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비한 무공사전-10화 (8/250)

검치 (2)

사천성 성도(成都).

화려한 색으로 어둠을 감춘 도시다.

홍등과 화주에 취해서 걷다가는 조용히 사라지고 만다.

서문세가도 이를 안다.

주기적으로 성도를 수색하고 당가에 어깃장을 놓곤 했다.

그것이 한계였다.

서문경은 항상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가 말이야.”

“예…… 응.”

“언제 선 넘는 짓 안 할까? 기름먹인 활이랑 화포를…….”

“쉬, 쉿!”

주백경이 새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주의시켰다.

성도 한복판에서 당가를 욕하면 죽여 달라는 소리와 마찬가지.

서문경의 재지가 아무리 뛰어나도 수를 가리지 않는 당가에게 살아남기란 요원했다.

“숨넘어가겠다. 경아, 왜 그러는 거냐?”

“독공이나 쓰는 새끼들이 정파랍시고 있으니까 꼽…….”

텁.

이젠 정말 안 되겠다는 듯, 주백경이 자신의 입을 막았다.

곧이어 귓가에 전음이 스쳤다.

-그만하십시오! 만일 당가가 듣는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그게 마음에 안 든다는 거야. 성도가 무슨 자기 꺼야? 우리 가문만 아니었어도 북적한테…… 어휴, 썩을 것들.

천마 때문에 정의맹을 세우고 협력했지만, 여전히 무림에 불만이 많았다.

거기까지 말한 서문경이 주백경의 눈치를 봤다.

“…….”

어디까지 말하나 보자는 듯.

주백경의 표정이 무덤덤했다.

온순하던 사람이 왠지 자신 때문에 조금씩 변화하는 것 같았다.

그걸 본 서문경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 굳이 당가랑 얽혀서 뭐가 좋겠어? 그만할게.

-도련님. 그러잖아도 먼 여로를 위험하게 만들진 맙시다.

-알았어…….

서문경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전생엔 대놓고 당 가주한테 면박을 주곤 했는데, 아직 어리고 약한 것이 한이었다.

그래서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검치 말이야, 살인을 꺼리는 거 말고 다른 정보는 없어?

어떤 고수인지 궁금해졌다.

검치.

전생에선 들어 본 적 없는 별호다.

관존으로서 활동하던 시간대와 겹치지 않은 전대 고수일 가능성이 컸다.

‘천마에게 도전한 고수 중 한 명일지도 모르지.’

서문경이 내심 고민하던 차에 주백경의 전음이 들렸다.

-내력(來歷)이 불분명합니다. 어디 태생이고 누구 문하에서 무공을 배웠는지조차 모릅니다.

-희한하네. 요즘에도 그런 사람이 있어?

-저도 조사하면서 놀랐습니다.

무림에 기인이사가 즐비하다지만, 캐다 보면 꼬리가 잡히기 마련이다.

하물며 서문세가는 동창과 금의위와도 줄을 대고 있다.

그들의 정보력은 개방을 능가하는 일면을 지녔다.

거기서도 모른다고 할 정도라면 쉬이 얕잡아볼 수 없다.

주백경의 목소리에 신중함이 얽혔다.

-검치와 마주치는 것은 위험합니다.

-원래 무림이 위험한 거야.

-…….

-나만 믿어. 왜, 전에도 내가 해냈잖아?

마인의 오만과 방심을 정확하게 타격했던 편술.

이번에도 믿고 맡겨 보라는 듯, 서문경은 빙긋 웃었다.

* * *

“원숭이가 너무 많다.”

너무나도 애석한 일이 아닌가.

검치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앞을 보았다.

“검사(劍士)? 손장난으로 남에게 기예나 팔 것들이, 선비를 자처한다. 원숭이 손에 칼을 쥐여 준 거나 마찬가지인 것들이.”

파검(破劍).

깨지고 부서진 검이 마당에 널브러졌다.

원숭이들이 원독에 찬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참, 부질없는 짓이다.

“검이 깨졌는데 눈깔만 희번덕거려서 무슨 소용이냐?”

검치가 낄낄 웃었다.

비가 왔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덕담해 주기로 했다.

“내공을 키우는 것보다 등 아래의 지실혈, 발목의 곤륜혈에서 시작해서 바깥까지 휘감는 비골근을 단련해라. 자세가 그게 뭐냐? 돌만 던져도 질 것들이…… 쯧.”

“가, 감사…….”

“팔을 확 분질러 버릴까?”

“…….”

