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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227화 (226/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27화

227. 내가 아직도 백상혁으로 보이니(2)

이틀 뒤.

또다시 걸려온 헤르츨의 전화에 상혁은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헤르츨, 또 전홥니까?”

[친구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 목소리라도 들어야겠지요.]

“국제전화 비쌉니다.”

[통신사가 제 겁니다만.]

상혁은 할 말이 없어졌다. 로스차일드는 사실상 미국을 삼켰다. 상혁은 못 말리겠다는 듯 픽 웃었다.

“오늘은 또 뭡니까?”

[곧 프레이저 대사를 만나시지 않습니까?]

포스터 프레이저.

주한 미국 대사로 오늘 상혁과 만나기로 약속이 된 양반이었다. 미 외교부 일이 헤르츨의 귀에 들어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상혁이 연관된 일이면 더더욱 그러했다.

“예, 그렇죠.”

[대사는 제가 컨트롤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오?”

상혁의 입에서 의외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헤르츨의 약한 소리라니. 지금껏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도 있습니까?”

[모든 사람에게 돈이 통하는 건 아닙니다. 특히 그처럼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의 경우에는요.]

“골치가 아프다는 소리로 들립니다만.”

상혁의 눈치는 예리했다. 헤르츨의 목소리에 담긴 일말의 곤란함을 짚어 냈다. 헤르츨이 수화기 너머에서 허탈하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원체 친구는 속일 수가 없군요.]

“왜 골치가 아픈 겁니까?”

[현재 국제 정세가 복잡하다는 걸 알고 계십니까?]

헤르츨이 국제 정세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얼핏 주제와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헤르츨이 괜한 이야기를 꺼내진 않았을 것이다. 상혁은 대답했다.

“미중 간의 무역전쟁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도 심상치 않습니다. 또한 대만에 대한 중국의 압박이 심해지고 있구요.]

“음.”

[중국 내부에서 별도로 비밀리에 생화학 실험이 진행 중이란 말도 있습니다.]

각자도생.

지구촌이란 말은 어느새 국제 정세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이미 대다수의 국가들이 국가수반으로 국수주의 정책을 펼치는 지도자를 그 자리에 앉혔다.

다른 나라와 함께 잘 먹고 잘살기보다는, 팍팍한 이 시대에 일단 우리나라부터 챙기고 보자는 의식이 팽배해진 것이다.

“한국도 일본과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예. 일본회가 한국을 견제하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지요.]

한국의 성장세는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상당한 수준이다. 중국이 그간 낙후되어 있던 만큼 가파르게 성장을 하여 G2가 되었지만 일본은 반대로 추락 중이다.

잃어버린 20년간 저성장이 유지되면서 한국에 따라잡힐 기미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일본은 한국을 견제하기로 마음먹었고 그 중앙에 선 것이 일본회다.

수십 년째 일본의 집권당인 자민당과 자민당 출신의 총리가 가입한 일본회. 제국주의를 꿈꾸는 헛된 망상을 가진 일본회가 수출 규제로 한일 양국 간에 불씨를 떨궜다.

그렇듯 전 세계는 지금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미국도 마찬가집니다.]

“국수주의요?”

[예. 곧 만나시게 될 프레이저 대사와 한때 미 정치계에 돌풍을 일으켰던 노스턴 국무부 장관 같은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말을 듣게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로스차일드 가의 막후 영향력은 대통령을 갈아치울 정도다. 그런데 헤르츨이 약한 소리를 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도 미국을 위해 생각하고 움직이는 애국자들입니다. 우리와 뜻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폭압 한다면, 결국 미국이 패망하는 지름길이 될 겁니다.]

“건강한 적이라는 소리군요.”

[예를 들자면요.]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탁과 프리메이슨의 오랜 세력 다툼에서 로스차일드 가는 전면에 나서지 않고 프리메이슨의 중심축으로 균형을 이루는 데만 집중했다.

그건 어느 한 세력이 절대적으로 득세를 하게 되고, 적수라 불릴 만한 상대편이 사라지게 되는 순간 곧 고이고 부패할 것임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로스차일드 가가 원탁을 쓰러뜨린 것은 원탁이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또한 로스차일드는 원탁의 역할을 상혁이 해 줄 것이라 생각했기에 원탁을 쓰러뜨렸다.

