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222화 (221/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22화

222. 복수의 맛(2)

상혁과 리창위의 협상은 릴레이로 여섯 시간이 넘게 진행됐다. 그사이 리창위의 고성이 오가기도 터져 나오기도 했지만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만찬장 바깥의 비서나 수행원들은 단 한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

“언락.”

철커덕.

상혁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만찬장 안에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6시간 14분 45초가 지난 뒤 상혁은 협상을 마무리한 뒤 리창위와 함께 웃으며 만찬장의 문을 열었고, 마법에 의해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은공.”

“계속 그렇게 부르실 겁니까? 듣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요?”

“뭐 어떻습니까. 제가 제 마음대로 은공을 은공이라 부르겠다는데.”

리창위의 눈가에 주름이 졌다. 6시간에 걸친 마라톤 협상 때문에 리창위의 눈 밑이 검었지만, 리창위는 활기에 가득 차 있었다.

“각하!”

“롱하이. 오래 기다렸나?”

“저희는 혹여 각하께서 잘못되실까 봐 걱정했을 따름입니다.”

비서실장인 롱하이가 가장 먼저 리창위에게 뛰어왔다. 그러면서 상혁을 보며 하는 말에는 뼈가 잔뜩 있었고 상혁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주석과 저 이외의 사람들이 들어 좋을 것이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각하의 안위를 살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마저 한꺼번에 먹통이 된 탓에 군부에서 당장 밀고 들어가자는 걸 말리느라 혼났습니다.”

“설마요. 제가 있는 곳을요?”

상혁은 웃음기를 거두고는 롱하이를 빤히 쳐다봤다. 롱하이는 그런 상혁의 눈을 오래 마주치지 못했다. 텐진에서 상혁이 보인 신위의 1/10만 여기서 보여 준다고 하더라도 군부는 절대로 상혁의 아성을 넘지 못할 것을 그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리창위까지 같이 날려 버릴 요량으로 미사일이라도 퍼붓는다면 모를까.

하지만 리창위의 안위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기 때문에 그걸 고려한다면 군부의 작전은 무조건 물거품이다.

“그럼 각하, 뒷일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런데 SG그룹은 정말 말씀하신 대로 조치해도 되는지…….”

“하세요.”

리창위의 눈가에 이채가 서렸다. SG그룹은 상혁에게 있어 집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상혁이 리창위에게 요구한 것 중에 하나는 집이나 다름없는 SG그룹의 대들보를 무너뜨려 달라는 것이었다.

“어렵지는 않습니다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있잖아요, 주석 각하.”

“예, 은공.”

6시간 동안 상혁과 리창위는 마라톤 협상을 벌이며 서로에 대해 조금 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대한민국과 중국이라는 외교적인 문제로 얽히기 전에 인간적으로 조금이나마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리창위는 상혁의 눈빛이 싸악 바뀌는 것을 보며 팔뚝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단 말인가.’

마법이라는 초능을 쓰는 백상혁이란 사람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극히 일부분이었음을 주석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러자 상혁에 대한 경외와 공포가 더욱 커졌다.

“복수가 언제 가장 짜릿한지 아십니까?”

“……복수요?”

“예.”

상혁의 눈빛이 저 아득한 어딘가를 짚었다. 상혁은 칠십 인생을 살며 온갖 인간군상을 겪었고 온갖 역경과 고난을 극복했다.

그중에는 당연히 복수도 있었다.

상혁을 노예로 삼고 인체 실험을 했던 마법사 일란에 대한 복수, 상혁의 것을 탐내 수작을 부린 귀족에 대한 복수 등등.

인간사 맺어지는 원한을 상혁은 수도 없이 겪어 보았고 복수의 화신처럼 자신이 당한 것을 절대로 잊지 않고 상대에게 갚았다.

“상대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 생각했던 것. 그것을 빼앗는 것이 가장 통쾌한 복수입니다.”

상혁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뒤틀려 있었다. 리창위는 상혁의 그런 미소에서 뒤틀린 광기와 집착을 읽었다. 칠십을 산 노마법사는 뒤끝이 길었고 원한을 절대로 잊지 않았다. 복수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자신의 적에게 하는 일종의 경고이자 본보기였기에 상혁은 복수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분명 상혁은 스무 살이다. 하지만 리창위는 상혁의 뒤틀린 미소에서 오싹함을 느꼈다. 상혁은 약관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복수를 해 본 것처럼 리창위에게 말했다.

“복수를 하면 허망하고 허무하다? 그건 아직 마음에 굳은살이 충분히 배기지 않았기 때문이죠. 진정한 복수는 그 복수를 이루는 순간 아물지 않던 상처가 나은 것처럼 여기가 아프지 않습니다.”

