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245화 (244/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45화

245. 쓸데없는 복수(5)

백도현은 가빠져 오는 숨을 긴 호흡으로 진정시켰다. 구역질이 나오려고 하고 식은땀이 흘렀지만, 폐에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자 조금 나아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시작하겠습니다.”

“예.”

백도현이 눈을 떴다. 백도현은 준비해 둔 단상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소극장 관객석을 초라하게 채운 다섯 명의 기자들이 헛숨을 들이켜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허, 허억!”

“백도현이다!”

“정말 백도현이라고?”

백도현은 공식적으로는 사망 상태다. 사고로 인해 사망 처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백도현은 죽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안 기자들은 각자의 회사에 재빨리 연락을 돌렸다.

박정철은 분루를 삼켰다. 자신의 인생과 청춘, 그 모든 것의 목표이자 상징이었던 백도현의 작은 등이 초라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 후 박정철이 두 눈에 분노의 귀화가 피어올랐다. 자신의 청춘과 삶이 망가졌다. 그렇기에 박정철은 백도현을 그리 만든 이들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리기로 했다.

‘가십시오, 도련님. 가셔서 한을 푸십시오.’

박정철도 최근까지 백도현이 죽은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더 위자드의 회장이 되어 나타난 상혁과 만나 백도현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백도현을 찾아갔고, 모든 일을 들었다.

백성철.

‘금수만도 못한 인간.’

그리고 백이현.

‘권력에 눈이 멀어 제 동생을 죽이려고 한 패륜아.’

박정철의 모든 분노는 백성철과 백이현 부자를 향했다. 백도현은 죽다 살아난 뒤 해탈한 듯 그가 꿈꾸던 자리에 초연했지만 진실을 밝히고자 하였고, 박정철은 두 부자에 대한 분노로 백도현을 도왔다.

‘이 모든 것이 백상혁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것이지만, 이 분노를 해소할 수만 있다면 난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어.’

박정철은 상혁이 굳이 수소문하여 자신을 찾은 그 이유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추악한 SG그룹의 진실을 폭로한 백도현을 물심양면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정철은 기꺼이 상혁이 내민 손을 잡았다.

“백도현입니다.”

그럼에도 모인 기자는 다섯 명뿐이었다. 제대로 된 기자회견장을 찾지 못해 대학로의 작은 소극장을 빌렸고, 언론사에 연락을 쭉 돌렸지만 온 기자는 다섯 명뿐이었다.

그러나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미 죽은 백도현이 살아 있고, 그가 기자회견을 할 것이란 것을 그냥 믿는 기자가 있다면 그 기자의 자질을 의심해 볼 만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 자리에 모인 다섯 명은 박정철과 깊은 관계가 있던 기자들이었고, 한 번 속는 셈 치고 박정철을 믿고 이 자리에 나온 덕분에 특종을 쥐게 되었다.

“그동안 사망하였다고 알려진 제가 살아 있는 이유와, 숨겨진 추악한 진실에 대한 모든 것을 밝히겠습니다. 박 실장.”

박정철은 백도현이 자신을 실장이라도 부르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치 예전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박정철은 두 주먹을 꽉 쥐고는 백도현이 신호를 보낸 대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 * *

[LIVE] SG전자의 백도현 사장이 밝히는 자신의 죽음과 숨겨졌던 추악한 진실의 폭로

[LIVE] 부활, SG전자 백도현 사장의 기자회견

[LIVE]…….

상혁은 세계 최대의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에 올라온 라이브 영상을 쭉 훑었다.

그리고 스크롤을 움직였다. 마치 해킹이라도 당한 것처럼 사이트의 최상단에 모든 추천 영상이 백도현의 기자회견 관련된 영상이었다.

“감사합니다, 헤르츨.”

[별말씀을. 친구의 요청인데요.]

실시간 방송 중인 클립이 백 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현장에 참석한 기자는 다섯 명이지만 천안에 있는 박선웅을 통해 미리 설치해 놓은 백여 개의 카메라를 통해 동시 송출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의 헤르츨이 움직였다.

로스차일드는 세계 최대의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인 고글의 주인이었기에, 헤르츨의 한마디에 모든 추천 영상이 내려가고 기자회견 영상이 그곳에 걸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상혁은 전화를 끊고 그중 영상 하나를 꾹 눌렀다. 그러자 라이브로 송출 중인 방송에 백도현이 아니라 리창위의 얼굴이 떡하니 튀어나왔다.

