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20화
220. 버선발(5)
재빨리 방독면을 쓴 몇몇을 제외하고는 건강한 축에 속하는 군인과 경찰 수백 명을 쓰러뜨린 독성 물질이다.
그냥 공기 중에 살포된 것도 아니고 상혁이 마법을 통해 한곳으로 모은 것을 싹 빨아들이자 유영은 마법이 잘못되어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생각하고는 입을 틀어막고 비명을 질렀다.
불룩, 불룩.
쩌어억-!
그리고 유영의 예상대로 상혁의 핏줄이 불룩거리면서 솟아오르고 살 껍질이 벗겨졌다가 안에서 새로 나기를 반복했다.
심지어 머리카락도 몇 올 빠졌다가 다시 자라나는 기사가 유영의 눈앞에서 벌어졌지만, 유영은 두 손을 꼭 모은 채 상혁이 무사히 깨어나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제발.”
상혁이 여기서 실패한다면 그건 곧 텐진의 몰락을 의미한다. 마법이라는 능력을 사용하는 상혁이 막지 못한다면 이미 중국 정부에서 손을 댈 때는 이곳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질 대로 커진 다음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영은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정작 독성 물질을 모조리 빨아들인 상혁은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꽤 괜찮은 양이군.’
상혁은 전신에서 은은한 통증이 느껴졌다. 폭발과 백린, 그리고 그 여파로 인해 인근 화학물질 창고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대기 중에 퍼진 독성 물질을 싹 끌어모아 한입에 꿀꺽 삼킨 상혁은 그 안에 들어 있는 방대한 마나에 만족했다.
통증이 느껴진다는 것.
그것 자체가 독성 물질 안에 담긴 마나가 적지 않다는 뜻이다. 본래 영약에 담긴 마나량과 통증은 비례한다. 가나안의 영약은 곧 지구의 오염물질과 같은 개념이기 때문에 심장에서 통증이 느껴진다는 것은 청신호다.
‘소모한 마나를 모두 보충하고도 남는 양이다.’
상혁은 어째서 유영이 그토록 필사적이었는지 이해했다. 상혁이 만족스럽게 느낄 정도의 마나량이란 것은 이 오염물질이 대기를 타고 넓게 번지면 수백만, 어쩌면 수천만에게 피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물에 스며들면 수질 오염을 일으킬 것이고 토양에 스며들면 토양 오염을 일으킬 것이다. 물이나 토양 위에 떨어지지 않고 공기를 타고 번지면 공해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 독성은 인체에 치명적인 수준이었다.
‘테러범들이 아주 제대로 준비했군.’
간 크게 어떤 미친놈들이 중국 정부를 건드렸는지 궁금했는데, 테러범들이 준비해 놓은 것을 보니 중국 정부를 상대로 도발을 할 정도로 아주 철저하게 준비했다.
만약 상혁이 없었더라면 테러범은 중국을 통해 자신들의 힘을 만방에 과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잘 먹겠습니다.’
주르륵
상혁은 뜨뜻미지근한 것이 코에서 흐르는 것을 느꼈다. 코피다. 상혁의 마나 고리는 게걸스럽게 상혁의 몸속에 침투한 독성 물질의 마나를 쪽쪽 빨아먹고 상혁의 몸 밖으로 남은 찌꺼기를 배출했다.
그게 코피의 형태여서 그렇지 상혁의 몸은 멀쩡했다.
정말로.
“아, 안 돼!”
하지만 그걸 지켜보고 있는 유영은 아니었다. 갑자기 상혁의 코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하고, 그 피가 앞섶을 적시기 시작하자 유영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휙휙.
유영은 주변을 둘러봤지만, 컨테이너는 높은 곳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다른 컨테이너의 지붕과 부두의 아스팔트밖에 없었다.
두두두둑!
그런데 그때 익숙한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유영이 소리가 난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공격헬기 한 대가 로터 소리를 내면서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기요! 여기!”
유영이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공격 헬기는 다가오지 못하고 주변을 뱅글거리며 돌았다. 상혁이 독성 물질을 차단하기 위해 형성한 공기 돔 때문이었다.
근처만 가도 헬기가 휘청거릴 정도로 강풍이 휘몰아 닥치니 헬기가 진입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철컥!
그런데 그때 공격 헬기의 옆으로 기관총이 철컥하는 소리를 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중국군에서 사용하는 공격 헬기에는 1분에 수천 발을 쏟아부을 수 있는 기관총이 장착되어 있었는데, 그 기관총이 상혁을 정확히 노렸다.
“왜!!”
유영은 그곳으로 달려가 두 팔을 쭉 벌리고 섰다. 그러자 돌아가던 기관총이 멈추면서 헬기가 황급히 위로 날아올랐다.
“설마 백상혁 씨가 날 구하러 왔다는 걸 모르는 거야?”
