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24화
224. 복수의 맛(4)
러시아와 중국은 느슨한 동맹 관계다. 옛 소련의 영광을 꿈꾸는 러시아와 옛 중화의 영광을 꿈꾸는 중국은 한 명이 수십 년간 집권할 수 있는 체재를 마련해 놓았다는 점까지 놀랍도록 유사했다.
또한 러시아와 중국의 가장 큰 라이벌은 미국이다. 그 때문에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이 두 나라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적을 상대로 할 때는 느슨한 동맹 관계를 보여 주었으나 느슨하다는 건 언제든 느슨한 빈틈 사이로 다른 수작을 부릴 수 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샤오핑.
주자당의 실질적인 우두머리이자 권력 서열 4위까지 오른 국안부 부장 출신으로 중국의 기밀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샤오핑은 리창위의 칼날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러시아로 망명했다.
소련이 붕괴하며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던 오랜 숙적이 자멸하였지만 그럼에도 러시아의 저력은 구소련권 국가에서 여전히 맹위를 떨쳤다.
샤오핑이 리창위의 칼날에서 살아남기 위해 중국의 손길이 뻗치지 않는 곳을 찾았고 그에 적합한 나라가 바로 러시아였다.
“미스터 샤오, 비행은 좀 어떠십니까? 랭글리에서 특별히 미스터 샤오를 위해 준비한 전용기입니다만.”
“아주 훌륭합니다. 미국에 가는 날이 기다려지는군요.”
“VIP께서도 미스터 샤오를 만날 날을 고대하고 계십니다. 샴페인 한잔하시겠습니까?”
“좋지요, 허허허.”
러시아는 예전부터 중국에 관심이 많았다. 러시아와 중국이 하나로 합쳐진다면 말 그대로 전천후 최강대국이 탄생하는 것이었고, 그렇게 되면 미국의 아성을 넘을 수 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러시아의 눈에 샤오핑이 망명한 것은 천재일우의 기회다. 리창위가 서슬 퍼런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고 하지만 샤오핑의 주자당의 저력에 대해서는 푸틴도 익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든 리창위와 태자당에 문제가 일어난다면 주자당이 다시 대권을 잡을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러시아는 샤오핑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기로 마음먹었다. 러시아의 지원을 등에 업은 샤오핑이 중국의 주석이 된다면, 사실상 러시아가 중국을 컨트롤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미래를 내다보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극비리에 샤오핑을 귀빈으로 모셨다. 러시아는 샤오핑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도록 극비리로 샤오핑에 대한 모든 것을 다뤘다.
하지만 러시아는 미국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러시아가 샤오핑을 확보하고 있다는 소식이 미국 CIA의 귀에 들어갔고, 곧바로 백악관을 통해 샤오핑을 확보하라는 명령이 떨어져 샤오핑과 접선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샤오핑은 곧바로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노선을 갈아탔다.
부우웅.
“잠시만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다.”
“그러시죠.”
샤오핑은 인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러시아부터 샤오핑을 전담한 CIA 요원이 전화기를 들고는 비행기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미국의 기술이 대단하긴 해. 비행기에서 자유롭게 통화도 할 수 있다니. 사실상 전 세계 어디에서건 연락책을 가동할 수 있다는 소리겠군.”
샤오핑은 하얀 구름이 비행기 밑으로 휙휙 지나치는 것을 보며 씩 웃었다. 샤오핑은 공산당 내에서 대표적인 강경한 반미파였다. 국안부 부장이던 시절부터 권력 서열 4순위까지 샤오핑은 줄곧 대중화와 반미를 무기 삼아 사람들을 현혹했다.
그러나 샤오핑은 생존형 반미파였다.
사실 샤오핑은 미국을, 선진국을 선망했다. 어릴 때는 중화로 중국을 유럽과 미국 같은 선진국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품은 적도 있지만 냉혹한 현실 앞에 샤오핑은 변했다.
중국은 답이 없었다.
일당 독재 체제로 옛 정치 시스템을 버리지 못하고 옛 권력으로 회귀하려는 정치인들의 특성에 샤오핑은 중국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그렇게 애국심을 버리고 텅 빈 가슴을 개인의 사리사욕으로 채웠다. 샤오핑은 정치인으로 살아남기 위해 반미를 외쳤지만, 미국이 내민 손을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잡았다.
미국은 최강대국이었으니까.
“역시, 러시아보다는 미국이지.”
러시아의 푸틴이 이 소식을 듣는다면 대로할 것이다. 그리고 방사능 홍차를 보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안부 부장 출신인 샤오핑은 푸틴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언제적 KGB인지.”
소련 시절 KGB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러시아가 된 후,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인해 러시아가 고립되면서 KGB는 현장 감각을 잃었다.
실전과 현장 감각이 중요한 요원이 그걸 잃었다는 건 사실상 장남이 되었다는 소리다. 그런 놈들을 두려워할 샤오핑이 아니다.
“대중국 고문으로 백악관에 자리 하나 차지하면, 나중에 상원에 도전할 수도 있겠지.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면 미국 대통령이 되지 말란 법도 없고.”
