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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225화 (224/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25화

225. 복수의 맛(5)

시간의 저주.

마법사가 행할 수 있는 가장 악독한 고문 중 하나로 죽음이 확정된 상대에게 물리적 시간을 수백 배, 수천 배를 늘려 지독한 고통 속에서 영혼 자체를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7서클 마법의 변형이다.

상혁은 샤오핑에게 마법사가 가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영원 속에서 그가 고통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샤오핑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앞으로 고꾸라지는 것을 보며 상혁의 전신에 들끓던 푸른 마나가 고리로 다시 회수됐다.

“푸후으으.”

손의 떨림이 잦아들었다. 동시에 상혁이 내뱉는 숨에서 잔여 마나가 푸르게 뿜어져 나오며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상혁은 샤오핑이 간질에 걸린 것처럼 사지를 떨며 경련하는 것을 차가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6만 번의 죽음을 경험한 끝에 너는 비로소 평온을 찾으리라. 하나 그 평온은 온전한 평온이 아닌, 네 영혼이 가루가 되어 흩어진 끝에 찾아올 평온일지어다.”

영혼조차도 남겨 놓지 않겠다는 마법사의 독심은 마법사를 공포스러운 존재로 만들었다. 상혁은 최고, 최강, 최흉의 대마법사였기에 상혁이 펼친 가짜 현실은 무려 6시간을 6만 년으로 늘려 버렸다.

한 시간에 만 년, 그리고 만 년에 걸친 만 번의 죽음.

한 인간의 영혼이 마모되어 흩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상혁은 샤오핑이 마시던 샴페인 잔을 자신의 입안에 털어 넣었다.

“크으.”

목구멍을 간질이며 들끓어 올랐던 복수심이 샴페인에 씻겨 흘러내려 가는 느낌이다. 상혁이 닫힌 문을 향해 말했다.

“끝났습니다.”

상혁이 끝났다고 말하자 닫힌 문이 드르륵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샤오핑의 전담 요원이 쓰러진 샤오핑을 보고서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죽었습니까?”

“죽을 겁니다.”

남자의 말에 상혁은 평온하게 대답했다. 요원은 샤오핑의 맥을 짚고 호흡을 확인한 후 그의 상체를 세워 벽이 기대놓았다.

“앉으시겠습니까?”

“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군요.”

상혁은 요원이 손이 잘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요원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분노가 드러나 있었다. 상혁은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그에게 말했다.

“억울하십니까?”

“억울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것이 저 같은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그저 납득되지 않는 것이 있을 따름입니다.”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요원이 자신의 몫으로 가져온 샴페인 잔에도 손을 뻗었다.

“좀 마시겠습니다.”

“…….”

요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상혁도 대답을 바라진 않았다. 상혁은 간단한 씹을 거리까지 입에 넣고는 으적거리며 씹었다. 향긋한 샴페인과 고소한 견과류가 상혁의 입안을 돌아다녔다.

“설명을 원하십니까?”

“백상혁. 코드네임 위자드. 랭글리에서 당신에 대한 정보는 현장 요원들에게 전부 지급되었습니다. 혼자 제피렐리 가문에 궤멸적인 타격을 입히시고 원탁의 항복을 받아 내셨다고요.”

“믿으십니까?”

요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판단은 제가 내리는 게 아닙니다. 회사에서 믿는다면 저도 믿어야 하니까요.”

“장수하시겠군요.”

“그게 꿈입니다만.”

상혁은 피식 웃었다. 요원의 태도는 현장 요원으로 그가 소위 말하는 회사, 랭글리에서 좋아할 법한 태도였다.

“샤오핑의 중요성은 회사에서 저보다 더 잘 알 겁니다. 그러니 제가 그 사선을 넘으며 러시아에 있던 샤오핑을 빼낸 것이지요. 그러나 그건 그를 죽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미국의 국익을 위해 회사에서도 그런 결정을 내렸을 겁니다.”

샤오핑은 중국의 기밀을 품고 있는 중요한 인물이다. 앞으로도 미국의 큰 숙적이 될 중국의 치명적인 약점이 샤오핑의 머릿속에 있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샤오핑보다 당신을 선택했습니다.”

“그게 납득이 되지 않으시는 거군요.”

요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이 그렇다고 말하고 있었다. 상혁은 빙긋 웃었다.

“샤오핑은 제 부모님을 죽였습니다. 그 때문에 저도 죽을 뻔했죠. 하루아침에 전 부모를 잃은 고아가 됐습니다.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이죠.”

상혁의 사연에 요원의 어깨가 움찔하고 떨렸다. 그는 백상혁이 SG그룹 백성철 회장의 조카라는 것만 알고 있었지 그런 사연이 있다는 건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복수인 겁니까?”

