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42화
242. 쓸데없는 복수(2)
SG건설을 다시 확보하기 위해 백성철이 선택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밖에 없었다.
상혁이 내민 손을 잡는 것.
하지만 백성철은 쉬이 그 손을 잡을 수 없었다. 무엇이든지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건 백성철이 살아온 인생이나 다름없기에 백성철은 상혁에게 물었다.
“왜 도우려고 하는 것이냐?”
“왜라니요. 가족인데요.”
“그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가족이라니. 지나가던 똥개가 웃겠구나.”
백성철이 거침없이 말했다. 애초에 상혁의 의도를 순수하게 믿지 않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애초에 상혁도 백성철이 그럴 것이라 예상하지 않았다.
‘끝없는 의심이 백성철, 너를 회장으로 만들었지만 결국 파멸하게 만들 것이다.’
권력은 필히 의심을 동반한다. 수많은 의심 때문에 충신들이 죽어 나가고 간신배의 아첨이 달콤하게 느껴진다. 백성철은 너무 오랫동안 군림했고, 의심이 자신을 갉아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자신을 갉아먹는 의심을 곁에 두면서도 상혁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백성철의 파멸을 가속화할 것이다.
“열 살. 제가 열 살에 부모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전 보육원으로 보내졌죠. 어린 나이였지만 인생이 참 야속했습니다.”
움찔.
백성철의 어깨가 무의식적으로 떨렸다. 자신의 손으로 하늘로 보낸 막내동생이 상혁의 입을 통해 언급됐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돌아가셔야만 했을까. 왜 내가 이곳에 와야만 하는 것일까. 나에겐 다른 가족은 없는 것일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만.”
그랬다.
60년도 더 된, 상혁에게는 까마득하게 먼 과거의 기억이었지만 그때의 감정만큼은 기억이 났다. 열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에게 갑자기 세상이 뒤바뀌어 버렸기 때문이다.
성인이라도 그런 일이 벌어지면 황망할 법한데, 불과 열 살에게 벌어진 일이다. 그러니 그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고민한다고 하여 달라지는 건 없더군요. 일단 살아야 했습니다. 보육원의 원장은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요.”
그 때문에 상혁은 대학을 진학하는 대신 곧바로 사회의 일원으로 편입하기 위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보육원에서 자란 고아에게 있어 대학은 사치다. 당장 보호 생활이 종료되는 시점이 되면 보육원에서조차 나가야 하는데, 대학 따위를 다닐 여유는 없었다.
입에 풀칠하기 위해 같은 시기에 보육원을 나갔던 아이들은 알바를 하고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뛰었다.
하지만 상혁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보호 생활이 종료하면서 받은 소정의 지원금을 아끼고 또 아껴 고시촌에 들어갔다.
그곳에서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 투잡을 뛰어야만 했지만 상혁은 필사적이었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내게 가족이 있다더군요. 그것도 무려 재벌 가족 말입니다.”
백성철이 상혁을 빤히 쳐다봤다. 주변은 을씨년스러웠지만,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 상혁에게서 백성철은 순간 위화감을 느꼈다.
갑자기 상혁이 자신과 동년배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을 한 번 깜박하고 나니 그 느낌이 사라졌다.
‘……왜 이러지?’
백성철이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있음에도 상혁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게 바로 SG그룹이고. 어쨌거나 내 집입니다. 더 위자드의 회장이지만 그전에 난 백씨 성을 쓰는 사람이고요.”
“정말 혈육이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의 혈육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와 어머니이다. 마법이 8서클에 도달했어도 이미 죽은 사람과는 만날 수 없었다.
‘한 번만 뵐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상혁이 정신과 영혼 계통의 마법에 이렇게 능통한 것도 닿을 수 없는 꿈을 좇다가 이룩한 성취다. 삶과 죽음에 대해 마법적으로 탐구하다 보니 숨 쉬는 것처럼 영혼과 정신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도 마법 중에 가장 난해하다고 소문 난 영혼과 정신 계열의 마법을 말이다.
지금은 그럴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니다.
상혁은 백성철을 지그시 주시했다.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태연하게 모른 체를 할 위인.’
백성철은 이미 상혁의 부모님이자 자신의 동생인 백성운에게 한 범죄를 시인했다. 그러나 상혁이 마법으로 건드려 두었기에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상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이렇게 하는 거지. 아버지의 혈육이니까. 그래서 더 용서할 수가 없는 것이고.’
그때 백성철이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주변을 더듬었다.
“이곳. 구룡마을의 이 공터. 원래 이곳에 내 집이 있었다.”
백성철은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그의 눈이 먼 과거를 짚었다.
