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38화
238. 회장 백상혁(3)
상혁의 납치 소식을 입수한 것은 발 빠른 미국뿐만이 아니다.
일본에 한국만큼이나 별다른 좋은 감정을 품고 있지 않은 이웃 나라, 동시에 최근 상혁에게 홀딱 빠진 국가원수가 있는 나라가 상혁의 변고를 눈치챈 것이다.
리창위.
일본은 미국에 이어 중국이 가장 많은 스파이를 보낸 나라 중 한 곳이고, 미국이 CIA의 첨단 기술력으로 상혁의 변고를 눈치챘다면 중국은 촘촘하게 깐 스파이의 감시망에 상혁의 변고가 걸려들었다.
국가정보국.
중국의 국안부, 한국의 국정원과 같은 조직이지만 그 저의가 일본의 군국주의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안 그래도 그자들에게 별로 좋은 감정이 없던 리창위다.
그런데 그 국가정보국이 감히 리창위의 은인이자 중국의 은인이나 다름없는 백상혁을 건드렸다?
“동해 함대를 움직인다.”
“주석 각하.”
“은혜를 입고도 모른 체한다면 그건 금수와 다를 바 없는 짓이다. 은혜를 갚을 줄 알아야 비로소 대국이 되는 것이니까.”
리창위는 아래의 반발을 단호하게 무마시켰다.
“구축함 제3, 13, 14, 15 지대를 오키나와 쪽으로 급파한다.”
한 개의 구축함 지대는 구축함 6척과 호위함 4척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상해 와 저장성의 구축함 지대를 동시에 움직이겠다는 뜻이다.
동해 함대의 작전구역은 동중국해, 센카쿠와 오키나와, 대만의 해역까지였기 때문에 일본 영토인 오키나와까지 가는 건 무리가 없었다.
“감히 섬나라 원숭이들이 이 리창위의 은인을 건드려?”
리창위는 얼음을 와드득 씹으며 화를 가라앉혔다. 그건 곧 자신을 무시하는 짓이다. 은혜를 입으면 그것을 두 배로 갚는 것이 중화인의 덕목이었기에 리창위는 두 눈을 빛냈다.
“은인, 조금만 기다리시오.”
* * *
태평양 함대와 동해 함대가 동시에 일본을 향해 전진했다. 그러자 그 사실에 일본 방위성이 발칵 뒤집혔다. 사이렌이 시끄럽게 울렸고 모든 해양 자위대가 졸린 눈을 비비며 미리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움직였다.
하지만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방위성의 수장, 다노스케 방위대신은 태평양 함대의 항공모함과 상해 와 저장성에서 출발한 중국 동해 함대의 네 개 지대의 규모를 가늠하고는 끊어질 듯한 가는 목소리로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태평양 함대가 움직였다면 7함대인가?”
“예, 방위대신.”
“미쳤군.”
중국의 네 개 지대만 해도 구축함이 24척에 호위함이 16척이었다. 그 외에 따로 동원된 예하 부대만 해도 그 수가 벌써 일본 해군과 공군 전력이 상당수 공멸을 각오해야만 격퇴할 수 있는 규모였다.
하지만 미 7함대의 규모는 상상 이상이다.
최강의 해군 전력이라 일컬어지는 로널드 레이건 호를 필두로 모함을 호위하기 위한 크고 작은 함선이 20척이 넘는다. 또한 다수의 함재기와 육지에서 동원하는 항공기의 수만 200에서 300대가 넘는다.
그리고 전략원잠을 포함한 잠수함대가 따르고 있어 사실상 7함대 하나만으로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각국과 단독으로 해상전을 펼쳐도 압살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바로 7함대다.
그 최강의 함대가 일본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나카타초에서 연락은?”
“닿지 않고 있습니다.”
“칙쇼.”
다노스케 방위대신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
“틀림없이 헤이쇼, 그 무능한 작자가 일본회에 쪼르르 달려가 꼬리를 흔들고 있는 것이렸다. 이런 상황에 일본회의 입이 벌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꼴이라니.”
다노스케 방위대신은 눈을 질끈 감았다. 헤이쇼 총리가 무능하다는 건 그 이전부터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일본회의 대변인에 불과했다.
사실상 이 나라는 일본회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미 대사관과 중 대사관에서는?”
“프레이저 미 대사가 단신을 보냈는데, 그게 ‘모든 과(過)는 일본이 무지(無知)한 탓이다.’라는 말만 남긴 채 회신이 끊겼습니다.”
“일본이 무지하기 때문이다?”
