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241화 (240/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41화

241. 쓸데없는 복수(1)

“지금 뭐라고…….”

김대엽 실장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귀를 믿지 못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닐 것이다. 상혁과 박상원, 그리고 일호와 골렘의 경호원들을 제외한 모두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더 위자드?

그 위자드 말이야?

미, 미국 회사라면서?

수군수군.

김대엽 실장의 눈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상혁에게 거짓말하지 말라며 호통을 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간 보아 온 상혁은 굳이 이런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

“제대로 들으셨습니다. 뭐, 놀라긴 하셨을 텐데.”

상혁의 눈이 힐끗거리며 로비를 훑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 중 상혁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런저런 일로 뉴스에 단골로 출연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새로운 로열패밀리의 등장에 회사 직원 사이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안줏거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또한 SG그룹의 본사 로비에는 비단 SG그룹 직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파바바밧!

“여보세요? 어, 특종이야. 초고 쏠 테니까 어…….”

다다닥!

기자로 보이는 이들 몇이 상혁을 향해 몰래 사진기를 들어 올리고, 아무데나 주저앉아 노트북을 펼치며 정신없이 통화를 하고 있었다.

유인태가 상혁의 명령대로 미리 불러 놓은 기자들이다. 전혀 뜻하지도 않은 특종을 현장에서 목격한 기자들의 손이 근질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더 위자드의 회장, 백상혁입니다.”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

“몇 번이나 더 말해야 할지. 왜요. 못 믿으시겠으면 어디 전화라도 해서 확인시켜 드릴까요?”

상혁이 희게 웃었다. 김대엽은 그제야 현실감각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김대엽의 눈에서 기광이 폭사했다.

“비서실.”

김대엽의 한마디에 비서실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김대엽의 말은 비서실 직원들에게 있어서는 곧 하늘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삽시간에 비서실 직원들이 사방으로 퍼지며 로비에 구경하고 있던 구경꾼들을 몰아냈다. 비서실 직원과 구경꾼들의 고성이 섞이며 주변이 도떼기시장처럼 변했다.

“개판이네요.”

“다시 한번 더 묻겠습니다. 정말 더 위자드의 회장님이십니까?”

김대엽의 태도가 바뀌었다. 말도 안 된다고 부정했던 단계에서 수용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확실히 백성철의 오른팔답게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장은 태세 전환이 무척이나 신속했다.

“그래도 가족인지라 SG그룹의 소식을 듣고 도우러 왔습니다.”

“맞으시군요.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워낙 더 위자드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부득이하게 여러 번 확인 절차를 거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과 받아들이죠.”

김대엽은 상혁을 SG그룹의 막내가 아니라 더 위자드의 회장으로 대했다. 상혁이 거짓말을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는 결론 끝에 상혁의 말이 진실이라고 믿은 것이다.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과 그것을 믿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하지만 김대엽은 개인이기 이전에 SG그룹의 비서실장으로서 적절한 조치를 취한 뒤 정중한 태도로 상혁을 응시했다.

“죄송하지만 잠시 여기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연락 없이 온 내 불찰이니 그렇게 하지요.”

“예. 잠시만.”

상혁이 어떻게 더 위자드의 회장이 되었는지 알아보는 건 나중의 일이다. 만분의 일이라도 상혁이 정말 더 위자드의 회장이라면 상혁의 위상은 백성철 회장과 비슷한 수준에 놓아야만 한다.

4,500억 달러.

그리고 미국 정부와 로스차일드를 등에 업었다는 소문이 전 세계의 금융가에 쫙 돈 더 위자드의 회장이라면 그것이 당연했다.

갑자기 나타나 난데없이 거대한 폭탄을 투하한 상혁이 혼돈에 빠진 SG그룹 본사의 로비를 훑어보며 즐겁게 웃었다.

* * *

[미국발 모 투자회사의 회장, 한국인으로 밝혀져?]

[모 그룹을 찾은 모 투자회사의 회장. 모 그룹과 밀월관계?]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나타난 모 이사장, 모 투자회사의 회장과 동일 인물이다!?]

찌라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퍼져 나갔다. 찌라시의 신뢰도가 거의 90퍼센트에 육박하는 만큼 사람들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언론은 침묵했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모든 언론사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찌라시의 ‘모 그룹’의 비서실이 전화를 돌려 강력하게 엠바고를 걸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 일련의 사실이 찌라시가 진실이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자 재계, 정계, 금융계 가릴 것 없이 대한민국의 모든 안테나가 한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불과 몇 시간 만에 대한민국의 찌라시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주인공인 상혁이 모습을 드러냈다.