로스차일드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상혁.

상혁이 버티고 있는 한 로스차일드가 폭주를 일으킬 일은 거의 없을 것이고, 설령 그렇더라고 하더라도 상혁 선에서 막힐 것이라는 판단에 또 다른 균형을 위해 원탁을 쓰러뜨린 것이다.

“근데 뭐가 문젭니까?”

[그들은 미국 바깥으로 달러가 흘러나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달러가요?”

[예. 연준위에서 양적완화로 달러를 푸는 것도, 국제정세가 본격적으로 전쟁 국면에 접어들게 되는 순간 한계가 올 겁니다. 물가가 폭등할 테니까요. 그렇게 되면 인플레이션이 올 테니, 모든 경제 지표가 하락하게 될 겁니다.]

상혁은 헤르츨의 말에서 그가 어디선가 전쟁이 일어날 것임을 확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만약 헤르츨의 말대로라면 세계 증시가 휘청거릴 것이다.

“석윳값은 오르고, 세계 유통망이 마비되겠군요. 식량난이 일어날 수도, 모든 공급망의 가격이 폭등할 수도요.”

[예. 가장 걱정되는 것은 에너지입니다만.]

“그 때문에 달러가 미국 밖으로 유출되는 걸 원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 기축 통화는 달러다. 외환액, 그러니까 달러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가 각 국가의 재정 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만약 헤르츨이 걱정하는 것처럼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미국의 경제 지표 역시 바닥을 칠 것이다. 특히 국민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실업률이 올라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정권에 큰 부담이 된다.

그러니 달러를 밖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내부에 쓰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한두 푼도 아니고, 무려 4,500억 달러였으니까.

“뭐 어려운 건 아니죠.”

[예? 친구. 정치인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는 건 바람직한 자세가 아닙니다.]

정치.

상혁이 소리 없이 쿡하고 웃었다. 정치라면 신물이 날 정도로 가나안에서 경험한 상혁이기 때문이다.

상혁 앞에서 정치를 논한다?

어차피 정치란 것도 결국 그 셈법이 복잡하다고는 하나 사람이 생각해 내고 사람이 하는 약속이다. 그렇기에 결국 사람이란 큰 틀에서 벗어나진 않는 법이다.

“친구야말로 무언가 착각을 하는 것 같네요.”

상혁이 차분한 목소리로 웃음기를 머금은 채 헤르츨에게 말했다.

“정치를 통해 얻는 건 힘과 돈이죠. 그런데 이 세상에 나만큼 힘과 돈을 거머쥔 사람이 있을까요?”

[그렇군요. 내 걱정이 과했습니다. 사과하죠.]

헤르츨의 사과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상혁의 말을 듣고 퍼뜩 깨달았으리라. 로스차일드의 가주인 그가 그렇게도 상혁과 친분을 쌓아두려고 했던 진정한 이유를 다시금 상기했을 것이다.

“달라는 게 있으면 줄 의향은 있습니다. 하지만.”

외교는, 그리고 정치는 절대로 공평하지 않다. 동등하고 공평한 입장에서 서로 정확히 100을 주고 100을 받는 건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내게 100을 원하면 그쪽은 200을 내놔야 할 겁니다.”

[무섭네요. 걱정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그럼 오늘…… 프레이저 대사의 명복을 빌지요.]

* * *

백이현이 가장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소공동에 있는 한 호텔의 최상층, 비밀을 요구로 하는 많은 공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 오늘의 약속 장소였다.

레스토랑 전체를 대관하였고, 최소한의 서빙을 위한 인원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은 모두 물렸기 때문에 완벽한 보안을 갖춰 놓았다.

이 모든 것을 준비한 것이 백이현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만나기를 원한 것도 백이현이고 가장 간절한 것도 그였기 때문이다.

“독립이라.”

백이현은 입을 달싹였다. 어딘가 풀리지 않은 듯한 미지근함이 느껴졌지만 유인태의 필사적인 설득으로 백이현은 일단 노선을 틀었다.