샤오핑의 두 눈이 야망으로 번뜩였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허튼소리 말라며 손가락질을 했을 것이나 샤오핑은 늘 불가능에 도전해 왔기 때문에 안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주의였다.
그때 전화를 마친 전담 요원이 웃는 낯으로 샤오핑에게 샴페인 잔을 건네면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급히 랭글리에서 온 전화라.”
“아닙니다. 나랏일 하시는 분이 원래 바쁘신 법이죠. 허허헛.”
“역시 샤오핑 님이십니다. 참. 그런데 랭글리에서 샤오핑 님에게 하나 여쭤볼 것이 있다고 하시더군요.”
“제게요?”
랭글리면 CIA 본사가 있는 곳이다. 샤오핑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망자 신분이라지만 샤오핑은 중국 최고위 권력자 중 한 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본토에 발을 들인 순간 CIA가 곧바로 붙을 것임을 짐작하고 있었다.
“10년 전 한국의 SG그룹과 모종의 밀월 관계를 맺지 않으셨습니까?”
“아, 그 일이요?”
“예.”
샤오핑이 국안부 부장으로 있을 때다. 샤오핑은 샴페인의 기포가 입속에서 따갑게 부글거리는 것을 만끽하고는 잔을 내려놓았다.
“예. 그랬죠. 지금도 그렇지만, 10년 전에도 한국의 SG그룹은 반도체 기술에 한해서는 세계 최정상급이었으니까요. 중국도 그런 한국을 모방하기 위해 반도체 기술이 절실했습니다.”
“모방이요?”
“예. 그거 아십니까? 한국과 일본에서 중국 정부 소속으로 활동하는 산업 스파이만 2만 명이 넘습니다.”
샤오핑이 피식 웃었다. 이미 그는 중국인이 아니다. 미국인이 될 생각이었기 때문에 샤오핑은 내부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사실들까지 늘어놓았다.
자신이 아는 것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CIA에 어필하기 위함이다.
“그러면 정말 백성철 회장이 국안부를 통해 동생을 암살한 것이 맞습니까?”
“그거.”
샤오핑은 피식 웃었다.
“사실입니다. 우리도 많이 놀랐어요. 그런데 우리는 손해 볼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백성철이 반도체 기술을 주겠다고 했으니까요. 신기술 하나에 사람 목숨이 오가는 건 흔히 벌어지는 일이지 않습니까?”
“사실이었군요.”
“예. 비록 SG그룹이 곧바로 신기술을 개발해 다시 반도체 산업의 일인자로 군림했지만 전 세대 기술이라도 중국의 입장에서는 최소 15년 이상의 시간을 단축한 셈이었으니까요.”
샤오핑의 말에 요원이 다시 물었다.
“당시 국안부 부장이셨으니 그럼 백성운 가족 암살에 대한 기획도 샤오핑 님을 통해 수립됐겠군요.”
“그렇습니다. 제가 총책임자였으니까요. 사고사로 위장하기로 한 것도 제 머리에서 나왔던 것이고.”
“호오…….”
“그런데 왜 10년도 더 전의 이야기를 랭글리에서 궁금해 한 겁니까?”
샤오핑이 요원에게 물었다. 그러자 전담 요원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어깨를 으쓱했다.
“SG그룹에 랭글리에서 관심이 많나 봅니다. 최근 SG그룹 계열사인 호텔과 리조트 주식을 해외 세력이 쓸어 담았는데, 그게 회사라는 소문이 있어서요.”
“SG그룹을 미국 정부가 손에 넣으려는 생각입니까?”
“글쎄요. 손에 넣을지, 아니면 적절히 제어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샤오핑은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미국 정부에서 한국의 SG그룹을 노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긴. 소국의 빵즈가 만든 SG그룹이 대미 수출액이 늘어나고 있었으니까. 원래 미국 놈들이 국부 유출을 끔찍하게 싫어하긴 하지.’
그 때문에 대통령만 바뀌면 기업을 불러다 놓고 미국에 공장을 지으라고 협박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때 전담 요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확실하군요. 당시 10년 전 사건에 샤오핑 님이 연루되어 있으시다는 게.”
“네. 그런데 왜…….”
“보고 싶어 하시는 분이 계셔서요.”
“저를요?”
그때 샤오핑이 비행기 창문 밖을 쳐다봤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하늘에 그 아래로 깔린 하얀 구름만이 보이던 곳에 이질적인 것이 있었다.
사람.
샤오핑은 사람이 비행기와 같은 속도로 날고 있다는 것에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 * *
상혁 주변은 고요했다.
상혁 주변으로는 미풍 하나 불지 않았고, 그 때문에 상혁의 머리카락은 한 올도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상혁의 발밑으로 손으로 휘저으면 만져질 것 같은 구름이 몽실몽실 지나가고 있었다. 상혁은 자신의 머리 위로 날고 있는 비행기를 쳐다봤다.
“저 안에 있다는 건가?”
