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치 (5)
사천성 성도의 고수, 검치란 어떤 인물인가?
성격은 지랄 같고 행실 또한 가볍기 그지없다.
기준에 맞지 않으면 원숭이라고 부르는 태도는 부덕하기까지 하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이대로 잠들기에 너무 아름다운 야경이지 않나.”
수많은 별빛과 달빛 아래서 서문경을 채근했다.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자기 고집대로만 하려는 태도는 악착스러울 정도.
서문경은 검치를 보았다.
어둠에 어슴푸레하게 잠긴 순수한 웃음,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검의 광인.
그렇기에 검치(劍痴).
‘또, 번천광검결이라.’
무인의 성정은 갈고 닦는 무공에 물들어 가기 마련이라 하였다.
따라서, 양명성의 검격을 전생부터 쌓은 안법이 한 줄기 공력조차 놓치지 않고 머리에 새겼다.
서문경은 자각 없이 웃었다.
소가주의 자리와 무게를 벗고 일개 야인을 자처하는 것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억지에 응해 볼까.’
서문경의 입술이 가늘게 열리려던 찰나.
주백경이 고지식한 성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이보쇼. 검치 선배. 설마 그 내기가 무공을 겨루거나 칼을 맞대는 것이오?”
“그게 뭐?”
“아까 한 말을 잊었소?”
“…….”
검치가 잠시 할 말을 잃었다는 듯 주백경을 쳐다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 진 알았다.
그저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목숨 어디다 맡겨 놨냐?”
“방금 발했듯 무림의 명리에 밝진 않소이다. 하지만 선배가 고수라고 바른 소릴 못한다면 무림이 잘못된 거지 않겠소?”
“…….”
“선배가 도리를 안다면…….”
“아, 그래! 알겠다! 알겠다고!”
무슨 사람이 꼿꼿하기가 저렇게 대쪽 같을 수가 있나?
검치는 도와달라는 듯 서문경을 돌아보았다.
“네가 좀 말려라.”
“제가 왜요?”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와 선배의 연배 차이가 얼마인데…… 설마 검술 내기였습니까?”
서문경의 미소가 의뭉스럽게 느껴졌다.
소년의 영악함이 아니라 숫제 노강호에 가까웠다.
검치는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런 말 놀음은 좀체 익숙해지질 않았다.
그래서 완전히 양보하기로 했다.
“방어만 하마. 반격도 안 하고! 적당히 봐주면서!”
“예? 진짜요?”
“못 들은 척 하지 마라! 염병할, 재밌게 놀려고 한 내기가 재미없게 변한 것도 짜증나건만.”
검치의 일변한 기세가 사뭇 날카롭다.
짜증과 분노가 뒤섞인 시선이 주백경을 향했다.
“이제 됐냐?”
“……충분하오.”
주백경은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돌렸다.
시선에 담긴 공력이 너무나도 매서웠다.
검치의 가벼운 투정이 하수에겐 숨이 턱 막히는 압박감으로 군림했다.
괜히 벌집을 건드린 것 아닐까.
걱정이 불쑥 들어서 서문경의 얼굴을 보았다.
전음으로 사죄라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잘했어.
돌아온 것은 칭찬이었다. 배려나 거짓 따위도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출수할 듯.
등 아래의 지실혈과 태충혈에 적잖은 공력이 넘나들고 있다.
서문경의 모습을 본 검치가 씩 웃었다.
“오냐, 너는 그래도 말이 통하는구나.”
“지금부터 시작하면 되겠습니까?”
“집 다 박살 낼 작정이냐? 나가기나 하자.”
그 말에 서문경과 주백경이 정문에서 비켜 섰다.
검치가 자연스럽게 걸었다.
고수답게 두 사람과 정문을 지나치는 건 순식간이었다.
“어, 그러고 보니.”
검치는 정문 밖에서 멈춰 섰다.
갑자기 든 의문이 있었다.
언제가 시작인지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서문경이 평범한 후기지수가 아니라는 것, 역시.
“……후우.”
깨달은 순간, 검치의 등 뒤에서 숨소리가 들렸다.
고르고 정심하다.
폐부까지 긁어 뱉은 호흡이 피부에 닿았다.
정련한 공력의 열기.
필시 서문경이리라.
“요 맹랑한 놈.”
씨익 웃은 검치가 등 뒤를 천천히 돌아보기 시작했다.
* * *
검치가 정문을 넘어서 등을 보였던 순간부터.
서문경은 은밀하게 공력을 끌어모았다.