구룡마을.

대한민국의 마지막 최빈민촌이라는 오명과 함께 새롭게 부임한 서울시장의 강력한 재개발 의지와 함께 이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힘겹게 투쟁하는 그곳에 상혁을 태운 세단이 스르르 도착했다.

“회장님,도착했습니다.”

“음, 벌써?”

“예.”

상혁은 눈을 비비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오승택이 상혁을 룸미러로 쳐다보고 있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그의 표정에 상혁이 픽 웃었다.

“울어?”

“아닙니다,회장님.”

“내가 더 위자드의 회장이었다는 게 너에게도 놀라운 일인가?”

오승택과의 인연은 꽤 깊었다. 악연으로 시작한 첫 만남에서 오승택이 자신의 운전기사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더 재밌는 건 오승택이 운전기사의 역할에 만족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가장 큰 건 치매를 앓던 오승택의 홀어머니인 김경자의 병세가 확연하게 완화되었다는 점이다.

완치.

현대 의학으로는 극복이 불가능하다는 치매가 상혁의 손에서 깔끔하게 완치가 된 것을 본 순간 오승택은 상혁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물론 상혁이 그럴 필요 없다며 칠색 팔색했지만 그 순간부터 오승택에게 상혁은 충성의 대상 그 자체였다.

하지만 상혁에게는 오승택이 여전히 모르는 비밀이 참 많았다. 상혁이 더 위자드의 회장이었다는 것이 바로 그중 하나였다.

“다 이유가 있으셨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이유는 없어. 숨긴 적도 없지. 그냥 떠벌리고 다니지 않았을 뿐이야.”

상혁이 더 위자드의 회장이란 것이 이제야 알려진 것은 그만큼 다른 이들이 무능했기 때문이다. 상혁은 일부러 자신이 더 위자드의 회장이란 것들 고의적으로 숨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다른 이들이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

“그때는 내 입으로 내가 더 위자드의 회장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었고. 하지만 지금은 그게 필요해진 것일 뿐이고.”

굳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면서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 모든 것은 철저히 상혁의 기나긴 복수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 필요에 따라 쓰였을 뿐이다.

“동생도 회장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 신병이 거의 나았던데. 보니까 그 수호령이 떠나려고 하는 모양이야.”

“그렇습니까?”

오승환의 말에 눈을 빛내는 오승택을 보니 그는 여전히 동생 바보였다. 오승환은 오승택과는 달리 영특했고 재능이 많았지만 가족을 보호하고자 기꺼이 지박령이 된 아비의 존재로 인해 그 재능을 써먹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수호령이 떠나려고 하고 있었다.

“내 손으로 좋은 곳으로 보내 줄 테니, 악령이 되어 떠도는 일은 없을 거야.”

“늘, 모든 것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회장님.”

오승택은 고개를 숙였다. 차 안에는 오승택과 상혁 단둘뿐이었다. 이창엽과 일호가 수행하겠다고 했지만 굳이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직 다 끝나지 않았어. 꼭 무슨 작별 인사를 하는 것처럼 인사를 하고 그래.”

“이렇게 회장님과 단둘이 있을 시간이 없었으니까요.”

“낯 뜨겁다. 그만해.”

오승택이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상혁은 문고리를 잡았다.

“올라가서 백성철에게 내가 더 위자드의 회장이 맞다는 것만 확인해 주고 돌아올 거야. 곧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해.”

“예, 회장님.”

문이 닫혔다. 상혁의 눈에 서울이지만 서울이 아닌 것 같은 구룡마을이 들어왔다.

여기서 조금만 나가면 잠이 들지 않는 도시인 서울을 볼 수 있다. 밤새꺼지지 않는 불과 야밤에도 유흥으로 시끄러운 구역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구룡마을은 마치 그 모든 것에서 격리된 것처럼, 서울 불야성의 불빛이 조금도 닿지 않는 곳이다. 사방에 붉은색 래커로 ‘철거’라고 쓰여 있거나 크게 엑스자가 쳐진 다 쓰러져 가는 판잣집이 상혁을 맞이했다.

“백성철이 이 위에 있다?”