[전 국안부 부장이자 대중화인민공화국의 반역자인 샤오핑의 사주를 받은 찐웨이청 경감이 SG그룹 백성철 회장과 연락을 주고받은 흔적을 확보하였고, 추적 결과 약 1,000만 위안 상당의 검은 자금이 오간 것을 확인한바. 백성철 회장의 의뢰 내용은 차남인 백도현을 국안부 요원을 통해 납치 및 살인교사를 한 것으로…….]

백도현의 일방적인 주장은 당연히 역풍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없이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된 백도현의 주장은 허공에 울려 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백성철의 사주를 받은 국안부의 정체를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상혁은 리창위에게 부탁했다.

백성철에게 받은 의뢰 내용과 그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밝혀 달라고. 국제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사안이었으나, 딸의 목숨과 큰 피해가 일어날 뻔한 테러를 최소한의 피해로 마무리 지은 상혁의 부탁을 리창위는 두말할 것 없이 승낙했다.

무려 주석인 리창위가 직접 그 의혹이 사실이란 것을 인정한 것이다.

물론 리창위는 교묘히 사실을 비틀어 국안부의 찐웨이청과 미국으로 도피하려 했던 전 국안부장인 샤오핑이 단독으로 벌인 일로 만들었다.

그러나 상혁은 굳이 그 부분까지는 지적하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지.’

SG그룹의 회장이 직접 반도체 기술을 줄 테니 사람 하나 죽여 달라고 한 것인데, 그것에 혹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리창위가 직접 영상에 출연할 정도로 성의를 표시했으니 그 정도 사소한 문제는 덮어 주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실시간으로 인터넷이 발칵 뒤집혔다.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는 시청자의 수가 일만, 이만 가파르게 늘어나더니 모든 영상이 평균 10만 명의 시청자를 확보한 것이다.

동시 송출되고 있는 영상이 100개였으니, 사실상 1,000만 명이 지금 이 생방송을 보고 있다는 뜻이다.

“이 정도면 성공이네.”

상혁은 피식 웃으며 SG그룹의 본사로 향했다. 이른 새벽이지만 SG그룹 본사는 마치 벌집을 들쑤셔 놓은 것처럼 발칵 뒤집혀 있었다. 당연히 백도현의 기자회견 때문이다.

달칵.

상혁이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상혁의 차 앞뒤로 선 승합차에서 골렘의 용병들이 내려 상혁을 앞뒤로 호위했다. 그 모습이 눈에 확 띄었지만, 그 덕분에 상혁 주변으로 사람들이 쫙 물러나며 앞이 확 트였다.

“사, 상혁아!!”

그때 백이현이 상혁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안색이 창백해진 것이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백이현이 새벽부터 나온 모양이었다.

척.

백이현이 상혁에게 다가오려 했지만 용병이 백이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상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용병이 옆으로 비켜섰다.

“형님.”

“너, 너도 보았니? 도, 도현이가. 도현이가.”

“예. 살아계시더군요. 그것도 회장님이 살인 청부를 하셨는데도 말이에요.”

상혁의 목소리는 고요했다. 흔들림 없는 상혁의 모습에 백이현이 위화감을 느꼈다. 상혁이 고개를 들어 백이현에게 말했다.

“전 지금 이곳에 더 위자드의 회장으로 온 겁니다.”

“위, 위자드?”

“네.”

상혁의 말에 주변이 순간 조용해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백성철 회장이 미국의 사모 펀드와 SG건설의 인수에 대해 협상 테이블을 앉았다는 건 SG그룹 내에서도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걸 가능토록 조건부 계약으로 자금을 지원한 것이 더 위자드란 소문이 쫙 퍼졌기 때문이다.

“……!”

그리고 조용하던 주변이 서서히 경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 위자드에 대해서만 들었을 뿐, 설마 로열패밀리인 상혁이 더 위자드의 회장이라는 건 지금 이곳에서 처음 듣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조건부 계약이라는 게 설마…….”

“네. 형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회장님의 사정을 제가 많이 봐드렸거든요.”

조건부 계약.

그 계약 조건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백성철 회장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상혁이 갑이고, 백성철 회장이 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갑이 지금 이 시각에, 그것도 백도현의 충격 폭로가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 SG그룹의 본사에 나타났다?

그것이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니라는 걸 백이현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SG건설 인수 자금으로 회장님께서 요구하신 금액이 100억 달러. 저는 지분을 요구했지만, 회장님은 경영권에 걱정이 크시더군요. 그래서 바꿨습니다.”

상혁은 여유롭게 손톱도 내려다보며 백이현에게 말했다.

“SG건설 인수 즉시 이자 10퍼센트에 전액 상환하기로요.”

