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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226화 (225/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26화

226. 내가 아직도 백상혁으로 보이니(1)

“미, 미국 대사와 함께 말이냐?”

“예, 형님.”

“좋지. 나야 더할 나위 없이 좋지. 미국 대사면 연을 맺어 두어서 나쁠 것이 없는 인물이니까 말이다.”

백이현은 상혁의 수완에 눈을 크게 뜨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미국과 더 위자드를 뒷배 삼아 바닥에 떨어졌던 자신의 세력을 크게 불린 백이현이다.

그러나 더 위자드의 회장을 만나게 해 주겠다는 상혁의 약속이 자꾸만 미뤄지면서 조바심이 나고 있었는데, 그간의 기다림의 보답을 해 주듯 상혁이 가지고 온 소식이 백이현의 얼굴에 함박웃음을 걸었다.

“회장님 귀에 소식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셔야 합니다.”

“걱정 말거라. 유 실장을 비롯한 사람들은 내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예. 믿겠습니다.”

백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혁이 그런 백이현에게 말했다.

“유 실장을 통해 약속 일자를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되도록 그날은 스케줄을 비워두십시오.”

“좋아. 그러도록 하지.”

백이현은 손수 상혁의 문까지 열어 주었다. 상혁이 그곳을 통해 사라지자 유인태가 다가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어찌 되셨습니까?”

“유 실장, 됐어. 이제 미국이야. 더 위자드라고.”

“축하드립니다, 사장님.”

유인태의 안색이 밝아졌다. 삼합회의 지원이 끊어진 후 실 끊어진 연 신세가 되어 백이현이 침몰하는 듯한 모습을 보며 마음을 졸였던 그다.

백도현의 사고에 황제파 전체가 휘말리며 조철왕을 비롯한 휘하 조직원들이 다수 입건되면서 백이현의 또 다른 힘이 되어 주던 암흑가 역시 그 세력이 줄었기 때문에 날이 갈수록 사면초가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숨통이 틔었다.

갑자기 미국으로부터 구원의 손길이 뻗쳐 오는가 싶더니 애물단지라고 생각했던 백상혁이 두각을 드러내며 백이현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위자드의 회장이 건설에 투자만 약속해 준다면 모든 것은 끝나.”

“예.”

“그러니까. 실수 없이 입단속 잘하도록 해. 아버지 귀에 이 소식이 들어간다면 분명 아버지도 움직이실 테니까.”

“예. 철저하게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나가 봐.”

백이현의 입가에 득의양양한 미소가 되돌아왔다. 마치 예전의 백이현의 모습이 보이자 유인태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인사를 한 뒤 사장실에서 나왔다.

그런데 유인태가 향한 곳은 비서실이 아니었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왔고, 로비에서 자신에게 인사하는 이들의 인사를 받아 준 뒤 건물 밖으로 향했다.

SG건설로부터 100여 미터 떨어진 곳.

그곳의 대로의 길가에 세워진 차 앞에 도착한 유인태는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닦아 냈다. 제법 쌀쌀한 온도였음에도 땀이 났다는 건 그 정도로 유인태가 긴장했다는 뜻이었다.

달칵.

유인태가 다가오자 차 문이 저절로 열렸다. 유인태는 주변을 한 번 슥 훑은 뒤 차 문을 열고 차에 탔다.

“금방 오셨네요.”

“부르셔서 왔습니다.”

그곳에는 조금 전 백이현에게 날짜를 통보한 뒤 사라졌던 상혁이 앉아 있었다. 유인태는 상혁을 보고는 고개를 깊숙하게 숙였다.

“그래, 백이현은 어떻습디까?”

“기대가 매우 크십니다.”

“백이현에게 준비를 시키세요.”

“준비라 하시면…….”

유인태는 상혁의 말에 고분고분 따르고 있었다. 대체 언제 상혁이 유인태를 포섭한 것일까. 그리고 어째서 유인태가 상혁의 말에 이 정도로 순종적으로 구는 것일까.

상혁은 완전하게 굴복한 유인태의 뒤통수를 보며 빙긋 웃었다.

“백이현에게 백성철과 SG의 비리를 폭로하라고 요구할 예정입니다.”

“예?”

“대신, 건설을 준다고 하면 되겠죠.”

유인태는 백이현 대신 황제파를 세우고 그곳의 보스인 조철왕을 실질적으로 조종했던 숨은 손이다. 유인태는 영악했고, 치밀한 성격이었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현실에 투철하게 순응했다.

넘을 수 없는 벽.

상혁이 유인태를 굴복시키고 자신 앞에 무릎 꿇리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상혁이 더 위자드의 회장이란 것을 밝히는 것만으로 유인태는 완전히 전의를 잃어버렸다.