“수저질은 하고 싶지? 가만히 입 닫고 꺼지던가 해라.”

그 말에 원숭이들이 서둘러 자리를 떴다.

우스운 일이다.

죽이고 싶지 않아서 안 죽였더니, 하나라도 배울 수 있을까 싶어서 우르르 몰려든다.

이제는 조금 지겨웠다.

다음에 오는 놈이 있다면 피를 보는 편이 낫겠다.

검치는 하품하며 등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가서 낮잠이나 자야겠다.

그 생각이었는데.

저벅.

지면을 밟는 소리가 가볍다.

칼 든 원숭이의 발걸음이었다.

검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오면 벤다.”

“…….”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검치는 그것이 조금 우스워서 웃었다.

“클클.”

칼을 들면 묘하게 용기가 북돋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마주한 원숭이 전부가 그랬다.

‘이번에도 마찬가지겠지.’

검치는 별 기대하지 않고 칼끝을 지면에 댔다.

작은 진동이 멀리서 파문처럼 들려왔다.

쿵, 쿵, 쿵.

둔중하고 일정하다.

발끝을 내딛는 호흡이 섬세하고 날카롭다.

비골근이 잘 닦여 있는 검객만이 가능한 걸음.

검치는 웃음을 지웠다.

자기 경지쯤 되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었다.

“……어리네?”

약관도 채 되지 않았다.

솜털은커녕 팔다리도 짤막한 것이 느껴졌다.

그 주제에 보신경이 안정적이다.

매일 신장이 자라나는 나이답지 않았다.

마침내.

흥미가 생겼다.

검치가 고개를 돌렸다.

자길 똑바로 바라보는 아이와 그 옆에 선 남자.

생김새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검치에게 외견은 관심사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흥미가 계속되느냐다.

“너희 뭐냐?”

가볍게 던진 한마디에 공력이 엉겼다.

어깨를 짓눌러서 걸음을 방해해 보고자 했다.

기왕이면 멈췄으면 좋겠다.

흥미를 충족하는 것보다 낮잠을 취하고 싶었다.

그 기대는 일거에 깨졌다.

“……음.”

남자가 신음을 흘렸다.

검치의 눈에는 보였다.

오밀조밀하게 정련한 호신기가 공력을 비스듬하게 밀어내는 광경.

저런 운용은 군문에서 흔하다.

남자의 정체는 서문세가의 갑옷 입은 원숭이일 것이다.

검치는 시선을 아이에게 돌렸다.

“……어라?”

검치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손가락 한마디.

딱 그만한 내공으로 자신의 공력을 흘렸다.

칼을 들긴 했지만, 원숭이처럼 잡스럽게 휘두르지 않았다.

꾀(術)가 아니라 길(道).

검을 휘두르는 데 격식이 있었다.

아이의 눈동자에 검을 휘두른 궤적이 존재했다.

‘내가 저 나이 땐 어땠지?’

원숭이보다 조금 나은 정도.

어둠 속에서 칼을 길들였다.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순간까지 참 오래 걸렸다.

검치는 아이가 부러웠다.

“다음에 찾아오는 놈은 피를 보기로 다짐했다. 넌 그놈 다음에 와라.”

“사내가 무림으로 향하는데 피를 보지 않겠다면 겁쟁이와 다를 바 없지.”

진중한 어조에 앳된 목소리가 섞였다.

여러모로 애답지 않았다.

검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푸하하하……! 어이, 네가 보호자인가? 애를 어떻게 키웠기에 저러냐?”

“경아.”

소년 옆에 있는 남자가 불안한 눈으로 곁눈질했다.

하지만 말릴 기색은 없었다.

검치의 직관이 두 사이를 꿰뚫었다.

얼굴에서 웃음을 지웠다.

“명가의 자식인가? 하기야, 청운(靑雲)의 꿈을 지녔으니 간이 담대할 만하다. 그래도 목숨의 무게가 동등하다는 건 알아야지.”

“선배와 검을 논하려거든 위험은 감수해야지 않겠소?”

“맹랑하다. 하지만 버릇없는 것과는 다른 문제야.”

검치는 아이에게 물었다.

“네 이름이 뭐냐?”

“문경(門經).”

“문경이라…… 신동이라 불릴 만하다.”

천무신동 서문경이 저 아이리라.

뻔한 가명을 듣고도 모른 체할 생각은 없다.

검치가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첫수를 교환하기 전에 몸이나 풀려던 요량이었는데, 문득 한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왼손에 그건 뭐냐?”

