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46화
246. 돌아보지 않는 대마법사(1)
“너, 백상혁이 아니구나.”
백성철의 두 눈이 위험하게 빛을 발했다. 백이현이나 백도현에게는 그게 호랑이처럼 무서웠던 모양이다. 하지만 상혁에게는 아니다.
“내가 백상혁이 아니면 누가 백상혁이라는 거지?”
“넌 백상혁이 아니야. 백상혁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다른 놈 같구나.”
“노인네, 눈치는 빠르네.”
히죽.
상혁이 백성철을 보며 웃었다.
상혁은 백상혁이 아니다. 아니, 백상혁이 아니라는 뜻은 백성철이 생각했던 고작 스무 살짜리 애송이가 아니라, 칠십 살 먹은 노인네라는 뜻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대엽이가 실수할 리는 없어. 분명히 DNA 검사까지 했는데. DNA 검사를 조작한 거야. 그렇지?”
“백성철, 미쳤어?”
상혁은 자신의 관자놀이에 대고 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상혁보다 세 배는 나이를 먹은 백성철 앞에서 하기에는 지나치게 도발적인 행동이었으나 상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말한 건 이게 다르다는 거야. 이게.”
톡톡.
상혁은 머리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상혁의 눈은 완연한 노인의 그것을 하고 있었다.
백성철은 그런 상혁의 눈빛을 보고는 으르렁거리는 것 같기도, 끙끙거리는 것 같기도 하는 소리를 냈다.
“……그게 무슨 뜻이지?”
“내가 갑자기 달라졌을까?”
“처음부터 속였다는 뜻인가.”
백성철은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그의 눈에서 광기와 분노가 번갈아 가며 번뜩였다. 하지만 상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너를 속인 적이 없어. 내가 부모님의 죽음을 어떻게 알고 있었을 것 같아?”
“중국에서 알려준 거 아닌가? 설마 리창위가 이 백성철을 버리고 네놈의 손을 잡을 줄이야.”
리창위가 나온 것만으로 백성철은 정황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백성철의 사고에는 빠져 있었다.
“아니. 그건 제대로 된 답이 아니야. 한 30점 정도는 줄 수 있겠군.”
상혁이 손가락을 들어 백성철을 가리켰다.
“네게 그걸 말해 준 건 백성철, 바로 너야.”
“뭐?”
백성철의 눈이 흔들렸다. 자신의 입으로 상혁에게 백성운을 죽인 것이 자신이라 말했다? 하지만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백성철은 아무런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와주지.”
따악-!
상혁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손가락에서 뿜어져 나온 마나가 백성철의 머릿속에 고의적으로 지워 놓았던 기억을 회복시켰다.
망각 마법을 캔슬하자 백성철의 눈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이, 이건……!”
“어때, 기억나?”
“너, 넌! 괴물이구나. 네놈은 괴물이었어! 백상혁을 잡아먹은 것이냐?”
백성철은 상혁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상혁은 그런 백성철을 너그럽게 이해해 주기로 했다. 마법에 무지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잡아먹어? 내가? 그게 아니라 이거야 노인네. 마법.”
따악-!
번쩍-!!
휘청!
백성철이 앉은 의자가 뒤로 크게 젖혀졌다. 상혁이 백성철의 눈앞에서 빛을 터뜨린 탓에 순간 놀라 몸을 있는 힘껏 젖혔기 때문이다.
“노인네 기억을 지웠던 것도 이 마법이지. 사실 그 자리에서 노인네 모가지를 따고 SG그룹을 날려 버렸어도 됐었는데.”
상혁은 살벌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그러면서도 상혁의 두 눈은 백성철의 하나하나를 조금도 놓치지 않았다.
행동과 말은 경박스럽지만, 백성철은 그런 상혁을 보고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바로 저 눈빛 때문이었다.
모든 것을 다 꿰뚫고 있는 마법사의 눈.
그 눈을 마주하니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그럼 왜 그렇게 하지 않았지?”
“왜긴, 그건 복수가 아니잖아.”
상혁의 두 손에서 연신 얼음이 맺혔다가 불길이 치솟아 오르며 얼음을 녹이고, 다시 바람이 불길을 갈기갈기 찢는 것이 반복됐다.
눈을 감고 보더라도 마법일 수밖에 없는 기현상이 상혁의 손바닥 위에서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에, 백성철은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백이현과 백도현을 견제하기 위한 칼로 써먹을 생각이었던 상혁이, 사실은 SG그룹 따위가 품을 수 없던 거대한 트로이 목마였다는 것을 말이다.
