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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무공사전-2화 (2/250)

신비한 무공사전 (2)

찌지직!

서문경은 한 톨의 진기를 이용해 양손의 밧줄을 끊었다.

살갗이 찢어져서 피가 뚝뚝 흘렀지만, 개의치 않았다.

상처를 살필 시간?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넌 되살아나지 말고 지옥에나 처박혀 있어라.”

콰직!

노인의 목을 발로 짓밟아 죽였다.

몸은 어려졌어도 정신은 천마와 싸우던 때와 같았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그렇지 못했다.

“……아.”

“으, 으으.”

얼마나 놀랐으면 비명 하나 제대로 지르질 못하고 끙끙대나?

이해야 되지만, 이럴 때가 아니었다.

서문경은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별안간.

“어흥!”

“으악!”

“어, 엄마!”

아이들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계속해서 비명과 괴성을 질러 댔다.

그중에서 유독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있었다.

“아아아아악!”

‘기다렸다는 듯이 외치더니만 가장 크네.’

저 목청이면 백 리밖에서도 들리지 않을까?

서문경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의 비명에 땔감을 던져 댔다.

“목소리가 그거밖에 안 나오나?”

“아악!”

“더 크게, 크게!”

“아아아악!”

“좋아.”

손뼉을 치는 사이, 주백경이 낮은 자세를 취했다.

“……소가주님.”

“어.”

“옵니다.”

바깥에서부터 가까워지는 인기척.

서문경의 눈이 가늘어졌다.

스르륵.

어둡기만 하던 내부에 빛과 함께 두어 명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놈들, 당장 닥치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

한기가 잔뜩 어린 목소리.

아이들을 위협해서 닥치게 할 생각이었겠지만, 서문경한텐 기회였다.

아가리를 놀려 상대의 정체를 떠 볼 기회.

“너나 죽고 싶지 않으면 닥쳐라.”

“……뭐라?”

“여기 있는 노인네는 이미 죽였다. 의리가 있으면 너도 따라갈 테냐?”

툭, 툭.

발로 노인의 목을 툭툭 건드렸다.

혹시라도 정파라면 분노할 거고, 사파라면 껄껄 처웃을 테고, 마교라면…….

“대업의 부속품조차 되지 못했군.”

차분한 목소리에서 사람을 대하는 온정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누구 하나 살려 두지 않고 세상을 불태울 미친놈다운 반응.

서문경은 주먹을 꽉 쥐었다.

분노가 치미는 것과 동시에 오랜 의문이 풀어지는 순간이었다.

“동남동녀의 정혈이 목적이었느냐?”

질문과 동시에 튀어나오는 답.

“보통 아이가 아니다. 교주님께 데려가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여의치 않으면 죽여라.”

의표를 정확하게 찔렸는데도 저놈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치가 떨렸다.

“부끄러워하지도 않는구나.”

천마의 하수인답게 미쳐도 단단히 미친 원숭이들이다.

서문경은 천천히 기수식을 취했다.

몸은 어려지고 진기도 쥐뿔도 없지만, 수십 년 동안 쌓은 경험과 무학이 머릿속에 있었다.

하물며 서문세가는.

-우린 무림인이 아니다. 전장에 나서는 무인이 어찌 무기를 가리겠느냐?

병장기를 가리지 않고 가르친다.

어떤 상황에 부딪혀도 적을 죽일 수 있도록.

그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일지라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맨주먹이어도 개의치 않는 이유가 있었다.

“주백경, 뺏어라.”

“가능하면 소가주님 것까지 챙기겠습니다.”

서문세가의 무인답게 척척 알아듣는 게 편했다.

처억.

주백경이 가깝게 다가섰는지 왼 팔뚝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서문경은 주백경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거냐?”

“예.”

서문세가에 입문하면 처음으로 가르치는 전술.

둘이서 한 몸처럼 움직일 때까지 숙달시키는, 이인 일조의 군진이었다.

너무 기초라서 따로 붙인 이름조차 없을 정도로.

하지만 한 가지는 달랐다.

“마음대로 움직여라.”

“……예?”

“알아서 맞출 테니까. 긴장하지 말고.”

주백경은 자기도 모르게 서문경을 흘겨보았다.

검과 방패를 정하지도 않은 채 마음대로 움직여라?

자칫 잘못하면 서로 움직임을 방해할지도 모른다.

아니, 서문경의 나이라면 반드시 그러할 터였다.

“소가주님, 이건…….”

“이크, 온다!”

“……!”

의문을 제기하기도 전에 달려드는 세 마인.

주백경은 반사적으로 상반신을 뒤로 젖혀서 칼날을 피했다. 숱한 싸움으로 숙련된 철판교의 수법이었다.

“크윽!”

하지만 곧바로 공세로 전환할 체력이 없었다.

약간의 시간.

호흡을 정돈할 찰나가 지나기도 전에 다른 마인이 칼을 휘두를 것이다.

주백경의 표정이 어두워진 그때.

휘리릭!