쿠르르……!
검치에게 제대로 된 한 방을 먹이기 위함이었다.
‘적어도 융통무애(融通無碍)한 경지에 올랐겠지.’
융통무애가 무슨 말이던가?
거침없이 통하여 막히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 부닥치더라도 적재적소로 움직여 행한다.
사고와 행동에 얽매임이 없다.
쉽게 말해, 내기의 승자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몸, 단기간에 적공한 내력.
기틀이 여물지 않은 상태론 정기신의 균형을 이룬 검치의 방어를 뚫을 수 없었다.
‘무림의 평범한 후기지수라면 말이야.’
땀방울이 서문경의 뺨을 타고 흘렀다.
표정도 일그러졌다.
적잖은 공력이 수양명대장경의 세맥에 파고든 고통.
극고(極苦)의 운행은 일격필살을 위함이니.
“……후우.”
숨을 가다듬으며 서문심법의 운용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내관혈에 있는 핏줄이 뜨거워서 녹아내릴 것 같았다.
고통을 참으며 천천히, 은밀하게 검에 손을 가져가는 순간.
“요 맹랑한 놈.”
검치의 직관이 급습을 꿰뚫었다.
언뜻 보인 그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불쾌함이나 짜증 따윈 없다.
그저 순수하게 기대하는 아이의 마음 같았다.
그걸 본 서문경은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괴물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나?’
그런 점에서 검치는 괴물이다.
등 뒤의 급습을 보고도 분노하는 기색 없이 저리 순수하게 기뻐할 뿐이니.
자연히 괴물을 꺾을 수 있는 초식을 떠올렸다.
서문경의 입술이 가늘게 열렸다.
“일검적심.”
초식명을 말하긴 했으나, 검이 먼저 나갔다.
전심전력을 담은 찌르기가 검치의 가슴으로 쏘아진다.
쩌적!
축으로 삼은 왼발 아래의 땅이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경파에 담긴 힘을 대지가 이기지 못한 탓이다.
칼날을 마주한 촌각의 순간에도 검치가 말했다.
“뭘 거는진…….”
정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검치가 환히 웃으며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에 서문경은 시야에 담은 검치를 잘게 쪼갰다.
팽창하는 견갑골, 체외로 번져 유형화하는 공력, 검극을 또렷이 노려보는 시선.
또,
자신의 피부를 아릿하게 만드는 투기라.
‘적수 앞에서 몸집을 키우는, 짐승의 흔한 수법이다.’
방심한 틈을 노리고 사각에서 힘을 축적하여 쏟았다.
단기간에 적공하였다고 한들 이십 년.
가볍게 쳐 낼 무게가 아니다.
……평범한 수법이라면.
“져 주긴 싫은데.”
검치가 낮게 읊조리는 소리가 들렸다.
견정혈을 중심으로 퍼뜨린 공력이 호신기의 형상을 그렸다.
카앙!
일검적심이 호신기를 뚫지 못하고 밀려나자, 천연덕스러운 목소리가 자연스레 뒤따라왔다.
“방어에 제한을 두겠다는 소린, 하지 않았잖아?”
‘애랑 진심으로 싸우겠다니. 고수다운 위엄은 개나 줬나.’
인상을 찌푸린 서문경은 두 번째 일검적심을 준비했다.
그걸 본 검치의 웃음이 짙어졌다.
“내 호신기를 뚫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냐?”
처음부터 이 내기는 자기가 이길 수밖에 없었노라고.
이제라도 사죄하면 내기는 없었던 걸로 해 주겠단 여유도 언뜻 보였다.
재수 없는 태도에 굴할 이유는 없었다.
‘내가 왜.’
이길 계획이 있으니까.
서문경은 입술을 비틀었다.
터엉!
일검적심이 또다시 호신기에 막혔다.
적잖은 공력이 담긴 경파가 무너지며 반발력이 손목으로 되돌아갔다.
다만, 그전에 검을 놓아 버렸다.
“……!”
검치의 미간이 강하게 찌푸려졌다.
호의가 분노로 물들어 갔다.
검사가 검을 놓는 것만큼, 싫어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서문경은 그 지점을 노렸다.
검에 관한 집착을 이용하기로 했다.
‘홍가권의 주법(肘法).’
아래로 치우치는 칼.
검의 말단에 있는 손잡이를 팔꿈치로 후려쳤다.
가슴을 노리던 칼날이 이제는 검치의 발등을 노렸다.
“……이크!”