“네, 복수.”

상혁의 두 눈이 푸르스름한 빛을 토해 냈다. 요원은 그걸 보고는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흠칫하고 놀라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중국에서의 복수는 끝났습니다. 이제 내 복수는 한국에 있습니다.”

“한국이요?”

“네.”

상혁은 입을 딱 닫았다. 자신의 일과 관련 없는 CIA 요원이 관심을 가질 이야기는 아니다. 요원은 상혁의 무언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미국은 중국의 기밀을 알아내는 데 실패했으니, 국익에 손해를 본 겁니다.”

“아니요, 미국은 올바른 결정을 내렸습니다.”

상혁의 말에 요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코드네임 위자드, 요원은 왜 상혁이 마법사라 불리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국의 친구를 위해 내가 양보한 겁니다. 내 머리가 차가웠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겁니다. 만약 내 머리가 복수로 인해 뜨거웠다면.”

상혁이 비행기를 손으로 슥 훑었다.

“미국은 유능한 CIA 요원과 비행기 한 대를 잃었을 겁니다.”

“……!”

상혁에게 일말의 이성이 남아 있었기에 샤오핑만 핀포인트로 잡아낸 것이다. 만약 상혁이 그딴 걸 신경 쓰지 않았다면 그냥 비행기 자체를 날려 버렸을 것이다.

텐진에서 보여 주었던 폭풍 하나면 비행기를 격추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샤오핑을 살릴 수 있다면 살려 보세요.”

상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독을 쓴 것도 아닙니다. 의사가 진찰해 보면 그저 수면에 빠져 있다고 진단할 겁니다. 그러니 깨워 보세요. 미국 본토까지 여섯 시간. 여섯 시간 안에 의사가 샤오핑을 깨우면 샤오핑은 살 겁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네.”

상혁의 마나 고리가 회전하며 마나를 뿜어냈다. 상혁은 샤오핑을 살리겠다며 눈을 부릅뜬 요원을 보고는 싱긋 웃었다.

“난 이미 복수를 끝냈습니다. 미국이 샤오핑을 살린다고 해서 다시 복수하러 오진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헤르츨에게 안부 전해 주십시오.”

요원의 얼굴이 굳었다. 헤르츨에 대해 모르는 CIA 요원은 없다. 상혁이 헤르츨을 친구처럼 불렀다는 것에 요원은 자신에게 직통으로 백악관에서 전화가 걸려온 것을 이해했다.

“예.”

번쩍!

상혁의 신형이 비행기에서 번쩍하고 빛을 뿜어내고는 사라졌다. 요원은 상혁이 사라진 곳을 잠시 멍하니 쳐다보았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료진! 의료진! 환자 발생!!”

미국으로 향하는 전용기 내부가 시끄러워졌다.

* * *

강남 더 위자드 코퍼레이션 사옥.

상혁이 텔레포트 마법을 이용해 미국으로 향하던 전용기에서 대한민국의 사옥 사장실로 건너뛰었다.

푸스스.

상혁의 머리카락이 가라앉으며 들끓었던 마나가 가라앉았다. 상혁은 얼른 손으로 책상을 짚어 위에 놓인 종이가 날아가지 않도록 붙잡은 다음 마나가 완전히 가라앉자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마스터.”

그때 일호가 문을 열고 나타났다. 일호부터 열호까지, 한 기를 빼놓고 서번트는 더 위자드 코퍼레이션에서 돈을 굴리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일호의 잘생긴 얼굴이 보이자 상혁은 손을 들어 보였다.

“어.”

“출장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그래. 얻은 게 아주 많았어.”

“축하드립니다, 마스터.”

일호는 상혁의 영혼에 새겨진 서번트다. 그 때문에 상혁이 말로 하지 않아도 일호는 상혁을 이해하고 공감했다. 그의 축하에 상혁이 피식 웃었다.

“축하도 할 줄 알아?”

“인간의 감정을 하나씩 배우고 있습니다. 힘든 개념이 많지만 다른 서번트의 데이터까지 수집하여 이해도를 높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일호는 일종의 슈퍼컴퓨터다. 자아가 있는 AI인 셈인데 자의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일호의 아래로 아홉 기의 서번트를 종속시켰다.

그 때문에 아홉 기의 서번트가 얻는 데이터가 일호에게로 모였다. 마치 AI가 머신러닝을 통해 배워 나가는 것처럼 일호는 점점 고도화되어 가고 있었다.

“마스터, 시간이 되시는 대로 이창엽 씨를 만나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이창엽 씨? 왜?”

“마스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본 때문인가?”