다노스케의 얼굴이 뒤틀렸다. 미국이 최강대국이라곤 하지만 일본의 자존심을 서슴없이 건드리는 말을 할 때마다 뒤틀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모욕적인 언사를 들어도 헤이쇼 총리를 비롯한 일본회의 작자들은 미국만 보면 굽실거렸기에 미국은 일본을 상대로 외교적인 수사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어차피 일본이 미국에 고개를 숙일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에 무지하다는 뜻이지?”
다노스케의 독백에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다들 영문을 몰랐기 때문이다.
“중국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 라고만 했습니다.”
“은혜?”
“예.”
다노스케는 이마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관자놀이가 하도 지끈거려서 그곳으로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제대로 이해가 가는 놈이 하나도 없군.”
다노스케가 이를 갈았다. 하지만 이대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7함대와 중국의 네 개 지대를 상대로 일본은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혹여 어찌어찌 승리한다고 해도 그건 상처뿐인 승리다. 일본의 해군과 공군 전력은 궤멸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2차 세계 대전에서의 패배에 이은 두 번째 패배를 맛보게 될 것이다.
“방위대신. 7함대와 동해 함대에서 교신이 이뤄졌습니다.”
“교신? 뭐라고 하던가?”
“무조건적인 항복. 그리고 일본이 납치하여 구류하고 있는 ‘마법사’를 자유의 몸으로 만들어 줄 것. 이 두 가지랍니다.”
“항복? 그리고 마법사?”
“예.”
다노스케는 무언가 자신이 모르는 일이 윗선에서 벌어졌음을 깨달았다. 그 때문에 미국과 중국이 함대를 이끌고 온 것이다.
“마법사 때문이라는 소리지?”
“하이.”
“빌어먹을. 마법사는 또 뭐야?”
방위대신인 다노스케가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해 당장 미국과 중국을 상대하게 된 것은 방위대신인 그이다.
화가 나지 않으려고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노스케가 이를 뿌득 갈았다.
“그냥 확 사직서를 써 버릴까?”
이러려고 방위대신이 된 것이 아니다. 윗선에서 저지른 일로 인해 일어난 일의 뒤처리를 하려고 그 더러운 꼴을 보면서 자위대 지휘관을 거쳐 방위대신이 된 것이 아니다.
사직서가 몹시 마려운 표정으로 다노스케가 이를 뿌득 갈았다.
“항복한다고 해. 대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 하니 말미를 달라고. 기다려 달라고 말해.”
일본 해역을 불법으로 침입한 미 7함대와 중국의 동해 함대에 다노스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기다려 달라는 말밖에는 없었다.
그냥 전쟁을 결의하기에는 일본의 피해가 너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피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런 식은 아니다.
“XX. XXXX. 빌어먹을 가문 출신 놈들.”
* * *
“어르신.”
“더 위자드 코퍼레이션? 조센징이 그곳의 회장이다?”
“예. 그 때문에 베어햄 대통령이 제게 직접 경고까지 했습니다.”
헤이쇼 총리는 거의 혼이 반쯤 나가 있었다. 그가 감당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진실이 폭풍처럼 휘몰아쳤기 때문이다.
가장 충격적인 건 단연 미국 월가, 더 나아가 전 세계의 금융계를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던 더 위자드 코퍼레이션의 회장이 백상혁이었다는 점이다.
4,500억 달러.
미국 시총 10순위.
그리고 로스차일드.
헤이쇼 총리는 백상혁이, 기껏 20대에 불과한 그가 돌풍을 일으키며 등장한 그 회사의 주인일 것이라 단 한 전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베어햄 대통령이 굳이 시간을 내어 그에게 거짓을 말할 리 없으니, 그 사실에 대해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제가, 제가 대체 위자드에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헤이쇼 총리를 더 미치게 만드는 건 그가 백상혁에 대해 국가정보국에 내린 명령이다. 돈이라면 썩어 넘치는 상혁에게 용왕을 백만 달러에 사겠다고 했다. 그것도 모자라 미야모토를 보내 감히 용왕을 넘기지 않은 상혁을 교육시키라 명령했고 더 나아가 아예 용왕의 설계도까지 강제로 빼앗으라는 명령까지 내렸다.
“만약 국가정보국이 한 일이 미국에 의해 밝혀진다면, 아니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만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무려 미국이 주시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을 일본 내에서 총리의 명령으로 국가기관이 나서 납치 및 고문을 하였다?
“그 백상혁을 위해 베어햄 대통령이 태평양 함대까지 움직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르신. 이건 그냥 넘길 사안이 아닙니다.”