“쫓겨났었지. 아버지에게서. 그때 나는 후계자도 아니었고 그냥 철없는 20대였으니까. 그게 벌써 40년 전이다. 정말 가진 것 하나도 없이, 탈탈 털어서 쫓아내시더군. 그래서 흘러 들어온 곳이 여기였다.”
백성철 회장의 선친, 그러니까 SG그룹의 반석을 다진 창업주 백효웅은 전쟁을 거친 세대이면서 제 손으로 삽을 퍼 나르며 SG그룹을 세운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아들이 자신의 위명으로 편하게 사는 꼴을 절대로 보지 못했다. 그런데 백성철이 그런 백효웅에게 쫓겨났다는 것은 금시초문이다.
“뭘 하셨습니까.”
“새 사업을 하고 싶었지.”
“허락을 안 해 주신 겁니까?”
“실패했다.”
백성철이 피식 웃었다. 사업을 하는 데 있어 성공과 실패는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백효웅에게는 용서라는 것이 없었다.
백성철은 자신이 벌인 사업 실패의 책임을 떠안고 집안에서 쫓겨났다. 백효웅의 엄명에 의해 100원 한 장 가지고 나올 수 없었으니 이곳까지 흘러 들어온 것이다.
“이곳에서 이현이와 도현이가 태어났지. 이현이와 도현이도 어려서부터 잘산 건 아니다. 좁은 방 한 칸에서 네 식구가 살았지.”
그렇게 이곳에서 6년을 살았다. 구룡마을의 판자촌에서 살면서 백성철이 하나 깨달은 것이 있었다.
“이런 곳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독기를 길렀지. 가슴속에 칼을 갈았고. 악마에게 영혼을 내주더라도 다시 저 SG그룹으로 돌아갈 것이라 마음먹었다.”
백성철이란 괴물을 제련한 곳이 바로 이 구룡마을이다. 백효웅은 자신의 뒤를 이을 백성철이란 괴물을 연성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사자는 새끼를 절벽에서 밀어서 떨어뜨린다.
자연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제왕의 논리를 굳건하게 만들어 주기 위한 개소리지만 백효웅은 백성철을 절벽 아래로 떠밀었다.
그리고 절벽을 기어 올라온 백성철을 받아들이고, SG그룹의 후계자로 회장직을 물려주었다.
“이곳의 삶이 힘들긴 했지만, 이현이나 도현이나, 안사람이나 가장 아무 걱정 없이 살았을 유일한 시간일 거야. SG그룹으로 돌아간다는 건 이곳의 행복을 모두 버린다는 뜻이었지. 악마의 유혹이랄까.”
백성철이 쓰게 웃었다.
“하지만 그 덕에 이 나이에 난 기사를 거느리고 다니고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지. 하지만 이 동네 노인들은 이 나이에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주우며 다닌다. 난 그렇게 되기 싫어서 악마가 내민 손을 다시 붙잡았어.”
SG그룹으로 되돌아간다는 것. 그것에 대해 백성철도 고민했던 적이 있는 모양이다. 권력이 미친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안 가는 모습이다.
백성철이 상혁에게 말했다.
“이미 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 그러니 한 번 더 팔아도 문제는 없겠지. 좋다. 네 손을 잡으마.”
백성철의 두 눈이 음울한 귀기로 일렁였다.
* * *
“하, 노인네.”
백성철은 자신과 함께 온 수행원들을 데리고 구룡마을을 떠났다. 상혁에게 같이 가자고 제안했지만 상혁은 제안을 거절했다.
[혼자 가겠습니다.]
[길이 어둡고 험하니 조심해서 내려오도록 하려무나.]
[예.]
백성철이 귀기를 품은 눈으로 상혁을 한 번 응시한 뒤 등을 돌려 떠났다.
상혁은 혀 밑에 숨긴 칼이 난무하는 가나안의 정계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노괴다.
그런 상혁이 백성철의 눈빛의 의미를 모를 리 없다.
“날 의심하고 있구나.”
백성철은 상혁의 손을 잡았다. 당장 SG건설을 사모 펀드 컨소시엄인 이터로부터 다시 매입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모름지기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법이다. 그건 제아무리 SG그룹의 회장이라고 해도 다를 바 없었다.
미국, 월가, 로스차일드, 그리고 더 위자드.
상혁의 더 위자드가 SG건설을 적대적 인수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백성철의 눈에서 고스란히 묻어 나왔기 때문이다.
“저 노친네만 돈만 받고 히트맨을 보내도 이상하지 않을 양반이지.”