“노인네가 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이면서까지 갖고 싶어 했던 것이 이 SG그룹이지. 그러니 노인네에게 가장 좋은 복수가 뭐겠어?”
상혁이 비릿하게 웃었다.
“그냥 죽어 버리는 건 너무 사치잖아. 노인네 덕분에 난 부모님을 잃고 10년을 지옥에서 살았지. 보육원에서의 삶이 어떤 건지 당신이 알기는 할까.”
“이게 복수라고?”
백성철의 눈이 커졌다. 상혁의 눈은 진실만을 말하고 있었다. 상혁은 정말 백성철에게 순수하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뿐이란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럼. 복수지. 어때, 평생을 지키고자 했던 것이 무너지는 느낌이?”
“SG그룹이 그렇게 쉽게 무너질 것 같으냐?”
백성철이 피식 웃었다.
“네놈이야말로 나를 무시했구나. 이 백성철이를. 정글이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살아온 터줏대감인 나를 무시한 거야.”
“무시했다? 자신이 있는 모양이지?”
상혁은 흥미를 느꼈다. 백성철은 지금 이 상황에서도 자신감을 내보였다.
“한국은 SG그룹을 버리지 못한다.”
백성철이 두 눈에 광기를 머금은 채 상혁에게 말했다. 그의 눈에서 광기가 번들거리며 상혁을 잡아먹을 것처럼 번뜩였다.
“이 대한민국의 경제 절반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 SG그룹이니까. SG그룹의 돈을 받지 않은 놈이 정치권에 한 명도 없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대통령이 당선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느냐?”
백성철이 자신의 의자 팔걸이를 탕 하고 내려쳤다.
“이 백성철이에게 인사를 오는 것이야. 앞으로 5년을 잘 봐 달라고, 부디 나라의 경제를 잘 책임져 달라고 말이다.”
“그래서?”
“그런 SG그룹이 무너지는 걸 한국 정부가 보고 있을 성싶으냐? 우리가 무너지면 다칠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말이다.”
백성철은 두 손을 펼쳤다.
“이 대한민국은 나, 백성철의 왕국이다. 왕이 왕국을 져 버릴 순 있어도 왕국이 왕을 저버릴 수는 없다. 네놈은 그것도 몰랐느냐?”
대한민국이 곧 백성철의 왕국이다.
광오했지만 그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재벌 중의 재벌로 오랜 기간 대한민국에 군림해 온 SG그룹은 사실상 대한민국과 거의 일체화가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니 SG그룹이 무너지면 대한민국도 무너진다.
“네놈이 나를 죽일 수는 있어도 이 SG그룹은 무너뜨릴 수 없을 것이야. 내 피와, 내 형제들의 피로 지어 올린 제국이니까. 크하하하하!”
백성철은 대한민국의 주인공이었다. 백성철은 자신 없이는 대한민국이라는 이야기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그런 백성철 앞에 선 대마법사가 웃었다.
“재밌네. 과연 그럴까?”
“그럴 것이다. 네놈은 그 알량한 마법을 쓸 뿐, 이 대한민국에 뿌리내린 내 저력을 무시해서는 아니 됐다. 돈으로 SG그룹을 옭아매고 내가 보는 앞에서 SG그룹을 강탈하겠다? 애초에 그 목표 자체가 그릇된 것이었어. 백상혁, 너는 복수를 원했다면 SG그룹이 아니라 나를 노렸어야 했다.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으니까.”
백성철의 목숨을 앗아 갈 순 있어도 SG그룹은 무너지지 않는다. 대마불사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SG그룹이 책임지고 있는 가장만 해도 30만 명이 넘었고, 그들이 책임지는 가구만 100만 명이 넘었다.
“재밌는 이야기야. 하지만 당신도 마찬가지야.”
상혁은 광소를 터뜨리는 백성철을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백성철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너무 과신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이란 이야기에 네가 주인공이다? 글쎄. 과연 그럴까? 만약 모두가 주인공을 잊는다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뭐?”
“주인공을 지워 버리는 거지. 마법은 그게 가능하거든. 한번 봐 봐.”
따악-!
상혁의 중심으로 마나가 뿜어져 나갔다. 그리고 그 마나가 백성철을 휘감았다. 상혁의 오른 눈에서 마나안이 개방되며 상혁의 말에 힘이 실렸다.