‘전형적인 강약약강.’

유인태는 전형적으로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성격이었다. 상혁은 그런 유인태의 성격이 나쁘다 보지 않았다. 난세나 다름없는 복잡한 사내 정치 속에서 강함에 순종하는 건 손가락질할 만한 성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유인태가 상혁이 베일에 가려져 있던 더 위자드의 회장이란 것을 눈치챈 순간, 그는 상혁에게 철저히 굴복했다.

그가 지금껏 강자라 생각하며 모시던 백이현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초강자가 그의 눈앞에 나타나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건설…… 아마 만족하시진 못할 겁니다.”

“그러니까. 만족하도록 하는 건 유 실장님의 능력입니다.”

“제 능력.”

유인태의 꿈은 간단했다. 그는 만인지상 일인지하를 꿈꿨다. 최고의 이인자가 되는 것이 그의 목표였던 것이다.

“정하세요. 어차피 백이현을 설득하지 못하더라도 길을 돌아가야 하는 것뿐이지 내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건 아니니까.”

“…….”

“그럼 그렇게 이인자로 백이현의 수족이 되어 사라지세요. 자신이 살 동아줄도 차 버리는 분이신 줄은 몰랐습니다.”

유인태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그는 이미 상혁에게 굴복했다. 그에게는 백이현에 대한 거창한 의리 따위는 없었다.

자신 같은 사람이 마음을 고쳐먹도록 만든 무능한 백이현의 문제라고 유인태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설득, 하겠습니다.”

“오케이. 그럼 SG건설에서 계속 지금 그 자리는 유지하실 수 있겠네요.”

유인태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상혁이 SG건설을 날리려면 얼마든 날릴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이현을 설득하지 못하면 자신도 함께 떠내려간다.

낭떠러지 끝에 선 듯한 긴장감이 유인태를 휘감았다. 상혁은 그런 유인태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그럼 이틀 뒤에 뵙죠. 장소와 시간은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백이현을 설득해서 데려오세요.”

“예. 알겠습니다.”

꾸벅.

유인태는 상혁에게 세상 공손하게 인사를 한 뒤에 차에서 내렸다. 유인태가 완전히 떠나자 조수석에 앉아 있던 이창엽이 고개를 돌려 상혁에게 말했다.

“박정철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오늘 무슨 날인가요?”

“피곤하십니까?”

이창엽이 짐짓 걱정스럽다는 눈으로 상혁을 쳐다봤다. 상혁은 목이 답답한 듯 단추를 몇 개 풀면서 창문을 내리며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그냥 조금 답답할 뿐이지. 근데 이렇게 답답해할 것도 얼마 안 남았으니 참겠습니다.”

“잠깐 눈 좀 붙이시지요.”

아무것도 모르는 스무 살의 낙하산인 백상혁.

그 가면을 뒤집어쓰고 사는 것도 슬슬 한계에 도달했다.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살아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힘과 명분, 재력까지 모두 손에 쥔 상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상혁을 태운 차가 서울 시내를 부드럽게 달려 종로3가에 있는 허름한 모텔촌에 도착했다.

“차 세우고 둘이 식사라도 하세요.”

“이사장님을 기다리겠습니다.”

“됐어요. 나도 밥 먹고 올 거야.”

상혁이 피식 웃고는 차 문을 닫았다. 그러자 저녁 장사에 접어든 종로3가의 시끌벅적한 활기가 상혁을 덮쳤다.

탑골공원, 인사동, 익선동의 황금 삼각지를 이루는 종로3가는 묘하게 현대와 과거가 혼합된 듯한 분위기가 풍기는 곳이었다.

조금만 더 가면 포장마차가 즐비한 포장마차촌도 나오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젊은이들로 꽉 찬 익선동이 나온다. 그리고 탑골공원과 인사동은 과거의 풍미를 한껏 머금고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며 살아가는 노인들의 번화가이기에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곳이 바로 종로 일대다.

낙원상가의 뒤쪽, 그중에서도 허름한 예전 모습이 보존된 곳에는 모텔이 즐비했다. 그곳과 상혁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힐끗, 힐끗.

주변에서 그런 상혁을 힐끗거리면서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을 느낀 상혁은 간단히 자신의 얼굴에 마법을 걸었다.

“인식장애.”

화아악!

마나가 뿜어져 나오며 상혁의 얼굴을 뒤덮었다. 그러자 TV나 뉴스에도 여러 번 나와 알게 모르게 시선을 받고 있던 상혁에게로 향하는 시선이 확 줄었다.

