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49화
249. 돌아보지 않는 대마법사(4)
“진원지가 지랄 맞네.”
상혁은 마나를 넓게 퍼뜨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마나 폭주를 통해 일어나는 재앙을 막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원지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한 달 동안 총력을 다해 상혁이 직접 동해 와 울릉도 앞바다까지 뒤지고 다녔지만, 마나가 폭발 직전이었기에 도통 진원지를 찾을 수 없었다.
촤악!
꾸르릉!!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찬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고 파고가 높아지고 있었다.
상혁은 망망대해 위에 떠 있었는데 바다를 향해 뻗은 손에서는 마나가 연신 뿜어져 나오고 있었지만, 여전히 진원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초아!”
상혁이 초아를 불러냈다. 그러자 초아가 어기적거리면서 불려 나왔다. 초아는 비단 오염원으로 안내하는 안내원 역할 뿐만 아니라 차원의 균열을 탐지하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괜히 세계가 상혁에게 초아를 보낸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느껴지는 것 없어?”
뽀르르…….
“다그치는 거 아니야.”
초아는 이파리를 축 늘어뜨렸다. 항상 밝았던 초아였지만, 상혁이 하도 초아를 다그쳤기 때문인지 초아는 마치 죄인인 것처럼 기가 팍 죽었다.
‘이래서 애는 함부로 혼내는 거 아니라더니.’
상혁은 바빠 죽겠는데 초아까지 달래야만 했다.
그래도 진짜 아이가 아니라 정령이었기에 초아는 상혁의 말을 금세 알아들었다.
까딱, 까닥.
뽀르르.
추욱
초아가 나뭇가지를 까딱거리면서 무언가를 느끼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나안으로 보였던 끈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한 달 전 보이지 않는 끈이 울릉도 방향으로 나 있던 것을 제외하면 그 뒤로 한 번도 그 끈이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마스터.]
“일호, 동해는?”
[암시 마법의 효과로 해안 근접지의 인구는 전원 대피 완료하였습니다.]
“최악 중 다행이군.”
그러나 더 멀리 사람들이 대피할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 한다. 상혁은 불안정하게 출렁이는 거대한 바다를 내려다보며 이를 으득 깨물었다.
“지랄 맞네, 정말.”
저 바닷속 어딘가 차원의 균열이 있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해저에 즐비한 마나석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상혁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쏴아아아!
출렁, 출렁
처얼썩!
눈을 감자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이 예민해졌다. 세찬 바람이 더욱 강하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바다가 포말을 일으키며 내는 소리와 짠내가 더욱 강해졌다. 상혁은 두 팔을 넓게 벌렸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인 법.”
상혁은 어리석지 않았다. 만약 어리석었다면 무려 반백 년이라는 시간을 가나안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어리석지 않다는 건 상혁이 싸울 상황이나 싸울 상대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존심보다는 생존이 먼저였기에 단 한 번도 불리한 싸움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걸 지구에 와서 할 줄은 몰랐지.”
하지만 지금 그 어리석은 길을 택해야만 했다.
“복수도 멋들어지게 다 했고. 그 정도면 하늘에 계신 부모님도 만족하실 거 아니야. 그러니까 이제 좀 이십 대답게, 누릴 거 다 누리면서 살아 보겠다는데 왜 나한테 이 지랄들이야.”
상혁이 맞상대해야 할 것은 대단한 마법사라거나, 세계의 권력을 한 손에 넣고 주무르는 흑막이 아닌 바로 자연 그 자체였다.
그것도 바다.
“쓰나미를 상대하려고 배운 마법이 아닌데.”
상혁이 투덜거렸다. 상혁에게 남은 건 이제 즐기는 것뿐이었다. 복수도 깔끔하게 잘 마무리 지었고, 돈도 많으니 이제 누릴 것을 누리면서 살아가면 되는 일만 남았던 것이다.
이 차원의 균열만 없앤다면 말이다.
‘외면한다면 계속해서 이런 일이 벌어지겠지.’
재앙은 사실 일어나기 이전에 처리하는 것이 맞았다. 설령 재앙의 전조를 막아 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최대한 빨리 그 근원을 없애는 것이 옳은 법이다.
상혁이 차원의 균열을 외면한다면 그다음 번에는 더 큰 재앙이 되어 결국 덮칠 것이기 때문이다.
번쩍!
콰르르르!
고오오오!!
상혁은 오감 중 시각을 닫았다. 대신 마나를 끌어올려 마나안을 열었다.
휘몰아치는 노란빛의 마나.
상혁은 푸른 바다에 휘몰아치는 노란빛을 띠는 마나를 보며 순간 현기증을 느꼈다. 아찔했기 때문이다. 바다를 가득 채운 그 마나라니. 그 마나가 부글거리면서 끓어오르고 있었다.
‘8서클만 되었더라면.’
그게 아쉽지만 도달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상혁은 곧바로 자신의 의념을 네 개로 나누었다.
