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28화
228. 내가 아직도 백상혁으로 보이니(3)
“네, 네가, 상혁이 네가, 그러니까 네가…….”
상혁의 말에 백이현은 미몽에서 깨어난 것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상혁은 그런 백이현을 보며 웃어 보인 후 프레이저 대사를 쳐다봤다.
“저도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대사님.”
“사실 믿지 않았습니다만, 정말 어려 보이시는군요.”
“어려 보이는 게 아니라 어립니다. 앉으시죠.”
프레이저 대사는 자신의 말에 여유롭게 받아치는 상혁을 보면서 속으로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상혁의 여유로움은 가진 것이 많아서 나오는 오만함이 아니라 강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럴 리가. 위자드라고 해도 고작 스무 살의 어린아이일 뿐이다.’
프레이저 대사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마법이라는 초능을 사용하며, 무려 로스차일드와 손을 잡고 4,500억 달러의 자금을 운용하는 회사의 회장인 상혁을 설득해야만 하는 의무가 프레이저 대사에게는 있었다.
그런 상대를 고평가하는 건 프레이저 대사의 멘탈에 좋지 않았다.
“네가, 네가, 정말 네가…….”
“형님, 아니 백 사장님. 충격과 놀람은 이해합니다만 이제 그만 수습하시고 자리에 앉아 주시지요.”
계속 네가, 네가만을 반복하던 백이현의 눈이 커졌다. 자신이 꿈을 꾸고 있지 않다라는 것이 피부에 확 와닿았기 때문이다. 백이현은 마른세수를 하며 자신을 진정시켰다.
“미안하다. 아니, 미안합니다. 잠시 놀라서…… 대사님께도 죄송합니다. 이런 추태를 보여 드리려고 한 것이 아닌데.”
백이현은 빠르게 침착을 되찾았다, 아니 침착을 되찾은 것을 연기했다. 여전히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거리고 술을 잔뜩 마신 것처럼 머릿속은 몽롱했다.
하지만 백이현을 붙들고 있는 한 줄기 야망이 백이현을 지탱하는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자.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 보시죠. 두 분, 저를 찾으셨다고요.”
프레이저 대사는 눈을 굴렸다. 더 위자드의 회장인 상혁이 SG건설의 사장과 함께 만나자는 약속을 잡은 것은 분명 무언가 저의가 있기 때문이다.
맨 처음에는 백이현이 상혁의 보호자쯤 되는 줄 알았다. 백이현은 SG건설이라는 어엿한 대형 규모의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건실한 기업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전혀 모르고 나온 모양이군.’
그렇다면 백이현에게 얻어 낼 무언가는 당장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프레이저 대사는 먼저 총대를 멨다.
“미국 대사의 자격으로 백 회장님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기 위함입니다.”
“부탁이요?”
상혁은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다 예상하고 있으면서도 짐짓 의뭉을 떨었다. 헤르츨을 통해 이미 전부 들었으면서 의뭉을 떠는 상혁은 태연했다.
“더 위자드에서 운용하고 있는 4,500억 달러. 다시 미국에 재투자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재투자라. 지금 미국의 입장으로 제게 이야기하시는 것 맞습니까?”
“예.”
옆에서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던 백이현의 눈이 커졌다. 프레이저 대사의 말인즉슨 상혁의 돈이 미국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미국 내에서 소비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미국 정부를 대표하는 미국 대사인 그가 말이다.
‘거짓이 아니다.’
꿀꺽
백이현은 침을 크게 삼켰다. 상혁이 가진 4,500억 달러, 한화로 580조 원에 달하는 그 크기가 피부로 와닿았다. 상혁이 가진 부의 크기는 미국 정부가 개인에게 부탁할 정도였던 것이다.
“만약 싫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백이현의 입이 벌어졌다. 설마 거기서 상혁이 고민도 없이 싫다고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상혁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여유로웠다.
오히려 상혁의 말을 듣는 프레이저 대사의 표정에 긴장이 고스란히 드러날 정도. 백이현은 이제 인정해야만 했다.
‘더 위자드의 회장, 백상혁.’
자신보다 한참 밑이라고 생각했던, 20대의 어린 조카가 자신은 더 이상 쳐다보지도 못할 자리에 도달했다는 것을.
