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32화
232.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2)
상혁이 탄 차는 후쿠시마 원전으로부터 10km가 떨어진 지점의 건물 앞에 도착했다. 후쿠시마현 후바타군의 군청이었는데 그 안에 원전 사고 대책반이 세워져 있었다.
“조금 지저분합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괜찮습니다. 다들 바쁘니까요.”
상혁 정도의 귀빈을 초빙하면서 이런 곳으로 안내하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하지만 그 안에 저의가 숨어 있었기 때문에 상혁은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자기네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걸 어필하기 위해선가?’
일본은 비공식적으로 상혁을 일본으로 초청했다. 그 이유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노심용융으로 인해 계속해서 올라가는 온도를 잡기 위해 퍼붓고 있는 냉각수의 보존이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방사능 냉각수를 그대로 바다에 방출하면 당장 국제사회에서 불같이 비난할 것 같으니, 러시아 해역의 방사능 문제를 해결한 상혁의 용왕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원전 사고 대책반의 다나카 부장관보님이십니다.”
“백상혁입니다.”
상혁은 그곳의 책임자인 다나카와 악수했다. 그는 중년의 일본 남성이었는데 붉은 뿔테에 머리가 반쯤 벗겨져 있었다.
한 가지 특징이라면 눈 밑이 짙게 물들어 있었는데 상혁은 그게 단순 피로가 아닐 것이라 짐작했다.
‘후쿠시마 공항에서부터 공기 중의 방사능이 느껴졌는데, 사람이 멀쩡할 리 없지.’
방사능에 장기간 노출된 사람의 증상이다. 다나카는 웃었는데 그 웃음이 어색했다. 잘 웃지 않는 성격인 모양이었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야말로. 내각관방의 부장관보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내각관방은 일본의 내각 중 하나로 내각관방은 그중 일본의 총리대신을 돕는 내각부 소속의 기관이다.
그곳의 부장관보면 내각관방장관 밑으로 있는 3명의 부장관, 그 부장관의 바로 밑이다. 일본 내각의 고위 각료라는 뜻이다.
동일본 대지진과 그로 인한 원전 사고를 직접 관리하고 있는 곳이 바로 그 내각관방이었다.
“많이 피곤해 보이십니다.”
“아닙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힘드니까요.”
다나카는 이상적인 공무원인 것처럼 대답했다. 원체 일본인의 속내를 아는 것은 어려웠기에 상혁은 그저 빙긋 웃어만 보였다.
“저를 부르신 이유가 용왕 때문이시라구요.”
상혁은 말을 빙빙 돌리지 않았다. 인사치레는 이 정도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상혁이 다른 수사 없이 곧바로 용건을 꺼내 들자 다나카가 짐짓 거북한 표정을 지었다.
상혁은 그저 빙글거리며 웃기만 했다. 어차피 칼자루를 쥔 것은 상혁이지 일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나카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예. 러시아에 용왕을 지원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원이요?”
상혁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다나카의 워딩은 교묘했다. 러시아에 판매가 아니라 지원이라는 단어로 상혁이 용왕을 자선사업 하는 것처럼 만들어 버린 것이다.
지구를 위해, 대의를 위해.
저렇게 말해 버리면 상혁이 용왕의 대가로 과도한 요구를 하지 못할 줄 안 모양이었다.
“뭐, 그렇지요. 제 누님이 러시아 쪽에 관심이 많으신지라.”
백정연이 아니라면 러시아는 용왕의 존재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상혁의 용왕으로 인해 백정연이 크게 이득을 보았다. 상혁이 웃었다.
다나카는 그런 상혁을 보면서 쉽지 않겠다는 듯 이마를 살짝 찡그렸다. 원래대로라면 그가 이렇게 저자세로 나갈 생각이 아니었다. 냉각수 방류는 비단 일본의 문제뿐만 아니라 바로 해역을 마주하고 있는 한국에도 큰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SG그룹을 빌미로 상혁에게 압력을 넣어 용왕을 넘길 수밖에 없게끔 하려고 했는데, 두 통의 전화가 그 빌미를 막아 버렸다.
‘미국과 중국이 끼어들다니.’
상혁이 일본에 간다는 건 공식적으로는 비밀이지만 물밑에서 활동하는 이들에게는 큰 비밀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곧바로 일본 정부에 두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미국과 중국.
미국의 부대통령과 중국 주석이 직접 일본에 연락을 취해 온 것이다.