백성철은 살아남아 SG그룹의 회장이 되기 위해 말 그대로 아수라장을 넘은 인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법과 질서가 닿지 못하는 권력의 최상층은 강자가 약자를 포식해도 윤리적으로 아무런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무법 지대나 마찬가지다.
그런 무법 지대에서 최상위 포식자로 살아온 백성철은 괴물이다.
도의적인 책임도, 윤리적인 죄책감도 없는 소시오패스가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바로 기업가이기 때문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군.”
쿵!
상혁이 발을 들어 바닥을 찍었다. 그러자 발바닥으로 미약한 전류가 뿜어져 나오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파지직 소리와 함께 회로가 타들어 가는 냄새가 땅속에서 스멀거리며 피어올랐다.
백성철이 상혁을 이곳에 부른 것은 정말 상혁이 더 위자드의 회장인지 캐내기 위함일 것이다.
그래서 곳곳에 감시장치가 숨어 있었다. 도청부터 시작해 몰래카메라까지, 상혁과 만나는 사람이 있는지, 그게 누군지를 알아내기 위해 싹 준비해 놓은 것이다.
“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상혁의 마음은 홀가분해졌다. 백성철은 바뀌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회장이 되기 위해 자신의 부모님을 집어삼킨 괴물일 뿐이다.
“저런 인물인 걸 내 모르는 것도 아니었으니. 이제 남은 건 저 얼굴에 눈물이 흐르는 걸 구경하는 것 정도인가?”
상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렇게 구룡마을의 좁고 구불거리는 길을 내려온 상혁의 눈에 오승택이 들어왔다. 차에 몸을 기대고 있다가 상혁이 내려오는 것을 확인한 오승택이 뒷좌석의 문을 열며 고개를 숙였다.
“고생하셨습니다.”
“백성철은?”
“거의 서른 명 가까운 수행원을 대동하고 온 모양입니다. 떠난 차만 거의 열 대가 넘습니다.”
“누가 보면 대기업 회장이 아니라 조폭인 줄 알겠어.”
아마 여기서 일이 잘 안 풀렸다거나, 상혁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더라면 백성철은 여기서 상혁을 묻으려 했을 것이다.
상혁이 차에 오르며 오승택에게 말했다.
“구기동으로 가자.”
“예, 회장님.”
상혁을 태운 차는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기동에 도착했다. 오승택을 퇴근시킨 상혁이 자신의 방이 아니라 지하의 연구실로 향했다.
달칵.
우우웅.
그러자 그곳에는 일호가 있었다. 그런데 일호 주변으로 작은 물체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일호는 마법을 연습하고 있었다.
“마스터.”
“염동력?”
“예.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아서.”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심상에서 만난 자신의 사념체가 준 선물을 일호는 연습하고 있었다. 그때 일호의 머리 위로 초아가 짠하고 나타났다.
뽀르르-!
“널 잘 따르네.”
“그렇습니까?”
초아는 구기동 저택을 좋아했다.
상혁의 제석천 때문에 공기가 맑아져서 그런지, 안마당에 있는 작은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외의 바깥은 매연이나 오염이 심해 초아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초아.”
뽀르르-!
상혁은 초아를 불렀다. 그러자 초아가 날개에서 꽃가루 같은 것을 파르르 떨어뜨리며 상혁의 손바닥 위로 올랐다.
[통로가 열린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고 싶으면 세계수를 찾아.]
세계수, 그리고 세계의 의지가 상혁에게 붙인 초아.
상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초아가 자신의 이파리를 매만지며 그루밍을 하는 동안 상혁은 자신의 사념이 말한 것을 곰곰이 생각했다.
화륵!
그리고 상혁의 오른쪽 눈에 마나가 덧씌워졌다.
마나안이다.
7서클이 되며 한층 더 공명이 강해진 마나안이 상혁의 눈을 뒤덮었고, 그 눈으로 상혁은 초아를 응시했다.
그러자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희미하게 상혁의 마나안에 비치기 시작했다.
“끈?”
초아의 머리 위로 희미하게 꺼질 것처럼 연약해 보이는 끈이 한 가닥 연결되어 있었다.
초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그루밍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고.
팟!
하지만 이내 상혁이 자신을 인지했다는 것을 깨달은 듯 끈이 자취를 감추었다. 어딘가에 연결된 그 끈을 다시 보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초아는 뭐고, 내 사념체가 말한 내가 치워야 할 똥은 뭐고…….”
괜히 머리만 복잡해졌다.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상혁은 실험용 책상 앞에서 그 서늘함을 느끼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때, 일호가 전화기를 들고 왔다.
“마스터, 이터의 샤논 의장입니다.”
상체를 일으킨 상혁이 전화를 받았다.
“백상혁입니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결과에 상혁은 씨익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