서문경이 노인의 옷과 밧줄로 엮은 채찍으로 마인들의 오금, 위중혈(委中穴)을 동시에 후려쳤다.

“큭!”

“무슨!”

마인들의 균형이 한순간 무너졌다.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는 듯, 서문경의 눈이 한차례 푸르게 빛났다.

급조한 채찍에 공력이 맺혔다.

그렇게 다시 한번.

쩌적!

깊게 휘두른 채찍이 마인들의 허벅지를 중간에 휘감고서 후려쳤다.

위중혈에 이어서 혈해혈(血海穴).

시퍼렇게 든 피멍이 완연하다.

그들이 은연중에 끌어 올리던 공력이 강제로 흩어져 내상으로 이어졌다.

“크윽……!”

입가에 피를 머금은 마인들.

주백경이 호흡을 정돈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대체……!”

언제 노인의 옷을 찢고 어떻게 저런 편술(鞭術)을 익혔을까?

주백경의 의문은 이어지지 않았다. 억지로 잘라 냈다.

지금은 서문경에게 의지할 때였다.

‘아직 소가주님의 완력이나 내공은 강하지 않아. 결정타는 내가 날려야 한다.’

서문경이 벌어 준 찰나.

그 시간을, 주백경은 쌍장의 권골을 내지르는 것으로 보답했다.

쩌적!

주먹이 살을 파고드는 감각. 가슴뼈가 무너지는 소리.

마인이 일격에 즉사하자마자, 서문경이 손아귀에서 칼을 빼냈다.

“자, 내가 뺏었다! 받아라!”

“……예!”

주백경에게 검을 쥐여 주었다.

여기까지가 찰나의 시간이 가져다준 결과.

균형을 되찾은 두 마인이 눈을 마주치곤 고개를 끄덕였다.

서문경은 저들의 생각을 어렵지 않게 읽어 냈다.

‘그야, 뻔하지.’

저 애새끼도 그대로 두면 안 되니 서로 한 명씩 맡아서 처리하자.

빈사에 가까운 무인과 열네 살 꼬맹이.

누가 봐도 쉽게 죽일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근데 내가 그냥 꼬맹이가 아니네?’

군문의 자식이라 별호를 신경 쓰진 않았지만, 알고는 있었다.

정의맹의 삼존 중 하나, 관존.

전생에서 자신을 지칭하던 별호였다.

물론 낯이 부끄러워서 거절했다만.

‘이런 놈들한테 쩔쩔매서야 관존이란 별호가 아깝지.’

서문경은 씨익 웃으며 두 마인 사이로 파고들었다.

“……!”

“놈!”

마침 잘됐다는 듯, 재빠르게 발길질과 칼질을 해대는 놈들.

그 사이를 미끄러지듯 몸을 던졌다.

지들이 조금 강하다고 해 봐야 섬광처럼 휘두를 수준은 아니었다.

칼날과 발끝이 머리끝을 스친다.

두 마인의 뒤를 점한 서문경은 분명한 목소리로 외쳤다.

“주백경!”

“예!”

주백경의 발검엔 거침이 없었다.

그가 펼친 것은 서문경도 익히 아는 초식이었다.

서문검법의 일 초, 비검절우(飛劍絶雨).

아래에서 위로 날아오른 검이 발길질했던 마인의 가슴팍을 베었다.

그와 동시에 서문경이 채찍을 휘둘렀다.

“크허억!”

주백경에게 가슴팍을 베인 마인의 목에 채찍을 한 바퀴 둘러 잡았다.

성대 위와 목울대 양옆, 염천혈(廉泉穴)과 인영혈(人迎穴)을 동시에 점한다.

치명상을 입은 데다 목까지 졸렸으니 제정신이 아닐 터.

서문경은 어렵지 않게 채찍을 자신의 어깨에 두른 채 있는 힘껏 오른쪽으로 잡아당겼다.

“……허, 허윽!”

이에 마인이 양팔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아무리 미친놈이라도 본능을 이기진 못하는 법.

죽고 싶지 않아서 발악한 것이 다른 마인의 칼질을 기가 막히게 방해했다.

“이, 무슨.”

동료를 베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다.

서문경을 죽일 각이 도저히 나오지 않을뿐더러, 주백경에겐 이미 등을 돌린 상태.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스걱!

주백경이 마인의 목을 베었다.

높게 비산한 핏물이 모든 이들의 얼굴을 적셨다.

“……히끅.”

이에 비명을 지르던 아이들이 딸꾹질하기 시작했지만, 서문경의 표정은 평온했다.

그 광경을 본 주백경은 순간 압도되었다.

“소가주님은, 대체.”

“이랬어야 했어.”

“예?”

“이랬어야 했다고.”

서문경은 쓸쓸한 눈으로 주백경을 올려다보았다.

“이런 놈들을 상대로 겁을 먹어선 안 됐다고.”

“……아, 음. 여기 끌려오실 때를 말씀하신 거라면, 당연하지 않습니까?”

“뭐가.”

“소가주님은 어리시니까요. 솔직히 놀랐습니다.”

