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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231화 (230/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31화

231.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1)

상혁은 머리가 복잡했다. 안 그래도 의념 속에서 일란이던 시절의 자신을 만났고, 범상치 않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세계수를 찾으라니. 그리고 통로는 또 뭐고.’

가나안과 지구의 통로가 열렸고, 그게 무슨 말인지 알고 싶다면 세계수를 찾으라고 했다.

‘나 때문에 열린 통로다? 내가 가나안과 지구를 오고 가면서 열린 통로?’

하지만 그곳을 오고 간 것은 상혁의 의지가 아니었다. 간 것도, 되돌아온 것도 상혁의 의지는 단 한 개도 반영되지 않은 일방적인 폭거였다.

‘지구, 너냐?’

가장 의심할 만한 존재가 있다면 상혁에게 초아를 붙여 두고, 상혁을 의지의 운명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던 지구, 이 세계의 의지뿐이다.

하지만 세계의 의지는 상혁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상혁은 쓰게 웃었다.

‘8서클이 될 이유가 한 가지 더 늘었군.’

한 세계를 지탱하는 의지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8서클이 되어야 한다. 8서클이 된다는 것은 인간의 격을 초월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마음먹는다면 더 거대한 격과 마주할 수 있다.

세계의 의지가 상혁을 찾아야만 서로 대화를 할 수 있었던 일방통행에서 벗어나 비로소 쌍방통행이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설마 뭐 가나안의 것들이 지구로 넘어오고, 지구의 것이 가나안으로 넘어간다는 그런 영화 같은 일은 아니겠지?’

왜, 소설에서 흔히 나오는 클리셰가 있잖은가. 갑자기 지구에 이세계의 게이트가 열리더니 그 안에서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고 대헌터 시대가 열린다는 그런 레이드 물의 이야기.

하지만 상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해 봐서 아는데. 무리야.’

그건 진짜 신적인 존재가 자신의 존재를 걸고 모든 것을 투사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차원과 차원 간을 연결하여 게이트를 끊임없이 열고, 심지어 차원 너머로 존재를 보낸다는 건 신이 한 명이 아니라 거의 한 연대급은 모여야 가능한 일이다.

‘신은 전능하지 않으니까.’

신은 그냥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신을 만들어 낸 무언가가 더 있었다. 신 역시 창조주가 아니라 창조물이기 때문에 인간이나 생명체에 비해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격을 가진 존재라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전능한 것은 아니다.

‘예수쟁이나 알라봉 들고 다니는 애들이 이 소릴 듣는다면 날 죽이려고 들겠지?’

피식 웃은 상혁은 이번에는 일호를 쳐다봤다.

‘얘도 또 골치 아프게 만드네.’

자신이 준 선물. 자신이 가나안에서 지구로 넘어오면서, 그리고 일호를 창조하면서 만들어 낸 8서클 대마법사의 사념이 준 선물.

‘내가 나한테서 선물을 받는 날도 오고.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봐야 할 일이라니까.’

일호는 신기한 듯 자신의 주변에 반짝이는 결정체를 쳐다보고 있었다. 서번트가 어떠한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것도 놀랄 일인데 그 서번트가 마법을 사용한다는 건 더욱더 놀라운 일이다.

‘1서클이긴 하지만 놀라운 건 발전의 여지가 있다는 뜻이고, 이게 가나안에 알려진다면 마법계가 뒤집힐 일인데.’

마법의 분야는 수천, 어쩌면 수만 가지가 넘을지도 모른다. 물론 편중된 분야가 있기는 하지만 마법은 근본적으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이 드래곤으로부터 전수받아 수천 년간 인간의 방식대로 개발한 학문이다.

불가해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마법사는 마나를 통해 일종의 관찰경을 착용한 셈인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모르는 마법이 있을지언정 마법에 한계는 없었다.

그중 꽤 많은 마법사가 관심을 가진 건 바로 생명이다.

‘과학자들이 그런 것처럼’

지구의 과학이 단순히 기술을 개발하고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에서 한 발 더 나가 생명을 창조한다는 개념에 도전하는 것처럼 마법사 역시 마찬가지다.

생명의 창조에 관심을 가진 마법에서 파생된 것이 골렘, 서번트, 키메라 같은 마법 생명체들이다.

하지만 그 어떠한 마법사도 인간의 자유의지, 생명체의 자유의지를 창조하는 것에는 실패했다. 그나마 현대의 개념을 가지고 넘어간 상혁이 머신 러닝, 혹은 AI 등의 개념을 도입하여 일정한 지식을 학습하여 주입한 서번트와 골렘을 만들어 냈지만 그게 전부다.