상혁은 가슴께를 손가락으로 찔렀다. 복수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 복수를 하면 허무해진다는 건 그깟 복수를 자신의 인생 과제로 삼았기 때문이다.

복수는 복수고, 내 삶은 삶이다.

복수와 삶을 동일시시키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상혁은 그렇기에 복수와 삶을 분리할 줄 알았고, 그 덕에 온전히 복수의 기쁨을 누릴 줄 알았다.

SG그룹에 대한 복수 역시 마찬가지다.

“백성철, 백도현, 백이현.”

백씨 삼부자.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상혁에게는 사촌이자 혈족이 되었을 이들이다. 그러나 그 삼부자는 상혁의 아버지에게 손을 댄 순간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됐다.

“이 삼부자에 대한 최고의 복수는 그들이 가지고자 했던 것이 그들의 눈앞에서 무너지게 만드는 거죠. 그러니 약속이나 지키세요.”

상혁의 입꼬리에 매달린 미소에 리창위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그 순간 리창위는 확신했다.

‘백상혁은 절대로 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는 남자다.’

리창위가 그렇게 공포에 질려 있을 때 상혁은 눈에서 힘을 풀었다. 그러고는 그를 향해 힘껏 웃어 주었다.

“기대하겠습니다. 내 복수, 각하께서 한 손 보태 주신다고 했던 것 말입니다.”

“예, 예. 그러죠. 잘 알겠습니다, 은공.”

“그럼.”

상혁은 자신을 경계하는 롱하이와 비서, 그리고 수행원 사이를 지나 어느 순간 갑자기 모두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상혁이 사라지고 나자 리창위는 가까스로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롱하이.”

“예, 각하.”

비서와 수행원들이 웅성거렸다. 상혁이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상혁이 마법을 숨기지 않는 모습에 리창위는 롱하이에게 말했다.

“SG그룹 백 회장과 국가안전부가 맺었던 밀약. 10년 전 것부터 시작해 최근 백도현 사건까지 깡그리 모아서 정리해.”

“저, 전부 말씀이십니까?”

“그래. 누가 담당자였는지, 누가 현장 요원이었는지까지 전부 빠짐없이.”

롱하이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리창위는 롱하이를 보면서 다그쳤다.

“내 말 알아들었어?”

“예, 각하.”

“조금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돼. 조금의 실수도.”

리창위가 입술을 잘근 물어뜯었다.

* * *

텐진항 테러가 일어난 날로부터 이틀 후.

상혁은 조양구의 어두운 뒷골목을 홀로 거닐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중국은 대규모 외신과 해외 선수들을 초빙할 준비를 하며 북경의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다 갈아치웠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그건 문제점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그저 외국인의 눈에 보이지 않게 숨겨 둔 것뿐이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빈민가.

북경의 살인적인 집값은 일자리를 찾아 외지에서 몰려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빈민가로 내몰았다. 베이징 올림픽을 유치하기로 한순간 중국 정부는 공권력을 이용해 빈민가를 새단장했다.

콘크리트로 된 건물,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한 다세대 연립주택 수십만 호가 들어섰지만 사실 그것이 빛 좋은 개살구란 것을 아는 사람은 손에 꼽혔다.

각양각색의 허름한 주거 시설이 난립하던 빈민가의 겉만 바깥에서 보기에 그럴듯하게 꾸몄을 뿐, 사실은 내장조차도 제대로 끝나지 않은 콘크리트 석면 건물이 빈민가에 주어진 전부였던 것이다.

그 때문에 빈민층은 또다시 다른 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겨야만 했다. 석면이 날리고 상하수도 시설조차도 없는 콘크리트 건물은 거대한 관짝이나 다름없어 사람이 살만한 환경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혁이 조양구의 연립주택 지역을 어두운 밤에 홀로 거닐고 있는 건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홍문방이 여기 있다고 했는데.”

홍문방.

빈민가가 생겨나면 그곳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폭력조직이었다. 북경은 인구 2,400만 명 규모의 거대한 메가시티였고 그 안에 생겨나는 이권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 수많은 조직들이 사방에서 난립했다.

그중 홍문방은 인원만 300명인 중소 규모의 조직으로 일수, 사채, 폭력사주 등 여러 지저분한 이권을 놓고 조양구의 일부분을 차지한 조직 중 하나였다.

상혁은 지금 그 홍문방을 찾고 있었다.

“여기 있다.”

상혁의 머릿속에는 리창위를 통해 얻은 홍문방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었다. 상혁이 홍문방에서 원하는 것 딱 한 명뿐이었다.

두양.

홍문방의 두목으로 8년 전 조양구에 나타나 홍문방을 세우고 지금의 홍문방을 만든 인물이었다.

