는다!”

열네 살 소년과 스물세 살 청년.

정돈하지 않은 매무새를 보면 누구라도 얕잡아볼 만했다.

거지처럼 보여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서문경에게는 신분을 증명할 물건이 있었다.

“오래 서느라 힘들지 않나? 종아리가 부을 텐데…….”

짐짓 너스레를 떨면서 철패(鐵牌)를 꺼내니.

서문세가의 직계만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신분패였다.

그걸 본 수문장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그, 근무 중 이상 없습니다!”

“나처럼 어린 사람한테 뭘 그리 반응하나, 설마 아버지께 말할까 싶어서?”

“아, 아닙니다! 그런 생각한 적 없습니다!”

고압적인 자세를 유지하던 수문장이 소년을 극진하게 대하니 줄을 서던 사람들의 시선이 꽂혔다.

서문경으로선 난감하고 귀찮은 일이었다.

“대명의 수문장이 이렇게 격조 없는 모습을 보이면 되나?”

“시정하겠습니다!”

“……됐고, 공무가 있어서 그러는데 호위와 함께 통과해도 되겠는가?”

“그야 물론이지요!”

그 말에 주백경이 순간 입술을 어물거렸으나, 서문경이 한 손으로 틀어막았다.

들으나 마나였다.

왜 거짓말을 하느냐고 그랬을 터였다.

-안 그래도 품위가 상했는데 우리가 피곤해서 들어간다고 하면 줄을 선 사람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를 것이다. 그걸 원하느냐?

빠르게 보낸 전음에 주백경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것을 본 서문경은 수문장에게 한쪽 눈을 찡긋거리고는 정문을 통과했다.

그사이에 일련의 동작을 연습했다.

……팔락.

무공사전을 한 손으로 넘기면서 공력을 운용하고 생각을 멈추지 않는 것.

이십일 전이나 지금이나 첫 동작부터 난망했다.

‘쉽지 않네.’

아직 손이 작아서 그런가 한 손으로 책장을 넘기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게다가 무공사전의 두께가 웬만한 도경 같았다.

‘이것만 되면 상대의 무공과 행동을 훔쳐보면서 천주심경으로 보신(保身)과 의념 절초를 겸할 수 있을 텐데.’

다른 고수보다 공력은 부족할지라도 경험과 신공으로 넘어설 수 있다.

하물며 자신에겐 십수 년의 시간이 남아 있지 않나.

서문경은 열흘 동안 품었던 생각을 주백경에게 논했다.

“천무학관에 가면 말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걸 숨기지 않을 거야.”

“왜입니까?”

“위협이 되어야 숨는 걸 포기하고 일찍 기어 나올 거 아냐.”

마교가 천무학관을 불태운 건 무림의 새싹을 짓밟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음침하게 힘을 숨기며 기회를 노리기보다 이목을 끌어서 스스로 다가오게 만드는 것이 나을 터.

위험을 감수해야 할 테지만, 서문경에겐 나름대로 방비할 수단이 있었다.

그중 첫 번째가 바로.

“주 무사가 있으니까 몸을 지키는 건 든든하지.”

“언제는 실력 가지고 구박하시더니.”

말은 그렇게 하지만, 주백경의 얼굴에 미소가 있었다.

서문경은 저도 모르게 지난 삼십 일을 회상했다.

‘평생의 후회를 없애고, 평생의 동료를 얻었구먼.’

주백경의 무위가 생각보다 뛰어나진 않았다.

강호에 걸맞지 않은 품성 또한 문제였다.

그러나 서문경이라고 해서 잘난 건 아니었다.

무재와는 별개로 신중하게 움직이거나 바르게 행동하지 않았다.

그걸 주백경이 덧붙이고, 맹목적으로 따라와 주었다.

‘내가 착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손에 닿는 한, 마교를 무찌르며 천하의 안정을 꾀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 * *

옥화산 중앙의 동혈.

비석과 얼굴 없는 부처 석상의 잔해가 어지럽게 흩어져있다.

그 중앙에는 칠공에서 피를 쏟으며 죽은 마인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불청객이 있었는가.”

붉은 장포를 걸친 남자가 중얼거렸다.

어두컴컴한 동혈 속에서 자기가 걸친 장포처럼 붉은 안광을 번뜩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 올 한 올 피로 물들인 듯한 머리카락은 또 어떠한가.

누가 봐도 마기가 골수까지 치민 마인이라고 할 외견.

그러한 남자를 기다리고 있던 선객이 있었다.

“적마(赤魔)야.”

동혈 구석에서 몸을 일으킨 선객, 검치가 히죽 웃었다.

“귓구멍에 자꾸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서 먼저 부쉈다. 괜찮지?”

“네놈이 대업을 방해하였느냐?”

옥화혈사.

강서 무림의 결속력을 부수고 서로 상잔하게 만들려는 계획이 초장에 무너졌다.

적마는 검치를 노려보며 적혈마공을 끌어 올렸다.

쿠구궁…….

내관혈이 시뻘겋게 물드는 것과 동시에 나타나는 적영창(赤影槍).

의념 자체를 자기 무기로 삼아 휘두를 줄 아는 마도 고수였다.

초절정고수라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검치는 속으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냥 천천히 따라가다가 위험해지면 멋있게 나서려고 했던 게 왜 이렇게 됐지?’

온종일 술을 마시다가 서문경의 행적을 놓쳤다.

발자취가 끊긴 곳이 옥화산이기에 샅샅이 뒤졌는데 웬 동혈이 나오질 않나, 마인의 시체가 덩그러니 있었다.

그러니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인의 추적을 막는 것으로 빚을 청산하고자 했다.

그런데 왜 하필 적마일까?

속으로 한탄을 토한 검치가 겉으론 실실 웃었다.

“내가 그랬다. 화났냐?”

“…….”

적마가 말없이 적영창을 쥐니, 검치도 각오를 해야 했다.

“정 해 보겠다면 어울려 주마.”

“선공은?”

“기꺼이 주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적마와 검치가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맞붙었다.

쿠구궁……!

옥화산이 지도에서 사라지는 날이었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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