그러자 일본회의 수장, 아소 후미오가 감고 있던 눈을 스르르 뜨며 헤이쇼 총리를 쳐다봤다.
“총리대신.”
“예, 어르신.”
일본회는 일본에서 가장 큰 극우단체다. 단순히 정치적인 색을 띤 파벌이 아니라 일본의 전 분야에 영향력을 끼치는 거물들이 모여 창립한 것이 바로 이 일본회다.
일본의 정상 국가로서의 주권.
이미 50년도 더 된 과거의 잘못으로 일본이라는 한 정상 국가의 주권을 더 이상 상실 상태로 놔둘 수 없다며 또다시 일본을 위대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창립한 것이 바로 일본회다.
아소 후미오는 과거 다이묘를 배출한 가문이자 근대에도 여러 총리를 배출한 최고의 명문가 중 하나인 후미오 가문의 큰 어른으로 일본회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가주를 10년째 책임지고 있었다.
헤이쇼 총리를 만든 것도 아소였으니, 헤이쇼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자 아소에게 쪼르르 달려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평소에도 중요한 국가 과업은 반드시 아소를 한 번 거쳐서 가불가가 정해졌기 때문에 아소가 헤이쇼를 통해 일본을 다스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진정하시지요. 대 닛폰의 국가수반께서 이리 경망스럽게 구시다니. 심호흡을 하시구요.”
“하, 하잇.”
아소 후미오의 나른한 목소리에 헤이쇼 총리는 뛰던 심장 박동이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바깥에서 사람이 들어오더니 아소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이고는 나갔다.
“흠. 베어햄 대통령의 경고가 그냥 경고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군요.”
“예?”
“미 7함대. 그리고 중국의 동해 함대가 오키나와 해역에서 해상 자위대와 대치 중이라는 소식입니다.”
“허, 허억.”
백상혁의 납치가 이뤄진 지 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새에 7함대와 동해 함대가 무력시위를 펼치고 있었다.
“중국까지 말씀이십니까?”
“미국과 중국이 알고 있는 사실을 우리는 몰랐다는 뜻이군요.”
아소의 검미가 꿈틀거렸다. 정보전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국가정보국까지 창설했지만 여전히 미국은 물론, 중국조차도 따라잡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일의 해결은 간단해요, 총리.”
“예?”
“총리께서 고개를 숙이시면 됩니다. 우리 일본의 잘못이 아니라 총리 개인의 일탈로 하시면 됩니다. 대의를 위해서.”
헤이쇼의 얼굴이 굳었다. 상대는 4,500억 달러의 자금을 가졌고, 미국과 중국의 비호를 받는 한국인이다. 그런 한국인 앞에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뜻이다.
“대의를 위해 소는 마땅히 희생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소는 헤이쇼에게 태연히 희생을 종용했다. 이것이 일본회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방법이었다. 강자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는 것. 그건 상대가 백상혁이라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맞습니다 어르신.”
“그럼 무엇이 걱정이십니까? 총리의 뒤에는 우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두려워 마세요. 이 모든 것이 지금의 국난을 극복하기 위함이 아닙니까.”
아소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아니, 평온함을 넘어 마치 헤이쇼를 세뇌시키는 것처럼 나른하기 그지없었다.
헤이쇼의 눈이 살짝 풀렸다. 총리인 헤이쇼이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는 알겠다는 말뿐이었다.
절대복종.
헤이쇼의 눈이 아소의 머리 뒤로 째깍거리며 오가는 거대한 괘종시계에 고정됐다.
하지만 그때.
따악-!!
헤이쇼의 눈이 불이 번쩍하고 튀었다. 동시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두개골이 느껴졌다. 마치 도끼날이 두개골을 부수는 듯한 아찔한 통증이었다.
“아아아악!”
“후우.”
그런 헤이쇼의 뒤통수를 날린 건 손이었다. 상혁이 헤이쇼의 뒤통수를 갈긴 손을 들어 후우하고 바람을 분 다음 비명을 내지르는 헤이쇼에게 침묵 마법을 건 후 히죽 웃으며 아소를 쳐다봤다.
“안녕? 일본회의 어르신?”
아소는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나타난 상혁을 보며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상혁이 자신을 향해 태연하게 아는 척을 하는 것을 본 순간 아소가 말했다.
“야타로인가?”
“오, 한국말을 할 줄 아네?”
일본회의 수장인 아소 후미오. 의외로 그의 한국어는 유창했다. 상혁이 빙긋 웃으며 검지를 세워서는 흔들었다.
“그게 궁금할 때가 아니야 늙은이. 지금은 늙은이의 명줄에 대해서 걱정을 해야 할 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