‘대체 어떻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을 텐데. 설마 아버지가. 아니, 아버지는 그러실 분이 아니야. 운인가? 그렇다면 나에게는 없는 운이 왜 저따위 놈에게.’
그러나 백이현은 그 차이를 인정하는 대신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그건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평생을 살아왔던 백이현의 아집이자 독선이었다.
백이현이 폭주하고 있을 때 프레이저 대사가 상혁의 말에 답했다.
“다시 바꿔 말씀드리겠습니다. 미국에 재투자해 주시기를 권고드립니다.”
“권고라.”
부탁과 권고.
워딩의 차이지만 둘의 의미는 전혀 다르다. 부탁은 말 그대로 상대의 자유 의지에 기반해 자신의 뜻에 따라달라고 청유하는 것이나 권고는 강제의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
상혁이 재밌다는 듯 빙긋 웃었다.
“그렇게 하실 수는 있고요?”
상혁이 로스차일드와 손을 잡았다는 것을 모르는 프레이저 대사가 아니다. 그렇기에 프레이저 대사는 손이 벌벌 떨렸다. 로스차일드의 영향력은 미 정계를 뒤덮고 백악관에까지 그 손길이 뻗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내야 한다. 원탁이 사라진 프리메이슨을 견제할 수 있는 건 우리 건국의 아버지뿐이니까.’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 of the United States).
그 기원은 영국 왕실에 탄원서를 보내기 위해 미대륙 13개 식민지 중 12개 식민지 의회에서 선발된 56명의 대표단이 모여 개최한 대륙 회의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것이 미국의 건국으로까지 이어졌고, 그 이후로도 건국의 아버지는 지속되어 왔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미국.
그들에게 모든 것들에서 우선시 되는 것은 미국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순간에 건국의 아버지는 모습을 드러냈고 그들이 곧 캐스팅 보트가 되어 한쪽에 힘을 실어 줌으로써 균형의 추를 움직였다.
그게 원래는 원탁과 프리메이슨 사이였는데, 원탁이 무너지면서 이제 프리메이슨을 견제할 방법이 없어졌다.
그래서 건국의 아버지는 회원들을 소집하였고, 그들이 프리메이슨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프레이저 대사는 그 사명을 띠고 상혁을 만나러 온 것이다.
“로스차일드가 미국 전체를 지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아니, 제 말은.”
상혁이 히죽 웃으며 손가락을 딱하고 튕겼다.
화르륵!
쩌저적!
상혁의 머리 위로 사람 머리통만 한 화염구와 냉기구가 피어올랐다. 프레이저 대사의 얼굴이 굳었다. 열기와 냉기가 동시에 느껴졌다. 환상일 리가 없는 마법이 상혁의 머리 위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로스차일드도 모자라 저, 백상혁까지 적으로 돌리고도 건국의 아버지가 유지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협박.
상혁은 명백하게 프레이저 대사를 협박하고 있었다. 하지만 프레이저 대사는 그런 상혁의 협박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없었다.
두려움.
프레이저 대사도 사람인 이상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마법의 등장에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언 포레스트, 제피렐리 가문, 원탁, 상해의 테러까지.
상혁에 대한 소문이 사실이란 것을 자신의 육안으로 확인한 이상 프레이저 대사는 생명체라면 응당 품을 수밖에 없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반면 그런 프레이저 대사 옆에서 그만큼이나 놀란 사람이 또 있었다.
백이현.
백이현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상혁의 머리 위에 떠오른 마법을 처음 봤기 때문이다. 아니, 심지어 상혁이 마법사란 것도 백이현은 미처 의심하지 못하고 있던 상태에서 본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두 번째 충격.
상혁이 더 위자드의 회장이라는 것만 해도 하늘이 뒤집어지는 듯한 충격이었는데, 대놓고 프레이저 대사를 마법으로 협박하는 상혁의 모습은 그 전보다 더한 충격을 선사했다.
만일 백이현의 고혈압 수치가 조금만 더 높았더라면 혈압이 치솟아 뒷목을 부여잡고 쓰러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프레이저 대사가, 더 나아가 미국이 상혁이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로스차일드. 4,500억 달러. 그리고 미국 정부!’
