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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229화 (228/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29화

229. 내가 아직도 백상혁으로 보이니(4)

상혁은 분기탱천하여 자리에서 일어난 백이현을 쳐다봤다. 그러고는 그에게 말했다.

“앉으세요, 백 사장님.”

“너!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려고 했던 거냐? 기껏 우리 일가에서 너를 받아 줬더니 감히 회사에 욕심을 내?”

프레이저 대사가 입을 다물었다. 그는 흥미진진한 눈으로 백이현과 상혁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집안의 분열인가?’

이건 프레이저 대사, 더 나아가 미국에게 하나의 또 다른 무기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특히나 건국의 아버지 입장에서 상혁이라는 제어 불가능한 이에게 고삐가 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그의 머릿속을 읽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상혁이 눈을 돌려 프레이저 대사를 쳐다봤다. 프레이저 대사와 상혁의 눈이 순간 허공에서 딱 마주쳤다.

그 순간 프레이저 대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상혁과 프레이저 대사의 눈이 마주친 것은 찰나에 불과하였으나 그 순간 프레이저 대사는 자신의 눈앞에 거대한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건 명백한 경고였다.

프레이저 대사라는 쥐에게 다른 생각을 하지 말라는 거대한 뱀의 명백한 경고.

상혁은 다시 시선을 백이현에게로 돌렸다.

“뒤통수요?”

“그래. SG건설! 감히, 감히 직계도 아닌 네가 SG건설을 이번 일로 가로채려고 해? 그래서 나를 이 자리에 부른 셈인가? SG건설의 사장인 나를 데려다 놓고 SG건설을 받아 내려고?”

상혁의 얼굴에 미소가 서렸다. 퍽 재밌다는 듯 상혁이 턱에 손등을 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언제 형님더러 내게 SG건설을 넘기라 말씀하셨습니까?”

“언제부터!!”

백이현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섰다. 극도로 분노한 백이현의 기백은 꽤 대단했다. 그가 괜히 SG건설의 사장으로 수년 동안 SG그룹의 회장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것이 아니었다.

“SG! SG가 우리 SG의 의사와 관계없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수 있었던 거지? 너. 거대한 돈을 쥐고 있으니 정말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단 말이냐?”

“우스운 말씀을 하시네요, 형님.”

상혁은 으르렁거리는 백이현에게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몸을 부들거리며 일갈하는 백이현은 마치 성난 곰처럼 보였지만 상혁은 차분한 사냥꾼이었다.

사냥감에게 겁먹는 사냥꾼은 없다.

“어차피 형님도 제게 손 벌리러 오신 것이 아니십니까?”

“뭐?”

“더 위자드의 회장. 만나려고 하신 이유가 있으시겠지요. 아랫사람들의 결속을 위해 더 위자드라는 배경이 필요하셨던 것이 아닙니까?”

“너…….”

상혁이 머리를 쓸어 올리며 차갑게 웃었다. 백이현의 분노는 이기적이고 독선적이다. 상혁은 백씨 일가가 원래 그랬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 솔직해집시다, 형님. 저 없으면 형님, 다시 대권 도전에 힘드시지요?”

“…….”

“도현 형님이 계셨던 때가 더 나았을 겁니다. 회장님이 그때는 형님과 도현 형님을 둘 다 견제하셨어야 하니까. 하지만 도현 형님은 안 계시고, 이제는 형님 혼자뿐이시죠.”

백이현의 턱이 불룩 솟아올랐다. 상혁의 말에 폐부를 찔린 것이다. 상혁의 지적은 정확했다.

“회장님의 견제, 저 없이 혼자 감당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네가 날 도와줄 수 있다고?”

“원하신다면 건설, 독립시켜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나머지 SG에는 욕심내지 마세요. 그게 아니라면.”

상혁이 유인태를 통해 백이현을 세뇌하듯 그가 SG건설을 쥐고 독립해야 한다고 했던 건 이 자리에서 그를 크게 흔들기 위함이다.

상혁이 더 위자드의 회장이고, SG건설 대신 SG그룹 전체를 선택하라는 제안을 함으로써 백이현이 갈피를 잡지 못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상혁은 고민에 빠진 백이현을 차가운 눈으로 응시하며 말했다.

“절 도우세요. 건설은 제가 먹고, SG그룹은 형님께 넘겨드리겠습니다.”