상혁은 그 채로 한 블록을 걸었다. 그러자 좁은 골목길 사이로 나 있는 길 주변으로 듬성듬성 간판을 내놓고 영업하는 여인숙을 눈에 담았다.

종로길 여인숙.

상혁은 쥐가 튀어나올 것 같은 골목을 태연하게 걸었다. 그리고 여인숙 카운터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에게 손을 뻗었다.

“슬립.”

스르륵.

상혁을 보며 뭐라고 말하려던 아주머니가 눈을 감고 그대로 잠에 빠졌다. 상혁이 고개를 둘러보니 이 여인숙에는 CCTV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바로 몇십 미터만 나가면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곳인 종로의 일부분이었지만 마치 이 골목길은 90년대쯤에 머무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도피하는 사람에게 딱 어울리는 곳이네.”

상혁은 박정철이 이곳에 숨은 이유를 깨달았다. 상혁은 그 상태 그대로 위층으로 올라갔다. 박정철이 상혁에게 오라고 한 곳은 3층의 1호. 301호다.

상혁은 명패가 누렇게 바란 문 앞에 섰다. 중간에 올라오는 계단에 놓인 오래된 정수기가 이곳의 연식을 가늠케끔 했다. 퀴퀴하게 나는 곰팡이 냄새를 뒤로한 채 상혁은 문을 열었다.

끼익.

문이 열렸다. 불이 밝게 켜진 여인숙 방은 2평이 될까 말까 할 정도로 좁았다. 색이 바랜 벽지와 먼지가 잔뜩 쌓인 벽걸이 선풍기, 그리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잡지가 벽지에 붙어 있었다.

“박 실장님?”

상혁은 그 좁은 방 안의 침대 위에 우두커니 앉은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를 보고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백도현의 비서실장인 박정철. 그는 백도현을 나름 성심으로 충성을 다하며 따랐던 남자다. 백도현에게 충심을 다한 충언은 몇 번 하지 못하였으나 그래도 그의 충성심만은 진짜였다.

그런 박정철의 야인 같은 모습은 퍽 의외였다.

“상혁 도련님?”

박정철의 볼이 움푹 들어가 있었다. 백도현이 죽고 난 뒤 자신에게 쏟아질 화를 예견하고 강원도로 도망갔던 박정철이다. 상혁이 화장대의 낡은 의자를 빼서는 그곳에 앉았다.

“강원도에 계셨다 들었습니다.”

“예, 그런데 절 어떻게 찾아내셨습니까?”

“필요하니까요.”

“도련님이 저를요?”

박정철이 얼굴을 쓸어 올렸다. 고생이 심했는지 살이 10kg은 빠져 보였다. 박정철의 두 눈은 무언가 삐뚤어진 분노를 품고 있었다.

“제가 필요하시다라. 그래요. 들어봅시다. 꽁꽁 숨었다고 생각했는데 절 찾으셨으니까, 말 몇 마디 들을 이유는 있겠죠.”

상혁이 비죽 웃었다.

“흐흐, 너무 센 척이 심하시네. 내가 찾았다고 냉큼 올라오신 분이. 기다리셨던 것 아닙니까? 그래. 누굴 그렇게 두려워하는 겁니까?”

박정철은 백도현 앞에서 고분고분하던 상혁이 완전히 바뀐 것을 보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어차피 사람은 다들 가면 하나씩은 쓰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였기 때문이다.

“……백이현. 유인태. 그리고 황제파.”

“황제파, 거의 지리멸렬했어요. 도현 형님 사건 때문에 싹 다 붙잡혀 들어갔거든.”

“그래도 아직 남아 있죠. 유인태의 명령 한마디면 나와 함께 자살이라도 할 충성스러운 놈들이요.”

박정철의 두 눈이 분노로 불타올랐다. 현장에 황제파와 조철왕이 있었다는 건 곧 백도현이 그들의 손에 의해 유명을 달리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내가 도와드릴 수 있는데.”

“도련님이요?”

“내가 좀 숨기고 있는 게 있거든요.”

박정철은 놀라지 않았다. 상혁이 자신을 찾아내 은밀하게 접촉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게 무엇인지는 박정철도 몰랐다.

“아마 들으면 놀라실 텐데.”

“제게 바라는 건요?”

“백이현.”

상혁이 그 말을 하며 박정철을 응시했다.

“백이현을 찌를 비수 하나를 찾고 있는데.”

“내가 비수가 된다고 해도 그걸 찌를 틈은 만드실 수 있으십니까?”

“그럼요.”

상혁이 피식 웃었다.

“더 위자드의 회장인 내가 그러겠다는데. 누가 막을까.”

그 순간 박정철의 두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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