상혁이 갑자기 무슨 수로 이곳에 나타났는지 유영은 모른다. 하지만 지난번 위즈니랜드에서 봤던 것처럼 그와 비슷하게 나타났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다면 유영, 그녀가 상혁을 지켜야 한다.
‘지켜 달라고 했으니까.’
상혁과 약속을 한 유영이다. 그때부터 유영만의 외로운 싸움이 벌어졌다. 공격헬기가 빙글 돌아 다른 방향으로 틀면 유영이 그쪽으로 달려가 몸으로 상혁을 방어하는 대치 상태가 이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두두두둑!
한 대의 헬기가 더 나타났다. 유영은 더욱 바빠졌다. 헬기는 두 대고 유영의 몸은 하나다. 그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유영이 헬기의 공격을 몸으로 막으려는 대치 상태가 이어졌다.
그러나 그런 대치 상태는 계속 이어질 수 없었다.
“하악, 하악.”
유영이 지치기 시작한 것이다. 좁은 컨테이너 위를 뛰어다니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게 18살짜리 여고생이면 더더욱 그랬다.
그리고 마침내 틈이 났다.
위이이이잉!!
“안 돼!!”
유영이 뾰족한 비명을 질렀다. 그녀가 지쳐 움직임이 느려진 사이 공격 헬기가 빈틈을 완벽하게 찾아냈기 때문이다.
그녀가 막기 위해 몸을 날리려고 했지만 헬기의 기관총이 회전하는 속도가 더 빨랐다. 그리고 그 기관총이 불을 뿜은 순간 유영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늦었어!’
유영은 상혁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무언가 따뜻한 손이 그녀의 몸을 턱하고 받아 냈다.
“내가 일어난 게 그렇게 반가워?”
“당신!”
드르르륵!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상혁을 유영을 납치한 테러범으로 오인한 공격 헬기의 기관총이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유영이 한 가지 모르는 것이 있었다.
상혁이 만들어 낸 5서클의 에어 월은 기관총 같은 작은 투사체로는 뚫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저건 또 뭐야?”
“아마! 당신을 테러범으로 착각한 것 같아요. 저 공기로 된 벽 때문에 접근할 수가 없다 보니까.”
“아.”
상혁은 볼을 긁적였다. 아마 아직 중국 주석은 한국에 있을 것이다. 급히 돌아오고 있겠지만 중간에 소통에 혼선이 일어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건 알겠고. 이제 알았으니까 좀 비키지?”
“아!”
유영은 그때까지 상혁에게 안겨 있다시피 그의 품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상혁이 그걸 지적하자 유영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재빨리 상혁의 가슴팍을 밀며 벌떡 일어났다.
“코피가 났네.”
상혁이 손가락으로 코피가 난 곳을 문지르자 핏덩이가 떨어졌다. 간단한 마법으로 핏자국을 지우고, 코피로 물든 앞섶을 빨아 말려 깨끗한 모습이 된 상혁이 일어나 허리를 좌우로 꺾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전 사고가 난 줄 알았는데.”
“뭐, 설명하긴 복잡하고. 든든하다고만 할게.”
“든든…… 이요?”
“응.”
상혁은 슬쩍 자신의 배를 문질렀다. 독성과 오염도가 강할수록 그 안에서 뽑아낼 수 있는 절대적인 마나량은 커진다. 그런 점에서 순수한 화학물질과 백린이 일으킨 독성이 섞여 만들어 낸 죽음의 오염은 상혁을 꽤 만족시켜 주었다.
‘8서클의 고리를 만들기 시작했으니까.’
마나를 섬세하게 뽑아내 만들어 낸 마나 실로 1억 개를 엮어 만든 7서클이다. 그리고 8서클을 만들기 위해서는 7서클보다 더 길고, 더 섬세하게 뽑은 마나 실이 10억 올이나 필요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시작이 반인 법이다.
‘네바다의 기연 같은 일이 몇 번 더 일어나면 8서클도 완성하겠는데.’
8서클에 오르기 위한 준비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10억 올의 마나 실 중 한 올에 불과하지만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게다가 상혁은 그 방법 또한 알고 있었다.
‘원전. 미세 플라스틱. 인도와 중국의 제조업. 미국과 유럽의 부호들이 만들어 내는 탄소.’
지구의 오염 원인은 수천, 수만, 어쩌면 수십만 가지가 넘을지도 모른다. 그중 상혁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굵직한 원인만 해도 열 가지가 훌쩍 넘는다.
그러나 더 쉬운 방법도 있었다.
‘핵보유국의 핵탄두. 테러. 전쟁.’
텐진에서 경험했듯 테러나 전쟁은 엄청난 오염을 일으킨다.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와중에 환경을 생각할 여유 따위는 인류에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상혁이 지름길을 원한다면 홀로 전쟁을 일으키고, 핵보유국에 쳐들어가 핵탄두를 터뜨려 버리면 끝이다.