쿼드러플 캐스팅.
‘마나가 풍부한 것이 재앙에만 좋은 건 아니니까.’
상혁은 의념 하나를 자연 중의 마나를 수급하여 모자란 마나를 보충하는 것으로 사용했다. 그러고는 세 개로 수인을 맺고, 융합하며 마법의 수식을 바꿔 필요한 것을 증폭하고 필요 없는 것을 축소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기 시작했다.
펄럭펄럭.
상혁이 입은 옷이 바람에 펄럭거렸다. 상혁이 마나를 끌어 올리자 주변의 마나가 들끓기 시작했다. 마법사에게 이런 환경은 축복이지만 동시에 악몽이기도 했다. 한순간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순간 마나 폭주가 일어나기 딱 좋은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고오오오오!!
푸르르!
상혁의 전신에서 바닷바람에 맞서는 듯한 마나의 파동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상혁의 옷자락이 찢어질 것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고 상혁의 두 팔에 핏줄이 솟아 올랐다.
꿀럭, 꿀럭.
상혁의 심장 어림이 뜨끈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럴 리 없지만 마나 고리가 마나를 뿜어내면서 뜨끈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츠즈, 츠즈즈즉!
파지직!
상혁의 마나가 존재감을 더해 가자 노란빛의 마나와 상혁의 푸른 마나가 충돌하기 시작했다. 마나 폭주로 폭발을 한 노란빛의 마나는 호전적으로 상혁의 마나에게 달려들었고 상혁의 마나가 맞대응하면서 스파크가 사방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상혁은 쓰게 웃었다.
“제기랄. 이런 건 내가 아니라 드래곤이나 하는 거라고.”
하지만 단순 마나량으로만 따지면 7서클 기준으로 상혁이 가용할 수 있는 마나는 드래곤 정도는 아니어도 이미 인간 대마법사의 수준은 훌쩍 뛰어넘었다.
그 때문에 드래곤이 마법을 쓸 때만 발생한다는 현상을 직접 느낀 상혁이 다시 집중했다.
‘압축. 응축, 또 압축과 응축.’
상혁은 마나를 압축하고 또 응축했다.
네 개로 나뉜 사념 중 세 개가 팽팽하게 돌아가며 상혁의 집중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아무리 큰 집이라고 해도 무너지는 건 주춧돌 하나가 무너지면서부터 시작이니까.’
상대는 자연이다. 상혁은 제아무리 8서클, 아니 전설의 9서클이나 드래곤 중 고룡만이 도달한다는 10서클에 도달한다고 해도 마법으로 자연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법은 자연을 모사한 아류일 뿐이기 때문이다.
아류가 그 본체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을, 재앙을 따라 하기 위해 똑같은 사이즈로 마법을 구현하는 건 드래곤이 아니라 드래곤 할아비가 와도 불가능한 일이다.
‘신도 불가능하지.’
상혁은 신이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인간은 신의 언럭키한 버전이다. 그런 신이기에 신도 결국 자연의 일부요, 세계의 일부일 뿐이다.
그렇기에 자연 앞에서는 신도 무력하다.
‘그 위의 무언가가 있다면 말이지. 있다면.’
신 위의 무언가가 있다면 또 모른다. 하지만 상혁은 그 존재를 믿진 않았다. 마법사는 보지 않은 것, 겪지 않은 것을 믿지 않는 족속이다.
어떤 존재 하나가 만들었다고 하기에 이 차원과 세계, 자연은 너무 변수가 많았다. 우연에 우연에 우연들이 겹쳐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
고오오오!!
상혁의 손아귀에 주먹만 한 구슬이 거대한 존재감을 흩뿌리며 쥐였다. 상혁은 그냥 가져다 대기만 하고 있어도 손이 밀려나며 저릿거리는 느낌에 침을 꿀꺽 삼켰다.
뽀르르!!
그런데 그때 초아가 날았다. 그리고 상혁의 눈이 번쩍 뜨였다. 마나안으로 보고 있던 초아의 머리 위에 그간 보이지 않았던 끈이 어느새 나풀거리며 선명하게 나타나 있었기 때문이다.
뽀르? 뽀르르르! 뽀르!
초아는 자신의 머리 위에 흔들리는 것을 보고는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유영했다. 원래 초아는 자신의 머리 위에 이런 끈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그 끈이 초아에게도 보이는 모양이었다.
‘마나.’
그 이유는 주변에 마나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상혁은 눈을 떴다. 그러고는 자신의 발아래에서 거대한 와류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메가 쓰나미의 전조.
바다의 흐름이 뒤바뀌면서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와류와 조류가 생겨나고 있다는 증거였다. 상혁의 눈에 들어오는 너른 망망대해 전체가 마치 지진이 난 수영장 안의 물처럼 한 방향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달의 중력을 무시한 파도의 움직임.
푸확!!