“침묵.”

우우웅!

상혁의 고리가 웅웅 소리를 냈다. 그와 동시에 보이지 않는 마나가 주변에 소리를 차단하는 장막을 드리웠다. 이제 이 안에서는 폭탄이 터져도 장막 밖으로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흘러나가지 않을 것이다.

“감지.”

파앗-!!

상혁의 마나가 사방을 훑었다. 그러자 상혁의 발밑으로 다수의 생명체의 기척이 감지됐다. 상혁은 다 쓰러져 가는 곳 앞에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 경비 두 명이 서 있는 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벅, 저벅.

상혁은 발소리를 숨기지 않았다. 상혁이 모습을 드러내자 저쪽에서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상혁은 손뼉을 짝 하고 쳤다.

빠지직!!

인간을 상대하는 데 있어 가장 좋은 마법은 뇌전 마법이다. 인간의 육체는 뇌전 마법에 노출되는 순간 아무리 강한 신체를 지니고 있어도 몸이 뇌의 통제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뻣뻣

쿵!

역시나 경비 둘이 뻣뻣한 통나무가 되어 쿵하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상혁은 둘의 머리통을 한 번씩 걷어차 완전히 기절시킨 다음 홍문방이라 쓰인 현판이 걸린 건물의 문에 손을 얹었다.

“언락.”

문이 덜컥하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러자 아래에서 물씬 기묘한 향기가 피어올랐다. 상혁은 코를 몇 번 킁킁거렸다.

“약…….”

중국의 마약 사범은 기본이 사형이다. 하지만 중국의 공권력은 15억이나 되는 사람을 통제하지 못한다. 그 때문에 홍문방 같은 많은 조직들이 여전히 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정말 약 공장이 있었어?”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후끈거리는 열기가 느껴졌다. 상혁은 태연히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그러면서 계단을 비추는 CCTV에 태연히 손도 몇 번 흔들어 주었다.

그렇게 계단의 끝까지 간 상혁은 굳게 닫힌 철문을 열기 전 심호흡을 한 뒤 손을 들어 올렸다.

“배리어.”

그러고는 힘차게 문의 손잡이를 돌렸다. 문은 저항 없이 부드럽게 열렸다. 그리고 상혁이 들어선 순간 상혁을 환영하는 인파가 기다리고 있었다.

투두두두두!

드르륵!

상혁은 배리어 위로 눈을 따갑게 만들 정도의 불똥이 튀는 것을 보며 눈썹을 한 번 꿈틀거렸다.

“한 놈, 두 놈, 세 놈, 네놈…….”

스물.

무려 스무 명이나 되는 홍문방 조직원들이 상혁을 향해 일제 사격을 퍼붓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눈이 있기에 총알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튕겨 나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쿵.

상혁이 발을 들어 바닥을 내리찍었다. 사방이 번잡스러웠다. 솥 안에서는 부글거리며 액체가 끓어오르고 있었고 플라스크와 시험관을 통해 하얀 가루가 만들어져 한쪽에서는 포장이 이뤄지고 있었다.

상혁은 그 풍경을 찬찬히 살펴본 뒤 손가락을 딱 튕겼다.

“선악의 저울.”

끄아아악!

으악!

으어억!

투다다당!

선악의 저울이 펼쳐진 순간 스물이나 되는 이들이 환각에 빠져들었다. 개중에는 허공이나 동료에 대고 총을 갈기는 놈들이 있어 마약 제조 공장이 삽시간에 피로 물들었다.

상혁은 그 비명을 BGM 삼아 담담히 그들을 지나쳐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문을 열었다.

철컥!

“넌 누구냐! 어디서 보낸 놈이야! 흑룡방이냐, 사문방이냐!”

두양의 방. 상혁은 얼굴을 외운 사진 속 두양이 일어나 자신에게 총을 겨눈 채 악에 받쳐 따지는 것을 듣다가 불쑥 말했다.

“10년 전. 한국의 백성운. 기억해?”

“뭐? 무슨 개소리야?”

“국가안전부 주한 중국대사관 10호실 두양.”

두양이 조양구에서 300명 규모의 조직을 키우고 마약까지 제조할 수 있었던 건 그가 국가안전부 출신이기 때문이다.

상혁의 입에서 그의 과거가 흘러나온 순간 두양의 표정이 굳었다.

“맞구나?”

파직!

두둥실!

두양의 몸이 마비된 채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두양의 얼굴이 공포에 질렸다. 상혁은 백성철의 사주를 받고 트럭을 몰았던 두양을 면전에 마주하고는 환하게 웃었다.

“찾았다.”

두양의 눈앞에 지옥 길이 열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