“그게, 정말 가능하다고?”

백이현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상혁은 백이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물산의 지분을 대가로 제게 건설을 받아 갈 생각이셨지 않습니까. 거기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상혁의 유혹은 악마의 속삭임이었다. 그러나 백이현은 그것이 악마의 속삭임이란 것을 분별할 수 없었다.

SG그룹의 회장.

백이현의 오래된 야망을 상혁이 건드려 버렸기 때문이다.

“건설의 형님 지분 전체를 제가 매입하겠습니다. 하지만 사장은 계속 형님이 하시지요. 프레이저 대사님?”

상혁이 프레이저 대사를 쳐다봤다. 상혁에게서 느낀 공포에 그때까지도 얼어 있던 그가 비로소 정신을 퍼뜩 차렸다.

“미국에 제가 가진 자금 중 절반을 재투자하겠습니다.”

“절반이라 하시면.”

“2,000억 달러.”

프레이저 대사의 눈이 커졌다. 2,000억 달러의 투자가 곧바로 결정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상혁이 가진 재산의 절반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었지만 상혁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어차피 돈은 상혁에게 있어 그의 복수를 이뤄 줄 도구에 불과했다.

어마어마한 부는 상혁의 목표가 아니다. 그건 상혁이 마음만 먹는다면 달성하기에 너무나도 쉬운 목표였기 때문이다.

“가, 감사합니다 회장님.”

“건설. 아무 문제 없이 제게 주세요. 정부에서 운영하는 사모 펀드가 가지고 있는 지분. 그 대가로 제게 모두 넘기시는 겁니다.”

SG그룹은 글로벌 기업이다. 하지만 그 전에 SG그룹은 외국 기업이다. 그 때문에 정부에서 비밀리에 운영하는 여러 사모 펀드를 이용해 SG그룹의 지분을 확보해 놓고 있었다.

그걸 상혁이 원하고 있었다.

‘2,000억 달러의 재투자.’

정부가 세금을 동원해 시장에 재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상혁의 2,000억 달러는 엄연히 민간 기업에 의한 투자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2,000억 달러라는 돈의 크기만 봐서는 안 된다.

그로 인해 사회 전반적으로 퍼질 여파까지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상혁에게는 여전히 2,500억 달러가 남는다. 그러나 애초에 프레이저 대사도 상혁이 가진 전 재산을 상상하지는 않았다.

2,000억 달러만 해도 이미 그들이 예상한 수치를 아득하게 초월한 결과다.

“그럼 그 투자처는…….”

“그쪽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제가 미국 기업과 산업에 대해 잘 몰라서.”

새빨간 거짓말이다. 일호라는 슈퍼컴퓨터를 능가하는 영혼을 가진 서번트의 능력은 이미 미국의 모든 산업과 기업에 대한 분석을 샅샅이 끝냈다.

그 자료를 바탕으로 일호는 더 위자드 내의 자금운용부를 통해 상혁의 재산을 가파르게 굴려 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혁이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상혁은 자신이 원하는 기업이나 산업에 투자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공을 상혁은 프레이저 대사에게로 넘겼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제가 한번 한 약속은 화끈하게 지키는 편입니다. 대신 오는 게 합당하다는 전제하에서 말입니다.”

상혁의 호기에 프레이저 대사는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무려 2,000억 달러를 건국의 아버지의 입맛대로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만약 상혁이 로스차일드를 통하겠다고 했어도 프레이저 대사는 상혁에게 안 된다고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혁은 로스차일드 대신 그들에게 기회를 주었다.

‘로스차일드의 우방이 아니었나?’

프레이저 대사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상혁의 결정에서 상혁이 어쩌면 로스차일드와 알려진 것처럼 그리 친밀한 관계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건국의 아버지에도 기회는 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는 세상이지. 로스차일드와 손을 잡았던 상혁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건국의 아버지가 바라는 균형이 완벽하게 맞춰질 것이다. 프레이저 대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장님의 용단에 큰 감사를 드립니다. 회장님의 큰 결정에 미국 정부의 대표로 회장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뭐 그렇게까지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상혁이 웃으며 구십 도로 허리를 숙인 프레이저의 손을 붙잡아 일으켰다.

“난 미국을 우방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이런 돈독한 관계가 유지됐으면 하는군요. 전 균형과 중립을 추구하는 터라서요.”