구룡마을은 그 역사조차도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없는 이들이 살기 위해서 정착한 곳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로나 길이 제대로 정비되어 있을 리 없다. 상혁은 걸어서 올라가야만 하는 구룡마을의 좁은 길을 보며 팔짱을 꼈다.

“그 노인네가 여길 걸어올라갔다고?”

백성철은 노구다. 반면 구룡마을은 언덕 위에 있었다. 차로 올라가지 못하니 여기 내려서 무조건 걸어올라가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저기 깨진 가로등에 바닥에 버석버석 밟히는 콘크리트 조각, 가끔 쥐가 다다닥 뛰어다니는 소리는 어디서 뭐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백성철이 이 길을 올라가는 것을 상상한 상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통 머릿속에 그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벅, 저벅, 저벅

상혁은 바람을 맞으며 구룡마을을 걸어올라갔다. 중간중간 불이 켜진 집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집은 불이 꺼져 있었다.

사람이 오래 살지 않은 듯, 창이 깨진 집도 있었고 생활 폐기물로 집 안이 가득 찬 곳도 있었다. 이런 곳에 중간중간 사람이 산다는 것이 신기했는데 상혁은 말없이 그 길을 쭉 따라올랐다.

그렇게 길을 쭉 따라올라가자 빈 공터가 나왔다. 그리고 그 공터의 정중앙에 벤치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벤치에 백성철이 숄을 두른 채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벅

상혁이 발소리를 내자 양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백성철을 지키는 경호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상대가 상혁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저벅, 저벅, 저벅

상혁은 공터를 가로질러 백성철의 옆에 섰다. 백성철은 고개를 돌려 상혁을 쳐다본 뒤 옆으로 비켰다. 한 사람 앉을 자리가 나자 상혁이 앉았다.

조용.

상혁과 백성철은 경쟁이라도 하듯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하늘 위로는 달만 희미하게 비쳤다. 그나마 고지대이기 때문에 주변의 무너져 가는 판잣집 너머로 불빛을 머금은 고층 아파트가 우뚝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하늘의 별 대신 고층 아파트의 불빛을 쳐다보던 그때 백성철이 입을 열었다.

“더 위자드의 회장이시라고.”

“예, 큰아버지.”

“언제부터였지?”

“소문대로입니다.”

항간에 더 위자드에 대한 소문이 퍼졌을 때가 더 위자드의 출범일이라는 뜻이다. 백상혁은 가만히 하늘을 쳐다보다가 상혁에게 말했다.

“갑자기 나와 같은 위치가 돼버렸군.”

“그게 자본 주의의 힘 아닐까요.”

“맞는 말이지. 600조에 가까운 돈을 쥐고 있으니. 돈을 많이 쥔 놈이 강한 놈이거든 이 세상은.”

백성철이 우묵한 두 눈에서 순간 번쩍하는 안광이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백성철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상혁을 쳐다봤다.

“나를 도와주겠다고?”

“그래도 몇 없는 핏줄이니까요.”

이 세상에 대가 없는 도움은 없다. 백성철은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가족끼리도 돈이라면 등에 칼을 박았다. 백성철은 그룹을 위해 제 형제를 치워 버렸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아버지와 어머니. 제 부모님.”

상혁이 백성철을 쳐다봤다. 순간 백성철은 상혁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마음에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그럴 리 없다. 내가 무덤까지 이고 갈 비밀이니까.’

백성철은 상혁이 불편했다. 상혁이 쥔 600조는 얼마든지 자신을 찌를 수 있는 날카로운 무기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백성철은 상혁이 SG에 왔다 갔다는 것이 알려지자마자 세 곳의 대사관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미국 대사관.

중국 대사관.

일본 대사관.

세 곳의 대사가 직접 백성철에게 연락했다. 별다른 이야기가 오가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미국, 중국, 일본이 더 위자드의 회장인 상혁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SG그룹보다 더 위자드를 세 국가가 손수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백성철은 상혁의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돈.

지금 백성철 회장은 SG건설을 되찾기 위해 미국 사모 펀드와 싸울 수 있는 현금이라는 이름의 총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때요. 받으시겠습니까?”

백성철은 이것이 어쩌면 스스로 목줄을 차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SG건설은 SG그룹의 기반이자 근간이다. 전통과 역사가 없는 기업은 언젠가는 무너진다. 백성철은 고집 어린 눈으로 상혁을 쳐다봤다.

“이야기를 해 보자꾸나.”

상혁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맺혔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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