“……책이오.”

“누가 그걸 모르겠냐? 선배한테 가르침을 받겠단 놈이 오래된 책을 들고 하겠다고?”

이거 완전 미친놈이 아닌가?

남에게 이런 생각을 품게 될 줄은 몰랐다.

검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문경을 손가락질했다.

“진짜 그거 든 채로 해야겠냐?”

“……그렇소.”

“아니, 염병할.”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

손목의 내관혈로 향하던 공력마저 백회로 오른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봐줘도 모자랄 판에, 네가? 허? 나보다 미친놈이 천하에 존재하긴 했구나.”

“……선배를 우습게 보거나 놀리려는 건 아니오.”

말은 진지해도 머뭇거리는 것이 보였다.

맥이 딱 풀렸다.

검치가 검을 늘어뜨렸다.

“검을 진지하게 마주할 자신이 없다.”

“선배.”

“네 꼴을 봐라. 한 손에 책을 들고 오는 정신 나간, 미친, 애랑 교검(交劍)을 나누고 싶겠냐?”

“…….”

문경의 얼굴이 붉어지는 걸 보고 검치는 씩 웃었다.

이제야 조금 마음이 풀렸다.

“내가 기르는 원숭이랑 겨루는 건 어떠냐?”

“선배에게 제자가 있소?”

“제자? 기르는 원숭이라니까?”

그 말에 문경 옆의 남자가 입술을 달싹였다.

뭔지는 몰라도 제정신 아닌 놈이랑 대화하지 말라는 전음이 아니겠나?

검치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씁. 누구 앞에서!”

“……죄송합니다.”

남자가 두 손을 모아 올렸다.

적어도 예의는 아는 놈이었다.

피식 웃은 검치가 손가락을 딱딱거렸다.

“나와라!”

“누가 기르는 원숭이야!”

집 창문을 박차고 솟구치는 그림자.

이제 나이가 열여섯에서 열여덟이던가?

검치에게 있어 장성하기 시작한 원숭이다.

문경이 반사적으로 검을 비스듬하게 들었다.

“오호.”

자신의 공력을 쳐 냈을 때와 같은 움직임.

탄성을 터트린 검치가 남자에게 물었다.

“저건 무슨 초식인가?”

“검견불퇴(劍見不退)라고 합니다.”

“좋은 이름이군. 검을 봤으면 물러남이 없어야지.”

바로 지금의 문경처럼.

검치는 자기가 기르는 원숭이의 쾌검을 보았다.

곡지혈, 기해혈, 견정혈.

상반신의 세 혈도를 동시에 점했다.

상공에서 날던 매가 지상의 먹잇감을 노리는 형세였다.

그러나 문경은 먹잇감이 아니었다.

“……후우.”

문경이 숨을 가다듬었다.

깊고 숙하게, 돼지처럼 헉헉대는 놈들과는 다르다.

검치는 자연스럽게 웃었다.

비가 내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잊었다.

“선비처럼 움직이는구먼.”

원숭이가 칼을 휘두른 이후.

문경은 세 걸음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제자리에서 칼을 흘리고 몸을 움직인다.

피치 못할 땐 한 걸음으로 생로(生路)를 열었다.

격조 있는 몸놀림이었다.

“저 소년은 검사다.”

검을 든 원숭이가 아니라 선비.

검치는 문경의 삼각근을 눈여겼다.

무인이 단련하기 쉽지 않은 곳을 잘 닦았다.

직선적인 투로에서 언제든 변화할 수 있게끔.

자기가 익힌 무학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으로 보였다.

“나이 차이가 안 나는 것처럼 보이는군. 서문의 장래가 너무 밝은 것 아닌가?”

“천무학관으로 가고자 하십니다.”

“거길? 왜?”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가만히 도경만 읽어도 등선할 놈처럼 보이는데?”

열네 살에 검을 안다?

검치도 불가했던 일이다.

그래서 보는 게 즐거웠고 짜증도 났다.

후자의 연유는 확실했다.

“……안 싸우길 잘했네.”

검을 마주하는 와중에 자꾸 책을 힐끗거리는 문경.

원숭이의 표정이 흉신악살처럼 변했다.

아무리 봐도 자길 능멸하는 것처럼 보일 터였다.

검치가 보기에도 그러했다.

“저놈 말이야. 자꾸 왜 책을 봐대?”

“……모릅니다.”

“아는 게 뭐야?”

“그러게 말입니다.”

남자, 주백경은 그저 허허 웃고 말았다.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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