상혁의 말에 프레이저 대사의 확신이 깊어졌다. 상혁은 건국의 아버지의 손을 붙잡을 생각이 있었다. 로스차일드의 손을 놓지 않더라도 건국의 아버지와도 손을 잡을 수 있음을 넌지시 알린 것이다.

‘하긴, 손은 두 개지.’

사람의 손은 두 개다. 그러니 굳이 손 하나만 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 물론 그것도 힘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프레이저 대사가 겪은 상혁에게는 충분히 그럴 만한 힘과 돈이 있었다.

균형자.

과거 건국의 아버지가 했던 역할을 상혁은 차고 넘치게 할 수 있었다.

“과연. 존경스럽습니다. 아마 회장님께서는 이번 주가 가기 전에 SG건설을 받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빨라서 좋군요. 또 한국 사람이 빨리빨리를 좋아하지 않습니까.”

“저도 무척 좋아합니다.”

하하하하.

상혁과 프레이저 대사가 웃음을 터뜨렸다. 가식이 듬뿍 담긴 웃음이었지만 그 순간 백이현은 허탈하게 웃었다.

‘끝난 건가.’

상혁의 제안을 고심할 새도 없었다. 프레이저 대사는 상혁에게 SG건설을 약속했다. 그리고 미국이 나선다면, 미국 정부가 운영하고 있는 사모 펀드가 상혁에게 지분을 넘긴다면 SG건설은 상혁에게 넘어갈 것이다.

SG건설의 사장인 백이현이 경영권에 대해서 어두울 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백이현은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상혁아.”

“예, 형님. 결정하셨어요?”

백이현의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그걸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상대는 10년 전 실종됐다가 낙하산으로 SG에 들어온 조카가 아니었다.

더 위자드의 회장.

미국 정부와 협상 테이블을 열 수 있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

그러니 이제 상혁은 백이현에게 아랫사람 부리듯 부릴 수 없는 사람이 됐다.

“SG건설…… 넘기마.”

“잘 생각하셨어요. 대신 형님한테는 SG그룹이 있잖아요?”

이미 SG그룹에서 건설과 호텔&리조트가 떨어져 나갔다. 특히 건설은 SG그룹을 지금의 SG로 만든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회사였기에 더욱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백이현은 자신이 SG그룹의 회장이 되는 것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구나.”

“문제요?”

“회장님.”

백성철 회장. 그가 아직 남아 있었다.

“SG건설의 지분이 너에게 간다고 하더라도 그걸 회장님이 아시면 분명히 손을 쓸 거다. 회장님,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가지지 못하면 차라리 부술 분이거든.”

“알죠.”

“어떻게 할 생각이냐?”

백성철의 국내 영향력은 상혁의 그것을 아득하게 뛰어넘는다. 그러니 백성철 회장이 마음을 먹는다면 동원할 수 있는 현금은 상혁보다 적더라도 얼마든지 상혁의 SG건설을 방해할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제게 다 생각이 있습니다.”

“생각?”

“참, SG그룹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도 SG건설의 인수 소식이 꼭 회장님의 귀에 들어가야 합니다.”

“어째서?”

상혁이 씩 웃었다.

“제가 왜 미국의 도움을 요청했는지 아십니까?”

“음…….”

상혁의 더 위자드는 500조가 넘는 자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냥 상혁이 SG건설의 지분을 인수해도 되는데 미국을 통해 한 단계를 더 거친다는 것이 이상하기는 했다.

“정연 누님이 그룹을 살려놓으시기는 했지만 아마 SG건설의 인수 소식이 알려져도 회장님께서 동원하실 수 있는 자금은 현저히 부족할 겁니다.”

“그건 그렇지. 원래 현금보다는 유동성 자금이 더 많은 법이니까.”

“그래서.”

상혁이 히죽 웃었다.

“회장님이 가지신 물산의 지분을 대가로 돈을 좀 빌려 드리려고요.”

백이현의 눈이 커졌다. 그 순간 그의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상혁이 세운 심계가 무서울 정도로 치밀했기 때문이다.

“더 위자드의 회장으로서.”

상혁이 히죽 웃은 뒤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은 백이현을 보면서 말했다.

“제가 아직도 그냥 백상혁으로 보이세요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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