주입된 것에 대한 반응만 할 수 있을 뿐, 자의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피력할 수 있는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것에 성공한 마법사는 단 한 명도 없다.

그런데.

“일호.”

“예, 마스터.”

일호가 곧바로 자신의 주변에 생성했던 얼음 결정을 취소하며 상혁의 부름에 답했다. 녹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며 상혁은 일호에게 말했다.

“갑자기 마법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예, 마스터.”

“마나 고리는 네 마나석이고.”

“예.”

상혁이 새긴 마나석의 마법진. 일호는 그냥 갑자기 마법을 시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꼈다고 한다. 대신 마나석의 크기가 1서클을 간신히 충족하는 수준이기에 1서클 마법을 시전하는 것이 전부.

하지만 상혁의 생각은 달랐다.

‘뭐야, 개사기잖아?’

마나석이 하나밖에 안 박혀서 1서클 마법밖에 못 쓴다면 해결법은 간단하다. 마나석을 몇 개 더 박아 주면 된다.

‘마나석을 직렬로 박아 넣고, 마법진을 그려서 서로 증폭 효과가 나게 한다면.’

2서클, 3서클 마법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즉, 일호는 마나석만 충분하다면 마나의 고리를 만들고 그 고리를 키워야 하는 일반 마법사의 단계를 거칠 필요가 없다는 뜻이 된다.

‘역시 답은 AI인가?’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 것처럼, 마법도 서번트의 시대가 올지 모른다. 상혁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해 놓고 피식 웃었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긴 하지만. 일호에 한 해서는 그게 사실이니까.’

일호의 존재가 가나안에 알려진다면 마나 폭주를 일으킬 마법사들이 아마 한 트럭은 나올 것이다. 자신은 수년에 걸쳐 피땀 흘려 노력한 경지를 일호는 단번에 뛰어넘는 것을 보면 자신 같아도 피를 토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궁극에 도달하기는 어려워도, 4서클이나 5서클까지는 가능하겠는데.’

문제는 마나석의 수급이지만 그것도 해결책을 상혁은 알고 있었다.

‘어디 테러 단체나 독재 국가를 털지 뭐.’

선악의 저울.

고통받은 영령들이 성불하며 마나석을 만들어 내기에 그 크기가 작기는 해도 마음만 먹는다면 마나석을 얼마든지 수급할 수 있었다.

뭐 그들의 입장에서야 마른하늘에 날벼락이겠지만, 그건 그들의 죄업이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마나석을 위한 악인 토벌이라.’

상혁도 결코 이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들기 위해서라던가, 악행을 볼 수 없는 정의감이 있어 나선 것은 아니다. 상혁도 바라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다.

‘큼지막한 마나석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걸 공수하는 건 무리니까 직렬로 해결해야지.’

상혁의 머릿속에서 복잡한 수식이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일호를 고서클 마법사로 만들기 위한 마나석 직렬에 대한 수식과 시뮬레이션이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가능하다.’

상혁은 가장 마지막에 비행기에서 내렸다. 가장 먼저 내릴 수 있음에도 조금 번잡스러운 머리를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혁은 최적의 마나석 직렬 방식을 찾아냈다. 시뮬레이션이라고는 하지만 상혁의 상상력은 거의 현실과 다름이 없었고 그 상상력 속에서 상혁은 이미 수천 번 이상의 실험을 한 뒤 최적의 효율을 찾아냈다.

‘마나석 93개 직렬. 그리고 7개는 쿨링으로.’

커다란 마나석 하나가 있다면 고민을 할 필요가 없겠지만 애석하게도 여기는 지구다. 1서클 남짓한 마나석을 구하는 것이 최선인 이곳에서 일호를 5서클로 만들기 위해서는 마나석이 100개가 필요했다.

그걸 직렬로 연결한 뒤, 직렬로 인해 일어나는 과부하와 저항은 7개의 마나석을 따로 설치하여 쿨링을 위한 마법진을 새기면 된다.

“일호, 기대해.”

“예?”

일호는 상혁의 캐리어를 머리 위 선반에서 내리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널 이 세상 최고의 서번트로 만들어 주마.”

일호가 빙긋 웃었다. 상혁이 말로 하지 않아도 일호는 상혁과 의념을 나눌 수 있었다. 상혁의 영혼에 일호가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무리하지 마십시오 마스터.”

“이젠 걱정도 할 줄 알아?”

“마스터께서 제게 가장 중요하신 분이란 건 알고 있습니다.”