100억 달러를 빌렸으니 110억 달러를 즉시 갚겠다는 조건을 걸었다는 뜻이다. 단기간에 10퍼센트의 차익을 볼 수 있는 조건이니 나쁜 조건은 아니다. 그래서 조건부 계약이라는 소리.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더 조건이 걸려 있었다.

“만약 SG그룹의 악재가 발생하여 더 위자드의 투자금을 변제할 방법이 사라졌다고 판단되는 즉시 투자금의 다섯 배를 상환할 것.”

징벌적 배상 조항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액수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 100억 달러를 빌려주었으니 악재로 인해 변제할 수단이 사라졌다고 판단되는 순간, 갚아야 할 금액이 다섯 배로 뛴다는 뜻이다.

독소 조항이나 다름없지만, 백성철 회장은 이 제안을 뿌리칠 수 없었다.

100억 달러는 약 70억 달러 규모인 SG건설을 충분히 인수하고도 남는 금액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백성철 회장은 더 위자드에 500억 달러를 갚아야 한다.

“그래서 돈 받으러 왔습니다. 채권자로.”

“사, 상혁…….”

“그리고 형님께 한 약속도 못 지킬 것 같습니다.”

상혁이 덤덤한 목소리로 백이현의 마지막 희망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SG건설 말입니다. 잘 진행되고 있었는데, 회장님께 큰 윤리적 결함이 있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으니 어쩌겠습니까. 아마 미국도 난감할 겁니다. 상투를 잡았다고 생각한 SG건설이 당장 내일부터 휴짓조각이 되어 버릴 테니까요.”

“그, 그런 게 어디…….”

“형님 이야기도 나올 텐데 그러고 계실 시간이 없으실 겁니다.”

백이현의 눈이 커졌다. 상혁은 마치 백도현의 기자회견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알고 있는 것처럼 슬쩍 흘렸기 때문이다.

그 순간 백이현의 머릿속에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백이현은, 자신이 상혁의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었다는 것을 그 순간 깨달았다.

“너, 너! 백상혀어…… 억!!”

백이현이 뒷목을 턱 잡았다. 그의 머릿속에서 순간 무언가 뚝 하고 끊기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백이현이 휘청하더니 와장창 앞으로 넘어졌다.

“도, 도련님!!”

유인태가 백이현을 얼른 뒤집었다. 백이현의 이마 위로 새빨간 피가 흐르고 있었다.

“들어가지.”

“예, 회장님.”

상혁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백이현을 한 번 싸늘하게 쳐다본 뒤 본사의 로비를 가로질렀다. 경호원을 대동한 상혁을 감히 막아서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상혁을 태운 엘리베이터가 최상층에 도착했다. 회장실이 있는 바로 그곳이었다. 상혁은 굳게 닫힌 회장실의 문을 보며 피식 웃었다.

“동해안의 지랄에 비하면 쓸데없는 복수처럼 느껴지네.”

백성철이건 백이현이건 이젠 하찮게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이 순간을 기다리기도 했다. 김대엽이 상혁에게 오려고 했지만 그의 앞을 이창엽이 막아섰다.

“이창엽이 너…….”

“회장님.”

상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회장실의 문을 열었다. 비서실의 비서는 이창엽과 골렘의 경호원들에 의해 막혔다.

덜컹.

회장실 문이 열렸다.

회장실의 불은 꺼져 있었다. 하지만 백성철이 평생 지키기 위해 싸워 왔던 왕좌 뒤로 TV가 켜진 채 빛을 발하고 있었다.

문을 닫은 상혁이 회장실의 불을 켰다. 그리고 손을 까딱여 백성철이 자신을 쳐다보게끔 염동력 마법으로 의자를 돌려세웠다.

그러자 늙고, 추레한 늙은이가 상혁을 쳐다봤다. 상혁은 광기가 덕지덕지 묻어 나오는 그런 백성철을 향해 말했다.

“이제 다 끝났다, 백성철.”

“백상혁…….”

[10년 전, 백성철 회장은 자신의 동생인 백성운의 살인을 사주하였고 중국 국안부의 전 국장인 샤오핑이 국안부 요원을 동원하여 사고사로 위장한 뒤…….]

“내 아버지 백성운. 그리고 내 어머니 김성미.”

상혁의 머릿속에 흐릿하기만 한두 분의 상(象)이 맺혔다가 사라졌다. 기억도 나지 않는 두 분이지만 자신을 낳아 준 두 분이다.

“두 분을 위한 복수의 제물로 난 이 SG그룹을 태웠지. 어때, 나의 복수극이?”

상혁의 두 눈이 유일한 광원인 TV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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