상혁은 미국으로 향하고 있던 비행기를 태평양 상공에서 따라잡았다. 그렇다는 건 상혁의 비행 속도가 비행기보다 빠르다는 소리다.
파바밧!
비행기보다 빠르게 나는 방법은 간단했다. 비행기보다 빠르면 되는 간단한 일이기 때문이다.
상혁의 신형이 꺼지듯 사라지더니 비행기와의 거리를 좁혔다. 단거리 이동 마법인 블링크가 순식간에 수십 번 펼쳐진 것이다.
쿵쿵쿵
상혁의 심장에 새겨진 마나 고리는 수십 번에 달하는 단거리, 장거리 공간 이동 마법을 펼쳤음에도 여전히 힘차게 마나를 뿜어냈다. 상혁은 주변의 세찬 기류를 차단하기 위한 마법을 펼친 채 마치 피크닉을 나온 것처럼 비행기의 날개 위에 부드럽게 착지했다.
[그럼 확실하군요. 당시 10년 전 사건에 샤오핑 님이 연루되어 있으시다는 게.]
[네.]
상혁의 두 눈이 푸르스름하게 빛을 발했다. 비행기 내에서 나누는 대화가 상혁의 귀에 들렸기 때문이다. 상혁이 귀에 꽂은 인이어는 리창위가 상혁에게 준 위성폰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걸 미국 랭글리와 연결한 뒤 비행기 안의 전담 요원에게 연결한 것이 전부다.
말은 간단하지만 지금 상혁을 위해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고 손꼽히는 두 개의 국가가 상혁을 보조하고 있었다.
중국의 위성폰에 상혁의 연락을 받은 로스차일드는 흔쾌히 미국의 위성을 연결시켰다. 그리고 로스차일드를 통해 CIA를 움직였고 CIA는 사실확인을 위해 기꺼이 그들이 공을 들인 샤오핑을 내주었다.
상혁이 중국과 가깝다는 것을 깨달은 덕분에 로스차일드의 말발이 미국 상부에 더 잘 먹혔다는 뜻이다.
그 덕분에 상혁은 확실하게 깨달았다.
상혁의 부모님을 직접적으로 죽인 작전을 입안한 원흉. 중국에서 마지막으로 처리하고 가야 할 이가 저 비행기 안에 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
그때 날개에 앉아 있는 상혁을 본 것인지 비행기 창 너머로 자신을 보는 샤오핑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드는 것이 보였다. 그때 상혁의 모습이 날개에서 사라진 뒤 비행기 안, 샤오핑의 맞은 자리에서 나타났다.
“샤오핑.”
“대, 대체 무엇입니까! 이게 대체…….”
“10년 전. 백성운과 김성미. 그리고 열 살배기 어린아이를 죽인 작전을 기획한 책임자.”
샤오핑의 얼굴색이 변했다. 안 그래도 전담 요원이 자꾸 그때의 이야기를 물어보길래 이상하게 생각했었던 그였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의 눈앞에 사람이 나타났다.
“무, 무슨…….”
“그때 죽이지 못한 애가 나야.”
히죽.
상혁이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웃었다. 그러자 샤오핑의 안색이 변했다. 그 자리에서 분명 어린애 하나가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
그 아이가 눈앞의 청년이다?
샤오핑이 눈을 돌려 전담 요원을 쳐다봤다.
“CIA! CIA!! 여, 여기!!”
드르륵
하지만 샤오핑과 눈이 마주친 전담 요원은 담담히 문을 닫았다. 그것을 본 샤오핑은 하늘이 핑 도는 기분을 느꼈다.
“이거 어쩌지.”
상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샤오핑은 상혁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차마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상혁이 샤오핑의 뒤로 돌아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은 뒤 그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너 대신 나를 미국이 선택한 것 같은데. 참. 리창위가 전해 달라더라. 널 미국 땅을 밟지 못 하게 해 달라고.”
“뭐, 뭣!!”
“넌, 네가 상상도 해 보지 못한 고통을 겪고 죽게 될 거야. 장담하지.”
파바밧!
상혁의 머리 위로 룬어가 떠오르며 그 룬어가 빙글거리며 돌기 시작했다. 동시에 자욱하게 뿜어져 나온 마나가 뭉치며 선을 그리기 시작했고 상혁의 손에 따라 룬어와 선이 연결되기 시작했다.
“가짜 현실.”
7서클, 가짜 현실.
“넌, 선악의 저울을 쓸 가치도 없어.”
샤오핑의 눈이 풀렸다. 상혁은 스크린에 표시된 도착지까지의 거리와 시간을 확인했다. 그 뒤 상혁이 상체를 숙여 샤오핑의 귀에 속삭였다.
그가 들을지 못 들을지는 모르지만 상혁은 개의치 않았다.
“6시간을 6만 년처럼 살 것이다. 끝나지 않는 6시간 속에서 6만 가지의 죽음을 경험해 보아라. 네 영혼은 가루가 되어 업보도 책임지지 못하고 소멸하리라.”
후우.
상혁의 숨결에 담긴 마나가 샤오핑의 콧속으로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