일본에게 중국은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국이야 늘 날 서게 맞서고 있는 경쟁국이었고 일본의 냉각수 방류에 거의 협박에 가까운 언사로 일본을 압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아니다.
미국은 일본의 최대 우방국이었다. 거기에 중국의 맞서기 위해 일본은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굉장히 컸다. 그 때문에 미국의 일거수일투족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라 중 하나가 바로 일본이었다.
그 일본에서 상혁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연락을 해 온 것을 일본 정부는 그냥 무시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기존에 세웠던 모든 계획을 파기했다. 그렇기 때문에 다나카는 상혁을 직접 만나 본 뒤 협상을 하려 했지만 어리디어린 상혁임에도 다나카는 쉽사리 방심할 수 없었다.
‘까다로운 상대에 미국까지.’
그리고 무시할 수 없는 상대인 중국까지 상혁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다나카는 약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희 일본에게도 필요합니다.”
“용왕이요?”
“예. 후쿠시마에 보관하고 있는 냉각수. 보존량이 한계에 도달한 상태입니다.”
“냉각수. 확실히 그게 문제이기는 하죠.”
상혁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상혁과 다나카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톡톡 두들기는 소리가 다나카의 신경을 툭툭 건드렸다.
“좋습니다.”
“저, 정말이십니까?”
다나카는 상혁의 입에서 좋다는 소리가 나오자 눈이 커졌다. 용왕을 상혁으로부터 받기 위해 지루한 마라톤협상이 이어지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 봐야 하는 법이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요?”
“예.”
상혁이 히죽 웃었다.
“일본 정부의 한국 기업에 대한 수출 규제를 풀어 줄 것.”
“으, 으으음.”
일본 정부는 2년 전 한국 기업, 정확히는 SG그룹을 견제하기 위해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몇 가지 요소에 수출 제한을 걸었다.
물론 겉으로는 자국의 기술을 보호하고 자국 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로 인해 SG전자의 반도체 산업이 크게 피해를 본 것은 사실이었다.
외교적인 문제를 경제적인 문제로 비화시켰다는 것에 한국 정부가 일본에 극렬하게 항의했지만 일본은 무시로 고수했다. 양국의 역사와 묵은 감정으로 인한 일이었기 때문에 국제사회도 침묵했다.
그렇게 2년 동안 한일 양국은 냉전 상태를 유지했다.
“사실 저도 곤란합니다.”
상혁은 자신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인도적인 차원을 위해서 용왕을 일본 정부에 판매하는 것이 옳기는 합니다. 하지만 전 한국인이고, SG그룹의 일원으로서 국민적인 감정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반일 감정.
다나카는 신음을 흘렸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럼 노력해 보시고 연락 주시죠.”
“…….”
냉각수 보존량이 한계에 도달했다. 이대로는 그냥 무단으로 방류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일본 정부는 그 상황을 대비하여 냉각수 방류량이 태평양 생태계에 영향이 없도록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은 일본 정부 내에서도 이미 나온 결론이었다.
“그리고 또.”
하지만 상혁의 요구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용왕은 여러 이유로 SG환경재단에서 생산에 합당한 코스트를 받고 판매할 예정입니다. 물론 세계환경위기를 위해 만들어진 재단이니만큼 영리적인 목적은 아닙니다.”
다나카가 긴장한 표정으로 상혁의 입을 바라봤다. 판매란 이야기가 나왔으니 용왕의 가격이 나올 타이밍이었기 때문이다.
“용왕 한 기당 백만 달러로 하겠습니다.”
“배, 백만이요?”
“예.”
상혁은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듯 정확하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용왕을 생산해 내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딱 백만 달러입니다.”
거짓이다. 하지만 용왕에 대한 구동 원리를 알아낸 곳은 세계 그 어느 국가도 없었다. 마법에 대해 모르는 이상 용왕에 대해 알아내는 것이 더 신기한 일이다.
그러니 상혁이 백만 달러를 요구해도 그쪽에서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수질 오염을 깨끗하게 해결할 수 있는 혁신적인 정화 도구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수출 규제의 해제와 한 기당 백만 달러.
다나카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가 부장관보라고는 하나 그가 내릴 수 있는 결정권은 지극히 작았다.
“논의해 보고 알려 드리겠습니다.”
“12시간.”
상혁은 선을 그었다.
“12시간 뒤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끊어 놨습니다. 그 전에 연락을 주시지요.”
상혁이 아쉬울 건 없다. 빡빡한 데드라인을 받은 다나카가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마스터, 과연 일본 정부가 협상에 응하겠습니까?”