상혁이 어째서 더 위자드의 회장이 되었는지 마법을 보니 이해가 갔다. 물론 저 마법과 상혁의 4,500억 달러는 직접적인 연관 관계가 없었다. 하지만 둘 다 백이현에게는 불가해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그냥 서로 관계가 있다고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한 것이다.
백이현은 벌써 10분째 입 한 번 뻥긋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상혁에 대한 추악한 질투심은 여전히 가슴 한편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내가, 나에게 저 행운이 왔었더라면.’
행운.
그에게 상혁의 마법과 더 위자드는 그저 행운으로만 느껴질 따름이다. 백이현의 두 눈에 추악한 질투심이 차오르고 있을 때 프레이저 대사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미국을 위해서라면 모든 건국의 아버지가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위자드, 당신을 견제할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프레이저 대사의 턱은 부들부들 떨렸다. 상혁에 대한 공포가 여전했지만 그럼에도 프레이저 대사는 용기를 낸 것이다.
화르륵!
쩌저적!
상혁의 머리 위로 화염구와 냉기구가 원을 그리면서 빙글빙글 돌았다. 상혁은 턱에 손을 괸 채 그런 프레이저 대사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게 건국의 아버지의 방식입니까?”
“…….”
“대사님께서 협상의 기본이 서로가 원하는 것과 바라는 것을 내놓는 것이란 걸 모르실 테고. 곧바로 협박으로 들어오시니 저도 당황해서 무력 시위를 조금 했습니다만.”
프레이저 대사의 눈이 커졌다. 협상이 엎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상혁의 말에서 협상의 여지를 느낀 것이다.
아니, 엄밀히 말해 프레이저 대사와 상혁 사이에는 그 어떠한 협상도 오가지 않았다. 협상에 대한 운을 띄우기도 전에 프레이저 대사가 권고라는 말을 사용해 버렸기 때문이다.
‘실수다.’
프레이저 대사는 식은땀이 더욱 많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더 위자드의 회장이자 마법사인 상혁을 앞에 두고 있자니 절로 긴장되어 협상의 기본을 건너뛰어 버렸다.
“협상 결렬을 원하시면 뭐, 저는 상관없습니다.”
상혁이 프레이저 대사를 보면서 한 자 한 자 꼭꼭 씹어 내뱉듯이 말했다.
“어차피 어떠한 방해가 있건 간에, 원탁처럼 결국은 극복할 테니까요.”
프레이저 대사는 상혁의 그 한마디에 이를 으득 깨물었다. 말이야 극복하겠다고 순화해서 말했지만 원탁처럼 만들어 주겠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다…… 시 말씀을 나누시죠. 제가 너무 흥분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프레이저 대사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 협상 테이블에 다시 앉자는 소리다. 백이현이 그 과정을 보면서 눈을 크게 떴다.
보면 볼수록 놀라웠기 때문이다.
미국 대사.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미국 정부의 얼굴을 자처하는 미국 대사가 상혁 앞에 고개를 숙였기 때문이다. 그건 곧 미국이 상혁에게 고개를 숙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상혁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감정적으로 대응했으니 더 이상 문제 삼지 말도록 하시죠.”
“감사합니다.”
“대사님께서 하신 말씀, 이해하고 있습니다. 재투자의 여지도 있고요.”
이번에는 상혁이 먼저 포문을 열어 주었다. 그러자 프레이저 대사의 눈이 빛났다. 조금 전 껄끄러운 감정은 뒤로 밀어내야 한다. 그게 바로 외교였기 때문이다.
“정말이십니까?”
“예. 대신.”
상혁은 거기까지만 말하고는 빙긋 웃었다. 상혁의 침묵을 이해한 프레이저 대사의 눈이 반짝였다.
모든 비즈니스의 기본은 기브 앤 테이크다.
준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이 있어야 하는 법.
프레이저 대사가 말했다.
“미국의 국부를 크게 유출하지 않는 선에서, 그리고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회장님의 용단에 따라 얼마든 도와드릴 수 있을 겁니다.”
“음, 그럼.”
상혁이 히죽 웃었다.
“미국의 사모 펀드 중에 정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것들이 있죠?”
“예? 예. 그렇긴 한데.”
상혁이 백이현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SG건설. 제 이름으로 만들어 주시죠.”
그 순간 백이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너! 이걸 원했던 거였구나!!”
백이현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