일본에서 용왕으로 김상돈 교수를 끈질기게 괴롭히고 있다고 해서 조만간 일본에 직접 넘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일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주한 미국 대사가 계속 마스터를 찾는다고, 이창엽 씨만 홀쭉 말라 가고 있습니다.”

“그래? 한번 봐야겠네.”

일호가 자신이 알리겠다며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나갔다. 그리고 상혁은 한국대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이창엽을 만날 수 있었다.

“마스터!!”

“이창엽 씨. 저 찾으셨다면서요?”

“중국에 계신 걸로 알았는데, 언제 오셨습니까?”

이창엽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창엽의 능력이라면 입국자 명단을 뒤져 공항에서 상혁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상혁은 눈을 찡긋했다.

“뭐, 여러 가지가 가능하니까요.”

많은 이야기가 함축된 상혁의 말에 이창엽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냥 납득하기로 했다.

“미국 대사가 날 찾아요?”

“예, 갑자기 절 찾아와서는 마스터를 만나고 싶다고 성화를 계속 부립니다.”

“음, 이렇게 된 김에 우리 형님이 좋아하실 일을 해야겠네.”

“백이현 사장님 말씀이십니까?”

백도현은 병원 치료가 끝난 후 사라져서 아직까지 연락 두절이었다. 하지만 조만간 그가 큰 것 하나를 터뜨릴 것이란 건 보지 않아도 뻔했다.

더블아이를 동원해 백도현을 지원하라 명령을 내렸으니 아마 알아서들 잘하고 있으리라.

“네. 더 위자드 회장 만나고 싶으시다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셨잖아요.”

“설마, 밝히실 생각이십니까?”

지난번 이창엽은 로스차일드의 가주인 헤르츨과 직통으로 전화를 했다. 상혁이 대단한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거기까지 상혁이 손길이 뻗쳤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이창엽이다.

더군다나 그로 인해 상혁이 더 위자드의 회장이란 것까지 알게 되었으니, 로스차일드가 SG건설을 돕는 것처럼 보였던 것도 사실은 상혁을 위해서란 것까지 다 알게 된 이창엽이다.

“이제 밝혀야죠.”

“음, 확실히 나쁘지 않은 타이밍인 것 같습니다.”

미국 대사와 백이현을 불러다 놓고 상혁이 더 위자드의 회장이란 것을 밝힌다. 동석한 미국 대사가 백이현에게 상혁이 더 위자드의 회장이란 것을 한 번 더 확인해 줄 것이니 귀찮게 백이현에게 두 번 말할 필요가 없어진다.

“조금 시간은 걸릴 겁니다. 하지만 그 여우 같은 곰은 금방 현실감각을 되찾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백이현은 상혁에게 매달릴 것이다. 예상치도 못하게 상혁이 더 위자드의 회장이란 것에 놀라기는 하겠지만 누군가 내미는 손이 간절한 백이현에게는 기왕이면 아는 얼굴인 상혁이 더 편할 것이기 때문이다.

“매달리겠지요.”

“그럼 그때 백이현 사장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어떤 제안?”

상혁이 귀를 기울이자 이창엽이 목을 가다듬었다. 상혁이 시키는 일만 했지 이창엽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게 묘하게 이창엽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백이현을 백성철의 숨통을 끊을 두 번째 비수로 사용하시는 겁니다.”

“첫 번째는 백도현. 두 번째는 백이현?”

“예.”

상혁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더 자세히.”

“박정철, 그자를 포섭하겠습니다.”

“백도현의 비서실장? 어디 있는지 알아?”

백도현의 비서실장인 박정철은 백도현의 죽음이 알려진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데 이창엽이 그를 알고 있었다.

“더블아이가 무척 유능하더군요.”

“그래서?”

“박정철, 강원도에 숨어 있었습니다.”

더블아이.

원래 글레이저 가문에 속한 정보 조직이었으나 그들이 무너지면서 더블아이를 상혁이 그대로 흡수했다. 더 위자드 소속으로 골렘과 함께 한국에 들어왔다.

“박정철을 더 위자드에 들이시는 겁니다. 그리고 백도현의 죽음에 백이현이 연루되어 있다는 걸 박정철에게 알리면 박정철은 아마 알아서 백이현의 목을 찌를 칼을 준비할 겁니다.”

“그리고 백이현에게 그걸 알린다?”

“아니요. 그건 사냥이 끝난 개를 솥에 삶을 때를 위해 준비하는 것이고.”

상혁은 혀를 내둘렀다. 이창엽은 상혁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냉혹하고 치밀했기 때문이다.

“백이현에게는 이렇게 하시는 겁니다. 어떻게 하시냐면…….”

이창엽의 작전을 듣는 상혁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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