주백경이 처음으로 빙긋 웃었다.

“저처럼 교본이나 비급으로 무공을 배운 게 아니라, 움직임이 아주 자유로웠습니다. 저보다 훨씬 뛰어난 재목이라는 거겠지요.”

“뛰어나긴 무슨.”

“하하, 그렇지만 저는 저놈들에게 일대일로 싸우겠다고 말하다가 이 꼴이 나지 않았습니까?”

“뭐? 그랬다고?”

“소가주님께선 그때 기절해 계셔서 모르겠지요.”

“허, 허허.”

서문경은 실소를 터트렸다.

평생 자신의 실수라고 여겼는데, 지금 보니 미련했던 건 주백경도 마찬가지였다.

하물며 자기 허물을 밝히는 것도 이상했다.

‘쓸데없이 성실하고 모범생 같은 게, 나랑 다르네. 나라면 필사적으로 잘못을 숨겼을 텐데.’

언제든 강호에서 칼을 맞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우습게도,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도 호위로 있어 줘.”

“소가주님께서 허락하는 한, 계속 함께하겠습니다.”

서로 웃음을 드러내는데, 바깥에서 어수선한 발소리가 들렸다.

주백경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소가주님.”

“진정해.”

서문경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적이 아니야.”

콰직! 꽈과광!

시꺼먼 세상에 수십 갈래의 빛이 들어찼다.

나무로 만들어진 추가 건물의 벽을 때려 부수고 있었다.

“여기서 비명이 들렸다!”

“빨리, 빨리!”

언뜻 들리는 목소리 중에 익숙한 사람이 있던 걸까?

언제 어두워졌냐는 듯, 주백경의 표정이 환해졌다.

“소가주님은 알고 계셨던 겁니까?”

“그래.”

전생에서 자신이 가까스로 살아남았던 이유.

그건 주백경이 희생하는 사이, 주변에 있던 서문세가의 무인들을 발견해서였다.

이번엔 그들을 이곳으로 부르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게 시켰다.

‘조금 늦긴 했지만, 이 상태로 살아갈 수가 있어야 말이지.’

피를 너무 많이 흘린 주백경.

어린 몸을 혹사한 자신과 이름도 모르는 아이들.

모두를 살리기 위해선 저들이 필요했다.

“이제 끝났다. 그지?”

서문경의 너스레에 주백경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다시는 무리하지 마십시오.”

“그래, 그래.”

지키지도 못 할 말을 대충 내뱉는 도중이었다.

“저기…….”

꼬질꼬질한 여자아이가 서문경의 지척까지 다가왔다.

완전한 쉬어 버린 목소리를 듣고 나니, 그녀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네가 목소리 카랑카랑하던 애구나?”

“아, 응.”

“기다렸다는 듯이 외치는데 목청이 대단하더라. 앞으로 노래를 배우면 대성하겠어.”

“……응.”

‘아아아아악! 이라고 외치던 것치고는 너무 수줍어하네.’

애가 애답지 않게 너무 어두침침하다.

서문경은 저도 모르게 속내를 입 밖으로 꺼냈다.

“잘 못 먹어서 그런가? 애가 통 힘이 없어.”

“어…… 그러는 너도.”

“나도 애지. 하지만 애인데 힘이 있잖아.”

“…….”

침묵하는 여자아이를 본 서문경이 주백경에게 말했다.

“주백경.”

“예.”

“소가주로서 말한다. 이번 일에 휘말린 아이들, 네가 책임지고 부모를 찾아주든가 보살펴라.”

“그리하겠습니다.”

그 대화를 들은 여자아이가 굵은 눈물을 흘렸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서문경에게 고맙다고 외치거나 두 무릎을 꿇는 애도 있었다.

하지만 구원받은 건 서문경도 마찬가지였다.

‘꿈일까? 아니, 꿈이어도 상관없어.’

원래 사라져야 했을 아이들을 구하고 죽었어야 했을 주백경을 살렸다.

완전히 엇나갔던 서문경의 첫걸음.

그걸 새로 내디딘 기분은 말도 못 할 만큼 벅차고 뿌듯했다.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서문경이 주백경과 아이들을 훑어보던 그때.

빠가각!

벽을 완전히 무너뜨린 서문세가의 무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소가주님!”

“주 무사,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그게…….”

평생 후회했던 일이 다르게 변화하는 순간.

서문경의 전신에 힘이 풀렸다.

“으, 졸린다.”

외마디 말을 남긴 채 서문경은 까무룩 잠이 들었다.

기력을 모두 소모한 탓이었다.

그걸 본 무인들은 흐뭇하게 웃었다.

“내 아들이 한참을 뛰어다니다가 갑자기 쓰러져 자곤 하는데 말이야.”

“자네도 같은 생각이었구만?”

“…….”

주백경은 흐뭇하게 웃고 있는 그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런 게 아니라고, 우리 소가주님은 아주 비범하다는 사실을…….

‘가주님께 직접 말씀드려야겠어.’

신비한 무공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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