‘리치가 될 생각이 아닌 다음에야 정석이 맞는 길이지.’
그 유혹이 없는 건 아니다. 7서클에 도달한 이상 8서클에 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법사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대마법사는 그런 인간적인 욕망 또한 제어할 줄 알아야만 한다.
8서클에 오른다고 해서 어차피 인간의 욕심은 만족되는 것이 아니니까. 8서클이 되면 또 9서클을 바라보는 것이 마법사의 욕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욕심은 끝이 없다. 그러나 그 욕심에 넘어가 지름길을 택한 순간 오히려 다음 경지로의 문은 굳건히 닫힐 것이다.
상혁이 생각한 지름길은 리치가 되는 지름길이지 8서클을 넘어 9서클에 도달하고 싶다면 절대로 걸어서는 안 될 길이다.
수많은 가나안의 마법사들이 재능의, 시간의 벽에 부딪혔다고 지름길을 택했다가 어떤 최후를 맞았는지 상혁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리치, 마족의 노예, 마나 폭주 등등.
그들의 말로가 좋은 적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없었다.
상혁은 그런 처참한 말로를 걸을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마법을 배운 것도 마법이란 학문에 열정이 있다기보다는 마나안이라는 것 때문에 마법이 체질에 맞고 마법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상혁이 마법을 배운 이후.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지. 남의 눈물과 피를 짓밟고 잘 먹고 잘살아 봤자 뒈지면 리치가 될 확률이 높고.’
중얼거린 상혁이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유영에게 말했다.
“네 말대로 여기 문제, 해결해 줬다?”
“네?”
“네 눈으로 봐. 해제.”
휘오오오오…… 뚝.
상혁의 핑거 스냅 한 번에 에어 월 안으로 휘몰아치던 강풍이 잦아들더니 어느 순간 뚝 하고 끊겼다. 그리고 상혁이 선심 쓴다는 듯 손가락을 한 번 더 딱하고 튕기자 미풍이 불며 시야가 확 트였다.
백린은 에어 월의 강풍에 꺼진 지 오래다. 그러자 드러난 건 전쟁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크레이터가 이곳저곳 남아 연기를 피워 올리는 부두의 처참한 모습이었다.
바람이 가라앉자 납작 엎드려 있던 군인과 공안들이 꾸물거리면서 몸을 일으키는 것이 유영의 눈에 들어왔다.
“아…….”
하지만 움직임을 보이는 이들은 일부였다. 많은 공안과 군인이 쓰러진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상혁이 빠르게 움직인다고 움직였으나 그게 최선이었다.
이미 폭발 때 그 피해로 사망한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유영은 그걸 알았지만 상혁의 손을 붙잡으며 고맙다고 연신 되뇌며 눈물을 흘렸다. 저렇게 사람이 많이 죽은 건 테러의 잘못이지 상혁의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상혁 때문에 저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산 것이다.
상혁은 유영의 깊은 마음 씀씀이에 피식 웃었다. 18살이라더니, 마음을 쓰는 건 웬만한 어른 못지않았다.
“알면 됐다.”
삐오- 삐오- 삐오-
두두둑!
저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구급차가 달려오며 내는 소리였다. 상혁은 마호메드를 힐끗 쳐다보고는 놈의 어깨를 툭 밀면서 유영에게 말했다.
“네 아비한테, 그러니까 주석에게 말이나 잘 전해.”
“네?”
“내가 주석에게 받아야 할 것이 늘었다고. 딸만 구해 준 게 아니라 중국의 테러도 막아 준 셈이니까. 깔끔하게 받을 것만 받겠다고.”
상혁이 한 말에 잠시 유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내 유영이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입술을 달싹이면서 말했다.
“부끄러워도 하시네요.”
“귀찮은 거야.”
받을 것만 받겠다는 건 필요 이상의 감사 인사를 하지 말라는 뜻이다. 어차피 기브 앤 테이크로 온 셈이니까.
상혁이 손사래를 치자 유영이 빙긋 웃었다.
“알았어요. 그래도 지금은 잠깐만 안겨 있을게요.”
꾸물꾸물.
유영이 상혁의 두 팔을 들더니 상혁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상혁이 고개를 갸웃하자 유영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저기. 아마 전후 사정을 모르는 것 같아서요. 아까처럼 또 사고가 날까 봐.”
“내가 아니라 저 친구들 걱정을 해야지.”
“맞아요. 저 사람들 걱정하는 거. 그러니까 설명하기 전까지는 이대로 있어 주세요.”
상혁은 피식 웃었다.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더니 유영이 꽤 앙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영은 충격에 몸을 잘게 떨고 있어 매몰차게 밀어낼 수 없었다.
어쨌거나 18살에 불과한 소녀였으니까.
“푸후. 주석이 날 죽이려고 하는 거 아닌가 몰라. 팔불출이던데.”
상혁이 손을 들어 머리 위를 활강하는 공격 헬기에 태연하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