그러자 언제 화를 냈냐는 듯, 검치가 다시 웃었다.
이것을 준비했느냐고…… 귀여운 후배를 본다는 그 눈.
서문경의 주법이 또 다른 변화를 마주했다.
‘수도, 그리고 파자권.’
홍화연이 펼쳤던 것을 손쉽게 모방한다.
홍가권을 완벽하게 익히진 못했지만, 경험으로 부족함을 채웠다.
쩌억!
수도로 검의 손잡이를 다시 한번 내리치고서, 변초.
꽉 말아 쥔 네 손가락으로 단창의 형상을 그렸다.
노리는 부위는 가슴 아래의 기해혈.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일보였다.
“기교에서 이어지는 기예라.”
검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경탄과 짜증이 뒤섞였다.
그가 무슨 말을 할지야 뻔하다.
“권이 아니라 검으로 펼쳤다면 좋았을 것을.”
“난 검사가 아니라서.”
짧게 대꾸하고서 파자권을 내질렀지만, 검치의 시선은 칼에 있었다.
아주 명쾌한 직관이다.
이십 년 공력이 담긴 칼과 미약한 힘이 담긴 주먹질.
당연히 전자를 우선하지 않겠나.
쩌정!
칼이 호신기의 반탄력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그에 비해 파자권은 막을 생각도 없어 보였다.
“네가 권법을 익혔다고 한들, 기초지. 공력도 부족하지 않냐?”
검치가 빙긋 웃었다.
홍화연을 모방하듯 펼친 홍가권에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
서문경은 속으로 크게 웃었다.
‘직관이 훌륭하다고 의지해선 안 되지.’
하긴, 열네 살 소년 안에 관존의 정신이 있는 것도 이상한가?
서문경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술을 비틀었다.
양명성과의 비무에서 아낀 칠 년의 내공.
그것을 수양명대장경의 세맥에 때려 박고서, 계속 숨긴 이유는 바로.
‘호신기에 정신이 팔리면 안법이 미진해지니까.’
“……?”
뒤늦게 알아차린 검치가 다급히 두 손을 모았다.
맨몸으로 받아 내서 자신을 깔아뭉개려고 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방만하고 오만했다.
무공의 이치가 무엇인지를 망각했다.
‘무공이란 본디, 약자의 궁리.’
호조권(虎爪拳), 선학보(仙鶴步)가 그러했듯.
무공은 짐승의 움직임을 따라 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강자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불가능에 도전하기 위해서.
그 이치를 따라 서문경은 검치의 방어를 뚫기 위해 궁리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쩌적─!
파자권이 검치의 두 손 사이를 비집었다.
그래야만 했다.
‘검치의 공력 수발은 융통무애한 경지에 있으니, 두 손에도 공력을 둘렀겠지.’
짧은 순간에 호신기를 끌어 올릴 기량이야 충분하다.
정권이 아니라 파자권.
그 선택은 철저한 궁리의 결과물이었다.
“……!”
검치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경탄이 경악으로 변했다.
여기까지 자길 몰아붙인 후배에 대한 놀람.
그리고 아쉬움이라.
“……철판교!”
등 뒤에서 탄식의 외침이 들렸다.
검치가 순식간에 상반신을 수평으로 뉜 것이다.
“아쉽다만.”
파자권은 허공을 가를 것이다.
심심한 위로가 담긴 목소리가 서문경의 귀를 간지럽혔다.
하나 그마저도 예상했다.
융통무애한 경지의 고수가 몸을 움직이는 데 지체가 있을 리가 있나.
서문경은 씩 웃으며 세맥의 공력을 억지로 뒤틀었다.
소부혈과 노궁혈이 쓰라릴 정도로.
자연히 오른손의 근육이 뒤틀렸다.
“……허.”
서문경의 오른손을 본 검치가 쓰게 웃었다.
“이런 미친.”
구수(鉤手).
손목을 아래로 구부려 만든 갈고리의 형상.
철판교를 펼친 검치로선 피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서문경은 티끌만 한 공력까지 모두 짜내며 생각했다.
주법, 수도, 파자권, 구수.
이 모두 홍화연이 자신에게 펼쳤던 홍가권의 권로였다.
‘삼류에 불과한 아이의 무공만으로 검치에게 닿았으니.’
약자의 궁리는 능히 강자에게 대항할 만하다.
후웅……!
검치의 가슴팍, 거궐혈을 향한 마지막 일수.
서문경은 구수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었다.
신비한 무공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