SG그룹 전체가 아닌 SG건설의 독립. SG건설을 SG그룹으로부터 독립시키는 것이 바로 그의 목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위자드 회장의 도움이 필요했다.

“아무리 더 위자드 회장이라고 해도 SG물산의 지분을 확보하진 못했겠지. 거의 시장이 풀지 않았으니까.”

SG그룹은 다른 대기업처럼 순환 출자 구조를 띠고 있었다. 한 회사가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로 한 계열사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룹 전체에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춰 놓은 것이다.

SG물산이 SG그룹의 키포인트다.

SG물산이 다른 계열사의 경영권을 확보해 놓고 있었기 때문에 백씨 일가는 SG물산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상장사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물량은 시장에 풀었지만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절반 이상의 지분은 백씨 일가가 고루 나눠 가졌다.

“SG물산 지분을 넘기고 SG건설 양도 계약서를 작성하면 되겠지.”

백이현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러지 않으면 긴장감에 심장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유인태가 들어와 백이현에게 프레이저 대사의 도착을 알렸다.

잠시 후 프레이저 대사가 들어왔다. 그는 전형적인 백인의 외형으로 백이현과 악수를 했다.

“한국 경제의 대들보인 SG건설의 사장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야말로 미 대사님을 뵈어 영광입니다.”

프레이저 대사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는 한국어도 유창했는데 약간의 발음의 어색함을 제외하면 한국인이 말하고 있다고 해도 믿을 정도다.

그가 백이현에게 운을 띄웠다.

“최근 SG건설이 미 기업의 공장 수주를 여러 건 체결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별말씀을. 지난 30년간 SG건설이 쌓아 온 포트폴리오가 튼튼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미 내륙에 들어서는 공장은 근래 거의 없는 실정이었는데 덕분에 실업률이 줄어들 것이란 기대가 큽니다.”

SG건설이 수주한 공장 건설에 관한 계약 중에는 미국 내륙, 중부 지방에 공장을 건설하는 것도 껴있었다.

백이현은 프레이저 대사가 자국의 국민을 직접 고용하라는 소리임을 알아듣고는 불쾌했다. 기업 내의 문제는 기업이 알아서 해결할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겉으로는 티 내지 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각도로 최선의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가급적이면 저희도, 주 정부도 윈윈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나에게만 내놓으라고 하지 말고, 너희도 내놓으라는 백이현의 뼈 있는 말에 프레이저 대사가 크게 웃었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그때 미리 언질도 없이 문이 벌컥 열리더니 그 안으로 상혁이 걸어들어왔다. 하지만 상혁은 평소와는 달랐다.

평소에는 거의 이창엽과 오승택, 아니면 여기에 일호 정도만 더해서 소수만 데리고 돌아다니던 것과는 달리 상혁은 뒤에 거의 스무 명에 달하는 수행원과 함께 등장했다.

그것도 피부색과 머리카락 색이 다 다른, 건장한 외국인들이 그 안에 경호원으로 껴 있었다.

“조금 늦었습니다.”

프레이저 대사와 백이현은 수행원이 없었지만 상혁의 수행원은 나가지 않았다. 백이현은 상혁을 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함부로 입을 열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혁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뒤에 골렘, 미국의 탑5 안에 드는 용병회사 세 곳을 합쳐 만든 경호회사의 경호원들을 장승처럼 세워 둔 채 의자에 앉았다.

“여기가 그렇게 맛있다면서요? 기대 중입니다.”

상혁이 상석에 앉았다. 더 위자드 회장의 자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백이현의 눈이 커졌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리 없었기 때문이다.

백이현은 그대로 굳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수용과 부정을 놓고 자의식이 치열하게 다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프레이저 대사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꾸벅

“소문으로만 듣던 분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위자드.”

“……!”

프레이저 대사는 한국식으로 허리를 구십 도로 숙였다. 그러면서 상혁을 위자드라 부른 순간 백이현은 소리 없는 경악성을 속으로 내질렀다.

“좀 놀라실 줄 알았는데. 뭐, 맞습니다. 바깥에서 그렇게 찾아 헤매고 있는.”

상혁이 싱긋 웃으며 손에 깍지를 낀 채 프레이저 대사와 백이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더 위자드의 회장 백상혁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두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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