“가짜 현실.”
7서클의 정신 마법인 가짜 현실. 환상 계열의 마법의 최종판인 가짜 현실은 말 그대로 마법에 걸린 상대로 하여금 시전자가 원하는 현실을 겪게 된다.
환몽이나 자각몽과 다른 점은 하나다.
가짜 현실이지만 그것 역시 하나의 현실이라는 것. 꿈이란 것을 자각하는 즉시 깨어나는 환몽과 자각몽과는 달리 가짜 현실은 그곳이 가짜라는 것을 마법에 걸린 이가 처음부터 인지한 채로 시작한다.
그리고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나올 수 없다.
언제까지?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따악-!
휘오오오!!
상혁이 손가락을 튕기자 주변에 내려앉아 있던 마나가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상혁의 마나 고리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상혁이 바람을 뭉쳐서 백성철의 이마로 날렸다.
따악-!
“아, 안 돼! 허억, 허억, 허억.”
백성철이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그러더니 그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그곳이 회장실이란 것을 깨닫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잘 잤어?”
“너, 너!!”
“그 손가락. 거슬리는데?”
상혁이 그렇게 말하자 놀랍게도 백성철이 손가락을 슬며시 접었다. 상혁이 원한대로 백성철은 그가 주인공이 아닌 현실을 보고 왔기 때문이다.
“어때? 소감이?”
“무, 무슨.”
“그곳의 너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 넌 똑같이 SG그룹이었지만 철저하게 잊혔고. 그런데 그게 가짜일까?”
상혁은 백성철이 가장 싫어하는 현실을 보여 주었다.
아니, 그건 사실 가짜도 아니었다.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심한 망상에 빠진 백성철을 위해 백성철 없이도 잘만 돌아가는 SG그룹과 대한민국을 보여 줬을 뿐이다.
아무도 백성철이란 사람 자체가 있었는지, 기억하는 이 별로 없는 미래의 SG그룹과 대한민국을 말이다.
“다들 착각하더라고.”
상혁은 백성철과 비슷한 착각을 하는 이들을 수도 없이 봐 왔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합리화에 불과한 마지막 발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수많은 왕과 귀족들.
그들이 모두 같았다. 전쟁에 패하거나 반역죄를 지어 사형대에 오른 그들은 모두 똑같이 생각했다.
자신 없이는 이 세상은 굴러가지 않는다고.
자신이 사라지면 큰일이 날 것이라고.
하지만 단 한 번도, 그것도 고작 인간 하나가 없어졌다고 해서 큰일이 난 적은 없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세계는 움직인다.
상혁은 그것을 백성철에게 보여 주었을 뿐이다.
“나 없이는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아니야. 너 하나 없어져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 그냥 네 세상이 끝난 것뿐이지.”
한 사람의 죽음은 그저 그 한 사람의 세계의 종말일 뿐이다. 상혁은 공포에 젖은 백성철의 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제 그게 네 미래가 될 거야, 백성철.”
“아,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대통령에게! 장관에게! 청장에게! 연락하면 돼. 그들은 날 버릴 수 없어. 그들을 만든 것이 바로 나, 백성철이라고!”
백성철은 상혁에게 고함을 질렀다. 그는 패닉에 빠져 있었다. 굳건히 믿어 온 세상에 균열이 가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패닉에 빠진 것이다.
상혁은 그런 백성철을 보며 차갑게 웃었다.
“끝까지 추레하고 추악하구나.”
백도현이 기자회견을 끝냈다.
중국의 인정이 있었고 곧 미국에서도 CIA를 통해 관련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 일본은 외교 루트를 통해 한국 정부를 압박할 것이다.
“미안하지만 네 그 추레한 모습을 더 지켜보고 있을 시간은 없어. 내가 좀 급하거든. 그러니까.”
상혁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발악하고 있는 백성철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였다.
“거기서 비켜 줄래?”
상혁은 몹시 바빴다. 쓸데없는 복수는 여기서 끝이다. 백성철과 백이현, 백도현 부자가 사라진 SG그룹은 이제 갈기갈기 찢어져 이터의 먹이가 될 것이고, 이터가 먹은 SG그룹은 다시 위자드의 손아귀로 돌아올 것이다.
SG그룹의 회장.
상혁은 그 명패가 필요했기에 그 자리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준비할 것이다.
“내가 치워야 할 똥이 아주 푸짐해. 그러니까 똥보다도 못한 넌, 이만 무대 아래로 퇴장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