파도가 서로 부딪치면서 물방울이 상혁이 있는 곳까지 튀어 올랐다. 그때 상혁의 귀에 저 멀리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투다다다다!
상혁이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저 멀리서 헬리콥터 한 대가 바람을 뚫고 상혁이 있는 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 헬리콥터의 동체 옆면에 커다란 글씨로 방송사의 로고가 떡하니 박혀 있었다.
“하, 나 참.”
이 상황에서도 촬영하겠다고 헬리콥터를 띄우는 놈들이 있다니. 방송사란 역시 시청률에 목숨을 건 미친놈들의 집합소라고 하더니 그게 사실인 모양이었다.
드드드득!
고오오오!
상혁은 두 손으로 푸르스름한 얼음이 명멸하는 것 같은 주먹만 한 구체를 있는 힘을 다해 찍어 눌렀다. 푸들거리는 팔로 마나가 피어올랐다.
“크흑.”
7서클에 불과한 상혁이지만 마나량은 8서클, 아니 9서클에 필적한다. 8서클을 달성하기 위한 10억 올의 마나실 중 4억 개 정도는 한 달 동안 꾸준히 수백 개의 마나석을 흡수하면서 채워 넣었기 때문이다.
그것까지 모조리 쏟아붓자 7서클의 마법을 뛰어넘는 마법이 완성됐다.
융합과 압축을 이용해 파괴력을 극대화시킨 마법은 원래의 형태를 거의 버렸다. 사실상 상혁이 만들어 낸 새로운 마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투다다다다!!
헬리콥터의 로터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지만 상혁은 그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대신 초아의 머리 위의 끈이 향하는 곳을 확인한 후 손을 내뻗었다.
“얼어라. 블리자드.”
하나의 점으로 압축한 블리자드. 본래 블리자드는 광범위한 영역에 비구름을 형성한 뒤 온도를 떨어뜨려 우박을 내리게 하는 마법이다.
주먹만 한 크기의 우박 수 천 개의 위력은 미사일이 수백 발 떨어지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동시에 광범위한 지역이 얼어붙으며 눈보라가 휘몰아치기에 그렇게 떨어지는 우박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는 것이 블리자드의 무서움이었다.
그런데 그걸 하나로 뭉쳤다.
파아아앗-!!
상혁은 열기를 느꼈다. 극한에 달한 냉기는 때로 열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상혁은 자신이 시전한 마법이지만 마법을 떨굼과 동시에 전력을 다해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리고.
쩌저저저적!!
7서클 이상의 마나를 쏟아붓고 압축과 융합을 통해 그 위력을 극대화한 개량형 블리자드가 바다의 수면 위에 떨어진 순간.
상혁은 수백만 년 전 공룡시대를 끝낸 빙하시대를 자신의 손으로 재현했다는 것에 전율했다.
거대한 바다.
울릉도 앞바다부터 상혁이 파도에 떠밀려 온 마나석을 발견한 그곳까지.
그 모든 바다가 얼어붙는 장관이 펼쳐졌다. 상혁은 사방을 얼려 버릴 듯한 냉기를 뿜어 대는 빙하를 보았고 이내 비틀거렸다.
휘청
“제기랄.”
마나 고리를 가득 채웠던 마나의 90퍼센트를 한 번에 쏟아부었다. 그것도 모자라 자연 중의 마나를 끌어모아 쓴 이번 마법에 들어간 마나량은 거의 8서클 마법을 서너 개 쓸 수 있을 정도의 마나량이었다.
그걸 한 번에 쏟아부었으니 현기증이 날 수밖에.
하지만 상혁이 욕한 것은 현기증 때문이 아니었다.
“오래 못 버틴다.”
드드득!!
최선의 방어는 바로 공격이다. 상혁이 바다를 얼린 것은 순간 시간을 벌기 위함이다. 상혁은 두터운 얼음에 뒤덮인 바닷속으로부터 거대한 에너지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호. 서번트 싹 쓸어모아서 내가 있는 곳으로 와라.”
[예, 마스터.]
7서클의 개량형 블리자드 마법으로 상혁이 번 시간은 길어야 하루. 하지만 초반 준동을 막은 덕분에 메가 쓰나미의 위력을 20퍼센트가량 줄였다.
하지만 여전히 바닷속 마나는 언제든 폭발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상혁은 초아의 머리 위에 드리워진 끈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며 심호흡을 크게 했다.
투다다다!!
그 모습을 허공을 선회하는 방송사 헬리콥터가 하나부터 끝까지 빠짐없이 찍고 있었지만 상혁은 그 존재를 잊었다.
죽느냐 사느냐, 그 문제 앞에서 방송 따위를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스으읍!!
상혁이 눈을 감고는 심장의 고리를 활짝 열었다. 그러고는 마나 폭발로 공기 중 풍부해진 마나를 싹 쓸어모으기 시작했다.
아직 전쟁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