상혁이 코를 벌름거리며 호흡기를 통해 들어온 방사능 공기에서 마나를 분리해 내다가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크흠.
상혁의 코로 방사능이 쑥 뿜어져 나왔다. 일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국가적인 자존심 때문에 국토가 병들어가고 있는 걸 그냥 방치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응. 그리고 그 책임을 아마 나와 재단으로 돌리겠지.”
아마 일본 언론에서는 상혁과 재단을 물어뜯을 것이다. 상혁이 자선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건만 후쿠시마와 태평양의 위기를 상혁이 무시했다고 꼬투리를 잡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일본 애들이 잘 쓰는 방법이거든.”
“비효율적인 곳에 감정을 쏟아붓는군요.”
“국민성이 그래. 눈 가리고 아웅을 잘해서 그런지 정부에서 하는 말에 잘 휘둘리거든.”
내각의 다수를 이루고 있는 자민당이 잘하는 것이 눈 가리고 아웅이었다. 그렇게 몇십 년간 자신들의 과오를 외면하고 합리화를 했기에 남 탓을 하는 것에 일가견이 있었다.
“마스터가 협상해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걸까요?”
“모르지. 내가 어려 보이니까 뭐 대의니,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이니 이런 걸 논하면 말이 통할 줄 알았겠지.”
“고작 나이라니요. 한 나라의 외교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허술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인간은 때로 눈에 뻔히 보이는 결과도 수용하지 않고 먼 길을 돌아서 가는 답답한 족속이다.
“기껏 마스터를 불러 놓고, 협상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면 마스터를 왜 이곳에 부른 걸까요?”
“설득할 자신이 있었겠지. 아니면 협박이라도 하던가.”
“설득이요?”
“돈.”
상혁이 피식 웃었다.
“일본 애들이 돈은 많거든. 아마 돈으로 해결하려고 할 텐데…….”
상혁이 제시한 수출 규제 완화 같은 건 윗선에서 받아들일 리 없다. 그건 한일 정부 간의 일종의 자존심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의 자존심 싸움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건 결국 양국의 기업이다. 일본 기업도 한국에 그 품목을 수출하지 못하면 손해를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게 있다는 걸 알려 주면 되겠지. 안 그래?”
“마스터?”
“일호야, 실전이다.”
“예?”
일호의 눈이 커졌다. 상혁의 말을 순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혁은 빙긋 웃으며 일호의 옷깃을 쥐고는 마법을 시전했다.
“텔레포트.”
상혁의 몸이 빛에 휩싸였다.
* * *
“젠장할.”
다나카는 쓰린 속을 달래며 얼음을 띄운 위스키 잔을 한 번에 목 뒤로 넘겼다. 그러자 속이 후끈 달아올랐다.
“멍청하게. 원하는 건 후쿠시마의 문제 해결이 아니었다. 다나카, 이 멍청한 놈아. 공직 생활 몇 면인데 그것도 못 읽고 네 손으로 무덤을 판 것이냐.”
다나카는 오늘 상혁과 나눈 대화, 그리고 그의 조건을 상부에 타진했다. 하지만 상부에서 내려온 답신은 놀라울 정도로 간단했다.
[불가(不可)].
그것을 보고 다나카는 깨달았다. 애초에 상부에서는 후쿠시마의 원전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들이 원한 건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백상혁. 그리고 나, 다나카.”
다나카의 고향은 후쿠시마다. 그렇기 때문에 대지진 이후 원전 문제가 터졌을 때도 직접 자원하여 자신의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 있었다.
자신의 고향이 다시 살 만해지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고 직후부터 일본 정부의 대응은 그저 사실을 숨기고 진실을 호도하여 국민들을 희롱하는 거짓을 내보내는 것뿐이었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냉각수를 무단 방류하고, 그 책임을 일선 책임자인 자신과 일본 정부를 지원하지 않은 백상혁에게 돌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일본 국토가 받을 피해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은 것이겠지.”
섬나라인 일본에 방사능 냉각수가 방류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런 것 따위를 상부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원래 예전부터 일본에선 국민을 그냥 밭을 가는 소나 말 정도로만 치부했다.
쿵-!!
그런데 그때 저 멀리서 폭음이 들려왔다. 다나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창가로 다가간 그가 창백한 안색으로 입술을 꾹 깨물었다.
“신이시여.”
쿵-!!
저 멀리 밤하늘에 화광이 충천했다. 폭발 때문이다. 냉각수 보존창고가 있는 방향에서 밤공기를 밀어내며 화광이 피어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