상혁이 피식 웃었다. 그때 뒤에서 큼큼, 하고 헛기침을 하는 소리가 났다. 상혁이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 스튜어디스가 볼을 발갛게 물들인 채 서 있었다.

“저 두 분. 마지막 탑승객이시니 내리시는 곳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일등석에 탄 사람이 이렇게 마지막에 내리는 것은 거의 처음일 것이다. 안내라고 해 봤자 20m도 안 되는 길이라 상혁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힐끗, 힐끗.

그런데 그 스튜어디스가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그러더니 상혁과 일호가 내릴 때가 되자 스튜어디스가 용기를 낸 듯 작은 목소리로 상혁과 일호에게만 들리게끔 말했다.

“두, 두 분 잘 어울리세요. 행복한 사랑 하세요.”

“네?”

“파이팅!”

상혁은 벙 찐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이내 일호를 쳐다봤다. 일호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상혁은 깨달았다.

“무리하지 마십시오. 마스터.”

“이젠 걱정도 할 줄 알아?”

“마스터께서 제게 가장 중요하신 분이란 건 알고 있습니다.”

“하, 나 참.”

상혁이 피식 웃었다. 일호의 매끈한 얼굴을 보니 오해를 할 만도 했다. 게다가 나눈 대화도 하필이면 오해하기 딱 좋은 것이었으니.

‘설마 이러다 내가 사만다와 헤어진 게, 일호 때문이라고 뉴스라도 나오는 거 아니야?

키득.

상혁이 어깨를 들썩이면서 웃었다. 일등석 승무원은 당연히 상혁을 알아보았다. 그만큼 상혁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온갖 연예계 가십의 정중앙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퍽 재밌겠다고 생각한 상혁과 그 뒤를 상혁의 캐리어를 끄는 일호가 뒤따랐다.

“일호, 네가 마법을 익힌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이 세상에 우연은 없고 필연은 있지. 나 혼자만으로는 부족하기에 내 사념체가 그리 선물을 해 준 것이겠고.”

사념체의 의지가 일호에게 깃들었다. 8서클 대마법사의 의지가 깃들었다는 소리다. 그렇기에 일호의 마법에 대한 개념과 지식은 풍부했다.

부족한 건 마나뿐.

“마나석은 내가 수급해 주마. 그러니.”

상혁은 자신의 사념이 일호에게 마법을 부여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니 일호를 자신이 통제하고 제어하면 안 된다는 것을 느꼈다.

“네 자유의지대로 행동하거라.”

“예, 마스터.”

자유의지.

상혁에게서 그리할 것임을 명령으로 인지한 일호의 눈이 반짝였다. 그렇게 잠시 후 상혁과 일호가 입국심사대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 상혁에게 다가왔다.

“백상혁 이사장님. 맞으십니까?”

억양과 발음이 일본인이라는 것이 티가 나지만 꽤 유창한 수준의 한국어를 구사하는 일본인이다. 상혁이 그를 쳐다보자 그가 허리를 숙였다.

“안내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예.”

상혁이 필요해서 일본으로 불러들인 일본이다. 상혁의 도움을 받아야 될지도 모르기에 일본에서 꽤 준비를 해 놓은 것이 느껴졌다.

“외교행낭으로 처리할 테니 그냥 지나가시면 됩니다.”

입국심사대도 외교관 라인으로 프리패스. 심지어 짐 검사도 외교행낭으로 행정 처리하겠다며 하지 않았다.

그렇게 불과 10분 만에 게이트 바깥으로 나온 상혁을 예의 그 일본인이 계속해서 안내했다.

“곧바로 원전 부근의 상황실로 모시겠습니다.”

후쿠시마 공항은 나리타나 오사카에 비해 작았다. 후쿠시마 자체가 그리 크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여전히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뒤숭숭했기 때문이다.

’후쿠시마가 괜찮다고 하는 건 저기 방송이나 내각뿐이고. 일본인들조차도 꺼리는 곳이 후쿠시마.’

상혁이 호흡을 크게 했다. 그러고는 보이지 않게 히죽 웃었다.

’마나가 풍부하네.’

서울보다 공기 중의 마나 농도가 족히 열 배는 되는 듯했다. 그렇다는 건 중국이 미세먼지 영향을 받아 공기질이 잔뜩 나쁜 서울보다도 공기 오염도가 열 배는 더 심하다는 소리다.

’방사능이군.’

일본은 중국발 미세먼지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니 이곳의 마나가 풍부하게 느껴지는 건 전부 다 후쿠시마 원전 때문이라는 소리다.

’재밌겠어.’

자신을 부른 일본의 저의는 무엇일까. 그리고 방사능에 대한 기대감으로 상혁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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